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서 사랑한 그와 그를 ‘내 것’으로 사랑한 나.
어째서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고통과 절망이 되었을까?
행복의 조건을 ‘소유’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물질이 주는 여유로움을 확실한 행복으로 느끼며 소유 자체가 행복의 지속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를 욕망과 탐욕 위에 놓는다면 끝없이 채워지지 않을 갈망 속에서 영혼은 몰락을 향하게 된다. 가지고 있어도 가지지 못한 것이며 영원히 ‘아직 없는’ 상태가 된다.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삶의 가치를 자신의 성장과 세상과의 공유에 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기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의 영혼은 위선, 오만, 허영,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 속에서 풍요롭고 충만하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고 ‘이미 없는’ 상태가 된다.
『마지막 외출』은 ‘이미 없는’ 그(K)와 ‘아직 없는’ 그녀(A)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 학문에 대한 탐구와 창조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채워 나가는 K와 진실로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면서도 배타적 독점의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주인공 A. 존재와 소유, 자유와 지배로 얽힌 두 사람의 23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가 주인공 A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작가는 전작 『나스타샤』에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당하는 두 남녀의 사랑을 즐거움과 슬픔, 화사함과 쓸쓸함과 같이 대비되는 감정들을 작가 특유의 단정하면서도 깔끔한 문체와 심미적이면서도 선명한 묘사를 통해 훌륭하게 결합시켜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주인공 A의 실종 수사로 시작하여 23년이라는 긴 세월의 흐름을 마치 한 편의 회고록을 읽는 듯 풀어낸 치밀한 서사 구조와 박진감 넘치는 인물의 깊은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무의미하고 덧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소설은 삶의 지향점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이 소박한 즐거움과 찰나의 행복을 거쳐 비극적 종말로 향해가는 과정을 주인공의 내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처연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애초에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즉 품성의 방향이다. (에리히 프롬)”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임을 주인공의 애처로운 전락으로 보여주며 깊은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지는 관계들에 대해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가의 시선은 무의미하고 덧없게만 느껴지는 현대의 삶에서 우리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오랜만에 읽는데 소설이 아닌 에세이. 반려견의 죽음, 동인도 지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재난과 친구와 일상의 이야기.
진짜 가을이네~
@ 그냥 동네
불행 포르노에 관한 심리를 분석하는 글인가 싶었지만 선정성을 쫓고 있는 미디어에 대한 성찰과 비판에 관한 내용. 기레기라 부르는 기자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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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책 읽는 우리들이 더욱더 많아지는 그날까지,
저는 새로운 기능 소식을 가지고 올게요.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인간이 가장 오래 고민해왔지만 여전히 대답을 얻지 못한 문제인 듯 하다. 인공지능의 출현이 오히려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처럼, 혹은 인류 역사상 다른 인종은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때가 있기도 했던 것처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명쾌하기가 대답하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변화(물리적이든 생각의 측면에서든)에 준비해야 한다고 느끼는 중간자들이 이렇게 책이나 영화나 혹은 학술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증오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 더 멀리까지 올 수 있다고."(p424)하는 글처럼 '우리'와 다르다고 증오하고 배척하는 그 무엇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부라는 받아들여보자는 뜻에서 말이다.
바둑을 사랑하는 기자의 바둑 에세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관전하며 생각하고 느낀 내용이 3분의 2 정도 되고, 바둑에서 배울 수 있는 리더십과 삶의 자세가 나머지 3분의 1 정도다. 이 9단이 5국 때 멋지게 이기고 싶어 과욕을 부렸다고 분석한다.
조선 선비들은 인격적 귀신을 부정하는 듯했지만 기록도 여럿 남겼고 나름의 귀신론도 몇 가지 펼쳤다. 조선시대 귀신 설화와 담론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지만 연구자인 저자가 현대 한국에서 보고 들은 굿과 무속인 이야기도 재미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시대에 남긴 가장 큰 흔적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만 100만부가 넘게 팔렸는데도 저자의 다른 책이 주목받거나 저자를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없는걸로 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문학적으로 성취가 뛰어난 책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들에게 남긴 최대의 가치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 자체가 있다고 본다. 하필 이 책이 출판되던 시기는 젠더 문제, 특히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하던 시기였기에 평생 책이라고는 읽지 않은 남성들이 책을 읽고 분노에 차서 리뷰를 올리며 독서 인증을 하는 평생에 다시 보기 힘든 진풍경을 가질 수 있었다.(가끔 책을 읽지도 않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인신공격 외에는 더 언급할 말이 없다.)
그리하여 82년생 김지영은 일종의 르네상스를 만들어서 한국 남성들에게 서적도 하나의 컨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서점을 훝어보다가 82년생 김지영의 남성 버전의 책을 두 번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런 시도는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시도들은 조남주의 사회참가적 시도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훌륭하지도 않은 글솜씨마저도 그대로 이어받아서 원작 그 이상으로 재미없다는 느낌 외에는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느낌은 그렇게 남아있지는 않다.
더욱이 이런 참가자들은 대부분 불편한 진실을 모른채 뒤늦게 뛰어든 상황이었다. 즉 어떤 컨텐츠가 유행했을때에는 이미 그 컨텐츠는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사실 그들이 그런 책을 출판했을 때에는 이미 김지영은 불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슬슬 다른 컨텐츠를 찾아야할 시기에 그들은 외롭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말았던 것이다.(오프라인 독서모임이나 관련 행사를 참가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독서란 기본적으로 여성이 다수인 행사다. 독서에 평소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20~40대 남성 독자란 그렇게 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텐데!)
물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82년생 남성 작가들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외면을 통해서 남성들은 여성 작가에 비해서 철저히 외면받는 사실을 고발하려는 자기희생같은 것 말이다. 허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고도의 장치를 하려는 사람이었다면 기껏해야 자기 마음에 안드는 책 한 권이 인기를 끄는 것이 불편하다고 불판에 뛰어드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 어느샌가 신간들의 홍수에 빠져서 우리들에게 더 이상 그렇게 기억되지는 않는 책이다.(알라딘,yes24 중고서점에 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에 대한 옹호과 비판에 대해서 쓸데없이 말하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긍정적인 영향은 모호하고 모두에게 가상의 아픔과 과장된 아픔을 만들어낸 작품이 과연 미래에도 가치있게 평가될 수 있는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84년에 태어난 김지영과 김지혁은 부디 젠더 문제에 대한 아픔이 없는 시기이기를 빌며 이만 줄인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읽다 보면 조금이라도 반드시 기분이 좋아지는 책’으로 분류하고 싶다. 아주 예쁜 책이기도 하고. 소설, 술, 삶은 모두 적당히 즐기기에는 괜찮은 것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