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쌓인 양말 짝을 맞춰라’, ‘장보기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여라’ 같은 챕터 제목들이 눈에 띈다. 내용은 컴퓨터 알고리즘의 원리를 소개하며 일상생활의 선택에도 적용하게끔 도움을 주기보다는, 반대로 일상의 예시를 통해 컴퓨터 알고리즘을 설명하려는 쪽에 가깝다. 그래도 사례들이 귀여웠다.
문학동네 (e-book, 231225~231229)
❝ 별점: ★★★★☆
❝ 한줄평: 사람을 살게 하는 어떤 마음들, 그리고 이야기
❝ 키워드: 사랑 | 마음 | 가족 | 이야기 | 기억 | 고통 | 슬픔 | 공감 | 그리움 | 후회 | 소중함 | 용서
❝ 추천: 백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여성들의 삶을 전달하는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어떻게 살았어요, 할머니?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살 수 있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
🌌 첫 문장: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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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영옥-미선-지연으로 이어지는 백 년의 시간 속 4명의 삶과, 그들과 얽힌 이들의 이야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은 그만큼 더 살 수 있다’는 영옥의 말처럼, 정선, 새비 아저씨와 아주머니, 명숙, 그리고 정연까지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마음. 어떤 마음은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지만, 어떤 마음은 사람을 살게 한다. 사람을 살게 하는 여러 마음들에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서로를 살린 정선과 새비 아주머니의 마음. 영옥을 살린 명숙의 마음. 지연을 살린 지우의 마음. 어깨에 기대는 사람과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 나도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위로받은 것처럼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슬픔과 아픔, 고통을 겪고도 ‘어떻게 살 수 있었냐’는 지연의 질문에 영옥은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라고 답한다. ‘아무것도 아닌 날’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긴긴밤을 견뎠을까. 또 견뎌야 할까. 그래도 언젠가는 ‘밝은 밤’이 올 수 있을까.
✦ 사람을 살게 하는 어떤 마음들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모두 사랑이다. [📝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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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나는 희자가 높은 하늘에 연을 띄우듯이, 기억이라는 바람으로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음에 띄워 올리곤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바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짐작하면서.
잠깐만 앉아 있자고 했으면서도 우리는 말없이 오래도록 바다와 달과 흰 연을 바라봤다.
멀리서 폭죽 터뜨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할머니가 개망초꽃을 손등으로 툭툭 쳤다. 지금 너도 남몰래 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할머니의 말이 내게 꼭 그렇게 들렸다. 끝나는 것들만 생각하지 마.
|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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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투약 협의를 받던 배우 이선균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 나 또한 가십을 궁금해하는 한 명의 대중이었음이 부끄러웠다.
그가 세 번에 걸친 마약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것은 거의 1년 동안에는 마약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마약의 경우는 나라마다 종류에 따라 혹은 의료 목적 여부에 따라 범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 한국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끔찍한 현실이 다시 끔 떠올랐다.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연예인, 유튜버,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2021년 대한민국 자살률 26.0, 한 해 동안 13,400여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는 매일 36명이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책 제목처럼 우리에게 정말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고 자살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죽음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삭막한 세상이 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현실이 마냥 슬플 뿐이다.
이 책 발표된 되었을 때인 2005년 즈음부터 2016년까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 줄 곳 1위였다. 잠시 주춤하던 자살률이 다시 1위를 했고 그 오명은 2022년까지 이어진다.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높아 38개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김영하 작가가 현실 세계에는 없는 자살 청부업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시작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은 출판 당시에는 이 소설 앞에 '판타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알면 적극적으로 말려야지 자살하도록 돕다니, 자살방조죄에 해당하는 자살 청부업자는 현실에는 없다는 이유였다.
자살 청부업자가 자신의 고객이었던 인물들로 소설을 출판함으로써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일종의 액자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등장하는 여성마다 모두 한결같이 남녀의 성관계에 전혀 구속됨이 없다.
상대가 유부남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았고 형제여도 상관하지 않았다.
성매매를 직업으로 삼은 외국 여성은 그렇다 쳐도 유디트나 미미나 한국 여성인데 어떻게 성관계에 일말의 구속감이 없을 수가 있을까? 상상 속 여성이니까 가능한 캐릭터가 아닐까?
