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240223~240224)
❝ 별점: ★★★★☆
❝ 한줄평: 실패는 끝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떤 사람
❝ 키워드: 마음 | 꿈 | 슬픔 | 기분 | 어둠 | 실패 | 마지막 | 끝 | 이야기 | 존재
❝ 추천: 좌절하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이후의 삶을 이어나가는 화자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어쩔 수 없는 실패, 그 이후에도 삶이 있음을 증명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에도 조금 울겠지. 그러나 훨씬 담담하게 울 수 있게 되겠지. ❞
/ 에세이 | 나의 디바 주동우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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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목소리를,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나를 혼잣말로 두지 않아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 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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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웃는다 너는 바보처럼 웃는다 너는 다 알겠다는 듯이 웃는다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지옥,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실패, 너는 실패의 지옥에서도 지키려고 애를 쓴다 부서져도 전부 부서지지는 않으려고 어딘가 안쓰럽게 애를 쓴다 다시 붙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끝까지 완전하게 웃지는 않고 버틴다
/ 「한 줌의 사람」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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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는 빛에 대해 생각하면 미래에 도착한 것만 같다 미래에 도착해서 나는 과거를 지켜본다 이미 도착해서 과거의 내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무미건조하게,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이, 그러면 실패한 기분이 사라질까,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면 됩니다, 나는 타인에게 말을 건넨다 타인에게 말하면서 타인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바라지만 나는 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오방을 돌아본다
/ 「증명할 수 없는 사람」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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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지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단다, 내겐 부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의 부리로 네 깃털을 가다듬고 윤을 내어줄게,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도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는 거니까, 그 일들이 너를 미워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니까, 이제 너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벌주려 하지 말아, 올겨울에는 연탄난로 곁에서 같이 얼린 홍시를 나눠 먹어야지.
/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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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간 다음에야 내가 건너온 것을 돌아볼 수 있겠지 건너왔지만 건너온 것을 모르기도 하겠지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사각 행거에 달아놓은 소원 쪽지들이랑 라탄 바스켓에 담아둔 마른 옷들을 매만지며 아직도 이런 것이 남아 있구나, 꿈속에서는 내가 아직 없어지지는 않았구나 옷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흘러가는 시간이 있기도 하겠지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조용히 흘려가는 꿈, 사람들은 일을 하고 철근 공은 움직이고, 하나의 꿈을 열고 또 하나의 덧문을 열면서 나는 자꾸자꾸 흘러가고 있었어.
/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야기」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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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기로 선택해서 너의 목소리는 이야기가 된 거야, 여전히 너는 어둡고, 마침내 실패했고, 실패한 것은 작은 사건일뿐 눈을 가리는 진실은 아닌 거라고, 내가 여기 있을게 올드팝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흘러가겠지만, 이제 우리 이 긴 겨울을 같이 흘러가자 오각형으로 팔각형으로, 꺾어지고 굽혀지다가 다른 세계와 섞이고 가늘어지고 결정이 되고 눈발이 되어서 다 잊어버린 사람들의 머리 위로 조금씩 흩날리기로 하자 웬 검은 눈이 내린다고, 아주 긴 오지의 시간 여행을 해온 눈이라고, 사람들은 입술을 모으겠지만 볼주머니에 도토리 열 개는 집어넣은 다람쥐의 마음으로 울지도 웃지도 않으면서 내가 너의 목소리에 목소리를 덧댈게 너를 절대 혼잣말로 두지는 않을게.
/ 「들어줄게 너의 이야기를」 (p.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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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기차를 타고 밤 약속」
✎ 「안개 숲」
✎ 「무호흡」 ⛤
2부
✎ 「작은 선물」
✎ 「한 줌의 사람」 ⛤
✎ 「윤슬」 ⛤
3부
✎ 「증명할 수 없는 사람」 ⛤
✎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
✎ 「다하지 못한 마음」 ⛤
4부
✎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야기」 ⛤
✎ 「들어줄게 너의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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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각종 자가면역질환에 아파하고, 치료받고 싶어하고, 의학과 사회와 마음을 연구하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정말 존경스럽다. 아무리 혼자 쓰는 감상문이라도 너무 짧고 단순한 감상이 아니냐 싶으나, 정말 그런 걸 어쩌랴.
