구소련에서 실시한 그 유명한 여우 가축화 실험, 그리고 러시아 과학자들의 이야기. 책을 읽을 때에는 인간 역시 가축화한 동물이라는 얘기에 무릎을 쳤는데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 궁금해서 은여우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진짜 개만큼 인간과 교감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성북구립도서관x그믐]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최종 후보 도서 4권이 마침내 선정되었습니다. ▷관련 링크 : https://www.gmeum.com/blog/douri/1839
첫 번째 함께 읽기,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이인규 | 마티 | 2023)
2023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의 키 센텐스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입니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와 함께 첫 번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①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함께 읽기
모임 기간 : 7/24(월) ~ 8/7(월) (15일간)
■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출판사 책 소개
‘안녕,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로 전국의 주공 키드를 불러모았던 이인규 작가의 신작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는 지금껏 한 번도 시도된 적 없었던, 아파트 단지의 건축-거주-재건축의 생애를 되짚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단지였던 둔촌주공아파트는 거주자들에게는 각별한 애정의 대상으로, 외부인들에게는 국가의 자금 조달까지 이루어진 대규모 재건축 사업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사적인 애정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거 양식이자 가장 거대한 단지인 둔촌주공아파트를 살펴보는 이 책은 우리 삶이 피어나는 골목의 이야기가 왜 그리고 어떻게 광장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책 추천평
“골목이 있었고, 골목이 모여 공터가 되었었고, 그렇게 마을이었다가 마을이 사라지고, 골목과 아이들과 함께 자랐던 나무들이 사라져간 시간의 기록, 골목을 마을이 이타적으로 또 배타적으로 엮어졌던 시간과 해체가 되는 시간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도시 재생에서, 재건축에서, 뉴타운에서 놓치고 있는 이야기들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추천합니다 : )” - 그믐 책추천 모임 중
이 책을 만든 마티출판사의 편집자가 여러분에게 책과 관련된 질문을 할 예정입니다. 질문에 대해 답도 남겨주시고, 인상 깊었던 문장이나 질문도 남겨주세요. 편집자가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애정 어린 응원과 날카로운 물음들에 이인규 작가님께서도 직접 답변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최종후보도서 네 권을 모두 읽고 성실히 참여해주시고, 풍성한 리뷰를 남겨주신 분을 선정해 그믐북클럽 1회 참가권과 성북문화재단 감사장을 드릴 예정이에요,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샘터 (230721~230724)
❝ 별점: ★★★☆
❝ 한줄평: 나도 수영 한 번 해볼까?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 키워드: #씨유숨 #어푸어푸라이프 #수영툰 #수영 #근육 #인생
❝ 추천: 수영을 배우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났던 사람, 수영의 A부터 Z까지 알고 싶은 사람
📝 (23/07/24)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 중인 요즘, 오래전 수영을 처음 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었다. 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라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이미 수영을 즐기고 계시는 분도 책을 재미있게 읽으시겠지만, 수영을 배우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났던 사람에게 이 책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수영장에 챙겨가야 할 준비물부터,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올 때까지의 과정, 있으면 유용한 수영템, 올바른 수영복 고르는 방법, 수영 친구 만드는 방법, 수영장의 일반적 문화, 수영 강습과 자유 수영의 장단점, 한강이나 여행지 같은 이색적인 곳에서 수영 경험 하기, 수영 대회, 수영에서 더 심화해서 할 수 있는 스쿠버다이빙이나 프리다이빙, ‘수태기’ 극복 방법, 몸에 힘을 빼는 것의 중요성, 수영으로 찾은 체력과 행복 등 정말 A부터 Z까지 수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수영을 배워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장 수영장에 등록하고 싶어질 것이다.
🖋️ 물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부터 외우듯 수영을 배울 때 숨 쉬는 방법부터 익힌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깨우치며 배우면 안 될 건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하나 하다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물 공포증 (p.52)
작가님의 물 공포증 에피소드를 보면서 내가 수영을 배우게 된 계기를 떠올려봤다. 물을 무서워하던 어린 나를 엄마가 수영장에 데려가 수업을 등록했던 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영이라는 걸 처음 배우게 되었다. 물에 바로 들어가면 어쩌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처음 2주 정도는 어린이용 수영장에서 머리만 물에 넣고 호흡하는 법과 발차기만 배웠던 것 같다. 아주 천천히 물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시고 또 발이 닿는 곳에서 연습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물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두 달 후에는 성인용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수영을 배워두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물을 무서워했을지도 모른다.
