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계관 최강자 이준영
: 내가 제일 인상깊게 봤던 캐릭터!!! 는 당연히 준영이겠습니다. 난 연애고 결혼이고 아무것도 해본적 없지만 자식노릇은 해봤고 그건 정말 힘들었으니까. 또 내가 예전에 이거랑 비슷하게 전상국 선생님의 <우리들의 날개>라는 소설을 보고 미쳐가지고 10장 정도 감상문을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한호라는 친구랑 준영이랑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닮았다. 그래서 막 정이 엄청 많이 갔다. ㅠㅠㅠ
1. 준영이는 아빠 닮을까?
ㄴㄴ 엄마 닮는다. 여기에서 제일 유의해야 하는 점은! 엄마 지선우는 가정주부가 아닌 밖에서 돈 벌어오는 사람이며 아빠 이태오는 준영이의 육아를 담당하며 사실상 가정주부로 지냈단 것이다. 그니까 아들은 지 애비 닮는다는 말은 돈버는 아빠 주부 엄마를 어느정도 상정한 말인데 배경이 전혀 다르단 뜻. 애초에 이태오랑 준영이는 그냥 뼛속까지 다른 사람이다. 명백하게 지선우와 이태오 그 누구도 준영이를 인격체로 존중을 안한다. 준영이는 그냥 트로피이다. 이기는 사람이 가진다. 준영이 또한 그것을 엄청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뭘 해도 지선우는 만족하는 기미가 보이지가 않고 친구들은 허허실실 웃으면서 학교 잘 다니는데 그것마저도 힘들어 죽겠고 야구는 애진작에 그만뒀고 해서... 드라마 전반부에는 준영이가 야구를 잘했다, 게임을 자제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칭찬을 받고 하지만 갈수록 성취감을 느낄 일이 전혀 없어진다. 그냥 자기가 엄마 옆에 있으면 엄마가 좋아하고 아빠 옆에 있으면 아빠가 좋아하고 준영이는 어딜 가나 괴롭기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준영이 입장에선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성취해내는 일이 뭐냐 하면 엄마 아빠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엄마 아빠한테 몇번이나 도움을 청해봐도 자기들 사랑싸움하느라 듣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가 뭔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즉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준영이 입장에서는. 이건 명백하게 엄마의 컴플렉스에 가깝다.
이태오는 자기 아빠가 내연녀랑 바람나서 도망간 사람이고 따라서 준영이 옆에 있기 위해서 노력한다. 준영이한테 또래들한테 잘 보일 수 있는 야구배트나 좋은 집 재밌는 게임 이런 것들을 제공해주려고 하고. 자기가 성장할 때에 늘 부러워했던 근본적인 결핍을 해소해주려 한다. 근데 문제는 지선우는 엄마아빠가 하루아침에 죽어서 자기 혼자 뭔가를 컨트롤하려고 악착같이 노력해온 사람이고, 즉 준영이랑 똑같이 자기가 뭔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감각을 지켜내기 위해서 평생을 바친 사람이란 거다. 이태오에겐 안된 일이지만 이것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태오가 야구배트에 유명선수 사인에 뭘 갖다바쳐도 지선우는 준영이한테 숨쉬듯이 죄책감을 선물한다.... 준영이가 지선우 눈앞에서 사라질 때마다 안좋은 일이 생긴다. 역으로 생각하면 준영이가 아빠한테 갈 때마다 엄마가 크게 다친다. 준영이는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컨트롤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할 것”이라는 운명이 사실상 정해져 버렸으며 이건 이태오가 아닌 지선우의 길이다...
2. 준영이는 딱히 엇나가지도 않고 있다
도벽이란 문제도 생기고 어른들한테 따박따박 말대꾸도 하고 하지만 이건 모두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망가질 정도로 준영이의 상황이 너무 좋지가 않다. 애초에 준영이가 뭘 하려 할 때마다 (준영이 입장에서는) 다 망한다. 엄마한테 가면 아빠가 화나고 아빠한테 가면 엄마가 화나고. 애초에 거의 모든 말싸움이 ‘준영이 위해서라도’로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는 또래 친구들 (어차피 다 부촌에서 잘 사는 애들) 물건이라도 훔치는 게 제일 현명한 게 맞기는 한 듯싶다.
사람에 따라서 해석은 갈리겠지마는 물건을 훔치고 차 긁고 땡땡이치고 하는 건 사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라는 제대로 된 감각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고 하는 준영이의 마지막 양심에 가까워보인다.
- 준영이는 죄를 지었지만 벌을 받지 않는다: 자기 때문에 부모님이 갈라섰는데 여기에 대해서 부모님은 자기한테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준영이 입장에서는 뭐라도 책임을 져보고 싶을 거다. 때문에 지선우와 이태오에게 이혼 싫다고 징징거리기도 했는데 결과는 이태오가 지선우의 트라우마를 긁어서 지선우가 이태오 손에 거의 반죽음 당했다. 준영이는 자기가 뭐라도 책임져보려다가 엄마가 죽을뻔했다... 이거 때문에 아빠가 보고 싶어도 2년동안 꾹 참았지만 결국은 자기 발로 아빠를 찾아갔다. 그 결과 엄마가 폭주하기 시작하며 난데없이 엄마 집에 돌이 날아들고 괴한이 습격한다. 암튼 중요한 건 준영이 입장에서는 ‘나 때문에 엄마가 다친다’라는 게 똑똑하게 박혀있는데 엄마는 자기한테 (누가 봐도 명백하게) 억지로 웃으면서 ‘준영아 엄마는 괜찮아’라고 말한다... 호러가 따로 없다.
- 준영이는 벌을 받았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 지선우랑 이태오랑 이혼한 건데 준영이가 다 뒤집어 쓰고 있다... 게다가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태오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 즉 이태오가 여다경과 지선우 둘 중 하나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여 시작된 것이긴 한데... 준영이 입장에서는 지선우도 부원장 일과 자식 육아 둘 중 하나를 제대로 선택하지 않아 준영이가 대신 벌을 받고 있다. 이 두가지 사실이 직접 대사로 나올 정도로 준영이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게 제작자님이 의도한 건가 싶긴 한데 지선우는 자기가 이태오한테 당한 모든 걸 자기 아들한테 똑같이 갚아준다.. ^^;; 지선우는 끝까지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한다. (준영이 입장에서는 지선우는 그냥 이태오 때문에 자기 이용하는 건데) 사랑한다고 거짓말하고. (준영이 입장에서는 지선우는 무조건 자기 얘기 묵살하는데) 무슨 일이냐고 말해달라고 거짓말하고. 이태오가 불륜했을 때에 지선우의 심경 같은 건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냥 지선우는 자기 옆에 가만히 있어주길 기대하면서 여다경이랑 어떻게 해결볼지 급급했던 것처럼, 지선우는 이혼하고 준영이 아빠 못 만나게 할 때에 준영이의 심경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그냥 자기 옆에 있어주길 기대하면서 병원 일로 바쁜데 이건 준영이 입장에서는 그냥 별다른 이유도 없이 벌받는 거다...
그니까 사실 준영이 입장에서는 ‘책임을 진다’라는 개념이 거의 박살난 상태이고. 부모가 ~부부의세계~ 당하느라 방치된 동안 준영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확인해볼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친구 물건을 훔치는 것이다. 또 난데없이 벌받고 있는 자기랑 달리 아무 일없이 웃고다니는 ‘정상가족’ 애들과 자신의 격차를 어떻게든 줄여보는 일이기도 하고... 그냥 준영이는 평화의 수호자 수준으로 참을성이 좋고 (진짜 이게 문제임 지선우가 흔드는 대로 같이 흔들리는 아빠랑 다르게 지선우가 흔들어도 얘는 절대 안흔들림 그래서 지선우가 맘놓고 애를 흔들어제낌) 기이할 정도로 착해가지고 얘가 뭘하든 딱히 손해보는 사람이 없다. 중학생 애기들이야 친구가 엇나가도 금방 잊을 거고. 학부모 입장에서도! 만약에 내 애 학급에서 누군가가 도벽이 있다? 그냥 걔 때문에 잃어버린 물건 있으면 새로 하나 사줄 거고 청소년기 도벽이 그렇게 드물지 않다고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두마디 하고 말 듯.
추가로 10화에서 나온, 준영이가 굳이 ‘여회장’ 차를 긁어놓는 장면도 굉장히 좋았다. 어쨌든 준영적 관점에서 여다경 지선우 이태오 엄효정까지 모두가 발로 뛰는 상황에서 뒤에 느긋하게 앉아 관망하고 있는 사람은, 즉 죄에 대해 벌을 받고 있지 않는 사람은 여회장이 맞긴 하다.
그외에도 준영이는 착실하게 상담도 잘 받으러 다니고 힘들면 땡땡이도 치면서도 학교에는 꼬박꼬박 나가고 공부도 해보고 잘 살고 있다 여러모로.