자가면역질환 환자들도 드물지 않고, 그정도는 아니어도 통증은 엄청난데 당장 죽네사네 하는 병은 아니라 병원서 푸대접받는 경험을 한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치료 끝나면 나으니까 참지만, 신체적 고통을 무시당하면 정말 힘들다. 그런 경험을 거의 평생 하면서, 이 고통이 잠시 멈출 때는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한다면 나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하루 버티기도 힘들텐데 이런 유익한 책을 내다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료와 관련된 사회 시스템,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세상에 있다고는 해도 무슨 아픈 게 내가 긍정적이지 못해서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아픔을 통해 지혜로워졌으니 좋은 거 아니요 드립(개인적으로 진짜 싫어하는 말. 난 아무 것도 몰라도 좋으니 고통 필요없다) 등 각종 관련 이슈에 더해 어떻게든 아픈 게 일상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하루를 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상당히 묵직하게 와닿는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자도 나도.
영화가 신기할 정도로 낡았는데 감독이 늙어서 발생하는 문제. 2000년대 학번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의 대학 시절 작가를 꿈꾸며 상실의 시대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는다. 한국 영화 감독들은 쑥과 마늘을 먹고 버티던 한민족의 후손답게 어떻게든 긴 시간을 버텨낸다. 그러다보면 가끔 기회가 오기도 하고 그간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펼쳐내다보니 10년 전 20년 전의 유통기한 지난 컨텐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담긴다. 메타인지를 갖추기란 쉽지 않다.
미술수업 가는 길에 있는 독립서적 전문 서점에서 빌린 책인데, 지난 주가 만기인데 잊고 이제 가져다 주네. <깊은숨>에서 문학상 수상작가의 그 후 십 년 간의 삶을 보았는데, 이렇게 독립출판 작가들의 삶은 어떤지? 아, 멀리서 찾을 이유가 없지^^;
움베르트 에코가 기획한 책 중세1, 2, 3, 4 중 중세 II는 西紀(서기) 1000년에서 1200년까지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 시기는 개인적으로 크게 가톨릭 교회의 개혁, 아랍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이 유럽으로의 대량 유입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보고 싶다. 그 밖에 서유럽 지역 외의 사람들, 또 다른 역사의 주체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11세기 가톨릭 교회의 개혁
특히 11세기에 주목할 부분은 가톨릭 교회의 개혁reformaion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 밀라노 칙령으로 제국의 종교로 313년 공인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 시리아, 알렉산드리아, 로마, 콥트 교회 등 각각의 자율성을 갖는 다양한 교회들의 집합체였다. 하지만, 동서 로마가 분리되고 성상파괴운동 등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가톨릭은 더욱 독립적인 교회로 발전하게 된다.
동방 교회의 상황은 잘 알 수 없지만 로마 가톨릭은 초기 수도원 중심의 교회였다. 하지만, 유럽의 중세가 고전 사회와 이격되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그 행정적 수요 등을 가톨릭 교회의 교구가 담당하게 된다. 그 행정 실무를 교회 성직자들이 맞게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직에 대한 매관매직과 사제들의 첩실(妾室; 현재 미국 가톨릭 교회의 경우 이 문제가 다시 만연하고 있다)등의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때 대대적인 개혁이 실시되는데 오늘날과 같은 가톨릭 사제들에 대한 순결(Celibacy) 의무가 이때부터 제도화 된다.
성직 매매와 니콜라이즘Nicolaism(성직자의 혼인)은 교회권력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권력이 충돌하는 접점에 맞닿아 있는 문제들이었다. 당시 주교 등 성직에 대한 서임권(敍任權)권 문제로 황제와 교황이 충돌하고 있었는데 교항청은 성직자 타락의 문제는 황제라는 세속 권력이 성직자를 임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쪽에는 권력과 타협, 타락한 성직자의 지지를 받는 황제가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내부적으로 개혁을 일으키고 자신의 법적 권리를 회복하고자 한다는 교황의 프로파간다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정치적으로 신성로마제국 내 영주들의 여론은 교황 쪽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명예 권력에 불과했던 로마 주교(교황)는 유럽의 보편적 정치권력자 그리고 군주제적 성격의 통치자로 변모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오 7세 로마 교황 사이의 대결은 교황의 승리로 일단락 되었지만 세속권력과의 갈등은 더욱 내연하면서 서양의 역사를 전개시키는 동력의 하나가 된다. 그레고리오 7세는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모든 평신도와 성직자는 교황에 구속된다고 선언한다. 1075년의 교황령은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교황 자신에 대한 복종의 의무와 동일시”하고 로마 교회의 수위권(首位權)을 통해 황제들을 폐위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때 가톨릭 교회는 현재의 이란 신정체제가 ‘혁명수비대’와 같은 물리적 폭력 조직을 갖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매우 특이한 역사적 사례인 것처럼 보인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권력의 집중을 통해 십자군 원정이라는 대대적 전쟁 캠페인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십자군 원정(1096~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은 종교적 동력으로 시작되었지만 유럽 사회를 근본적으로 근대적 세속 사회로 전환시키는 서막을 연다.십자군 전쟁은 몽골의 동유럽, 아랍의 침입 그리고 이로 인한 투르크의 서진으로 인해 결국은 실패하지만 수많은 유럽의 봉건 귀족의 몰락과 해체를 통해 봉건 사회의 기초를 허물고 중앙집권적인 절대국가의 출현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사회적 변화의 전조가 된다.
