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딱히 본인 인생에서 안전한 울타리로 기능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살면서 버튼 눌릴 일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제목도 어찌 보면 나의 버튼을 누를 만한 제목이어서, 목차도 보지 않고 바로 책을 집으로 들였다. 그래서 책 내용이 가정폭력/포퓰리즘으로 완전히 다른 주제 두 개를 합쳐놓은 것이라는 건 몰랐다. 가정폭력과 포퓰리즘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책은 많이 없는 것 같은데(있었을수도 제가 무지했을수도), 그렇기에 제목만 보고 바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가정폭력의 연구가 그동안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최근에는 가정폭력이 어떻게 규명되는지 등을 다뤘다.
폭력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폭력과 그 분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신체 자세, 지시 행위, 언어 표현은 폭력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비로소 폭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p31.
정확하고 이론적인 이 문장이 와닿았다. 말로 설명하지 못해 울고 침묵했던 과거의 행동을 설명하는 용어가 생겼다. 폭력을 다루는 책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가정폭력에 대한 학제적 접근과 가해자&피해자 외 제3자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니 가정폭력에 관심 있는 독자분들께 추천한다.
포퓰리즘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내용이어서 잘 읽혔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사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와 좌파 포퓰리즘에 대해 궁금했던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인가? 정치전략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정치 스타일인가?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지점에 대한 논의들을 소개하고 있다. 생각보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그리 상충하지 않으며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퓰리즘을 지향점으로 삼으면 위험한 이유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이번 책도 내가 들었던 수업 내용과 관련이 깊었다. 특수교육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의 교수님은 늘 수업 마무리 시간에 학생들에게 토론을 진행하게 했다. 매 강의시간마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꼭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제는 단연 '탈시설화' 였다.
토론을 하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지적장애 당사자가 아닌 내가 의견을 내도 괜찮은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용이 장애인 혐오적인지 아닌지에 관한 끊임없는 고민이 그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직접 지적장애인을 만난 경험이 있는지 회고해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적장애인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중고교시절 '특정 학급'과 '특정 지하철' 뿐이었다. 그곳이 아니면 지적장애인들은 내가 볼 수 없는 시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사회에서 내가 본 지적장애인들의 일부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탈시설화'에 내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항상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책은 지적 장애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정신질환은 그 스스로 기록을 남길 수 있지만 지적장애는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없다. 더구나 탁월한 지능을 활용하여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들은 지적 장애나 낮은 지능에 대한 관심을 잘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가혹하게 소외되고 배제당한 존재가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사회 구성원의 면모를 찾기 위해 당시 일상생활 자료를 분석해 기록하였다. 지적장애인들은 이전에는 분명한 사회의 일원이었으나 18세기 초를 기점으로 배제당했다. 이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근대의 편의성에 맞추어 치료대상이 되거나 시설에 가둬졌다. 이후의 역사는 지적장애인들이 사회로 돌아오기 위해 벌인 투쟁이었다.
탈시설화로 이야기를 시작하긴 했는데, 분명 이 책은 탈시설화에 대한 답을 내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기록되지 않은 삶을 보여 주며 이 사람들, 이 존재들을 이렇게 대해도 되나? 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난제는 여전했다. 지적장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에게 어떤 일이 바람직한지는 내가 쉽사리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럼에도 탈시설화 운동에 대한 맥락을 안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맥락을 모르고 입장을 정하는 것과 맥락을 알고 사회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확실한 것은 장애인은 사람이며 또한 권리를 보장받는 시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회는 이 사람들도 비장애인과 차이없이 어떤 공간이든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할 만하다.
저자가 탈시설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장애라는 관념이 없이 다 같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칭찬하는, 다소 과거를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또한 지적장애의 중요한 논의점 중 하나인 성폭력이나 성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서, 이런 담론을 기대하는 독자는 다른 책을 찾아보아야겠다.
생일선물로 책 달라고 친구들에게 조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선물받은 책.
수업시간에 몇 번 흘려들었던 말로, 현대 유럽의 법이 성립되는 데에 로마법이 영향을 미쳤다는 걸 정말 대강 알고만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쳤는지는 전혀 몰랐다.
개인적으로 법에 대한 관심도 조금 있었고, (특히 국제법...제노사이드를 다루는) 유럽의 법을 이룬 토대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책이었다! 법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문용으로 읽기 좋은 책이다. 다만 법학에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면 읽기에 조금 어려울 수는 있다. 그럼에도 참을성을 가지고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았다.