3.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솔직히 지선우한테 있기는 하다. 지선우는 점점 뒤로 갈수록 준영이의 모든 말을 철저하게 무시를 하는데. 특히 중반부에서 준영이가 아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해보려고 운을 띄울 때마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라면서 준영이한테 자기 감정을 강요함. 지선우가 준영이도 아빠가 보고 싶을 수 있어라고 딱 한마디만 했어도 준영이는 아빠를 깔끔하게 포기했을 거 같다. 그정도로 사려깊고 영리한 사람으로 보이며 그전에 자기 감정을 인정받는 거에 대한 엄청난 목마름이 있어보임. 지선우는 준영이 어렵게 느끼지만 준영이처럼 다루기 쉬운 애도 잘 없는데.... 준영이가 ‘당신이 뭔데 (나한테 간섭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진짜로 상대가 왜 자기한테 다가오는지 잘 모름 + 자기에게 애정어린 진솔한 관심이 있다는 걸 확실하게 확인받고 싶음 이라는 게 꽤 뚜렷해보인다. 그래서 ‘난 니가 걱정되는 사람이야 / 니가 괜찮아졌으면 좋겠는 사람이야’ 같은 한마디 해주면 준영이는 바로 납득한다. 문 쾅 닫고 들어가도 ‘니가 괜찮은지 니 얘기 들어보고 싶어’라고 한마디 해주면 바로 열어준다. 근데 지선우는 이런 거도 안하고 ‘나 왜이렇게 나쁘지’로 고민하는 준영이한테 ‘너 왜그래!!’ 이러면서 다그치고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준영이 입장에선 그냥 “엄마 나는 악하고 쓸모없는 사람인가봐요” 이거밖에 할 말이 없으며 준영이가 이 말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있지도 않은 악하고 무능한 면에 굴복하는 대신 자기 방에 틀어박히는 건 지선우 입장에서야 복장 터지지 준영이 입장에서는 자기를 지키는 강인한 태도인 것임) 자기 컨트롤 아래 있으라고 강요만 하고... (만약에 내가 지선우였고 진짜 준영이랑 아빠를 띄워놓고 싶었다면 준영이 아빠한테 보내서 여다경의 솔직함이란 걸 제대로 한번 겪게 해준 다음에 준영이 입에서 ‘아빠’란 얘기 나올 때마다 머리를 부여잡고 덜덜 떨며 주저앉는 즐거운 장면을 연출했을 테다 지선우는 그놈의 선 지키느라 이렇게 못했겠지만 이게 준영적 관점에서는 차라리 나은 행동이다 지선우는 진심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다) 아무튼 이렇게 된 결과로 준영이는 아빠 보고싶고 엄마가 싫어죽겠는데 아빠 집에서 하루도 못자고 엄마 옆을 지키는 이상한 애가 되어버렸다. 준영이가 엄마 옆을 지키는 대가로 가져가는 건 딱 하나인데 “엄마의 안전” 이건 솔직히 글케 성취감이 있지도 않고... 음... 그래도 내가 엄마 옆에 없으면 엄마가 죽을 수도 있는데 울며 겨자먹기로 지키고 있어야지... 지선우가 열심히 자기 정답 찍은 결과가 이거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하면서 이태오한테 다 똑같이 돌려주려다가 준영이가 다 겪어버렸다.... 부모가 눈앞에서 죽을까봐 겁난다는 트라우마 +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얘길 안 듣고 나를 기만한다는 트라우마를 똑같이 자식한테 심어주었다. 아 물론 지선우가 잘못했다는 의견은 절대 아니다!!! 지선우한테도 세상이 너무 가혹했기 떄문에!! 걍 지선우랑 준영이랑은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아니면 서로를 솔직하고 확실하게 원망하면서 상처입히든가. 내가 지선우였으면 그냥 전남편집 보내놓고 좀 편하게 살았을 거 같다. 나도 준영이처럼 ‘싸우기보단 일단 떨어져있자’ 편이라서... 그리고 솔직히 내가 지선우였으면 이태오랑 애초에 이혼을 안했을 듯 이태오부터가 나한테 과분한 남잔데 이태오랑 결혼하니까 여다경이 원쁠원으로 딸려온다. 헉 소리 나올 정도로 무지하게 이쁜 애가 나를 도발하고 깔아뭉개려고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해주면 되지 나랑 안맞는 사춘기 남자애 굳이 데려가서 키우겠다면 보내주면 되고. 여기서 내가 손해볼 게 뭐가 있지..? 속이야 좀 상하겠건만 이건 솔직히 개이득적인 측면이 있다
4. 지선우는 준영이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했나
딱히 아닌듯. 애초에 자식을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은 거 같다. 소유물이 아니라 가축 정도로 생각하지. 그냥 채찍질 좀 하면 알아서 일 잘하고 밥주면 먹고 별 문제 없이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거. 그런 걸 원하는 거고 지선우는 여기에다가 추가로 준영이한테 뭔 괴상한 희망 같은 것도 걸어놨다. (이혼 한참전부터 어쩌면 준영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뭔가... 영혼 수준에서 거는 기대.... 자기 아들이 자기의 트라우마를 막 해결을 해줄 거고 자긴 남부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어쩌구저쩌구 이런 것. 준영이가 그럴 능력이 될 정도로 착하고 똑똑하기는 하다. 다만 그 상처를 온전히 떠안는 것은 준영이라는 것을 지선우는 몰랐던...걸까 걍 외면했던 걸까.
준영이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았을 때에 지선우는 준영이한테 “내가 많이 아프니 니 가죽까지 다 내놓고 넌 뭐 알아서 살아있어라” 라고 지속적으로 말하는 거에 가깝고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차라리 소유물로 생각하는 게 나은 듯싶다... 지선우가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고 준영이를 소유물로 생각했다면 그냥 하루 날잡고 “엄만 너 없음 콱 죽어버릴란다” 한번 갈겨서 준영이 정신에 지선우 이름 석자 새긴 다음 아빠 집으로 보내서 질풍노도는 거기서 다 보내게 하고 준영이 힘든 시기 지나면 다시 반납받았겠지... 준영이 입장에선 보고 싶은 아빠도 보고 자기가 없어도 엄만 괜찮다는 것도 드디어 확인해서 좋았을 것이다... 근데 지선우는 준영이를 소유물이 아닌 가축 (근데 이제 보통 가축이 아닌 환상의 유니콘 정도) 으로 생각을 해버렸고 솔직하게 말하건대 이건 자식 입장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 맞다.
5. 준영이는 알아서 잘 크고 있다
준영이는 지선우를 닮았지만 그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왜냐면 지선우는 자기가 외롭다는 것을 외면하고 동정받기 싫다며 앞만 보고 달렸지만 준영이는 그 외로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니까 내가 보기에 지선우는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준영이는 자기 자신보다 사람들을 좋아한다. 일단 꽤 명백하게 지선우와 이태오 때문에 준영이의 성장에는 발목이 잡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선우랑 이태오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들이 준영이를 잘 키워주고 있다. 아이는 온 마을이 같이 키운다는 유명한 격언처럼.
우선 김윤기의 역할이 드라마상에서는 제일 명확하게 나온다. 먼저 준영이한테 다가가서 아저씨는 왜 나한테 다가오냐 묻는 준영이에게 내가 널 봐버렸다고, 그냥은 못 지나치겠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지키기도 한다!! 무려 6개월이나 정신과 상담을 해준다. 준영이는 잠깐 반항하는 듯싶다가도 김윤기가 명확하게 자기의 뜻을 전달하니까 곧바로 마음의 문을 연다. 김윤기가 그... 애증하는 엄마의 연인처럼 연출이 됐는데. 즉 준영이 입장에서는 엄청 껄끄럽고 싫은 포지션의 사람인데도 준영이는 김윤기를 그렇게 미워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준영이 입장에서는 엄마아빠는 자기가 한 말 절대 안 지키는데 김윤기는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라서 쌩판 남에다가 애 입장에선 다소 우웩적인 아저씨 (새아빠 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인데도 잘 따른다. 또 준영이가 문닫고 들어가버렸을 때에 김윤기는 지선우 앞에서 준영이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을 손수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저씨가 걱정돼서 그래. 준영이 이야기 듣고 싶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줄게.) 다만 지선우는 이미 상황이 안 좋고 멘탈이 나가있어서 왜 김윤기도 하는 걸 엄마인 나는 못하지 라는 열등감에 빠져있느라 그걸 못 보기는 한다... 안타깝다.
또 여다경!!! 여다경이 종국엔 이태오 지선우 준영이 모두와 연 끊었다고 알고 있는데 만약에 준영이가 끝까지 여다경 옆에 붙어있었다면 지선우 이태오 다 필요없다. 여다경이 준영이의 진짜 부모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이유인즉슨 여다경은 지선우 이태오라는 환상의 궁합 소울메이트조차 갈라놓을 정도의 강점을 지녔기 때문이며, 그 강점이란 솔직함 그리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건 준영이의 강점이기도 하고 준영이가 가장 갈구하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이태오가 준영이를 자기 집에 초대했을 때에 저녁먹으면서 여다경은 준영이에게 말을 건넨다. “너 나 불편하지? 나도 니가 불편해. 그래도 우리 잘 지냈으면 좋겠어. 노력해볼게.” 이건 게임 오버다. 준영이 입장에선 지선우 이태오 모두 자기를 사랑해주다가 서로 싸움에 자기를 이용하면서 거짓말만 한다. 지선우 이태오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는데 준영이는 그게 뭔지 몰라서 답답하다. 근데 또 눈치는 기가 막히게 좋아서 아 엄마아빠 나한테 뭐 심상치 않은 감정 있다 이런 건 대충은 아는 듯싶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지선우 이태오가 자기 어릴 적의 컴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준영이한테 좀 요상하게 애정을 쏟아붓는다는 게 어렵지 않게 보이는데, 특히 지선우 이태오가 점점 감정이 격해지면서 점점 더 드러나기도 하고... 그 당사자인 준영이는 그 내용은 모를지라도 뭔가 더 있다 / 점점 심해진다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근데 그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엄마아빠한테는 실시간으로 계속 정떨어지는 중. 근데 아빠의 내연녀로 첫인상 레전드 안좋게 시작한 불편한 사람이 준영이한테 자기가 불편하냐고 물어봐주고 나도 니가 불편하다고까지 솔직하게!!!! 자기 입장을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같이 노력해보자고 하면서 준영이의 핵심적인 컴플렉스 (컨트롤 감각을 잃음)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며 더불어 먼저 손을 내밀어줌으로써 준영이의 외로움까지 해소해주었다. 엄마아빠보다 나이도 훨씬 젊어서 말도 잘 통할 것이다. (그리고 이쁘기도 하다.) 또 준영이는 뭔가 정줄 사람이 많이 필요한데 여다경에겐 제니란 딸이 있으며 준영이도 별 무리 없이 이복동생 제니를 좋아하는 눈치다. (준영이는 진심 착하고 쉬운 애다....) 출발은 굉장히 좋았으나 준영이와 여다경이 유대감 쌓는 하필 그 시간에 지선우가 이태오가 보낸 괴한의 습격을 받아서 준영이는 또 죄책감에 사로잡혀 엄마한테로 붙들려 가고 있긴 하다... 준영적 관점에서는 여다경이 건강한 새출발의 단초를 제공해줬고 힘차게 걸으려고 했는데 이태오의 사주로 발목이 꽉 붙들려버린 것이다. 이태오만 제발 가만히 있으면 준영이는 여다경과 함께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다. 속내를 좀체 털어놓지 않는 준영이는 언젠가는 여다경에게 자신의 가장 깊숙한 속앓이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고 평생을 아버지의 그늘 아래 답답하게 살아온 여다경은 준영이에게 누구도 할 수 없는 여다경만의 방식으로 공감해줄 수 있을 것이며... 메가폰을 잡은지 얼마 되지 않은 여다경의 집념과 실행력은 준영이 멘붕의 단초를 제공해줬지만 (이태오만 가만있으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다 이겨낼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되어주기도 했을 것이다. 이태오 또한 옆에서 아빠 노릇 제대로 해줄 수 있을 텐데... 이태오는 여다경한테 준영이를 뺏기고 싶지 않다는 자기도 모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9회말 2아웃까지 점수 따놓은 여다경 뒤에서 장외홈런 날려서 준영이를 엄마 품으로 돌려보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쩔 수 없다 이태오에게 있어 준영이는 그냥 자기 열등감 해결해줄 트로피에 불과하며 진짜 마음은 지선우에게 향해 있으니...
