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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33」

소설가 15명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초단편 소설을 매주 한 편씩 문화일보에 연재합니다. 이승우 은희경 김연수 이기호 김금희 곽재식 구병모 김멜라 김화진 이서수 정보라 정지돈 조경란 작가님과 김영민 교수님 등이 참여하네요.

저는 프롤로그 성격의 1회를 썼습니다. ‘K-정신’을 소재로 한 글입니다. 제가 붙인 제목은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33」이었는데 문화일보에서 제목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90401032412056001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괴담에 나올 법한 소재. 페이지는 잘 넘어가는데 문득 지금 내가 이런 걸 읽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각성하면서 읽다가 포기.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동조자

팩트와 픽션을 가르는 독백에 길을 잃고 읽다가 포기했다. 새삼스럽지만 70년대 베트남 전 시기에 대한 상식이 없음. 이와 같은 텍스트를 영상화 작업할 수 있는 박찬욱 감독이 존경스럽다.

동조자
동조자
#22. 앨저넌에게 꽃을 (Flowers for Algernon) - 다니엘 키스

어제 아침 마지막 장을 읽고 난 후 하루 종일 책의 여운에 압도당해 있었다.


좋은 책이란 추천은 받았지만 번역서의 귀엽고 밝은 표지만 보고 착한 내용의 아동 청소년 도서로 생각했다가 예상치 못한 전개와 묵직한 무게감에 어느 순간부터 계속 당황했다.


일부러 찾아 읽은 주제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최근 1년간 정신 질환에 관한 문학, 비문학을 많이 접하게 됐다. 생각지 못한 질병의 역사와 현재, 환자와 가족 등 주변인의 모습을 사회 과학 서적이나 에세이로 읽었는데 그 모든 책에서 보아온 모습을 이 귀한 한편의 소설이 모두 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의미로 소설이, 문학이 세상보다 작지 않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고통스러울만큼 현실적인 인물들, 세상을 변하게도 할 수 있을 과학과 과학자의 모습, 끝을 알지만 언제 어떤 속도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생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나라는 존재, 정체성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들..

바로 옆에서 르포를 읽는 것처럼 주인공 옆에 바짝 붙어 지켜보는 느낌이었는데 그 상황들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등장 인물 중 그 누구도 현실보다 착하지 않고 아무도 현실보다 더 잔인하지도 않다. 이같은 인정이 책을 읽는 내내 읽는 사람을 자꾸만 날카롭게 찌른다.


삶이 중요하고 사랑이 중요하고 문학이 중요하다 느끼게 해주지만, 무엇보다 글을 읽을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란 걸 알게 해준 책.


1966년에 출간된 오래된 작품인 것도 놀랍지만 short story로 먼저 출간된 1959년 당시 저자가 주인공인 찰리와 같은 32살이었단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이후 70대쯤 된 노작가가 천천히 써내려갔을 것 같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글의 전개와 함께 주인공 찰리의 1인칭 시점 문장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은 소설이라 가능한 아름다움이자, 소설로만 남겨두기 힘들만큼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모처럼 오래 울었다.


p.108

Now, I'm more alone than ever before. I wonder what would happen if they put Algernon back in the big cage with some of the other mice. Would they turn against him?


p.153

But they hold me back and try to keep me in my place. What is my place? Who and what am I now? Am I the sum of my life or only of the past of months?


p.154

But still it's frightening to realize that my fate is in the hands of men who are not the giants I once thought them to be, men who don't know all the answers.


p.168

I see now that when Norma flowered in our garden I became a weed, allowed to exist only where I would not be seen, in corners and dark places.


p.220

Although we know the end of of the maze holds death, I see now that the path I choose through that maze makes me what I am. I am not only a thing, but also a way of being - one of many ways - and knowing the paths I have followed and the ones left to take will help me understand what I am becoming.


p.249

Intelligence is one of the greatest human gifts. But all too often a search for knowledge drives out the search for love.


p.250

But I don't have any real friends. Not like I used to have in the bakery. Not a friend in the world who means anything to me, and no one I meant anything to.


