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다 (231204~231224)
❝ 별점: ★★★★
❝ 한줄평: ‘사람’에 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단편들
❝ 키워드: 죽음, 진실 | 책임, 권위 | 계급, 의식 | 사랑, 이해 | 애증, 상속 | 사람, 구원 | 회상, 흔적
❝ 추천: ‘최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이효석문학상의 수상작들이 궁금한 사람
❝ 사람에 대한 말은 어떤 것이든 다 대수롭다. ❞
/ 안보윤, 「애도의 방식」
📝 (23/12/25) 그믐북클럽 10기에 참여해 도서를 제공받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을 읽게 되었다.
✦ 그믐에서 여러 독서모임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작가님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그믐북클럽 10기에서도 작품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 작가님께 하고 싶은 말 등을 코멘트로 남기면 작가님들이 직접 답변을 해주셔서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어서 더욱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모임에는 작가님들이 남기신 질문도 있어서 작가님들은 독자에게 어떤 점이 궁금한지도 살짝 알게 되어 더 재미있었다.
✦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된 작가님들이 많았는데, 이효석문학상이 ‘최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만큼 작품들의 깊이나 여운 또한 대단했다. 혼자서 한 번에 다 읽기에는 조금 어렵고 버거웠을 것 같은데, 그믐북클럽에서 작가님들과 멤버들과 소통하며 천천히 읽다 보니 완독 할 수 있었다.
✦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단편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앞으로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봐야겠다.
(*그믐북클럽 10기에 참여하여 북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안보윤, 「애도의 방식」 ⛤
: 남겨진 사람들이 견뎌내는 방식
|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p.28)
———······———
안보윤, 「너머의 세계」
: 안과 너머, 그 사이의 헤아릴 수 없는 간격
| 중앙 현관을 넘고 나면 이제 다시는, 어떤 문 안으로도 몸을 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연수는 너머의 세계에 있기로 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선택이 아니었다. 적어도 연수에게는 그랬다. (p.64)
———······———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의 의미를 알아챘을 때의 당신의 기분은
|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 그림을 받았을 때 아연함보다 불쾌감이 앞섰던 이유를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p.139)
———······———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
: 이해보다는 인정이 필요한 때가 있다
|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p.154)
———······———
김인숙, 「자작나무 숲」 ⛤
: 껍질을 벗기고 벗겨도 살아서 다시 하얘지는 자작나무와 쌓고 쌓아도 또다시 쓰레기를 쌓는 할머니
|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기억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p.203)
———······———
신주희, 「작은 방주들」
: 어쩌면 각자의 인생과 같은 작은 방주들
| 여자가 석양을 등지고 사막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말들 중 어떤 것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길게 늘어지는 여자의 그림자를 사진 속에 담았다.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p.233)
———······———
지혜, 「북명 너머에서」
: 돌아갈 수 없는, 되돌아갈 길 없는 오래 전의 북명을 회상하며
| 내가 구덩이라면. 혹은 진흙이라면. 물과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변한다면, 진득한 몸으로 어디든 달라붙을 수 있다면. 아니 연못이라면. 흐르고 넘쳐 원하는 곳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뛰어들 수 있다면. 녹아서 사라질 수 있다면. 이성자가 아닌 무엇이라면. 내가 조옥이라면. 그런 열망이 예기치 않게 급습할 때면 오한이 나듯 몸이 떨리고추위가 밀려왔다. (p.250)
———······———······———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세계가 3차원인지 아닌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개인지 열두 개인지의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런 문제들은 장난이다.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니체의 바람대로, 무릇 존경받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답 뒤에는 결정적 행위가 분명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심정적으로는 분명히 느껴지지만, 이성적으로 명확히 밝혀지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어떤 질문이 다른 질문보다 더 절박한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자문해 보면, 나로서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이어질 행동이 바로 그 판단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존재론적 논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중차대한 과학적 진리를 주장한 갈릴레이는 그 진리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그것을 미련 없이 포기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잘한 일이다. 그 진리라는 것이 화형까지 무릅쓸 만한 가치는 없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든,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든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알기로는, 인생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 때문에 죽는 사람들은 많다. 또 다른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에게 삶의 이유를 부여해 주는 이념이나 환상들 때문에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우리가 삶의 이유라고 부르는 것이 죽어야 할 멋진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의 의미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15~16쪽
카뮈의 <시지프 신화> 는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 이렇게 3개의 큰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 챕터 '부조리의 추론'의 처음 장인 '부조리와 자살'은 위의 문장들로 시작한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바로 삶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으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 책을 시작하는 첫 문단은 언제 읽어도 빨려들 듯 몰입감이 대단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마치 멜로드라마에서처럼, 하나의 고백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삶을 감당할 수 없다거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의 유추를 너무 멀리까지 밀고 나가지는 말고 쉬운 말로 되돌아와 보자. 그것은 그저 삶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삶이 요구하는 행위들을 우리가 계속하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습관이다.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러한 습관의 하찮음, 삶의 심오한 의미의 전적인 부재, 부산스러운 일상의 어이없음, 고통의 무용함을 본능적으로나마 알아차렸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면마저 박탈해 버리는 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18쪽
‘맛있다’는 감각과 미식이라는 경험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연구해서 요리와 식당에 적용하려는 과학자의 이야기. 포장지의 소리나 식기의 무게까지도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요령도 여러 가지 나온다.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고생물학, 지질학을 흥겹게 누비는 교양과학서. 저자의 글 솜씨도 좋고 책 속의 여러 주장들이 아직 근거가 충분치 않은 가설임을 분명히 밝히기 때문에 믿음도 간다. 암흑 물질이 공룡의 멸종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 자체가 재미있었다. 공룡 미안.