사실 준영이한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윤노을과 차해강인데. 10화에서 해강이가 자기가 노을이를 좋아하고 이걸 준영이한테 도와달라면서 지긋지긋한 삼각관계에 또 끌어들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을이는 힘든 상황에 빠져 방황을 하지만 모두가 어화둥둥하는 준영이한테 처음으로 작작하라고 직구를 날렸다. 아무튼 요지는 애기들은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단 점. 사실 지선우와 이태오에게 아들은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사실 아들과 아들 친구들. 얘네는 굳이 엄마아빠 없이도 자기 이야기를 잘 써나간다는 거다. 늘 누가 자기 손 잡아주기만을 바랐던 준영이에게 진짜 동등한 눈높이에서 자기 손을 잡아주는 노을이가 나타났고, 딱히 잘못한 건 없어도 자기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기가 물건까지 훔친 피해자인 해강이도 껴든다. 준영적 관점에서는 드디어 자기가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게 용서를 구하는 거든지 오히려 화를 내는 거든지 절연을 하는 거든지 화해를 하는 거든지 마침내!!!! 도움받을 사람이 싸이코아저씨 뿐이라 뒤에서 물건 훔치면서 끙끙 앓던 준영이가 자기 힘으로 뭔가를 컨트롤해볼 수 있는, 더불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볼 수 있는 무대가, 자기가 주인공으로서 책임을 지는 무대가, 애진작에 펼쳐져야 했을 무대가 드디어 열렸다. 부모나 어른들이 열어준 게 아니라 오로지 친구들이 자신의 힘으로 열어준 그런 무대이다.
준영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화목한 가정에서 잘 지내는 걸 매일매일 봐야 했다. 따라서 외로웠을 거고 그래도 노을이가 있지 않나 싶지만 사실 준영이 입장에서는 노을이가 제일 달갑지가 않다. 노을이는 자기랑 똑같이 이혼가정에서 왔는데 전혀 안 힘들어한다.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들한테는 자기는 이혼가정의 피해자라서 방황하는 거라고 당당하게 얘기해도 노을이 앞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런 위치에 있다. 그래도 노을이는 준영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노을이와의 관계에서는 이태오도 지선우도 발목잡을 여지가 없다. 그렇게 10화가 끝났다는 게 또 의미가 좋은 거 같다. 와 진짜 각본 너무 잘 썼다.
6. GenZ is the future
부부의 세계가 너무 좋았던 게 엠지, 젠지들의 이야기를 진짜 들으려고 했다는 점?! 그니까 사실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하다”라고 얘기하는 말들이 많은데 그 말에 정면으로 반박을 해주는 게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뭐 감정교류를 많이 못해서 사회성이 없고? 부모가 너무 싸고 돌면서 키우고? 부모 없인 아무것도 못하고? 이기적이고 싸가지가 없고? SNS 때문에 다들 경한 우울증이 있고? 이게 윗세대가 젠지들한테 내린 평가이다. 너네 진짜 어떡하냐. 라고.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근데 부부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게 평가하는 거다. 너네 진짜 어떡하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젠지들은 음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하고 뭐라도 해본단 거! 과거 세대들은 자기 상처를 모르는 척하면서 덮고 덮고 또 덮고 때문에 아주 조그만 자극에도 임계점을 금방 넘어 무너져 버리지만, 요즘 세대들은 자기 상처를 직시하고 또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고. 때문에 사회성 없고 부모가 싸고 돌고 아무것도 못하고 우울증 있고 해도 사실 요즘 세대는 무조건 이전 세대보다 잘 살 것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다 불행하다고. 인터넷 연결되어서 지구촌 어디든지 볼 수 있으니까.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게 되니까. 그런 열등감이 생기니까. 진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나요. 과거 세대처럼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 뭐 그렇게 행복한가...? 남의 아픔에 관심없는 게 자랑인가...? 엠지로서 확실하게 난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환경이 열린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열등감이 생길지라도 그런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며, SNS가 안 좋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며 그 과정을 편집하고 연출해서 내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받아보는 그런 건 절대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만 잘되면 돼, 라고 외치며 자기 우물 밖으로는 고개 내밀 생각도 않는 과거 세대들과는 달리 요즘 세대들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순풍 역풍 둘다 거세지만 사회적 이슈의 관점에선 문제를 묻어버리는 대신 싸우는 게 훨씬 낫잖아! 수면 위로 잘 떠오르니까 둘다 의미있다) 남녀갈등, 환경이슈, 인종차별, 장애인 처우, 빈부격차, 외모지상주의 등등.
아무튼 결론은 준영이가 아주 약해보이지만 혼자 씩씩하게 6개월 정신과 상담받으면서 잘 사는 부부의 세계 최강자이듯이 요즘 세대도 그렇단 거다. 상처의 정도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기 상처를 제대로 보고 치유하려는 사람이 결국에는 승리하는 것이다. 자기 상처는 무작정 감추면서 엘렐레 니 상처 개크다 이러고 있는 사람한테 승산이 있겠는가. 젠지들한테 가혹한 평가를 내렸던 윗세대는 언젠가는 밀려나고 젠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텐데 음... ㅋㅋㅋㅋㅋㅋㅋ 힘내세요.
꽤 명확하게 나오는 게, 이준영 지선우 이태오 여다경 넷 중에서 이준영 여다경 둘은 미래를 보고 이태오 지선우는 과거를 본다. 그니까 불륜이라는 소재가 던져진 순간부터 이 넷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라는 질문을 하는데. 여기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미래를 향하는 이준영과 여다경 둘이다.
지선우: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 앞으로 어떡할지 모르겠단 막막함 = 이태오 니가 다 잘못한 거야
이태오: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 앞으로 어떡할지 모르겠단 막막함 = 내가 잘못했을 수도 아닐 수도
이준영: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 엄마 아빠가 이혼 안했으면 좋겠어 = 부모한테 이혼 싫다고 피력함
여다경: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 내가 한 일에는 책임을 지고 싶어 = 이태오랑 결혼하여 가정을 꾸림
그래도 지선우는 이태오의 잘못을 인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해묵은 상처와 싸우기도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들을 통제하려고 해보다가 실패도 해보고 열심히 지켜왔던 부원장 자리도 빼앗겨보고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점점 미래를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10화에서는 이태오를 향한 애증을 인정하고 고산을 떠날지 말지에 대한 미래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우고 있기도 하고. 이태오는 뭐... 잘생겼다. 홧팅~
2) 캐릭터 해석의 시간이 왔다
(인물관계도 왼 -> 오 순서대로)
1. 박인규: 데폭범이 되어비린 언럭키 재능충
‘양아치’의 전형으로 나온 인규님!! 보면서 내가 다 쫄릴 정도로 연기가 훌륭했다. 우선 폭력은 정말 나쁘다. 이거부터 분명히 하고...
근데 이 사람? 재능있다 (폭력 쪽으로 말고 무언가에 재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니까 거의 초반부에 박인규가 지선우를 찾아가서 협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에 뭔가 기묘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지선우를 협박을 한다. 이때에 말의 내용, 말투, 몸짓 이런 거부터 시작해서 진료실에 있는 바퀴달린 의자를 쭉 밀어서 지선우를 한번 겁먹이고 침뱉어서 두번 겁먹이고 이런 타이밍 조절 기타 등등. 이때에 머릿속에 딱 떠오른 건 “와 이 사람 의전에 소질있다.” 그러니까 그 짧은 순간에... 처음 간 병원에서 진료실을 쭉 스캔하고 내가 어떤 물건을 써서 어떻게 던져야지 어디에 침을 뱉고 그건 언제 해야지 이런 걸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이런 능력! 이라는 것이 의전에 필요한 능력과 솔직히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특히 상대의 반응을 살살 봐가면서 완급을 조절하는 그런 능력! 뭐랄까 그 장면에서 박인규는 폭포수를 맞으며 무술을 수련한 고수의 느낌이 났달까... 생존을 위해서 그런 능력을 갈고닦은 건 (무척이나 잘못되었지만) 아무튼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그리고 볼수록 굉장히 집요하고 영리하기도 하다. 감도 타고났고 노력도 하고 야망도 있고 능력도 있다. 일례로 지선우를 위협하기 위해서 굳이 길거리에 비둘기를 (아마도 맨손으로) 잡아서 죽여서 (동물학대는 나쁘다) 박스에 넣고 준영이 하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 찍고 그거 또 인화해서 같이 넣어서 퀵으로 보내고.... 이 사람이 지선우처럼 의사가 되었다면 지선우보다 잘했을지도 모른다. 환자의 전반적인 컨디션을 살피면서 뭐하나 놓치는 거 없이 매의 눈으로 잘 살폈을 거 같다. 무엇보다 박인규는 “사람은 언제 겁을 먹나”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다. 환자들에게도 이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을 거고 (환자가 심하게 겁먹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겁먹지 말라고 말 한마디만 해줘도 환자 입장에선 정말 좋게 느껴지니까) 환자들은 박인규 의사 많이 좋아했을 거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간호사라는 직업이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또한 이태오처럼 영화감독이 되었다면 이태오보다 잘했을 거다. 프로덕션 운영도 잘했을 거고... 손익 계산이 잘 되니까. 또 투자자도 잘 물어왔을 거 같다. 결정적으로 박인규는 무척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 그 뼈깊은 외로움에서 나온 집요함이 박인규 감독만의 색깔이 되어주었으리라 예상해본다.