p.252

He looked down and I looked at my hands to see what he was looking at. "You want these back, don't you? You want me out of here so you can come back and take over where you left off. I don't blame you. It's your body and your brain - and your life, even though you weren't able to make much use of it. I don't have the right to take it away from you. Nobody does. Who's to say that my light is better than your darkness? Who's to say death is better than your darkness? Who am I to say?...


p.284

I am afraid. Not of life, or death, or nothingness, but of wasting it as if I had never been.


p.310

If you ever reed this Miss Kinnian dont be sorry for me. Im glad I got a second chance in life like you said to be smart because I lerned alot of things that I never even new were in this werld and Im grateful I saw it all even for a little bit. And Im glad I found out all about my family an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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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way thats why Im gone to keep trying to get smart so I can have that feeling agen. Its good to no things and be smart and I wish I new evrything in the hole world. I wish I could be smart agen rite now. If I could I would sit down and reed all the time.

Flowers for Algernon
Flowers for Algernon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월급사실주의 2023』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제가 기획하고 참여한 앤솔로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월급사실주의 2023』이 나왔습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 11명의 단편소설집입니다. 최근 5년 이내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발품을 팔아 취재해서 작품을 썼습니다.

저는 코로나 사태를 겪는 여행사 직원 이야기를 썼어요. 이번 단행본이 잘 팔리면 멤버를 더 모아 ‘월급사실주의 2024, 2025, 2026…’ 하는 식으로 소설가들의 눈으로 매년 당대 한국 사회와 노동을 다루는 소설집을 내고 싶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2167985


제가 쓴 기획의 말 아닌 기획의 말을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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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이 글의 제목이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인 이유가 있다. ‘월급사실주의’라는 문학 동인과 이 단행본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는 있는데, 다른 참여 작가들도 그 생각들에 다 동의하는지 자신이 없다. 내가 대표로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표 같은 건 안 정했고 앞으로도 정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또한 내 개인 의견이다.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은 다분히 1950~1960년대 영국의 싱크대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를 의식했다. 지난해 동인 참여를 제안하면서 작가 분들께 미리 말씀드린 문제의식과 규칙은 있다. 문제의식은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규칙은 이러했다.

 

①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비정규직 근무, 자영업 운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은 물론, 가사, 구직, 학습도 우리 시대의 노동이다.

② 당대 현장을 다룬다. 수십 년 전이나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쓴다. 발표 시점에서 오년 이내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③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

④ 이 동인의 멤버임을 알린다.

 

이런 문제의식과 규칙으로 동인을 만들어 책을 내자는 제안을, 글 잘 쓰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은 듯한 소설가 스무 분 남짓께 보냈다. 공감하지만 여유가 없다는 분도 계셨고 참여하기로 했다가 건강 문제로 단행본 작업에서 하차한 분도 계셨다. 나를 포함해 참여 작가 열한 명을 모은 뒤 몇몇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다.

문학동네에서 기획안을 반겼고, 책 제목에는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를 붙이기로 했다. 이 기획이 잘되면 멤버를 충원해가며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2025’ ‘월급사실주의 2026’ 하는 식으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한국 소설가들이 동시대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쓴 소설이 그렇게 쌓이면 멋지겠다.

월급사실주의 작가들의 합의는 여기까지다. 우리는 세부 이론이나 단체 규정을 만들지 않으며, 선언이나 결의문을 채택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소설을 쓴다.

 

 

 

‘이런 시대에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느냐’ ‘문학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문학계에 한 발 걸친 사람이라면 요즘 다들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문학의 힘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나오는 질문이다. 돈의 힘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귀에는 궤변처럼 들리는 답이 있다. ‘문학의 힘은 무력함에서 나옵니다’ ‘문학은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 공허한 말장난 같다. 나는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 아닌가 의심한다.

‘힘있는 문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힘 있고 아름답다. 대공황을 이야기하지만 대공황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대공황 시기 사람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럼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무언가를 말한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이 거의 끝날 무렵 나왔는데,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소설 속 묘사가 거짓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당시 그들은 미증유의 재난 속에 있었는데, 원래 거대한 사건은 안에서 평가하기 어렵고 처음 보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으로 분리됐다. 이십년이 지난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8.8퍼센트가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꼽았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외환위기 이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관련 정부 통계도 없었다.