아랍 과학기술의 유럽 전수
1085년 리콩키스타에 의한 톨레도 점령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를 받던 에스파냐는 그리스 로마 고전 과학 기술 문명을 그대로 전수받고 아랍의 역량으로 크게 발전시켜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문명을 크게 꽃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톨레도에는 이들 아랍문명의 진수를 보여주는 수많은 서적들의 보고였다. 다행히 가톨릭 교회의 수도사들이 그 진가를 알아보고 대대적인 번역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 번역 작업은 역사적 유례를 발견할 수 없는 아랍인, 유대인, 그리스도교인들의 대대적 협업이었다.
오늘날 모든 근대적 과학은 서양의 독창적 전유물이라는 선전과 선입견이 깨지는 역사적 고리가 바로 여기, 11세기 톨레도에 위치한다. 수학, 천문학, 물리학, 연금술과 화학, 광학 등이 모두 중세 아랍 문명이 중세 유럽에 전수해준 덕분이고 아이작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우주를 보았다”고 했을 때 그 거인은 바로 중세의 아랍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도서관에는 인도, 중국, 아랍, 그리스 고전문명의 성과가 모두 집약되어 있었다.
독일인의 기원
중세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기 독일이라는 명칭은 바이에른인, 색슨인(또는 작센인), 알레마니인 같은 여러 지역 사람들에 대한 통칭이었다. 이들의 집단적인 정체성은 12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10세기부터 로마인들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 왕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지만 12~13세기 이전에는 독일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는 단어는 1550년에야 등장한다.
독일 정치 제도의 주요 특성은 분열과 다양성이다. 독일을 이루고 있던 비교적 큰 공국들은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팔츠, 헤센, 작센, 브란덴부르크였다. 독일의 군주들, 즉 공작, 후작, 백작들은 특별한 권리를 누렸고 왕국의 관리 출신으로 기부받은 땅을 소유하고 지상권을 행사했다. 이들이 관리라는 지위를 통해 토지 소유자의 지위로 급속하게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11세기 후반이다. 공작은 원래 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지역 구성원들에 의해서 선출되었고, 서열로 볼 때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되었다. 백작과 후작들에게는 동쪽 국경의 방어 임무가 주어졌고, 사법과 주요 군사 관련 권력자들이 그 다음 서열을 차지했다고 한다.
영토 전체의 1/3은 교회에 속해 있었다. 대주교, 주교, 대수도원장과 소수도원의 원장(또는 대수도원의 부원장)들은 그 넓이나 부유함, 중요성의 정도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영토들을 다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로지 황제에게만 충성을 바치며, 대체로 바로 이웃한 지역까지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장시켰던 황제의 도시들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러시아의 기원
러시아인에 대해 백러시아인(벨라루스인)과 우크라이나인(소러시아인:”차이코프스키의 2번 교향곡"은 “소러시아, 우크라이나”라고 불린다)이라는 구분은 중세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에 중세 전반에는 ‘동슬라브인’과 ‘러시아인’이라고만 했고, 그들의 영토에는 ‘Ru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루스’라는 용어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지만 항해자, 상인의 개념과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러시아는 그 기원을 오늘날의 스웨덴에서 유래한 바이킹에 두고 있다. 이들은 8세기와 9세기 동안 때로는 약탈자로, 때로는 상인으로 6세기 이후 슬라브게 주민들이 살고 있던 발트 해 연안의 큰 강가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슬라브인과 비잔티움인은 상인이자 해적들인 이들을 ‘바랑기아니’ 또는 ‘루시’라고 불렀다. 바이킹 족의 등장은 유럽의 무역 거래에 편입된 동슬라브 세계에 큰 자극이 되었다. 그들은 키예프와 드네프르 강, 볼가 강을 가로지르고 노브고르드를 경유하며, 발트 해 연안의 유럽 지역에 동방에서 건너 온 향료, 비단과 호박 같은 귀중품들을 공급할 수 있었다. 볼가 강 하류에서 사마르칸트로 이어지는 길을 통과했으며 카스피 해 연안의 볼가 강 어귀로부터 배를 이용하여 페르시아와 바그다드까지 갔다.