그래서 솔직히 박인규가 많이 잘못했고 그런 건 알겠는데 (좀많이) 슬펐다. 박인규가 어렸을 때에 김윤기 같은 사람이 다가가줬다면 그렇게 범죄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 근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박인규는 그렇게 나빠졌고 이걸 민현서도 잘 아는 거 같아서... 그래도 범죄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다만 박인규가 지선우와 이태오에게 의사와 영화감독이라는 번듯한 직업을 들먹이면서 협박을 할 때 쓸쓸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박인규 당신이 더 잘했을 거라서...
2. 민현서: 지선우의 좋은 점만 닮은 딸
민현서는 지선우의 어린 시절 내지는 ‘완벽’을 향해 가던 시절을 상징하기 위한 의도성이 있는 캐릭터구나, 라고 싶을 정도로 둘이 닮았다. 유튜브 쇼츠 댓글 중에 지선우에게 딸이 있었다면 다 괜찮아졌을 건데, 라는 댓글도 많았는데 여기 있어요!! 실제로 민현서랑 지선우랑 굉장히 모녀 관계 같은 연출이 많이 나온다. 지선우가 좀 심하게 악바리고 자기만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래 너 혼자 대쪽이다’ 싶고 불편하게 다가오지만 민현서랑 지선우랑은 너무 닮아 서로 말이 정말 잘 통하기도 한다. 민현서랑 준영이랑 대조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선우는 민현서한테도 준영이한테도 오로지 직진만 한다. 준영이는 지선우한테 이골이 나서 지선우가 다가갈 때마다 더욱 문을 굳게 닫아버리지만, 민현서는 지선우가 다가올 때마다 마음의 문을 연다... 이건 준영이랑 민현서의 근본적인 배경이 달라서 그런 걸거다. 준영이는 엄마아빠가 너무 자기를 괴롭혀서 문제였지만 민현서는 반대로 엄마아빠의 부재로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고 이런 면은 지선우랑 일맥상통하니까. 지선우도 준영이 앞에서는 솔직하지도 못하고 준영이 말도 잘 안듣고 하지만 민현서한테는 솔직해지고 민현서의 말도 잘 듣고 그 뒤에 있는 맥락까지 파악해서 정말 훌륭하게 부모 노릇을 해준다.
예를 들어 준영이가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나한테 왜 이러는데요” 라고 토로할 때 다그치기만 하고 딱히 대답을 안해준다... 그냥 말 잘 들으라고만 하고. 솔직히 중학생인 준영이 입장에서는 “저한테 납득가능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저한테도 왜 그러냐고 물어봐주세요”라는 요구를 꽤 직설적으로 털어놓은 거였는데 이런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않고 자기 감정만 강요를 한다. 근데 민현서한테는 다르다. 민현서의 감정이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계속 물어봐주고 자기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 한편 민현서의 도움도 받고. 민현서가 찾아오지 말라고 할 때에도 남자친구가 괴롭히고 있구나, 안전하지가 않구나 라는 맥락을 바로 파악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걱정해준다. 그리하여 준영이한테는 사랑한다고 백번씩 말해도 사이가 틀어지고 민현서한테는 서로 ‘이제 나 찾지 말라’고 계속 손절 갈기면서도 사이가 돈독하다... 아니 현서한테 보여준 솔직함의 반의 반이라도 준영이한테 보여줬으면... ㅠㅠ 안타까움.
그리고 민현서는 결정적으로 부부의 세계에 다양성이란 걸 추가를 해줬다. 이게 부촌에서 벌어지는 상류층끼리의 일인데도 민현서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가정에 문제 생겼는데 돈도 없으면 정말 힘들어진다 라는 걸 직접 보여준다. 이 모든 과정이 다 자연스러워서 정말 좋은 작품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라는 게 제일 뼈저리게 다가왔던 게 프로포즈 반지를 고르는 장면에서 “다 예뻐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박인규에게 선택권을 넘겨버린다. 박인규는 자연스럽게 선택권을 받아서 반지를 고르고. 결국 눈앞에 반짝거리는 선택지가 무수히 많아도 민현서는 그냥 무서워서 떨고만 있어야 한다... 그래도 지선우의 도움으로 민현서는 적극적으로 도망쳐서 기차역으로 가고,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추격전을 벌이고 민현서는 숨넘어가기 직전인데 그 누구도 민현서와 박인규에게 딱히 관심이 없다. 자극적인 폭력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상징적으로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이 얼마나 벗어나기 힘들고 사람을 피말리게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연출이었다. 또 초반에 민현서의 대사로 직접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라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여러모로 잘 만든 드라마인 거 같다...
따져보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현서가 박인규한테 그렇게까지 당한 거기도 하다. 그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민현서 입장에서 박인규는 ‘내가 필요한 사람’이니까. (이거는 연출적으로도 좋았다. 드라마의 전체 흐름을 관통하는 암시를 넣은 대사였다. 아마도 1화?에 나오는 대사인데 이 대사가 나온 뒤로부터 작중 모든 캐릭터가 ‘너도 내가 필요하지!! 너도 내가 필요하지!! 너도 내가 필요하지!!!!’라는 절규를 10화동안 한다..;;)
제일 사회비판적이었던 장면이 민현서와 여다경이 작별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여다경은 부자 아빠 집으로 들어가면서 민현서한테 “언니도 그러고 있지 말고 그 남자 얼른 정리해요.” 라고 말한다... 여다경이 세상 물정 몰라서 그런 거긴 하지만 솔직히 이건 폭언에 가깝게 느껴진다... 진짜 마음이 아팠다... 아 물론 나도 살면서 뭔가... 음... 여다경처럼 기만질 한 적이 있는 거 같기는 하다. (사실 좀 많음) 여다경이 그러하듯이 나도 “내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너한테는 쉽지 않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너무 늦게 배웠던 거 같다. 반성합니다...
3. 김윤기: 또라인데 지선우랑 궁합 안맞는 또라이
진짜 첫인상 레전드 안좋은 배역이었다... 왜냐면 지선우랑 거의 첫만남에 “피곤하세요? 수면 부족이신가 봐요.” 갈겨버린다. 지선우가 자기 워킹맘이라 힘들다고 하니까 “슈퍼우먼 컴플렉스 그거 안좋은데” 갈긴다. 미친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또라이 중에 상또라이... 초면에 너 컴플렉스 있어보인다고 하기 쉽지 않다... 지선우도 당연히 기분나빠하는데 김윤기가 “병원장님한테 말씀드렸어요 우리 직원들 정신건강 제가 책임지기로” 하니까 그냥 “아 예.” 하고 대충 넘어간다. 뭐지? 의사 식 상명하복인가 아니면 둘다 파워 T라서 그런 걸까..? T들은 좀 나랑 안 맞아... 그 다음부터도 계속 인상이 별로 안 좋았다. 왜냐면 자기 전문가라고 핑계 대고 너무 대놓고 지선우를 내담자로 보고 (게다가 흥미롭다는 태도를 조금도 숨기지 않음) 기분나빴다... 다른 드라마에서도 그런 인상을 몇 번 받았는데 의사들의 로맨스는 좀 뭔가 이상하다.
분명하고 확실한 건 지선우랑 김윤기는 절대 안된다. 지금 10화에서는 잘되고 있고 사랑싸움도 하고 아주 좋다. 그 이유는 지선우가 너무 심하게 망가져서 그렇다. 그래서 김윤기가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치료? 비스무리한 걸 해줄 수가 있다. 근데 언젠가 지선우가 성장을 하고 괜찮아지면 그때가서는 끝이다... 둘은 궁합이 너무 심각하게 안맞는다.... 지선우랑 김윤기 둘다 뭔가 고고하게 안경척 하면서 상대한테 우아하게 일침 갈기는 스타일이라서 그냥 너무 안맞는다. 근데 일침러x일침러가 가능은 한데.... 둘이 또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지선우는 “호오. 그래서 당신은 뭔데 그러시죠?” 이런 타입이고, 김윤기는 “호오. 흥미롭군요.” 이런 타입이라서 둘이 서로 찍어누르려고 해봐도 파워게임이 전혀 안되고 허공에 헛발질만 할 듯. 지금은 그냥 지선우 안경이 부러진 상태라서 쿵짝이 되는 거고 지선우가 괜찮아진다? 쿵. 쿵. 쿵. 쿵. 만 하다가 바이바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뜨케 이태오를 만나다가 김윤기를 만나는데요?! 이태오는 지선우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면서 춤춰주는 남자고 김윤기는 지선우가 흔들리면 너 그러다 넘어진다고 일침놓는 남자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더글로리에서 진짜 사이코패스 역으로 나오셨던 거 같다 배우님이.... 그래서 뭔가 인상이 안좋게 느껴졌...나?! 근데 연기는 정말 좋았다...)
