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e-book, 231017~231018)
❝ 별점: ★★★★
❝ 한줄평: 사랑하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사랑하는 것
❝ 키워드: 죽음, 기억, 소멸 | 속마음, 사랑, 거짓말 | 복수, 합리화, 믿음
❝ 추천: 사랑에 대한 믿음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
❝ 끝내 사랑을 멈추지 않는 마음 ❞
/ 해설 | 마음의 형태학: 귀신, 마음소라 그리고 요정 — 전승민 문학평론가
📝 (23/10/19) 이유리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 이 책과 『좋은 곳에서 만나요』 두 권을 먼저 골라왔는데, 이 작품을 먼저 읽었다.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처음 읽어보는데, 세 편의 단편과 작가의 에세이, 그리고 작품 해설로 이루어져 있어 만약 처음 읽어보는 작가라면 이 시리즈로 작가의 작품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으로 이유리 작가님의 작품에 입문하게 된 게 굉장히 만족스럽다. 해설에서 『브로콜리 펀치』의 작품 몇 편도 소개되어 이유리의 세계가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Q.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지더라도 사람끼리는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팍팍한 세상에서 본인이 믿는 희망은 여전히 사랑인가?
A. 말로 내뱉자면 낯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고 믿는다. 결국에는 사랑이 이긴다. 내가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도 ‘그치만 결국 사랑이 이길 텐데’라고 되뇌며 논리를 갖추거나 생각의 근육을 키우거나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사랑이 이긴다는 명제는 내 삶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믿고자 한다.
(링크: 아이유와 이지은 | https://www.harpersbazaar.co.kr/article/75198)
위의 문답은 하퍼스바자에서 진행한 아이유의 인터뷰에서 정말 인상적이어서 따로 기록해 두었던 구절이다.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말은 ‘끝내 사랑을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저 구절이 마음에 맴돌았다.
세 편의 단편은 우리에게 사랑의 다양한 모양을 보여준다. 얼굴도 모르는 이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도 사랑, 진심을 알면서도 그것을 솔직히 말하기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도 사랑,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어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아무리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고, 그렇기에 인간적인 마음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끝내 사랑을 포기해선 안된다. ‘모든 것들의 세계’에서 사랑하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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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
: 사랑하는 이를 충분히 기억하고 그리워한 다음 잘 보내준 후에야 진짜 이별이 찾아오는 것
| 산 사람인 애인은 언젠가는 결국 천주안을 잊을 것이고 천주안은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슬픈 일은 아니기를, 마지막에는 기어이 잊혔음을 기뻐하며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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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소라」
: 진실을 안다는 게 언제나 좋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
| 분명 처음에는 별것 아닌 실금에 불과했을 그것을 만약 제때 알아차리고 메꾸어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아름다운 건물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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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코인」
: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잃지 않아야 하는 어떤 믿음
| “우진아, 우린 잘못한 거 없어."
(...)
“바꿀 수 없다면 우리도 똑같아지면 돼. 이왕 나쁜 놈이 될 거면 확실히, 제대로 나쁜 놈 한번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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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식공동체 그믐입니다.
오늘 그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복구되었습니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지난 13일, 그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으로 인해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었는데, 다행히도 금일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걱정해 주시고 우려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본 계정 통해 책 이야기, 모임 소식 알리겠습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지식공동체 그믐 드림
두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홈 파티 요리를 먹다 최근에 직장이나 동네에서 목격한 이상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탐정 격인 한 남자가 ‘해답’을 내놓는 패턴의 반복.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도 너무 코지한 거 아닌가 싶고, 추리도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래도 심심풀이로 읽기에 나쁘지 않다.