9세기말, 상인 류리크의 아들로 이미 노브고로드를 지배하고 있던 스웨덴인 올레그는 키예프를 차지하여 남부와 북부의 교역으로 번창을 누린 최초의 진정한 러시아 공국을 세웠다. 10세기 부터는 키예프에는 상품들과 함께 가톨릭 정교회와 제국의 사상들, 황제의 보편적인 도덕적 사회적 기능들이 유입되었다.
유대인
유대인들은 새 천년을 맞이하며 메시아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고 있었다. 특히 지중해 유대 사회가 9세기와 10세기 비잔티움의 박해로 심각한 위기를 겪은 직후였기 때문에 그들의 메시아 降臨(강림)에 대한 기다림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것이었다(이 시기 비잔티움의 박해를 피해 유대인들의 중부 유럽으로의 이주가 진행하는 데 이들이 바로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의 뿌리에 해당한다).하지만, 제1차 십자군 원정(1095/1096)에서의 반유대주의 위기를 겪으면서 유대인들의 상황은 점점 나빠지게 된다.
유대인들은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서 생산과 기업, 장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11~12세기 아랍의 선진 과학 기술과 의술을 유럽에 전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대인들의 이 같이 뛰어난 능력은 두 가지 요인에 바탕하고 있었다. 첫째 그들은 문맹이 존재하지 않았고 댜양한 유대인 사회의 네트워크와 다언어 사용을 통해 가족 전체가 특정 직업의 전문가 집단이 될 수 있었다. 다른 한 가지는 위생이라는 보건적 요소로, 유대인 종교 속에 위생이 생활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건과 관계된 생활 수칙은 이미 성경의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주요 주제로 등장했고 이후 정결함(tohorah)와 부정함(tum’ah)의 조건과 규정이 신학적으로 율법화, 개념화되어 있었다.
올해는 더 쭉쭉 뻗어나가시길요^^
@ 전문 쇼콜라티에의 부심가득한
초콜렛책방
콜린 윌슨 본인은 이 작품을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자 서문이 무척 거창해서 좀 민망할 지경. 나는 산문과 비평을 흥미진진하게 잘 쓰는 사람도 소설을 재미있게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로 본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가 괜찮은 삶을 살았더라도 이런 소설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정확히는 ‘우주의 역사’라기보다는 ‘천문학의 역사’라고 해야 할 책이고, 콜린 윌슨의 유사과학스러운 추측이나 자체연구 내용이 섞여 있어 이제 와서 교양서로 추천하기도 어렵다. 그런 추측 중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학계 밖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똑똑한 사람들이 괴상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콜린 윌슨도 거기에 해당한다.
독서가 중에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하거나 경멸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니다.
자기계발서 중에는 분명히 함량 미달인 물건도 많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살이의 지혜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걸 책으로 엮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집안이나 마을의 어른이 그런 지혜를 가르쳤다.
로버트 그린의 920쪽짜리 책 『‘인간 본성의 법칙』(위즈덤하우스)은 어느 서점에서는 인문학 이론서로, 다른 서점에서는 교양심리 서적으로 분류돼 있다. 내 생각에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잇는 좋은 인간관계 분야 자기계발서이고, 실제로 어떤 서점에서는 해당 코너에 있다.
『인간관계론』처럼 『인간 본성의 법칙』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인간 심리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구석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 나간다. 타인의 행동에 대처하는 법과 자기 마음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요령도 조언한다. 이것을 처세술이라고 깎아내려야 할까? 오히려 자식이 있다면 꼭 알려주고 싶은, 교과서에 없는 산 지식이라고 본다.
특히 『인간 본성의 법칙』은 80여 년 전에 나온 『인간관계론』에 비해 현대 사회생활에 더 다급하게 필요해진 지혜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탁월하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본다. 수천, 수만 명과 연결되는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중국 문화혁명기의 끔찍한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집단 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유혹들을 열거한다. 녹아들고 싶은 욕구, 감정의 전염, 과잉 확신, 집단 문화에 대한 순종 같은 것들이다. 리더, 모사꾼, 말썽꾼, 광대처럼 집단에서 개인들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설명하기도 한다.
출간 1년도 안 된 책이 5만 부가 넘게 팔리자 출판사에서는 두 권으로 나눈 블랙 에디션을 내놨다. 벽돌을 쪼갠 셈. 두꺼운 분량이 부담스러운 젊은이가 있다면 13장(章)만이라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헌신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방법을 다룬 챕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