2020년 대한민국에서 진보, 보수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와는 별 상관없이, 특정 정치 패거리와 그 지지자들을 각각 일컫는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두 패거리가 추구하는 것은 가치라기보다는 그냥 자기들의 패권이다. 그건 그것대로 슬픈데, 진보와 보수의 철학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조차 찾기 힘든 현실은 기가 막힌다. 글줄 깨나 읽었다는 사람이 “보수는 경제와 안보, 진보는 인권과 복지”라는 식의 당황스러운 이분법을 펼친다.
그런 분들께 미국의 정치이론가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을 권한다. 856쪽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럽다면 저자 서문과 부록인 ‘보수의 10대 원칙’만 읽어도 생각이 흔들릴 것이다. 보수주의자가 쓴, 보수주의자를 위한, 보수주의에 대한 책이다. 그러나 보수의 철학을 파고들면 당연하게도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를 둘러싼 통찰 역시 얻을 수 있다.
보수주의자는 신중하다. 연구실에서 막 합성된 신물질에 대해 우리가 그러하듯이, 보수주의자는 대학이나 인터넷에서 갓 나온 사회 변혁의 아이디어를 경계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부작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최악의 사태를 미리 차단하자는 것이다. 이런 태도 아래에는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정치적 독선과 낭만적 이데올로기를 혐오하고 전통과 현실을 겸손하게 존중한다.
그는 사회 발전이나 인간의 선량함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런 인식은 질서, 계급, 규범, 분배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으로 이어진다. 이런 신조들이 체계적 교리로 모아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뒤죽박죽은 아니다. 저자는 에드먼드 버크 이후 보수주의의 역사를 쫓아가며 그 ‘정신’을 붙잡으려 한다.
책 자체가 나온 지 60년이 넘은 데다 미국의 정치사, 사상사를 모르면 쉽지 않은 대목들이 있다. 저자의 화법도 꽤 딱딱하다. 뉴스위크 한국판 발행인을 지낸 옮긴이가 번역에 1년을 꼬박 매달렸다고 한다. 특히 ‘보수의 10대 원칙’은 역자가 커크의 저서를 살펴보다 발견해서, 원서에는 없는 내용을 러셀 커크 재단의 허가를 받아 국내 번역서에 실었다.
국내 출판사인 지식노마드가 역자를 물색할 때에는 “팔리지 않을 텐데……”라며 만류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막상 책은 국내 출간 뒤 2년이 안 돼 7쇄를 찍었다. ‘진짜 보수’의 정신을 찾고 싶었던 독자가 그만큼 많았나 보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너무 정성이 많이 들어가면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적당히 대충 그리다가 말아야 제맛이다.
존 윅 1편을 촬영했을 때 커누 리브스부터 감독까지 그 누구도 이 시리즈가 4편까지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사는 건 너무 많은 변수들로 채워져있고 4편까지 만들고 시리즈를 끝낸다. 그런데 또 흥행에 성공하는 바람에 해당 IP를 늘릴 수밖에 없을 듯.
<샤잠!>의 후속편인 <샤잠! 신들의 분노>가 DC 영화의 가장 밑바닥인 줄 알았는데 아이맥스 촬영에 수잔 서랜든 출연에도 불구하고 이건 지하 7층쯤에 위치.
10조 원대 사기극으로 끝난 테라노스 스캔들을 다룬 논픽션. 저자가 바로 테라노스의 실체를 밝혀낸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다. 중반에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전반부는 블랙 코미디이고, 후반부는 호러 스릴러라 할 수 있겠다. ‘취재원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교과서 같은 원칙주의에 감탄한다. 책도 아주 재미있다.
일상이 배경이지만 ‘코지’하지는 않은 미스터리 단편 6편. 요코야마 히데오답게 모든 글들이 배경이 되는 직업 세계를 아주 정밀하게 묘사했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도 여러 편이다. 특히 「자서전」과 「말버릇」이 좋았다. 평생을 사로잡은 오해가 바로잡혀지는 이야기들인데, 진실은 꼭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