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인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하도 멋져서 따로 옮겨적기까지 했다. 코윈과 스트리걸드워가 싸우기 전에 주고받는 허세가 흥겹다. 특히 스트리걸드워의 위협을 받아치는 코윈의 긴장감 없는 대꾸들이. “조금 거북한 기색이던데 그래”라든가 “자긴 예쁘게 타고 있는 주제에” 같은(예문판 번역 기준). 젤라즈니 소설에서 제일 큰 매력이 그 멋지고 흥겨운 허세라고 생각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어스시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보다 앰버 연대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나니아 연대기는 끝내 완독하지 못했다). 대단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앰버 연대기를 한없이 우습게 여기는 애서가가 곁에 있으니, 바로 다름 아닌 HJ. 그녀는 시리즈 첫 권인 이 책, 『앰버의 아홉 왕자』 결말을 납득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한겨레출판 (e-book, 231125~231127)
❝ 별점: ★★★★☆
❝ 한줄평: ‘단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 키워드: 새싹 | 나무 | 삶 | 생명 | 죽음 | 운명 | 사랑 | 이해 | 연민 | 죄책감 | 고통 | 의도 | 마음 | 믿음
❝ 추천: 삶과 죽음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
❝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
❝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
/ 작가의 말
🌳 첫 문장: 작은 섬에는 작은 열매를 좋아하는 작은 새가 많았다. (프롤로그)
📝 (23/11/27) 최진영 작가님은 단편 「돌담」으로 알게 된 작가님인데, 소설집 『겨울방학』의 편집자 리뷰에서 ‘최진영의 인물들은 두려움을 통과해 나아간다.’와 ‘마음을 단단히 쌓는 인물들’이라는 문장을 보고 ‘최진영이 그려내는 인물들’이 궁금해졌다. 이번에 장편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
✦ 최근 읽었던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에서도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좀 더 깊게 삶과 죽음, 그리고 ‘신 혹은 절대자’에 관해 사유해 볼 수 있었다.
| 우주에서 생명이란 너무나도 이상한 현상. 신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 살려달라는 기도를 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 그러니까 죽음이란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없어지는 현상’이었다. 그와 같은 정의에 목화는 미약한 온기를 느꼈다. 다만 그것이 없어질 뿐이다. 그것 아닌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하는’ 존재만이 사람은 아니다. 그 외의 더 많은 의미가 모여 사람을 이룬다.
| 삶은 죽음과 탄생을 모두 담는 그릇이다. 죽음 없는 삶은 불완전하다.
———······———
✦ 임천자 - 장미수 - 신목화 - 루나로 이어지는 가업인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것, 즉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 임천자와 장미수, 신목화가 각자 다른 이름을 붙이듯,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자가 어떤 존재인지 각자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듯, 각자 ‘단 한 사람’만을 구할 수 있는 운명을 다르게 받아들이듯, 임천자와 장미수와 신목화의 ‘단 한 명’이 모두 다르듯, 임천자와 장미수와 신목화는 모두 다른 사람, 단 ‘한 사람’이다. 무조건 운명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대신 목화가 선택한 길이 참 좋았다. 나무의 지시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하는 일.
| 신목화에게 ‘왜 나인가’란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것처럼 이미 주어진 운명이었다. 신목화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 운명에 내 몫이 있음을, 내 의지가 개입할 수 있음을,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을 증명하는 것.
| 목화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판단을 멈추었다. 그리고 중개 중에 이전에는 하지 않는 것을 했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목화가 하는 일이었다. 나무의 지시가 아니었다. 목화의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
✦ 삶과 죽음, 그 사이의 사랑. 그들은 다른 사람이기에 그들의 사랑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임천자에게 사랑은 말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죽어서도 기꺼이 원망과 미움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 신복일에게 사랑은 심장이어서 사랑이 멈추면 삶도 끝나는 것, 장미수에게 사랑은 감추고 속이는 것 없이 다 말해주는 것. 여러 사랑 중에서도 임천자의 사랑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장미수가 언젠가 꼭 그 사랑을 깨달았기를.
|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
✦ ‘한 사람을 살리는 일’, 그리고 ‘산 사람을 살리는 일’.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리고 ‘산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라던 금화의 말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두려워하고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마음껏 기뻐하고 사랑하고 때론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영원한 오늘’을 누리며 ‘단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 그러므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
———······———······———
안녕하세요, 그믐의 안내자 도우리입니다.
2023년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데요, 11월과 12월에 걸쳐 열리는 열일곱 번째 그믐밤에서 그믐 연말결산 콘텐츠를 하나씩 발표하고 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2023 그믐을 돌아보고, 여러분께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드릴게요.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인생책’입니다.
그믐에는 [내 서재]라는 공간이 있는데요, [내 서재]에는‘인생책’, ‘추천책’, ‘읽은책’, ‘관심책’을 담아두실 수 있습니다. ‘인생책’ 책장에는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최대 29권까지 꽂아두실 수 있어요.올 한해 동안, 여러분이 제일 많이 ‘인생책’ 책장에 꽂아주신 책 10권을 발표합니다. (2023년 11월 21일 기준)
1위 <데미안>(헤르만 헤세, 여러 출판사)
2위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유발 하라리, 2023)
3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2021, 곰출판)
4위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여러 출판사)
5위 <코스모스 – 보급판>(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6위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여러 출판사)
7위 <스토너>(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2015)
8위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2014)
9위 <밝은 밤>(최은영, 문학동네, 2021)
10위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0)
1위부터 5위까지는 해외 소설 그리고 인문교양, 과학 분야 책이 고루 보여요. 6위부터 10위까지는 전부 소설입니다. 많은 분들이 소설을 인생책 책장에 꽂아주셨네요. 여러분의 인생책은 무엇인가요? ( [인생책 5문5답] 참여 링크)
그리고 2023 올해의 책은 무엇인가요?
지금 그믐밤에서 여러분의 올해의 책을 나눠주세요 :)
그믐밤 참여하기 ▷[그믐밤] 17. 내 맘대로 올해의 책
이 소설 직전에 읽은 일본 미스터리가 <어두운 범람>이었는데 둘의 제목이 너무 헷갈린다. <어두운 범람>과 <열린 어둠> 기묘하게 대칭으로 닮았는데 둘 다 뒤돌아서면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범람>이 ‘일상’ 느낌이라면 <열린 어둠>은 조금 더 뒤틀렸고 느아르 풍이다. 야쿠자, 형사, 뒷골목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짧지 않은 단편 9개가 실려 있어 팬들에게는 꽤 선물 같은 단편집일 듯.
‘대역’ ‘열린 어둠’ 같은 작품은 무리수를 너무 심하게 두었다. 대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인지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작품내에서 과학수사가 무시되고 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베이 시티에서 죽다’ 등 절반 정도는 재미있게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다소 실망스럽다.
내향인인 저자는 1년 동안 외향적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즉흥 연기 수업을 듣고,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디너파티를 주최한다. 그 좌충우돌 과정에서 느낀 점, 주변 사람들의 반응, 자신의 달라진 점을 상세히 적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그리고 유머 감각이 무척 뛰어나다.
단순히 자기계발의 역사를 훑거나 현대 자조론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놀리는 책이 아니다. 좋은 삶을 향한 탐구가 수천 년 동안 낸 답안과, 그 의지를 변질시키는 상업 논리의 허점을 정리한다. ‘현대 사회에서 고상한 욕구가 왜 그토록 푸대접 받고 저질스러운 응답만 얻는가’라는 질문은 분명 던져볼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