2022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815만 명이 넘었다. 이제 한국인 절반가량은 본인이 비정규직이거나 가족이 비정규직으로, 이것은 2020년대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런데 나는 2000년대 들어 그렇게 비정규직이 늘어나던 시기, 한국 노동시장이 둘로 쪼개지던 때에, 그 실태나 증가세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비판한 작품으로 한국소설보다는 드라마나 웹툰이 먼저 떠오른다. 백수나 시간강사가 등장하는 소설들을 놓고 노동시장 이원화를 지적한 거라고 주장하고픈 마음은 안 든다.

황석영 작가는 2010년대 중반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미생》과 《송곳》을 높이 평가하며 “문학이 그런 서사를 다 놓치고 있다니!” “한국문학의 위기는 한국문학 스스로가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초한 게 아닌가” “한국 젊은 소설가들이 바로 이런 당대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미생》과 《송곳》 이전에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 큰 호응을 얻은 드라마 《직장의 신》이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였다는 사실에 이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한국 소설 중에는 원작으로 삼을 마땅한 작품이 없었던 걸까. 과연 한국 소설가들이 탄광의 카나리아고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장송곡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뭔지, 거기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잘 모르겠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몇몇 천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부동산에 매겨지는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한다.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을 흔든다.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찾는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현상들을 ‘자본가 대 노동 계급’이라는 과거의 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스타인벡도 통화 긴축이 대공황을 불러왔다거나 재정지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를 소설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마음으로 기획안을 쓰고 작가들을 모았다.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출판사 레모의 책 두 권

감사합니다

권력과 진보

권력의 부패가 당연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은 영향력의 문제인가?

권력은
권력은
23-025 | 안희연,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현대문학 (230828~230831)


❝ 별점: ★★★★

❝ 한줄평: 시인의 시간은 단어들의 문을 열고 시가 된다

❝ 키워드: #죽음 #시간 #계절 #슬픔 #밤 #책 #편지 

❝ 추천: 시인이 고른 단어들이 어떤 시가 되는지 궁금한 사람


❝ 언젠가의 우리는 지금 이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다 ❞

/ 「비롯」 (p.56)


📝 (23/08/31) 아침부터 밤이라는 하루,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 이 시들은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이 열어 본 단어의 문들 너머의 풍경으로 쓰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기억들이라면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유년이라는 단어가 거느린 숱한 문들 가운데 겨우 몇 개를 열어보았을 뿐인데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마음이 쓰려온다. 왜냐하면, 그 문을 열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 풍경으로부터 비롯된 문장을 적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에세이: 「빚진 마음의 문장 — 성남 은행동」 (p.97)


  세상과 삶을 책에 빗대어 표현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는 시들. ‘어떤 시간이든 반드시 썩고, 우리는 사라지면서 있다’는 마지막 시(「변속장치」)가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아침은 밤을 삼키고 밤은 다시 아침을 삼키며 떠나고 또 되돌아오는’(「거인의 작은 집」)것처럼, 시간은 흘러 하루가, 한 달이, 그리고 한 계절이 떠나고 또 되돌아온다. 하지만 과거의 우리는 사라지고, 또 현재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는 시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각자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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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며 문을 닫았다 탁자 위엔 읽다 만 책이 놓여 있고 내가 믿을 것은 차라리 이쪽이라고 여겼다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p.12)


❝ 그는 플랫폼에 서서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호주머니 속의 사랑을 구겨버리고 

   이름과 질문을 버린다

/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 (p.29)


 어차피 세상은 해독 불가능한 책이니까

/ 「펭귄의 기분」 (p.47)


 절반에 대한 믿음만으로 식탁에 앉는다

   우리는 사라지면서 있다

/ 「변속장치」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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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전망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

✎ 발만 남은 사람이 찾아왔다 

✎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 ⛤

✎ 말로의 책 ⛤

✎ 이것은 양피지가 아니다

✎ 고리

✎ 폐쇄 회로 ⛤

✎ 펭귄의 기분 ⛤

✎ 비롯 ⛤

✎ 원더윅스

✎ 나의 겨자씨

✎ 거인의 작은 집 ⛤

✎ 터닝

✎ 변속장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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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23-024 | 정보라, 고통에 관하여

다산책방 (230826~230831)