푹 빠져들어 읽었다. 「불륜 연구소 취재기 」, 「바깥 세계 」, 「충청도에 있는 교회」가 특히 좋았고, 「흩어진 아이돌」은 대단했다. 천연덕스럽게, 때로 뻔뻔하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일들을 재잘거리다 갑자기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것, 때로는 절대자에 대해 날선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 독자들은 절대자의 의도와 가르침을 의심하게 되고 여운이 오래 가는 공포를 맛본다.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다. 어려서는 자주 걸렸다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좀체 걸리지 않더니 요새 갑자기 신체 활동을 많이 한 데다 새벽형 인간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바람에 생체리듬이 깨진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주말 내내 판콜에스와 프로폴리스와 영양제를 털어 넣으며 버텼지만 결국 일요일 저녁부터 기침이 시작돼 어제 퇴근 후 병원에 갔다. 말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데 말만 하면 기침이 터져나와 어쩔 수 없었다. 콧물과 기침 가래 약을 주었는데 약사가 '졸림'이라고 친히 써준 대로 9시가 되자 졸리기 시작했다. 그 덕에 빨리 자고 일어나니 세 시 사십 분. 아, 정말 우주가 나를 새벽형 인간으로 만들려는구나 하며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빨리 자도 이 시간에 일어나면 몸이 무거운데(하긴 난 어느 시간에 일어나도 몸이 무겁다.) 정신이 멀쩡한 거다. 그래서 새벽과 어울리는 시를 읽어볼까 했는데 왜 여기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
큰아이가 떠난 지 벌써 한 달이다. 비자도 방도 없이 서류만 달랑 들고 떠난 아이는 그동안 방을 얻고 비자를 받았다. 나도 이제껏 혼자서 부동산 계약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낯선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은 사람들과 계약하고 서류를 주고받았을 아이를 생각하니 대견하기도 하고 약간의 슬픔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간 후로 아이 방을 쓴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큰 아이 방이 그렇다. 결혼 전엔 4층에 살았는데 창문 옆 침대에 누우면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새벽에 눈 내리는 소리를 처음 듣기도 했다. 결혼 후 내방은 없어졌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대부분 그렇듯<?> 식탁 한켠에서 했다. 그러다 방이 생기니 아이 떠난 것과 별개로 너무 좋은 거였다. 침대에 누워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이글을 우리 딸은 안 봐야 할텐데.. 고등학교때 차단당했는데 그 후로 풀지 않았겠지?) 역시 자식으로 살았던 때가 좋았던 거였다. 엄마라는 직책<?>은 책임과 의무는 많지만 무엇하나 누리는 게 없는 게 아닌가. 자식 입장에서야 부모 마음대로 다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결혼한 후에 방을 잃고 뭘 얻었나 생각해 보니 집이었다. 특히 전셋집을 전전하다 처음 이 집을 사서 이사 왔을 때 얼마나 기뻤나.
하지만 언제든 앉아 일을 할 수 있는 책상 옆에서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침대에 누워있으니 지금껏 내가 집안에서 얼마나 부유했던가, 방을 잃고 집을 얻은 것보다 방을 갖는 것이 더 중요했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이 행복감은 고작 서너 달짜리인데 이 맛을 봤으니 그 후엔 어쩌나. 이건 다시 말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과는 별개다. 아이를 보내고 며칠 동안 운전하다가도 울컥한 사람이다. 내가. ^^
읻다 넘나리 1기 (231004~231016)
❝ 별점: ★★★★★
❝ 한줄평: 아낌없이 사랑하고 감탄할 줄 아는 아름다운 이들
❝ 키워드: 시번역 | 번역 | 창작 | 사랑 | 순수 | 열정 | 다양성 | 이미지 | 이해
❝ 추천: 문학 번역에 관심 있는 사람, 시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
📝 (23/10/17) 일곱 명의 한국 시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읻다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다.
문학 공부를 하며 누가 뭐가 제일 어렵냐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을 제일 좋아함에도 소설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고, 오히려 시 수업을 많이 들었다. 어려워서 무의식 중에 더 알고 싶고, 더 잘 읽고 싶었던 걸지도.
가장 귀중한 경험 중 하나는 시 번역을 직접 해보고 그렇게 번역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제를 해 본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많은 번역본들을 읽었음에도 번역에 관해서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뚝딱하면 번역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 번역을 직접 해보면서 모든 번역이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 번역은 단순히 언어의 교체가 아니라 ‘창작의 영역’이라는 걸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리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 막연하고 불안하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경험 이후로 모든 번역가들을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시 번역가들을 인터뷰한 이 산문집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나 여러 번역가들이 ‘번역은 창조 행위’, ‘번역은 가장 깊게 읽고, 해석하면서 창작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번역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내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걸최소화’하며 ‘내가 너무 드러나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번역은 또 다른 창작이지만, 그럼에도 원문이 존재하기에 원문을 존중하고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 작가와 번역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와 번역가가 제대로 번역본을 출간하기 위해선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시를 읽고 이해하는 것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시 번역에도 정답이 없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사랑하고 즐기며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이 번역가들이 아름답고 또 사랑스럽다. ‘문학 번역이라는 아름다운 일’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를바라며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 일곱 명의 인터뷰는 모두 일곱 개의 서점에서 진행되었는데 내가 가본 곳은 딱 두 군데였다. (서점 리스본, 위트 앤 시니컬) 하지만 모두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라 이 산문집을 계기로 인터뷰 장소였던 서점들도 차근차근 한 곳씩 방문해 보기로 다짐했다. 