4. 설명숙: 친해지고 싶은 언니
명숙 언니 너무 좋다. 딱 처음에 보자마자 아 이 언니 친해지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명숙 언니는 골드미스이다. 대호감. 아 진짜 이 언니의 모든 게 좋음! 부원장 자리 탐내는 거 솔직히 시청자들은 싫어할 텐데 난 좋았다. 친구랑은 놀고, 야망은 품고, 한 번 할 거면 확실히 해야지 이런 태도가 좋았다. 병원장이 “이래서 여자는 공과 사를 구분을 못한다니까” 할 때 농인 척 “에이 지선우만 그렇죠”라고 뼈있는 말을 던지는 것도 줏대있어보이고 좋았다. 또한 너무나도 웃긴 장면이 많았다. 명숙 언니는 솔직히 인생이 너무 재밌을 거 같다. 자기 혼자 결혼 안했는데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하라고 그렇게 잔소리해대다가 어느날 갑자기 ~부부의세계~ 당하면... 그건... 너무... 재밌지.... 않겠는가.... 실제로 이태오한테 전화올 때마다 “아 왜 또 전화해!”하면서 짜증내는 척하는데 얼굴은 막 싱글벙글하다 ㅋㅋㅋㅋㅋㅋ 언니 좋아. 내가 젤 좋아하는 장면은 이태오의 꿀잼 불륜썰을 전화로 들으면서 혼자 야식으로 와인+떡볶이를 먹는 장면이었다. 그거 보는 순간 너무너무 끼고 싶었다!!! 그것도 막 배달떡볶이 이런 어린애들 음식 아니고 명숙 언니 레시피로 만든 홈메이드 후라이팬 떡볶이라서 ㅋㅋㅋㅋㅋ 진짜 친해지면 제일 재밌을 거 같다. 부원장 자리 탐내는 거 때문에 의리 없어보이나 싶기도 한데 딱히?! 언니는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거등. 병원 일은 병원 일이고. 별개로 지선우 옆에 끝까지 남아서 미주알고주알 수다도 떨어주고 한다. 물론 한소리 듣긴 했다. “너 지금 재밌니?” 물론 명숙 언니는 능구렁이처럼 넘어가서 계속 재밌게 지낸다 ㅋㅋㅋㅋㅋㅋㅋ 명숙 언니가 배신자...인가?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할 때도 내가 제일 힘들 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걸어주고 수다도 떠는 친구. 소중하지 않은가?! 아니 지선우는 대체 왜 명숙 언니를 그렇게 적대하지?! 그러지 마요!!! 선배님, 우리 언니 그렇게 표리가 부동하지가 않어... 적어도 당신보단 낫그등?! 처음에 지선우를 속인 건 맞는데 난 그냥 명숙 언니 같은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옆에 둘 거 같다. 내가 힘들 때 딱히 등돌리지도 않고 험담은 할지라도 내 앞에선 사근사근하게 해주니까. 10화 내내 지선우한테 알게모르게 힘이 많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무튼 명숙 언니는 진짜 약방 감초 같은 캐릭터이다. (내기준) 인생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동창들이 ~부부의세계~ 당하는 동안 명숙 언니는 진료실에서 의료기기 판매상 후배랑 같이 수다떨면서 놀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명숙 언니처럼 살자.
5. 여회장: 회장님 심심하시죠
여회장은.... 뭐랄까 여다경이랑 너무 닮았다. 답답해하고 심심해한다. 아직 뭔가 팔팔하게 많이 하고 싶은데 그냥 너무 이뤄놓은 것도 많고 뭐 더 할 것도 없고... 이걸 언제 느꼈냐면, 여회장이 어디 갈 때마다 이태오를 중심으로 해서 전원 기립해서 맞이해준다. 군기가 넘 심하게 들어있다.. 솔직히 그렇게 빡세게 예의차리는 것도 한두번이지 맨날 저러면 질릴 거 같다. 그렇게 예의차려서 여회장한테 하는 말이라곤 ‘회장님 대단하십니다 저희 사업에 투자해주세요’ 진짜 앵무새처럼 다같이 저말만 하는듯... 지역 유지들이랑 놀아도 뭐 재밌을까... 그니까 내가 여회장님 동년배 아저씨/할아버지들을 길거리에서 많이 보잖아요? 레스토랑에서 와인잔 드신 분들은 약간 허허..^^ 요런 느낌이고 감자탕집에서 소주 시키고 노시는 분들은 우하학!!!! >< 요런 느낌. 후자가 압도적으로 즐거워보임. 근데 여회장님 감자탕집 안갈 거 아니에요 ㅋㅋㅋㅋ 넘 심심할 거 같다. 게임으로 따져보자면?! Lv. 919392919 찍은 사람이 조그만 퀘스트만 매일매일 깨면서 심심해하는 그런 거. 그러다가 깰 맛 나는 퀘스트가 처음으로 생겼는데 그게 여다경인 거다... 유튜브 댓글에서 사람들이 여회장이 왜 저렇게 여다경을 싸고도는지 모르겠단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이해한다. 심심하니까. 자기한테 기어오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여다경이잖아... 여다경은 투자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끌리는 선택이기도 하다. 여회장한테 투자 부탁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여회장을 칭찬하고 이게 돈이 될 거 같답니다 뭐 이런 빈말만 반복하고 여회장이 싫다고 해도 비위 맞추면서 캬라멜처럼 들러붙는다. 근데 여다경이 유부남이랑 불륜 결혼하겠다고 무슨 망해가는 제작사에 투자해달라고 부탁할 때는?! 비위 뭐 그런 거 안 맞춘다. 대신 진심을 다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뚜렷하다”고 호소한다. “태오 씨 억울해요. 그 여자가 손 쓴 거예요. 태오 씨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내가 알아요.”라고 확신!!!에 차서 진솔하게 얘기를 한다. 안되면 임신한 몸으로 무릎까지 꿇어보다가도 여회장이 안돼, 라고 말하는 순간 그럼 없던 일로 하죠, 라며 쿨하게 뒤돌아선다. 당신이 여회장이라면? 돈은 썩어나고 인생은 심심한데... 혈기 넘치는 젊음이 돌덩이에 깨져서 죽어도 좋으니 일단 부딪쳐보겠다고 (좀많이) 짧고 굵게 투자 부탁하고 뒤돌아서면. 그대로 보낼 수 있는가. 난 없다.
아무튼 지금 10화에서 흥미로워지고 있는데 여회장한테 딸래미가 한 명 더 생겼다.... 지선우가 여회장한테 반기를 들었고 여회장 지금 개신남.
6. 엄효정: 사업은 이분이 하고 계셔
아니 지금 인물관계도 보고 있는데 너무 웃긴 게 ㅋㅋㅋㅋ 여회장이 사업가, 엄효정이 전업주부로 나와있다. 근데 극중에서는 사실 반대로 나온다. 아 너무 재밌어!! 묘하게 성별을 다 반전을 시켜놨다 육아 도맡아한 이태오 일밖에 모르는 지선우도 그렇고... 여회장이 무슨 사업을 하는데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대접받고 사람들은 다 여회장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여회장은 몇마디 얘기하고 골프치고 이런 게 끝임. 그의 사업은 별로 안 중요한지 나오지가 않음. 다른 드라마에서의 사모님 역할을 여회장이 하고 있다. 반면 엄효정은 여우회라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꾸린다. 그것도 미국식이다 ㅋㅋㅋㅋㅋ CEO가 따로 있다. 먼느낌인지 알죠. 암튼 전업주부 역할인데 내 앉아있는 여회장과 달리 계속 바지런하시다. 손녀딸 육아도 하고 딸 체면 차려주는 사업도 하고. 소일거리가 많아서 좀 안좋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되게 건강해보이시는? 그런 게 있다. 여회장은 가만히 앉아가지고 결정만 몇 개 내리고 여다경의 불륜을 딱히 그렇게까지 반대하지도 않고. 근데 엄효정은 여우회 자선사업, 딸의 홈파티, 각종 식사 대접, 사위-딸-손녀 집안일 처리 이런 걸 사실상 도맡아해서 맨날 바쁘고 여다경 불륜은 앞장서서 싫어했고. 여회장은 화나면 무서운 사람이고 엄효정은 여회장이 화나면 무섭다고 부산떨면서 눈치보는 사람이고. 겉으로 보면 파워게임상 여회장 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지만 엄효정 쪽이 훨씬 컬러풀하다. 이런 대비가 너무 재밌는 거 같다.
그거랑 별개로도 그냥 배역 자체가 너무 밝고 사교적이고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좋았다. 지선우가 집에 처들어온 이후로 바로 대놓고 적대하는 것도 뭐랄까 여회장이랑 대비가 된다 ㅋㅋㅋㅋㅋ 여회장은 사업 많이 해봐서 일단 신중... 이런 느낌인데 엄효정은 스타트업적인 늬낌으로다가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 이런 느낌. 내가 취업을 한다면? 여회장...네 회사로 가라고 다들 할 거고 경쟁률도 더 높고 그럴 거지만 일단 엄효정 회사로 들어갈 듯 ㅋㅋㅋㅋㅋㅋㅋ 여초 회사인데 뭔가 야근 시작하면 다들 가방에서 락앤락 주섬주섬 꺼내서 일 하나도 못하고 세시간씩 수다떨어버리는? 근데 할 때는 확실히 하고 월급도 절대 안 밀리고 사원보다 엄회장이 더 바빠버리는 그런 느낌의 회사일 거 같다. (호불호 갈리지만 난 좋음) 여회장 회사는 대기업이지만 삭막하고 너무 숨막힐 거 같아. 또 엄효정은 사근사근!! 너 싫어!! 다시 사근사근!! 이런 전환이 되게 빠르시다. 에너제틱하고 좋았다.
별개로 지선우가 엄효정, 여회장, 여다경 집에 들어가서 한바탕 뒤집고 나오는 장면이 좋았다. 왜냐면 막 비싼 미술품 깨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우아하게 말하는 게 너무 좋았다. 지선우가 다 뒤집고 떠나면서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뭐랄까 그런.... 가식적인 빈말?! 같은 거. 우리 또래는 그런 걸 서로서로 잘 안해줘가지고... 나도 속상한 적이 많았고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속상한 적이 많았을 듯. 이런 건 좀 배워야지 싶다.