❝ 별점: ★★★★☆

❝ 한줄평: 고통의 잔해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

❝ 키워드: #고통 #통증 #흉터 #구원 #초월 #빛 #운명 #삶 #죽음 #사랑 

❝ 추천: 고통과 삶에 관한 깊은 고찰을 하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여자의 허벅다리 안쪽에는 칼로 그은 긴 흉터들이 얽혔다. (p.9)


❝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p.301) ❞


📝 (23/08/31) ‘세상에서 고통이 사라지자 인간은 다시 고통을 갈망하기 시작했다’는 문구에 엄청난 끌림을 느꼈다. NSTRA-14라는 부작용과 중독성이 없는 완벽한 진통제를 개발하며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제약회사, 그러나 고통이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며, 자신의 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구원에 이르며 초월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교단,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 


  교단의 보호에 보답하기 위해 교단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태의 형 한과, 교단의 지시로 제약회사 본사를 폭발시켜 경의 부모를 죽인 태. 부모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고통받다 자살을 시도해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사고로부터 목숨을 건진경과, 그런 경을 보살피다 결혼까지 하게 된 현. 그리고 이들의 주위를 맴돌며 삶을 지켜보는 엽.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물들의 고통과 통증, 흉터와 상흔, 그리고 고통의 의미와 고통 이후의 삶을 다룬다.


🖋️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p.128)


  살아가면서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느끼는 정도와 대응하는 방식, 그리고 고통을 넘어 회복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완벽히 동일하게 나의 고통의 감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다.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알 수 있을 뿐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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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이 찾아오면 경은 자신의 몸과 싸우지 않았다.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워서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럴 때면 현은 옆에 함께 누워서 창백해진 경의 어깨를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p.169)


🖋️ 경은 현을 사랑했다. 그리고 현과 함께, 자신도 현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남은 삶을 함께 살기를원했다. 고통스럽지 않은 기억으로 삶을 채우고 흉터가 아닌 증거들로 앞에 남은 생을 함께 축복하고 기념하기를 원했다.(p.3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리고 그 고통을 대신 겪어줄 수는 없어도, 우리는 현처럼 곁에 머무르는 방식으로도 고통을 공유할 수 있다. 부모에게 고통을 받고 잘못된믿음을 주입받아 혼자서는 제약회사 밖의 ‘진짜 현실’을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경은, 회사와 사랑하는 현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며,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과거의 삶을 계속 곱씹다 보면 그 속에 매몰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남은 생을 현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결국 홀로 서는 경험을 하며 고통을 극복해 보았기에 경은 사랑하는 현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경이라는 이름의 한자(嬛, 홀로 경)는 ‘홀로, 고독한, 단단한, 치밀한’이라는 뜻과 함께 ‘날렵한, 산뜻할, 우아한’이라는 뜻의 ‘현’이라는 음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보고경은 홀로 있을 때도 현과 함께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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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이 완전한 결별을 고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태는 비로소 깨달았다. 오래전 태가 저지른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가 남긴 두 사람의 삶 사이에 있던 연결점이 사라졌다는 것, 최소한 경은 이제 그 연결점에 얽매이지 않고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태가 남긴 잔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해 이미 나아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끝이었다. (p.320-321)


  스스로에게 가해서 생기든 외부로부터 생기든 간에 고통 이후에는 흉터라는 흔적이 남는다. 흉터는 고통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고통에서 회복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경이 마지막으로 태를 찾아가 결별을 고하는 장면은 어쩌면 자신의 흉터를 완전히 봉합하고 회복하는 마지막 단계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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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을 생체 실험에 이용하는 경의 부모나, 엽이 교단을 만든 목적과 다르게 이를 악용하여 타인의 고통 위에 서서 그것을 자신의 권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을 보며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 괴로움마저도 자신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수 있는 섬뜩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의 살인이 달갑지 않으면서도, ‘엽-교주-의사-외계 존재’라는 이 세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이 악을 처단하는 것이 오히려 더 극적인 처형이라고 느꼈다.


  누구나 고통을 겪지만,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며, 크고 작은 흉터를 품고 있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나의 고통이 이해받거나 대신 겪어줄 수 없는 것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의 곁에 머무르며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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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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