또 작가님이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고민하시던 부분이 지금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신기하고 웃겼다.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 망설여지는 이유 중 두 가지가 ‘수영은 몸이 기억한다는데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와 ‘수영복을 입는 게 꺼려지는데 괜찮을까?’ 였기 때문이다. 작가님의 글을 보며 수영을 다시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용기도 조금 생긴 것 같다.
🖋️ 수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이런 화려한 취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수영의 재미와 수영복을 하나씩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치료는 오직 구매뿐. 이미 많아진 수영복을 다 입어 보기 전까지 당분간은 수영을 그만둘 수 없다. / 내 안의 화려함 (p.74)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도 수영 초보자인 주인공이 ‘요란하고 과감한 색상은 숙련자의 것‘(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p.10)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데, 작가님께서도 상급반이 된 기념으로 형광 핫핑크 수영복을 고르셨다는 대목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감이 생길수록 수영복도 화려해지는 걸까? 이것도 뭔가 수영인들의 암묵적 룰인가 싶어서 귀엽게 느껴졌다.
작가님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다 보니 수영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수영장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속도에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끈기 있는 노력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함께할 때 더 즐겁고 힘이 난다는 것, 잘하면 즐겁지만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나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 있어 기준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장거리 레이스를 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염두에 두고 내가 가진 힘을 잘 배분해 내 페이스대로 가야 한다는 것, 모두 수영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해당되는 좋은 말들이었다. ‘좋아하면 행복해진다’는 마지막 글의 제목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학과지성사 (230718~230723)
❝ 별점: ★★★★☆ (23.10.23 수정)
❝ 한줄평: 다채로운 빛깔로 기억될 2023년의 여름
❝ 키워드: #수영 #호흡 #사랑 #고향 #시절
❝ 추천: 2023년의 여름을 한 권의 책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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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 (23/07/18) 기후 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극한 호우’라고 불릴 만큼의 비가 퍼붓고, 그로 인해 많은 생명이 숨을 거두었고, 농작물, 건축물 등 할 것 없이 모두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소설 속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너무나 무겁게 마음에 내려앉는다. 어른이 된 후 기억에 남는 참사가 너무 많다. 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은 더더욱 많겠지만. 어쨌든 그런 죽음 이후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고, 시간은 흐른다. 슬프게도.
수영을 좋아한다. 물속은 몹시 고요해 가끔 그 안에 있다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숨쉬기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부자연스럽고 절실한 일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는 주호의 말처럼, 물속에서는 물 밖과 달리 숨을 참아야 하고, ’호흡‘이 매우 소중해진다. 하지만 수영에는 물속을 유영하는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 물 위를 떠다니는 방식도 있다. 몸에 힘을 적당히 빼야 물에 뜰 수 있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적당히 힘을 주고, 적당히 힘을 빼서 물에 뜨는 균형점을 찾는 일, 삶도 그런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
희주와 주호가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는 건, 어쩌면 열심히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이유는 모르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살아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이 보면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인 게 아닐까.
🖋️ 물속과 물 밖. 시끄러움과 고요함. (…)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몸이 흔들리고 몸이 휜다. 떠오르는 몸. 가라앉는 몸. 물을 밀어내는 만큼 밀려가는 몸. 밀어내는 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 두 사람은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p.40)
‘딱 그만큼, 갈 수 있는 만큼 가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함’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글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은 듯하다.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따뜻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아릿한, 그런 글이어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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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롤링 선더 러브」
📝 (23/07/20)
🖋️ "아 근데. 나는 사랑이 좀 하고 싶다." 엘. 오. 브이. 이. 그게 뭔데. 나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고 싶다고 말하네. 웃겨. 아주 웃겨. (p.69)
37살의 맹희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이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은 없어 보인다.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둘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람으로, 둘이 있을 때 더 행복하기에 연애를, 결혼을 결심하는 걸 텐데 어떻게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예전엔 나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었던 말. ‘사랑이 뭔데! 나도 사랑 좀 해 보자!’ 이때의 사랑은 주로 연인과의 사랑을 해보고 싶단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의 의미와 범위가 아주 넓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저런 말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나도 사랑을 하고 있는 거니까.