현대에서 로마법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한다면 당장 엄청난 필요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여러 국제기구의 등장과 세계 분쟁이 자주 발생하면서 국제법의 중요성이 대두된 만큼 (그렇다고 믿고 싶다) 국제법이 등장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읽어 두면 좋을 책이다. 로마의 실용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 법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 국제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주말에 충분히 읽을만하다.
나는 정치사상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로 남긴 글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됐다.
"민주주의는 불확실하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어떤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심화시키는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성을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검찰독재'와 '경제독재', '검찰공화국'과 '삼성왕국' 모두 무섭고 두렵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는 '일인일표제'다. 한 표를 가진 주권자 한 명이 검찰이나 재벌과 싸워 이길 수 없다. 한 표, 한 표가 모이면 달라진다. 또한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 외 '광장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촛불 하나하나가 모이면 달라진다.
ㅡ page 192
이상과 같은 현상 앞에서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쓴 「유토피아」의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여러 공화국commonwealth에서 내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이익만을 불려나가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 그들은 사악하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를 가능한 한 헐값에 사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것을 두고 부자들이 공화국의 이름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 양 주장하면 곧 법이 됩니다."
ㅡ page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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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떼려야 떨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어떤걸까? 가족과 친척 정도가 될 것 같다. 그 외의 모든 인간관계는 보지 않으면 끊기니까. 그렇다면 저 두 국가는 우리나라와 가족과 같은 관계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가족이라고 다 좋기만 한건 아니니까.
가족은 피로 맺어진 것이라서 뗄 수가 없고, 한중일은 땅덩어리가 가까이 붙어 있으니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러니 어쨌든 붙어 살아야 되는 팔자고(인간이든 국가든 사주팔자가 있다고 본다면) 땅덩어리 크기로만 친다면, 중국이 덩치 큰 성인이라면 일본은 고등학생 정도고 한국은 이제 좀 제 주장 드러낼려는 초딩3,4학년 정도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경제적인 크기로 본다면 중국이 덩치 큰 중년이고, 일본은 쪼그라든 장년이고, 한국은 덩치는 작지만 날렵한 2,30대 청년 정도가 아닐까?
이 세 나라가 서로 싸운다면 누가 젤 유리할까? 나는 단연코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중장년이 싸울때 옆에 있다가 재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략이면 말이다.
이런 사실을 싸움을 조금밖에는 모르는 나도 알진데, 지금 한국의 대통령과 그 꼬붕들은 쪼그라든 중년의 나라인 일본이 저 멀리 있는 세계 최고의 덩치 싸움꾼이자 오야봉인 미국의 꼬붕 노릇을 하는데 빌붙으려고 하고 있다. 꼬붕의 꼬붕이 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김현철 교수의 표현) 싸움의 기본도 모르는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한다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일본이 왜 쪼그라든 장년인지, 왜 미국에 빌붙으려 하는지, 겉보기보다 속이 얼마나 섞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임진왜란 이후 기우는 명과 일어서는 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벌인 광해군을 쫓아내고, 기우는 명에 붙었다가 결국 일어선 청에 나라가 거덜나는 인조와 그 꼬붕들의 모습이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잘 드러나는 '삼전도의 치욕'이 과연 먼 옛날의 일이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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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온다 / 일본의 부상, 한국 경제의 위기
김현철(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많은 학자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처방전을 내놓았지만, 보수화된 자민당 정권의 권력 구조에서는 좋은 정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보수 정치인들은 여전히 수출 대기업 지원 같은 낡고 오래된 정책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경제의 발목을 잡으니 장기침체는 여전히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ㅡ page 69
일본인들은 최근 '포기'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포기하다'라는 일본어 단어(아키라메루)는 정치에서도, 언론에서도, 기업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자주 들린다. 이유는 '어쩔 수 없기'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뜻의 일본어 단어는 '쇼가나이'다. 정치에 참여해 투표를 해봐도 변화가 없고, 언론이 정론을 펴며 정치를 비판해봐도 바뀌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니 말이다. 기업의 느려 터진 의사결정은 종업원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늘지 않는 소득을 가지고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포기한 지 오래다.