7. 손제혁: (내기준) 부부의 세계 하이라이트
손제혁은 그냥... 나와 너무 판박이다. 그냥 누가 나를 중년 남자로 만들어서 저기에 옮겨놓은 것처럼 엄청난 동질감을 느껴버렸다. 대사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린다. 고예림이 애 갖자니까 “심심하면 개를 키워” 이러고 (나 강아지 짱 좋아함) 고예림이 왜 자기를 안 좋아하냐고 물으니까 “너는 뭔가 지루해” 이러고 ㅋㅋㅋㅋㅋ (물론 나는 그렇게 막말을 하지는 않아!!) 특히 지선우랑 원나잇을 할 때에 손제혁이 친 대사 하나하나가 나에게 무척이나 힘이 되었다. 왜냐면 나는 취업과 작가 중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손제혁이 이제 너무 깊게 고민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대사를 치니까 진심... 사무쳤다!!! 손제혁한테 공감도 많이 갔던 게, 호텔식당에서 와인+안주 시켜놓고 기다리고 호텔 예약까지 열심히 잡아놓고 모든 세팅을 다 끝내놓고 지선우한테 “거절해도 좋아 선택은 니가 해 ㅎ” 갈기고 올라가서 (좀많이) 초조하게 기다린다. 나도... 작가 지망생이라가지고.... 포스타입에 뭐 엄청 많이 올려놓고... 아 안 봐도 좋고 선택은 누리꾼들이 하는거지 ((((제발 봐!!!!!!!)))) 이런 게 있다...^^;; 쓰면 쓸수록 비참해지니까 그만 써야겠다...
일단 손제혁의 가장 큰 특징은 잡혀살고 싶어한다는 거다... 처음에 이태오 생일파티 때부터 거의 매화마다 “잡혀살고 싶어요!!!”하고 절규를 하는데 고예림한테 와닿을 리가 없다 손제혁은 바람을 겁나 피니까. 근데 나라도 그럴 거 같다. 이게 밸런스가 도저히 안 맞는다. 내가 원나잇을 했으면 집에 가서 혼나야지 밸런스가 맞는데 고예림은 계속 참고 잘해주기만 해서 뭔가...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표현을 하게 된다. 아무튼 이태오는 명백하게 지선우한테 잡혀사는 사람이고 그게 그냥 남자대남자로 많이 부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잡혀살고 싶어함 + 딩크 + 본능을 따르는 데에 집착 + 허구한날 원나잇 => 이걸 관통하는 특징은?! 도파민 중독이시다. 나랑 거의 판박이다. 다른 점은... 나는 취준 과정을 양보를 해서 도파민 자가생성하는 법을 독학하여 매일 혼자 노는 작가 지망생이 되었고 손제혁은 그 취준 과정 하나만큼은 안빼먹고 제대로 해서 성공했으며 늘 남들이 주는 도파민에 목말라하는 번듯한 회계사가 되었다.
손제혁은... 사소한 부분에서 나랑 영혼까지 통한다고 느꼈던 게 지선우가 자기 예상과 벗어난 무언가를 할 때 진짜 너무 좋아하신다. 지선우가 협박하니까 “지금 나 협박받는 건가(헤실헤실)” 이러고 고예림을 호텔방으로 불러내서 제대로 물먹였을 때도 지선우한테 별로 안 화나 보인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기분이 상하지만 전혀 기분이 상할 이유가 없다. 지선우는 손제혁이 원하는 모든 걸 다 해준 셈이잖아?! 예상치 못한 자극을 던져줬고 원나잇에 대해서 혼나게 해서 밸런스도 맞춰줬다. 그래서 계속 지선우를 포기를 못하고 계속 빙글빙글 주위를 도는 모습..
근데 이제 고예림이랑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니까 또 좋아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원나잇보다도 재미없는 와이프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내가 바람피는 걸 알고도 눈감아주지?!” -> 이런 호기심. 이 여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속에 뭔가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네? 그게 뭐지? 인내심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그걸로 나를 뭐 어떻게 해주려나? 그동안 어떻게 티가 안났지? 이거 분명 뭐 있다 신난다!!!!! 하고 고예림한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치대기 시작함. 이거 내 최애 씬인데 ㅋㅋㅋㅋ 고예림한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매우 기대)” 하니까 고예림이 이혼은 안할 거라고 한다. 또 이제 신나가지고 “이혼하면 유산 안준다는 장인 덕에 이혼 안 당하는 건가(더욱 기대)” 이제 도파민 팍팍 튀기면서 혼날 준비 마쳤는데 고예림은 또 여지를 안준다. 그러니까 손제혁은 “아 그니까 어떻게 할 건데!!” 하면서 살짝 애교+앙탈... 고예림이 남편 노릇 똑바로 하라고 하니까 그 이후로 정말로 가정적인 남편이 된다.
이후에 근데 또 원나잇하고... 이태오가 자기를 물먹이고 고예림이 자기를 내쫓고... 처음으로 손제혁 눈에서 눈물 나고... 잡혀사는 거 좋아하고 리드당하는 거 좋아하는 손제혁이 막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제발 한번만 받아달라고 하는데 고예림은 눈길 한번 안주면서 내치고... 이제 더이상 돈이고 직업이고 핑계댈 필요조차 없이 일상은 뭉개졌다. (손제혁은 도파민을 원하면서도 ‘안정성’을 포기 못하면서 일상이 뭉개지길 바라고만 있었는데 이태오가 사주하고 고예림이 손수 뭉개줬다. 친구복 와이프복 둘다 미침.) 앞뒤 잴 거 없이 달려들어서 눈길 한 번 받기 위해 별짓 다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아주 오랫동안 손제혁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준비해왔던 시간이, 그동안 원나잇 그렇게 하면서 고예림한테 적립해놨던 “미안함”을 배부르게 처먹을 포식의 시간이 와버렸다. 드디어 손제혁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벌벌 떨고 있으면 지루할 틈은 없지요. 호호. 축하드립니다.
아무튼 손제혁 캐릭터를 보면서는 진짜 너무 신기했던 게!!!! 뭔가 내 캐릭터 해석이랑 배우님 캐릭터 해석이랑 너무 잘 맞아서 ㅋㅋㅋㅋㅋ 사실 대본을 보고 어떻게 연기를 할지는 배우한테 달려있고 손제혁 캐릭터의 경우에도 같은 지문이라도 이거랑 다르게 연기를 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고 예상이 들기에. 더욱 신기하다. 뭘까?? 배우님 성함이 김영민 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진심 궁금하다. 뭔가 나랑 비슷하게 해석을 해가지고 그런 연기가 나온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으셨던 건지?! 이게... 진짜 어케된 일이지. 물어볼 기회가 평생 없을 거 같긴 한데 암튼 너무너무 궁금하다... 배우란 건 너무 신기해!!! 아무튼 나는 진짜 손제혁이라는 캐릭터가 (내 입장에서는) 이 드라마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아니 배우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슨 연기가 좋은 연기고 무슨 연기가 발연기인지 잘 모른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모른다. 애초에 나는 배우의 연기보단 대사의 내용이나 화면 구성 같은 걸 좀 더 보는 편이기도 하고 그냥 유튜브에서 발연기라고 하는 거 봐도 “저게 어떻게 발연기지? 연기라는 게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연출하는 건데 70억 인구중에 저렇게 얘기하고 저렇게 울고 저렇게 화내는 사람이 어딘가엔 있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근데 배우님 연기를 봤는데 진심으로 감동했다. “헐 맞아!!! 이게 옳아!!!” 이런 생각이 드는 연기였다... 오 그냥 한마디로 너무 신기하네요..!!!!!!!!!!
8. 고예림: 왜 쉽고 빠른 길을 놓고 돌아가요
예림언니!!!!! 아 답답해... 예림언니를 보면서 너무 슬펐다. 제일 슬펐던 거는 손제혁 동반 없이 검은 옷 입고 혼자 홈파티에 갔는데 불륜결혼한 여다경이 딸을 안고 이태오와의 애정을 과시하는 장면. 물론 여다경이 뭔가 딱히 잘못한 건 아니긴 한데 참 여다경은 사람을 희한하게 비참하게 만든다... 예림언니는... 아이가 갖고 싶다. 아!!! 이게 진짜 보면서 진짜 답답했다. 왜냐면 나는 손제혁이란 사람한테 뼈저리게 동하는 사람이라서. 예림언니가 진짜 조금만 더 액션을 취했으면 (이 드라마가 성립이 안됐겠죠) 훨씬 좋아질 수 있었는데. 예림언니는 너무... 선을 안 넘는다. 못 넘는 게 아니라 안 넘는다. 예림언니는 손제혁한테 GPS까지 붙여서 감시를 하면서도 손제혁한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손제혁이 알았으면 진심으로 엄청 좋아했을 건데... (아 물론 나는 누가 나한테 GPS 붙여서 감시하는 거 싫음 걍 캐릭터적으로 봤을때 내가 손제혁이라면 예림언니가 그러는 건 두팔벌려 환영했을 거란 뜻) 언니는 진짜 뭔가 너무 참는다. 문제는 손제혁도 참는 인간이라서... 둘다 도화선에 불 붙여주기만 눈 멀겋게 뜨고 기다리고만 있어서 답답했다. 예림언니가 먼저 나서도 나쁘지 않지 싶었는데 ㅠㅠㅠ 물론 남편한테 넌 지루한 여자고 난 원나잇 했어 절대로 애는 안 가질 거야 우리는 딩크야 이런 얘기 들으면 진짜 너무 위축되고 싫을 거 같기는 하다. 또 손제혁이 자꾸 예림언니한테 뭘 하지 말라 그러는데 예림언니는 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선우랑 사이가 안 좋으면서도 끝까지 지켜보고 같이 다치고 경찰 신고까지 해준 사람이다. 충분히 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인 데다가 선넘으면 좋은 일밖에 안 생기는 손제혁의 완벽한 이상형에 가까운데 아.....!!! 괴롭다.