책을 읽다 보면 책뿐만 아니라 사람, 공간, 경험 등 다양한 것들이 함께 찾아온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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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독해와 번역은 정답이 없다. 이러한 혼돈과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번역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은유, p.9)
💬 어차피 제가 아무리 원작자의 목소리를 가져본다고 해도 결국에는 제 목소리가 나온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호영, p.46)
💬 저한테는 번역이란 당연히 창조 행위거든요. (...) 사람들이 저한테 자꾸 물어봐요. 왜 자기 글은 안 쓰냐고. 저한텐 그 질문의 의미가 '번역은 쉽잖아’ ‘번역은 창작이 아니잖아'라는 말로 들리거든요. 그런데 몇몇 작가들의 창작론을 들여다보면 '조용한 곳에서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들리는 걸 쓴다'라고 말하죠. 그게 번역하고 똑같아요. (안톤 허, p.81)
💬 시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게 시의 목적이잖아요? 각 언어의 다층적 의미를 허용해요. 그렇지만 제 기준을 없앨 수는 없고, 같은 감정이라도 다르게 표현을 하죠. (소제, p.109)
💬 의미가 아니고 이미지인 것 같아요. 이미지와 리듬을 살릴 수 있으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번역해요. (승미, p.156)
💬 풀릴 수 없는 번역은 없는 것 같아요. 무슨 언어든, 일치하는 단어나 표현이 있는데 아직 못 찾은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는 그런 믿음이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알차나, p.185)
💬 번역은 가장 깊게 읽고, 해석하면서 동시에 창작하는 일이죠. (새벽, p.214)
💬 시 번역은 결과물이 시여야 하죠. 결과물이 아름답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원본보다 아름다워도 돼요. (박술, p.236-237)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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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에게도 기초적인 도덕 감각이 있고, 인류의 종교적 행동은 기원이 최소한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유교, 도교, 힌두교, 불교, 그리스 철학,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같은 주요 종교와 사상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즈음에 불쑥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 놀라운 현상이라 여러 분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카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축의 시대’라 이름붙이기도 했다.
수녀였다가 환속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740쪽 짜리 저작 『축의 시대』는 이 시기를 깊이 들여다본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농업 발전으로 인류가 먹고 살만해지자 비슷한 때 여기저기서 체계적인 교리가 나왔을 뿐’이라며 심드렁해 하실 분도 있겠다. 그런 분들께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이유에서 적극 추천한다. 먼저 동서양 고전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혀준다는 점에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가? 구약성서의 야훼는 왜 그토록 무섭고 혼란스러운가? 논어는 어떤 면이 혁신적인가? 암스트롱은 고대 사회의 역사와 삶의 조건을 상세히 설명하며 이런 질문에 답한다. 암흑시대를 경험한 그리스인들은 비극적인 세계관 속에서 ‘강렬한 삶’을 꿈꿨다. 구약에는 유대인들이 다신교 전통을 버리고 전쟁신인 야훼를 선택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공자는 우리 모두에게 완전한 인간인 ‘군자’의 잠재력이 있으며, 그 길은 하늘에 치성을 올리는 데 있지 않고 자기계발에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종교가 아편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해당 시대상황 속에서 바라보면 축의 시대 사상가들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종교의 창시자들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질문을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맹신과 황홀경을 부정하고 행동과 생활감각을 중시했다. 이 통찰은 종교가 근본주의 신앙으로 퇴행하는 현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축의 시대』는 교양인 출판사의 대표작이자 스테디셀러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가 옮겼는데 작업에 4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번역 원고가 워낙 유려했다고 한다. 종교학자들의 추천과 독자들의 호평 속에 관련 분야에서는 필독서로 통하는 분위기다.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깊이 있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책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 결말이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다시 읽을 때에는 ‘아, 이거 읽었었지’ 하고 바로 알아차리는데 도입부가 인상적이어서 그렇다. 중반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빗대는 것처럼 보였는데, 후반에 가니 1차 세계대전 직전이 연상된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도 나오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외전. 같은 세계관이라도 여러 시점으로 진행되는 데다, 인물들이 대부분 회색지대에 있는 직업 관료들이고 모험의 성격도 복잡한 첩보극이라 새로운 박력이 있다. 클라이맥스가 아주 호쾌하다. 그런데 결말은 ‘다음 편에 계속.’