맹희가 말하는 ‘세상에 아무리 줘도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 예전엔 이 점에도 불만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큼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아무리 마음을 줘도 같은 크기만큼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때로는 슬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좋아서 주는 마음에 보답받으려고 하는 건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나도 보답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 그 순간에 그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그걸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엔 관계에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 나의 상태, 나의 행복 같은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여럿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물론 다른 의미로 즐겁지만, 혼자여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꼭 연애, 결혼, 육아 등이 정답인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맹희는 어쩌면 그 과도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정답과 모험 사이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사람.
🖋️ 맹희는 외투를 옷걸이에 단정하게 건 뒤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랑하고 왔다." (p.99)
맹희의 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사랑 좀 하고 싶지만, 또 사랑을 쿨하게 끝낼 줄도 아는 사람. 두려움 없이 언제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용기 있는 사람.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으며, 기대기도 하고, 속기도 하겠지만’ 맹희는 그래도 계속해서 ’사랑‘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맹희가 찾아 나갈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가 나아갈 길을 응원하고, 또 따라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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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 (23/07/22) 고향. 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쭉 살고 있는 나에게는 몹시 낯선 단어다. 지금 사는 도시가 고향이긴 하지만, 나의 일상이기도 하니까.
🖋️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p.129)
주인공에게 고향 울산은 애증이 담긴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난’ 대상이 ‘추자 씨’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자 씨도 아마 분명히 자신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추자 씨에게서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주인공은 추자 씨에게 큰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힘들 때 생각나는 게 고향인 것처럼, 가장 먼저 기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내려왔지만, 산불 때문에 원래 집이 아닌 ‘덕미 씨’의 집에 머무르게 된 것도 묘하다. 내가 모르는 나날들을 함께 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조금 외로워 보인다. 고향의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춘자 씨는 오랜만에 만난 나와 함께 하기는커녕 덕미 씨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는 상황.
겉으로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자주 닦아주지 않으면 식물의 숨구멍을 막는 물때와 먼지. 겉보기에 깨끗해 보였는데 막상 닦으니 새까만 먼지와 죽은 벌레들로 더러운 불투명한 형광등판.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아 쌓인 지도 몰랐던 먼지가 부옇게 부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추자 씨에게 받은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 추자 씨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p.145)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추자 씨가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결국 ’울산의 추자 씨‘도 주인공이 ‘지나가야 할 한 시절’ 같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p.149-150)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대신 택시를 떠나보낸 주인공은 자신의 두 발로 걷는 것을 택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떠나보내야 할 한 시절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 나는 바랐다. (...)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p.150-151)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불태워 재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인 듯하다. 울산과 추자 씨라는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주인공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게 될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주 새로운 시작을 꿈꿀까? 그의 미래가 어떻든, 후회 없이 두 발로 굳건히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잔뜩 흐린 하늘의 오후에 이 글을 만났다. 마음이 답답하고, 어쩐지 숨이 좀 막히는 습도와 기온. 날씨와 글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했다. 쓸쓸하지만 강렬한 마무리가 ‘재’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 노벨라 (230721~230722)
❝ 별점: ★★★☆
❝ 한줄평: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 나갈,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 키워드: #이야기 #여행 #반복 #게임 #주인공 #작가
❝ 추천: 인생이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갈지 고민 중인 사람
✨ 첫 문장: 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주변이 이전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건 조카 시환 때문이었다. (p.9)
📝 (23/07/22) 인생이 만약 무한으로 리셋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어떨까? 새로 플레이할 때마다 다르게 살아보는 것이 좋을까?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 전개가 몹시 흥미로웠다.
🖋️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p.218)
소설 속 이 문장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주인공인 내 몫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돌아가는 곳이니까.
🖋️ 작은 점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생을 결심하는 순간의 배경이 되었다.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연쇄였다. 그렇게 우리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p.231-232)
그래서 소설에서 나현과 태인을 통해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를 말하는 방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현과 태인이 함께 냥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사랑을 만들고 가꾸어나가는 것도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 ‘두 사람의 연필 소리가 겹치며 리듬을 만들어내듯’(p.100) 각자의 이야기를 조절해 ‘둘의 최선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p.105)이 사랑을, 그리고 관계를 견고하게 다져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현과 태인이 합의한 냥고 캐릭터가 점점 흔들리지 않게 된 것‘(p.106)처럼. 사랑을 한다는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에 서로의 세계가 파고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확장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사랑은 태인은 냥나라 행성에 남고 나현은 홀로 현실로 돌아오자 ‘반 쪽짜리 이야기’(p.118)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별이라는 건, 연인으로 지내며 함께 가꾸어왔던 이야기가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둘이 만들어가던 이야기는, 사랑은, 둘이 아니게 된 순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건 좋았던 기억의 조각들과는 별개다. 순간은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어도, 결말이 나버린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다.