애초에 예림언니는 진짜 희한하게 손제혁한테서 주도권을 잡아버렸다. 바람핀 걸 다 알고 있다고 지금까지 참았다고 말한 순간 언니가 이겼다. 근데 그건 손제혁이 미안해서 이제부터 헌신해야지 이게 아니라 그냥 언니가 뭐가 있는 사람이라서 이제부터 언니만 바라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ㅠㅠㅠ 언니는 너무너무 건전한 방법 (상냥하게 웃으며 대화하고 부부상담 다니기)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솔직히 언니도 알면서!!!! 그렇게 한다고 언니 속 타들어가는 거 절대 해결 안된다는 거 아주 조금이라도 터뜨려야 된다는 거...
애초에 손제혁은 언니 말만 듣는다. 딩크 철회한 것도 그렇다. 드라마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이태오가 ‘너 언제까지 젊을 거야 그래도 애는 있어야 인생이 의미있다’ 라고 진솔하게 충고한 걸 들은 것처럼 연출이 되었지만... 손제혁이 이태오 말을 진지하게 들을 리가. 사실 손제혁 입장에선 이태오가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지선우 여다경에다가 준영이까지 그렇게 날뛰고 다니는데. 딩크와 평온한 가정/회사생활이라는 걸 절대로 깨뜨리지 않고 싶지만 언니가 조금만 더 액션을 취해서 확실하게 흠집 정도만 내줬어도 손제혁은 다 꺠뜨려버리고 언니한테 올인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10화를 봤을 때 그렇게 된 거 같긴 한데...
아무튼 그 이전에라도 GPS를 달았다고 언질만 줬어도 원나잇은 끊었을 거고 별 뒤탈도 없었을 거다. 딩크? 철회하는 법. (내가 손제혁이랑 거의 동기화돼있기에 알려드릴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 임테기를 잔뜩 사서 손제혁이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에 매일 하나씩 넣어서 들려보낸다.
- 손제혁이 당신이 넣었냐고 물어보거나 임테기에 대한 언급을 꺼내면 무조건 모르는 척하고 끝까지 발뺌한다.
- 손제혁이 언급한 다음날은 임테기를 넣지 않는다.
- 손제혁이 임테기를 언급을 계속 안하면 다시 넣기 시작한다.
이건 GPS와 달리 불법도 아니고 훨씬 쌀 거고!! 제일 쉽고 빠르고 싸고 확실한 방법이다. 무조건 1년 안에 애 생김.
진짜 과몰입 레전드다.... 근데 그만큼 예림언니 보면서 넘 답답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손제혁은 언니 거다....
1) 주연 3인방에게 불륜이란?
많은 시청자들이 불륜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실제로 그게 맞다. 불륜은 나쁜 짓이고 절대 하면 안되는 거긴 하다. 불륜으로 상처입은 사람들도 많고... 쇼츠 댓글 중에 간통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 정도로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맞는 거 같다. 다만 이건 현실이 아닌 드라마이며, 나는 결혼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볼 수 있었다, 정도로만 생각해 주셨음 좋겠다. 이 드라마 너무너무 잘 만들었고, 불륜=나쁘다 라는 색안경만 끼고 보기에 아까울 정도로 컬러풀하다. 딱 한번만 벗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습니다.
지선우에게 불륜이란? 잘못 찍은 답이다
먼저 지선우의 가장 커다란 아이덴티티는 ‘시험에 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선우는 진심 답답할 정도로 ‘정답’에 집착한다. 지선우는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며, 이 작품 감상의 핵심 키이기도 하다. 시청자가 지선우에 이입해서 정답이란 게 존재한다고 믿느냐, 혹은 단순 시청자로서 시험에 든 지선우의 모습 자체를 보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드라마라는 거다. (연출 면에서도 이런 게 티가 많이 난다. 항상 두 가지 세 가지로 의심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이지선다 혹은 삼지선다 객관식처럼 보이도록 계속 트랩을 설정해놓으셨다. 그 ‘의심’이라는게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고. 시청자 입장에서나 지선우 입장에서나 의심을 하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면, 다시 말해 한번 그 ‘의심’을 걷어내기 시작하면 아, 이 뒤에는 어떠한 맥락이 있구나, 하는 게 꽤 훤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 그냥 단순 영상물인데 진짜 맥락과 맥락이 층층이 겹쳐져서 굉장히 멀티플렉스하다.)
애초에 지선우는 답 잘 찍어서 의대 가서 또 잘 찍어서 의사 되고 또 잘 찍어서 결혼하고...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청소년기 트라우마는 아예 덮고 넘어가기로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근데 좀 악바리라서 지금까지 잘 찍은 거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거나 하는 요령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이라는 함정 문제가 주어진 순간 ‘나는 완전무결하며 내 남편 이태오는 천하의 개새끼입니다’라는 오답을 찍었고, 거기에 휘말려서 계속 점수가 떨어지고 있다.
자, 그렇다면 지선우가 빠진 문제의 트랩은 무엇일까? 그건 ‘내가 시험을 내고 있다는 착각’이다. 지선우는 남편인 이태오에게 처음에 추궁을 시작을 한다. “솔직하게 말해주면 봐줄게”라는 추궁?! 근데... 이태오는 답을 안해준다. 솔직히 이게 정말 웃기고 또 웃긴 지점인데, 지선우 입장에서 자신은 악착같이 공부해서 80점 맞는 사람, 그리고 이태오는 설렁설렁 놀다가 찍신 강림하셔서 100점 맞는 사람이다. 지선우는 자기가 시험을 내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데 이태오는 단 한번도 지선우의 의도대로 해주지를 않는다. 드라마에서 ‘껍데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잘 보면 지선우가 그 문제의 ‘치료되지 않은 PTSD’ 이후로 대쪽같이 신념만 지키고 있는 그런 ‘껍데기’ 같은 사람이다. 속은 온통 지뢰밭이고 누구든지 안 밟게 하려고 껍데기를 악착같이 유지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남편 이태오는 타고난 재능충이고 마음만 먹으면 지선우의 모든 지뢰를 다 밟을 수 있다.
아무튼 그 이태오에게 시험을 낸다고 착각을 시작하고 이태오는 당연히 자기 마음대로 되지가 않고... 거기서부터 지선우의 껍데기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왜 공부한 대로 풀었는데 다 틀리지? 멘붕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종국에는 컨닝도 해보고 남의 시험 방해도 해보고... 하면서 지선우는 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결국 지선우는 자기가 이태오에게 출제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출제한 문제에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지선우는 이태오가 자길 기만했다면서 솔직해지라고 악을 쓰는데 사실 지선우부터가 솔직하지가 못하다. 홈페이지 캐릭터 소개에서부터 나와있는데 지선우는 누구랑 함께하기보다도 그냥 자기 자신이 정답을 찍는 게 훨씬 중요한 사람이다. 특히 드라마 초반부에는 더욱 그랬다. ‘왜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지?’, ‘왜 끝까지 나를 속이지?’라는 걸 물으면서도 그렇게 궁금해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냥 답답해하면서 ‘이건 오답이라고!!!’를 부르짖을 뿐... 아무튼 불륜을 시작으로 지선우는 자기 자신에게 드디어 솔직해지고 무작정 정답만 좇기보다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주변 사람들 얘기도 진지하게 들어보고 성장하는 중이고 때문에 내가 보기엔 이건 불륜을 소재로 쓴 성장 드라마에 가깝기도 했다.
이태오에게 불륜이란? 장외홈런이다
태오님!!!!! 난 당신이 좋다... 당신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졌다... 당신 같은 남자라면 20대 그까짓꺼 한번 날리고 말지 뭐!! 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사람. 이게 이해가 안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사료되어 좀더 직관적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이 드라마에서 메인남주랑 서브남주가 각각 이태오 / 김윤기이다. 자상하고 도움도 많이 주지만 김윤기는 절대로!!!!! 이태오한테 안된다. 돈이고 능력이고 매너고 인성이고 모든 걸로 후달려도 이태오는 오직 매력 하나로 다 이긴다. 이유인즉슨... 김윤기는 너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야구로 비유해보자면 좀더 명확하다. 김윤기는 칠 때마다 안타 이상은 치는 사람이고. 근데 이태오는? 계속 헛스윙만 하다가 모두가 경기장을 떠나는 9회차 쯤에 갑자기 장외홈런 쳐서 게임을 뒤집는 사람이다... 이태오가 장외홈런을 치는 빈도?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당신이 구단주라면 김무생을 선택하겠죠 하지만 티켓파워는? 이태오가 더 셀걸요...ㅠ
제작자님이 진짜 너무 천재적이라고 생각을 했던 게... 캐릭터를 풀어가는 게 참 살벌하다. 이태오는 작중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허세+거짓말만 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점점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지조차 헷갈려하고 잡아먹힌다. 그렇게 고구마를 먹이다가 진짜 막판에!!! 9회말 2아웃에!!!! 사랑에 빠진 건 죄가 아니잖아!!!! 하고 처음으로 진심=장외홈런을 날린다... 여다경한테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불안하게 만들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아, 이 사람은 내 사람이구나 하고 확신하게 만들어준다. 이게 결정적으로 드러났던 게 안방 씬인데. 지선우가 집들이에 굳이 와서 안방까지 헤집어놓고 여다경은 또 지선우랑 이태오가 같이 있는 걸 보고 불안해한다. 이태오는 여기다가 여다경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들 방을 만들어놓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진짜 너무 짜증나는 상황인데. 여다경은 감정이 터지기 직전에 이태오한테 ‘저 여자랑 안방에서 뭐했어?’ 라고 묻는데 이태오는 안방에서 뭐했는지 얘기해주는 대신 ‘저 여자를 보니까 더 확실해진다 난 너를 사랑한다’라고 답해준다. 이게 너무 좋았다... 특히 내가 여다경이랑 거의 또래이다 보니까... 즉 안방에서 뭐했냐고 물으면 진짜 뭐했는지 곧이곧대로 대답해주는 또래 친구들과 오래 부대껴 지냈다 보니까... 진짜 이태오 같은 사람 있으면 정신 못차릴 거 같다.