특히 일본 젊은이들의 절망이 심각하다. 정치는 이미 노인들이 장악했다. 투표율은 선거 때마다 점점 낮아지는데, 그 와중에 꼬박꼬박 투표장에 가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대다수다. 그러니 자민당은 투표를 열심히 하는 층에 이익을 주는 정책에 더욱 신경쓸 수 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투표장에 잘 오지도 않으니 그들을 위한 정책은 선거 승리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의 정치는 소위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가 되었다. 노인을 위한, 노인의 정치가 된 것이다. 일본의 정치가 점점 더 보수화되는 이면에는 이러한 실버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ㅡ page 70~71
김덕영 교수가 성장 신화의 또 다른 축으로 제시한 것이 한국의 종교였다. 세속화된 종교가 정부와 재벌 간 동맹에 끼어들어 경제성장의 강력한 전도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자신들의 교회조차도 끊임없이 성장시킴으로써 정부와 재벌의 성장 신화를 강력하게 구현해주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정신세계 마저 황페화되고 풍요 속에서도 끊임없이 물질적 빈곤을 느끼는 '한국형 자본주의 정신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ㅡ page 82
일본과 대만도 비슷한 농지 개혁을 단행했는데 그 효과가 대단했다. 이 나라들 모두 어느 정도 평등한 토대 위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아시아에서 농지 개혁을 단행하지 않은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발전 속도가 늦거나 중간에 주저앉았다. 이승만 정권이 단행한 농지 개혁은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농지 개혁을 단행한 사람은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 선생이었다. 조봉암은 이승만의 반대를 물리치고 강정택 차관과 강진국 국장 등과 함께 농지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승만은 농지 개혁 등으로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켜버렸다. 이후 52년이 지난 2011년 1월 20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복권되었다.
4.19 혁명으로 탄생한 장면 내각도 경제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바로 그것이었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 계획에 맞추어 경제개발을 시동했고, 그 이후 5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계획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의 핵심은 바로 대기업에 의한 수출 주도 성장 정책이었다. 한정된 기업에 한정된 자금을 몰아주는 정책은, 일본이 경제발전 초기에 사용한 정책이었다.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군에서 근무한 박정희는 일본이 만주국에서 사용한 이 모델을 차용해 수출 주도 성장 정책을 실시했다.
'경사발전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이 발전 정책은 은행을 국유화한 뒤 중앙 관료들이 한정된 자금을 특정 기업에 몰아주는 방식이다. 경제개발 초기, 열악한 자금 사정 하에서 이 자금을 받은 기업들은 특혜 금융을 받은 것과 같았다.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실질이자가 마이너스 수준이다 보니 자금을 받는 것 자체가 특혜였다. 이 자금을 받은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쉽게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고 또한 빠르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
ㅡ page 84~85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1960년에 중진국이었던 101개 국가 중 2008년까지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는 대한민국과 아일랜드, 대만 등 13개국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50년 동안 그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심지어 더 가난해졌다. 그렇기에 중진국 함정은 예외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에 가까우며 거기에서 탈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지나친 불균형 성장으로 성장동력이 소진되거나 생산 비용이 과도하게 상승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또 부정부패가 만연해 정치가 불안정해지거나 소득 양극화 심화로 사회적 통합이 잘 안 되어서 그런 경우도 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국가들로는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기적적으로 선진국이 되었을까?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 물결'을 잘 이용한 결과다. '한강의 기적'으로 후진국에서 중진국이 되었다면, 이번에는 '세계화의 기적'을 통해 선진국에 진입한 것이다. ㅡ page 95
사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한 국가다. 1982년 5월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전화선을 통해 연결한 SDNsoftware-defined networking이 인터넷의 시초였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것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연결된 인터넷이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네트워크였다. 이 연결을 주도한 전길남 박사는 '세계 인터넷 개척자 30인' 중 1명으로 인터넷 소사이어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터넷이 획기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였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개편한 뒤, 전국에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한국통신(현 KT)에서 코넷kORNET이란 이름으로 월드와이드웹 기반의 인터넷 상용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초고속 통신망 ADSL이 전국적으로 깔리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였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된 대우전자 출신의 배순훈 장관이 ADSL을 전국적으로 깔았다.
당시 정부와 통신업계 주요 인사들은 속도가 일반 전화 모뎀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기존의 ISDN 동축케이블coaxial cable로 인터넷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순훈 장관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전화 기지국을 기반으로 ADSL 광케이블fiber-optical cable을 설치해버렸다. ADSL광케이블은 기지국 의존성이 높지만 한국은 기지국 반경 5km 내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결과적으로 배순훈 장관의 선택이 적절했던 것이다. 만약 이때 일본과 독일처럼 ISDN 동축케이블을 깔았다면 한국의 인터넷 발전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ㅡ page 116~117
한국처럼 광케이블로 인터넷망을 구축한 선택은, 아날로그식 판단으로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것도 기간망뿐만 아니라 각 가정까지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무식한 선택일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영역이다 보니 이러한 무모함과 과감함이 오히려 올바른 선택이 되었고, 일본의 합리적인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것이었다.