읻다 넘나리 1기 (230924~231015)
❝ 별점: ★★★★☆
❝ 한줄평: 시들은 생생히 움직이는 하나의 풍경이 되고
❝ 키워드: #계절 : 봄, 여름, 가을, 겨울 | #밤 #바다 #사랑 #삶 #죽음 #순환 #장송곡
❝ 추천: 시집 한 권에 담긴 사계절 같은 시인의 생애가 궁금한 사람, 밤을 사랑하는 사람
❝ 그것은 계절처럼 흘러가는 인생이었다. ❞
/ 옮긴이의 말 | 바다로 내달려 발광하라 (p.195)
📝 (23/10/16) 시집을 다 읽고 나서 ‘계절의 모노클’이라는 시집의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시들을 읽는 동안 사계절의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한쪽 눈으로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총 4부로 되어 있는 시집은 시인의 생애 첫 시와 마지막 시로 시작하고 끝을 맺으며, I는 봄, II는 여름, III는 가을, 그리고 IV는 겨울을 느낄 수 있는 시들로 구성되어 있어 시집과 함께 사계절의 흐름, 그리고 시인의 삶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시를 읽으며 우리는 ‘장미를 흩뿌리는 봄’(「눈을 뜨기 위하여」)을 지나 ‘태양의 뜨거운 시간을 기다리는’(「대화」) 여름을 건너 ‘추억이 버려지듯이, 잎사귀에서 멀어지는 나무’(「잠들어 있다」)들이 가득한 가을을 통과해 마침내 ‘이파리 한 장 없는 마른 나뭇가지가 위로 쭉 뻗어 있는 벌거벗은 숲’에 모두가 ‘천천히, 천천히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지’(「겨울의 초상」)는 겨울에 도달한다. 하지만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이듯, 계절은 돌고 돌아 겨울에 죽어 있던 것들을 다시 되살려내는 봄을 맞이하며 끝없이 순환한다.
밤과 달에 관심이 많았던 시인. 밤을 좋아했던 시인. 시인은 산문 <나의 밤>에서 ‘세상 모든 것은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고, 나의 귓가에는 바늘로 집듯이 시간이 흘러갈 뿐’(p.188)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밤의 시간도 영원하지는 않고, 태양이 뜨고 낮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계절, 밤과 낮, 그리고 죽음과 삶에 있어서 시작과 끝의 구분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계절처럼 흘러가는 인생’에 우리는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끝없이 순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하나의 풍경이 되는 시들을 읽으며 삶과 죽음, 계절과 순환에 관해 사유해 볼 수 있었다. 원문이 함께 실려 있으나 일본어를 알지 못해 원문과 함께 번역을 음미할 수 없어서 아쉽다. 이 아름다운 시집, 그리고 아름다운 시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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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중이 나를 떠나 망각의 구멍 속에 되돌려 놓는다 이곳 사람들은 미쳐 있다 슬퍼하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의미가없다 눈은 녹색으로 물들었다 믿음은 불확실해지고 앞을 보는 일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내 뒤에서 눈을 가리는 것은 누구인가? 나를 잠에 빠뜨려다오.
/ 「녹색 불꽃」 (p.65)
❝ —무거운 리듬 아래 깔려 있는 계절을 위해 신은 손을 들리라. 일렁이는 파도가 기어 나오는 해안선에는 소금 꽃이 피었다. 세상 모든 생명의 율동을 갈망하는 고풍스러운 건반은 먼지투성이 손가락으로 태양의 뜨거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대화」 (p.99)
❝ 붉은 소요가 인다
저녁이면 태양은 바다와 함께 죽는다. 그 뒤를 따라 옷이 흐르지만 파도는 잡을 수 없다.
/ 「낙하하는 바다」 (p.117)
❝ 밤눈에도 하얗게 떠오른 눈길,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눈은 금세 몇몇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린다. 죽음이 그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몰래 다가와 하얀 손을 흔든다. 죽음은 짙은 발자국을 남기고 지나쳐 갔다. 상냥했던 사람의 시체는 어디에 묻혔을까. 우리의 잃어버린 행복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아침, 눈 덮인 지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의 꿈을 파내는 것만 같은 삽 소리가 들린다.
/ 「겨울의 초상」 (p.151)
❝ 그날,
하늘은 소년의 살결처럼 슬프다.
영원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저 너머에서 나는 여러 개의 영상을 놓쳐버린다.
/ 「순환로」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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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I
✎ 「푸른 말」
✎ 「아침의 빵」
✎ 「오월의 리본」
✎ 「초록」
✎ 「눈을 뜨기 위하여」 ⛤
✎ 「꽃 피는 드넓은 하늘에」
✎ 「봄」 ⛤
✎ 「별자리」
✎ 「전주곡」 ⛤
II
✎ 「기억의 바다」
✎ 「녹색 불꽃」 ⛤
✎ 「The street fair」
✎ 「꿈」 ⛤
✎ 「대화」 ⛤
✎ 「단편」
✎ 「여름의 끝」
✎ 「구름의 형태」
✎ 「Finale」
III
✎ 「잠들어 있다」
✎ 「낙하하는 바다」 ⛤
✎ 「태양의 딸」
✎ 「계절의 모노클」
✎ 「종이 울리는 날」 ⛤
✎ 「검은 공기」
✎ 「녹슨 나이프」 ⛤
IV
✎ 「산맥」
✎ 「겨울의 초상」 ⛤
✎ 「순환로」 ⛤
✎ 「계절」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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