드라마 보면서 계속 느낀 건 나는 뼛속까지 이태오한테 공감을 한다는 거다.. 그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냥 왜 저랬는지가 민망할 정도로 이해된다. 불륜은 나빠!!! 사실 이태오의 소울메이트는 지선우가 맞다... 이태오의 부족한 점 (사회적 인망이나 능력이나 돈)을 지선우가 갖고 있고 지선우의 부족한 점 (융통성이나 찍신내린 감각)은 이태오가 갖고 있다. 그래서 둘이 끝까지 으르렁대면서도 못 놓고... 말 그대로 으르렁!!! 한번도 마음 터놓고 얘기하질 않고, 지선우는 그냥 이태오가 완벽한 껍데기를 연기해주길 바라고 이태오는 그 바람대로 완벽한 껍데기를 연기해주고. 이렇게 영혼 수준으로 둘이 통한다. 근데 여다경은 이태오랑 진짜 둘이 얘기를 하고 싶어하고, 함께하고 싶어한다. 물론 이태오 입장에서 여다경의 이런 태도는 처음에나 반갑지 점점 부담스럽고 귀찮게 다가오는 듯싶다. (아 슬퍼)
아무튼 다른 시청자는 몰라도 나는 진짜 이태오한테 (좀많이) 콩깍지가 꼈다. 이태오의 명대사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라는 대사에 나는 사실 굉장히 감동을 많이 했다. 나도 내 작품을 하고 싶고 뭔가 해보고 싶은데 일단 취업 준비를 놓을 수는 없고... 이런 선택의 기로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나랑 많이 닮았다. 이태오가 수시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정말 간절한 꿈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을 속이게 되더라고. 어쩔 수 없더라고. 친구들한테 내가 뭘 한다는 건 악착같이 속이면서도, 그래도 취업은 해야지, 먹고는 살아야지, 라고 말은 하면서도 내 속마음은 언제나 “꿈꾸는 게 죄는 아니잖아”였다. 까놓고 얘기할까요? 이태오는 작품하고 싶은데 못 하고 있는 제작자이다. 즉 나랑 거의 똑같은 처지이다... 아무도 내 작품에 관심 없고 (지선우가 이태오 영화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음 그냥 남편이 예술 한다 하면 바가지 긁지 말고 밀어주는 그런 게 지선우 머릿속에 정답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임) 투자자한테 설명해도 안 듣고... 근데 처음으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무슨 작품을 하고 싶은지 그걸로 뭘 이뤄내고 싶은지 물어봐주면서 그 길을 함께하자고 얘기해 준게 여다경. 예쁘고 아버지가 재벌이고 불륜이라 짜릿하고 이런 건 다 사이드고 솔직히 말하면 이게 핵심이지 싶다. 난 결말 이미 알고 있는데, 이태오는 빈털털이로 여다경 지선우 모두에게서 버림받는다. 근데 겉보기와는 다르게 이태오에게 이건 딱히 비참한 결말이 아니다. 이제 감정소모 다 끝났고 그걸로 좋은 작품 하나 제대로 뽑아볼 시간이니까. 결국엔 태오님의 시간이 온 거니까. 태오님 우리 힘내요!
여다경에게 불륜이란? 크랭크인이다
유튜브 쇼츠 댓글에서 제일 많이 보인 게 ‘저렇게 이쁘고 집안 좋고 다 갖춘 여자가 뭐 좋다고 유부남한테 올인하지?’ 라는 댓글이었다. 근데 여다경 또래인 MZ세대의 입장에서 설명해드리고 싶다. 이쁘고 집안 좋고 다 갖췄으니까 유부남한테 올인을 하는 것이다. 여다경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답답함’인데, 지역 유지인 아버지 밑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일일이 다 조심하면서 사실상 갇혀서 크다가 이제 겨우 대학교 졸업장 따고, 필테 알바도 해보고 자취도 해보고. 독립이란 걸 해보려고, 다시 말해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인 거다. (이런 면에서 너무너무 공감이 많이 가고 불륜이란 비도덕적인 거임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나는 여다경 많이 응원하게 됐다 내 동지란 말이에요) 근데 여다경은 자기가 뭘 해야 될지 모르고, 근데 뭔가 하고는 싶고. 이때 자기 앞에 던져진 게 우연히 이태오였던 것이고. 여다경이 1000번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1000번 다 여다경은 이태오랑 불륜 결혼을 했을 거 같다. 아버지 빽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쟤는 뭐가 아쉬워서 저러나 싶겠지만 여다경 입장에서는 아버지 빽이 아쉬운 거다... 뭐 하나 해보려고 하면 아버지가 뒤에서 오바 떨면서 다 해줘서 여다경은 할 게 없어버린다... 인생을 계속 그렇게 허무하게 살다가 갑자기 아버지마저도 반대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눈앞에 뚝! 떨어졌는데. 뭔가 어떻게 잘 하면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신이 여다경이라면 여기에 올인 안할 자신 있는가. 난 없다.
그러니까 이태오가 ‘영화 제작’이라는 걸 들고 와서 여다경이 프로포즈를 받고 ‘태오 씨 내조는 내가 잘 할게’라고 선언한 순간... 여다경은 메가폰을 잡은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 못하지. 뭘 저렇게 떳떳하지? 당당하지? 근데 여다경은 당연히 떳떳하고 당당하다. 드디어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해보는 거니까!
이걸 이해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여다경의 아버지 여회장이었던 거 같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여회장은 여다경을 그렇게 인생 허무하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여다경이 여회장한테 ‘아빠, 태오 씨 영화에 투자 한번만 해줘. 태오 씨 인정 안 해줄 거면 내가 아빠 떠날게.’ 라고 말한 순간 여회장은 알았을 거다... 그 순간 여다경의 크랭크인은 시작됐고 더이상은 말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여회장의 젊을 적에도 분명히 비슷한 순간이 있었을 테니... 그 장면이 진짜 슬프긴 했다. 이태오는 온동네에 불륜 폭행남으로 소문나 있고 (맞긴함 백번 잘못함) 자기는 임신해서 몸이 아프고 아버지는 화났고. 근데 이 모든 역경 속에서도 여다경은 무릎 꿇고 제발 이태오를 믿어달라고 꿋꿋하게 아버지한테 빌어본다. 자존심도 없나 싶어 보여도 여다경의 자존심은 그 손에 들린 메가폰이며 여다경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영화 성공시켜야 되니까... 솔직히 너무 멋있었고 뭐랄까. 나도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보려는 사람인 만큼 내 또래의 누군가가 꿋꿋하게 시련을 견뎌내는 일은 무조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불륜은 나쁘다)
와, 먼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너무너무 행운이지 싶다. 진심 개재밌는 명작이다. 유튜브 쇼츠로 사람들의 댓글을 보고 이게 뭔 내용이지 싶어서 정주행을 했고 10화 정도 본 상태인데, 그걸 토대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인 리뷰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먼저 알려드려야 할 점은 일단 나는 평생 연애를 해본 적이 없고! 즉 모태쏠로!! 딱히 결혼/자녀 생각이 있지도 않은 사람이다. 다만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한다’의 갈림길에 서 있는 취준생으로서 뼈저리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아서 결혼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영혼이 동하는 느낌이 들었단 거다.
목차
1) 주연 3인방에게 불륜이란?
2) 캐릭터 해석의 시간이 왔다
3) 세계관 최강자 이준영
1. 준영이는 아빠 닮을까?
2. 준영이는 딱히 엇나가지도 않고 있다
3.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4. 지선우는 준영이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했나
5. 준영이는 알아서 잘 크고 있다
6. GenZ is the future
4) 좋았던 장면들
5) 꼭 피가 물보다 진하진 않구나 (10화 리뷰)
6) 대문자 F가 대문자 T에게 둬보는 훈수
7) 부부의 세계로 뇌절치기
8) 돌고 돌아 결혼장려해버리는 드라마
9) 근본적인 질문 - 왜 부모는 자식의 앞길을 망치는가
수다쟁이를 단순히 인싸거나 사교성이 높음으로 지나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한 파생되는 개인적인 병리와 사회적인 부작용을 짚어내고 있다. 목소리로 드러내는 수다뿐만이 아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수다들까지 포함. 기자이며 작가이며 실리콘밸리의 드라마 각본가 경력의 저자답게 균형잡힌 리서치와 유머가 돋보인다.
막장의 풍경과 탄광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 끔찍해서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탄광 노동자들은 거기에 항의하지 않는데, 오웰은 그들이 ‘신비로운 권위’에 짓눌려 있다고 탁월하게 통찰한다. ‘끔찍한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자의식 강한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도 통렬하다.
오웰은 적이 뚜렷한 작가였다. 그 적은 바로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였는데 그의 인생 단계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1930년대 후반 유럽 세계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거대한 인간 억압 체제가 나타났다. 파시즘이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고 전쟁의 비루함을 알았고 ‘우리 편’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적과 자신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했으며, 비범한 유머 감각도 상당 부분 거기에서 나왔다.
소련이 해체됐어도 『동물농장』에는 여전히 커다란 힘과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가 어떻게 등장해서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지 섬뜩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한다. 특히 억압 체제를 타도하겠다는 이상이 어떻게 새로운 억압이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나폴레옹은 행정가로서는 무능하지만 정치적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 그는 물리적 위협뿐 아니라 심리적 위협을 능숙하게 활용하며, 심리적 위협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 동물들은 나중에 사실상 그의 인질이 되어 버린다.
이 무시무시한 소설은 감시 기술과 권력의 끔찍한 결합 가능성을 단순히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권력이 그런 기술을 언제든 탐닉하고자 함을, 그것이 권력의 본성임을, 그리고 그 결합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굉장히 공고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웰의 상상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어서 읽다 보면 누구나 압도된다. 『멋진 신세계』는 현실이 되었고 『1984』의 예상은 빗나갔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984』는 이미 세상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이런 미래를 막아야 한다고 수십 년간 노력을 했다고, 그게 이 책의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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