ㅡ page 120
미중 경쟁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
IMF 논문에 따르면 미중 패권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일대일로 경쟁하면 한국은 최대 피해국이 된다. 10년에 걸쳐서 GDP가 6%나 하락하는 분석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분석 결과는 한국의 무역 구조를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중국은 한국의 1위 교역국이고 미국은 2위다. 그러니 이 나라들이 경제전쟁에 돌입하면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특히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많이 수출한다. 이 중간재를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이나 유럽 등에 수출하기 때문에 양국이 경제전쟁을 하게 되면 최대 피해국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OECD 선진국과 연합해 중국과 경쟁할 때도 한국의 피해는 매우 크다. 10년에 걸쳐서 GDP가 5%나 하락한다고 IMF 논문은 분석했다. 이것은 세계가 미국 경제블럭과 중국 경제블럭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신냉전 구도가 되면 한국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한국은 좁은 내수 시장 때문에 통상으로 성장해온 나라다. 그 통상 지역은 미국을 위시한 민주주의 블럭뿐만 아니라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블록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지난 30년간의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브릭스 국가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과도 교역을 많이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면 우리나라는 최대 피해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IMF 논문은 이런 우리나라에도 희망의 길이 있다고 함께 제시했다. 분석 시나리오 중에 한국이 미국과도 교역하고 중국과도 계속 교역한다면 한국 경제는 10년간 걸쳐서 플러스 1%의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중국과 직접 맞붙어 경쟁하든 OECD 선진국과 연합헤 경쟁하든 한국이 양 진영과 모두 교역한다면 우리나라는 플러스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국익을 위해 양쪽 진영 모두와 교역하는 것이 가능한가다.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한쪽을 선택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강의 기적 때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 진영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IMF 논문이 분석한 것처럼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한국 경제는 추락할 것이다. 이런 일을 피하려면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국익을 위해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 시절이었다면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새우' 크기의 최빈국 중 하나였기에 자유 진영의 시장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경제는 새우가 아니다. 돌고래도 아니고 범고래 수준의 선진국 경제다. 세계화의 기적을 통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때문에 어느 진영이든 자유롭게 교역하면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이것을 '전략적 자율성'이라고 했다. 동맹이라고 해서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할 필요가 없다며 프랑스는 미국의 졸개가 아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중요한 경제 협력 파트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인접해 있는 한국이 필요하고, 중국도 미국 중심 진영을 흔들기 위해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적절히만 활용하면 한국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국익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하고, 우리는 또한 그럴 능력이 있다.*
* 선택하지 않는 것을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비판하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자며 '전략적 명확성'을 주장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함께하자)'이니 '안미경미(안보는 미국과, 경제도 미국과 함꼐하자)'니 하는 주장도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전략적 자율성을 가지고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교역하면 된다. 이것이 자유무역이라는 글로벌 보편적 가치와도 일치한다. ㅡ page 219~222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나?
자녀 세대의 경제 행동도 마찬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7만 달러 시대를 살아갈 세대라면,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유명한 논문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dren>(1930)에서 다다음 세대를 향한 조언을 유언처럼 남겼다. 그는 이 논문에서 "앞으로 2%대의 경제성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 2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경제적 비관주의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등의 경제적 비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특히 돈이나 재화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버리고 수단보다는 목적을, 효율보다는 선함을 추구하라고 조언했다.
1930년에 발표한 논문이지만, 주요 내용은 2030년의 우리 자녀 세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민소득 6~7만 달러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는 경제가 제로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비관주의를 버려야 한다. 선진국이 되었기에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대할 수 없어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1~2%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니 우선 경제적 비관주의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세대에 만연한 물질주의, 물신주의도 함께 버려야 한다. 돈이면 최고고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케인스의 조언처럼 수단보다 목적을, 효율보다 선함을 추구해야 한다. 돈은 목적을 위한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의미다.