인간관계로 생각해 보면 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나 변화하고 확장될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이야기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약속을 통해 만들어낸 세계를 함께 하는 특별한 경험’(p.69-70)을 할 수 있다는 것. ‘남의 이야기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p.70)을 받아들이는 것.
🖋️ 그래도 상상을 계속한다. 끝내 누군가와 만날 나의 이야기를. 아무도 보지 않을 곳에 잠시 비치되었다 금세 잊힐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계속 서로의 이웃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이야기를. 아직 세상에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낼 멋진 거짓말을, 진짜가 될 거짓말을. (p.235)
그래서 나현이 ‘남의 이야기를 미워했을 뿐인데 자신의 이야기까지 미워하게 된 것’(p.128)처럼 먼저 나의 이야기를 사랑해야 타인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받아들일 힘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 나갈,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나를 구하고 살게 하는,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이야기.
🖋️ "이제부턴 내 이야기를 시작하겠어." (p.138)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서울국제작가축제 이벤트로 그믐 독서모임에 참가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통 금요일 저녁에는 가볍게 유튜브 15분 영상을 1.5배속으로 몇 개 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다 갑자기 인생을 잘못 산 느낌에 빠져들어 후회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루틴이다. 그런데 이 날은 노트북을 남편이 가져가버려 (본인 노트북이 갑자기 고장 나서 내 노트북을 빌려주었다.) 반강제로 독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맥주 마시면서 술술 읽을 만한 책은 아니라 많이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느 부분을 읽어도 명언이 쏟아져 나오는 책이라 종종 아무 데나 펼쳐서 읽곤 한다.
우리는 여러모로 무능하다. 행성들의 위치를 변화시킬 수 없고,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의 초기 조건, 우리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힘들, 우리를 형성하고 제약하는 우주의 역사를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우주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듯하다. 우주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며 소행성이나 노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이 사실은 현대인에게 큰 불안을 안겨준다. 우주가 우리에게 어쩌면 적대적이거나 최소한 무관심하다는 사실 말이다. 우주는 우리의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데, 우리는 우주의 처분에 내맡겨져 있다.
<인생의 모든 의미> p.28
한동안 나의 식생활 일기가 뜸했다.
많은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려 왔다고. (는 거짓말)
연남동이지만 홍대입구보단 가좌역에 더 가까운 갈비탕집 우탕을 소개한다.
인근의 '무슨서점' 책방지기님이 알려준 맛집.
갈비탕 집이지만 오픈형 주방을 둘러싼 바 형태로 되어 있고 듣기 좋은 이지리스닝 팝송이 우아하게 흘러나온다.
갈비탕은 국물이 중요하지 분위기가 뭐가 중요하냐, 다 허세 아니야 라고 물으시는 분들께도 부끄럽지 않게끔 정말 맛있다. 부드러운 고기와 좋은 쌀로 만든 밥, 정갈한 김치 반찬까지.
가급적 글을 읽을 때 글 자체와 글쓴이는 구분하려고 하는 편인데, 가끔씩 좋은 에세이나 칼럼을 접하면 글쓴이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글의 내용 뿐 아니라 글의 스타일이나 온도까지 마음에 들면 특히나 그러한데, 재작년에 읽은 <나의 팬데믹 일기>가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글들 중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많이 생긴 책이었다. 벌써 2020년 팬데믹 한가운데의 분위기가 아주 오래전인 것 같이 느껴져서 다시 펼쳐 보았다가.. 역시나 감탄하며 다시 읽었다.
한 개인의 꾸준한 일상 기록이 팬데믹이라는 한 시대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세상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도 다방면일 수 있다는 것, 2020년 미국 정치와 사회 분위기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것 마냥 쉽게 기록한 것 등등, 이 책의 장점을 꼽으라면 수십가지 쯤 서술할 수 있겠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쩜 이렇게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마도 정갈한 글 스타일도 한몫했겠지만, 이런 건 그냥 글을 잘 쓴다고 나올 수 있는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젠더나 제너레이션에 관한 글들은 교과서에 싣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데, 특히나 칼럼 중 <딸에게 평등한 사회> 는 지금 다시 읽어도 어느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보다 개인적으론 훌륭하게 느껴진다.
글과 저자를 동일하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하더라도.. 이 책만큼은 예외다. 이런 글은 글쓴이와 글이 다를 수 없다고 믿고 싶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