ㅡ page282~283
1905년으로 퇴행하는 한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해하려면 '1965년 체제'와 '1990년 체제'를 알아야 한다. 1990년은 일본의 장기 경제침체 속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때다. 그 이후에 한국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흐름을 타고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대로만 가면 일본과의 경제 격차를 더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거대한 판을 흔들기 시작했고, 한국은 다시 일본 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꼬붕의 꼬붕'이 된 것이다.
'꼬붕의 꼬붕' 구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와 청구권 협정이었다. 서로 식민지의 불법성을 묻어둔 채 일본의 자금을 받아 경제개발을 시작했다. 이때도 미국의 압력이 있었고 한국과 일본의 보수파가 합작했다. 한국의 쿠테타 세력은 반공을 국시로 내걸면서 일본 보수파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같은 만주국 경험을 가진 '쇼와의 요괴' 기시는 뒤에서 돈으로 해결했다. 당시 일본의 우익이 함께 움직였는데, 그들의 검은돈이 한국에 흘러들어와 박정희 쿠테타 세력을 도왔다. 쿠테타 세력은 검은돈을 이용해 정권을 안정시켰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을 가지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밑거름 중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에는 다른 면도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자유주의 국제경제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은 가발과 섬유 등을 오야붕인 미국에 수출했고, 전기 전자산업 등에서는 꼬붕인 일본의 하청으로 편입되어 꼬붕의 꼬붕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철저히 일본을 모방하는 전략을 취했다. 재벌의 형태도, 산업의 유형도, 기업의 조직도 그리고 그 운용 시스템도 모두 일본을 모방했다.
그러던 한국이 1990년대부터 일본과 결별하며 독자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기 시작했다. 또 세계화 물결 속에서 세계 7위의 선진 통상국가가 되었고, 디지털화에 앞장서 세계 최고의 디지털왕국이 되었다. 이제는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곧 일본을 추월할 시점에 왔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은 1990년 체제를 버리고 1965년 체제로 퇴행하기 시작했다. 다시 일본의 하위로 편입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남기정 소장은 이것이 "1965년 체제가 아니라 1905년 체제로의 퇴행"이라고 한탄했다........ 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었다.
ㅡ page 306~309
이 시대의 '친일파'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친일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일본 만화나 영화를 좋아하고, 일본에 자주 놀러 가면 '친일파'일까? 그렇지 않다. 친일과 친일파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친일파의 정의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정확히 규정되어 있다.
일본 정부와 통모해 한일합병에 적극 협력했거나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았거나 일본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던 자, 독립 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하거나 지휘한 자, 작위를 받은 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고문 참의, 칙임관 이상의 관리, 밀정 행위자,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 간부로 활동한 자,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 행위를 한 자, 군수공업을 책임 경영한 자,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된 자 중에서 일제에 아부해 죄적이 현저한 자, 관공리 중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 본부의 수뇌 간부 중 악질적인 자,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분야에서 악질적 언론 저작과 지도를 한 자, 일제에 대한 악질적인 아부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소위 사회지도층으로써 반민족적 행위를 한 자 중에 특히 죄질이 나쁜 자를 친일파로 규정하고 있다. 학자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일본을 좋아하고 연구하는 것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일본 전공 학자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주요의사결정 자리에서 반민족적 행위를 하는 사람은 이 시대의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김태효 1차장은 나카소네가 총리를 퇴임한 뒤 만든 세계평화연구소의 상을 2009년에 받았다. 말이 상이지 일본을 위해 활동할 주요 인물들에게 상과 상금을 주며 친일파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동안 숨을 죽이고 살아오던 '토착왜구((일제시대때 친일파 였다가, 이승만 정권에서 경찰과 군 그리고 정치계로 진출했고,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주의자로 변신해서 지금까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며 대대로 내려오는 친일파들)) 들이 윤석렬 정부들어서 전면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ㅡ page 312~313
식민지 근대화론의 오류
친일파 중 또 한 그룹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다.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이어받아 서울대를 근거지로 등장한 경제학자 그룹이다. 처음에는 경제사를 연구하는 연구자였지만 일본과의 접촉을 통해 친일파로 돌아섰다. 이들은 일본을 어설프게 연구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그랬지만 일본을 처음 접하면 그들의 선진성에 압도된다.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하며, 음식은 맛있고, 영화는 매혹적이다.
기업과 산업도 찬란하다. 소니는 혁신의 아이콘이고 도요타는 일본식 경영의 진수처럼 보인다. 전자왕국과 자동차왕국은 마치 일본군의 불침 항모 같다. 그곳에 일하는 근로자들은 카미카제 특공대처럼 목숨을 걸고 일하는 전사로 보인다.
하지만 3~4년쯤 지나면 일본의 이면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깨끗한 거리와 달리 집 안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게 되고, 겉으로 드러난 일본인의 친절 뒤에 숨은 차가운 미소를 느끼게 된다. 기업과 산업, 경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누누이 설명했듯이, 장기침체 속에 헤매는 것을 보면 어용 지식인과 해외 장학생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일본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면면이 보인다.
하지만 식미지 근대화론자들은 이러한 속내와 뒷모습을 보기도 전에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국수적인 우익학자들이 만들어놓은 데이터와 일본의 찬란한 겉모습만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이상한 논리를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대에서 당당히 가르쳤다.
그들의 논지는 명료하다. 첫째는, 전근대적 봉건사회였던 조선은 내부적 모순으로 붕괴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소위 "너희들이 못나서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둘째는, 근대화된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조선이 비로소 근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일본이 근대화해주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도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잘못된 주장이기에 간단히 무너진다. 철도나 도로를 건설하면 그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올라가게 돼 있다. 특히 식민지 시대처럼 최빈국인 상황일 때는 조금만 투자해도 경제성장률이 자연스럽게 오른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투자인가다. 이것이 조선을 위한 것이었다면 일본 덕분이다. 하지만 일본의 투자는 물자를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고, 조선을 발판으로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목적이 문제였다.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 덕분에 한국이 잘살게 되었다는 것도 오류다. 한강의 기적과 세계화의 기적은 물론 일본과의 교류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세계사적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한 결과다. 한강의 기적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잘 이용했고, 또 세계화의 기적은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흐름에 잘 올라탄 덕분이다.
내가 특히 문제라고 보는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첫 번째 주장이다. 조선이 못나서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 말이다. 이것은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일본의 조직에서는 리더가 좀 무능해도, 구성원들은 리더의 지시에 순응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조직은 돌아간다. 하지만 한국의 조직에서는 리더가 무능하면 구성원들이 즉각 반발하기 때문에 조직 자체가 기능하지 않는다. 더구나 순조롭게 돌아가는 조직이라도 한국의 구성원들은 언젠가는 스스로 소황제에 도전한다. 소황제가 리더십을 발휘해 성과를 잘 내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조직 내에서 "니가 뭔데?"라며 도전하는 구성원이 나오고 소황제 교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의 오랜 숙제가 풀리는 듯했다.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니가 뭔데'로 대표되는 도전 정신이다. 이러한 도전 정신이 충만한 황제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왔고, 그러한 성과 덕분에 한국이 전체적으로 성장해 온 것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나는 일본에서 <일본의 주군 경영과 한국의 황제 경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독자가 공감해주었다. ㅡ page 316~321
우리는 근대화(modernization, 학자들에 따라서는 '탈식민'이라고도 한다)를 경제적 부의 달성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근대화에는 개인의 자각과 자주성의 확립이라는 정신적인 면도 함께 있다. 경제적 부는 이미 많이 이룩했으니, 이제 또 하나 남은 과제가 자주성의 확립이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과 자국 이기주의가 범람하는 대변혁의 시대에는, 우리의 위치를 자각하고 주체성과 자주성을 확립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을 실현해야 우리는 비로소 근대화를 완성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꿈에서도 그리던 조국 근대화를
ㅡ page 326
경찰 집안의 아들과 도둑 집안의 딸이 연인 관계인데, 때마침 벌어지는 살인사건. 루팡의 딸 시리즈 1권으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 모두 큰 인기를 모았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는 하는데, 나는 좀 몰입이 어려웠다.
사와무라 이치는 단편을 훨씬 더 잘 쓰는 작가인가 보다. 수록작 일곱 편 중 처음 세 편은 그야말로 박수를 치며 읽었다. 특히 어린이의 시선에서 집단 괴롭힘 가해자의 가담 경위와 죄의식을 다룬 「아이들의 세계」가 탁월했다. 「인간이 제일 무섭다는 사람」을 읽고 나면 “귀신 따위는 무섭지 않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없게 되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목차만 보고 또 조셉 캠벨 사골 우려먹는 책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괜찮다. 사골 국물이긴 한데 일단 건더기도 많고 재료도 신선한 걸 쓰고 다대기 양념도 너무 짜거나 싱겁지 않게 밸런스가 잡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