『마라의 죽음』이라는 유화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사르다나팔로스의 죽음』이라는 유화를 설명하며 자살 청부업자의 이야기가 끝나는 구성에서 엿볼 수 있듯이 두 여성 모두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를 인생의 멋진 마무리인 양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났다. 참 특이한 캐릭터들이다. 그러면서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정말 '살고자' 몸부림친 아이러니한 여성들, 유디트와 미미였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120p)
https://blog.naver.com/lovemom94/223305697480
시선은 현존에 대한 의식이다. 장소와 그 곳의 사람들, 타자를 사물로 바라보면 나의 세계는 그들을 잠식한다. 타자를 인간의 위상으로 끌어올리면 시선은 독점되지 않는다. 나는 객체의 가능성을 가지고 타자의 세계가 생겨난다. 페렉에게 관찰된 것들은 시선에 포획되어 본질을 제한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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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할 수 없는 존재에 자신을 잃어버린 인간이 신을 가정해 도달하는 ‘실존’과 달리
‘현존’은 이미 존재 자체가 숙명적으로 자유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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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옹 교차로에서 페렉이 한 시도는, 실패를 향한 것이다. 끊임없이 소진하려 해도 분기를 만나지 못하고 지속적인 약동으로 흘러가는 것. 결코 포획되지 않는 타자에 대한 증명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하고 싶어 밀턴 프리드먼의 책 화폐경제학(Mischivous Money)와 Free to Choose를 고르던 중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유주의 경제이론 또는 그 철학보다는 그 사상에 근거한 구체적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이 그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 그 내용을 사전에 모두 인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의도했던 것과 다른 내용이라 하더라도 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깨달음을 주는 데 부족하지 않은 책이었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무지의 더깨를 덜어내 주는 것에 감사하다.또, 지난 시간 경솔한 판단과 속단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사리에 대해 좀더 신중한 분별력이 내 안에서 자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제1장에서는 시장경제의 가격 이론을 너무도 유려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가격은 정보 전달, 인센티브, 그리고 소득의 분배의 세가지 기능을 한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세번 째 소득의 분배로서 “왜, 내가 다른 이보다 더 적은 돈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왜 그런지 해명은 못하지만 자본주의는 시장이 그것을 결정하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통치자(ruler, or director)가 결정한다. 시장이 정하는 가격은 그 때 그 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60년대 이미자라는 가수의 목소리가 시장 가격이 높았다면 현재는 블랙핑크와 같은 걸그룹의 음악에 훨씬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도 시장의 가격의 맥락에서 代議(대의)의 代表者(대표자)가 당선되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식이다. 이와같이 시장의 가격은 다소 변덕스럽게 출렁거리는 것이 한 특징이다.
미국에서 이 책을 쓸 때 미국 GDP사회 인프라와 같은 사회적 자본에 비해 인적 자본에 해당하는 비율이 80%였던 것 같다. 그만큼 인적 자원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적 자본이라는 자원은 運(운;chance)와 선택(choice)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삶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고 밀턴 프리드먼은 말한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에서 같이 그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려 했을 때 테러(terror정치 또는 공포정치)가 일어나는 것이 역사의 필연이라고 敷衍(부연)한다. 아마도, 제1장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장의 주제는 국제무역.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어쩌면 미국의 산업, 금융정책의 골격, 나아가서는 현대의 미국경제를 만든 인물이다. 론 처너가 쓴 그의 전기를 읽고 그가 얼마나 천재적이었으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갔는지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미국의 영광을 있게 한 최초의 청사진을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영국의 중앙은행이 영란은행의 모범을 따라 중앙은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물론, 다 아는 것처럼 미국의 중앙은행은 설립과 폐지를 반복하는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지금 미국의 연준은 바로 해밀턴의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국과 같은 제조업 선진국으로 부터 미국의 유치산업 단계에 있는 ‘제조업’을 보호해야 된다는 그의 일관된 주장은 현대의 개발경제학자들에 의해서 입증되고 있다. 프리드먼도 비판은 하지만 전체적으로 해밀턴의 삶과 보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제3장 중앙은행. 1930년대 대공황이 미국 연준의 정책 실패, 밀턴 프리드먼의 표현에 따르면 정부의 실패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최근에 나무위키를 보니 다른 주장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는 신용 사회다. 그리고 돈의 유통을 담당하는 금융 역시, 예금으로 받은 돈의 일정 비율, 즉, 지급준비율만 은행에 예치하면 나머지 돈은 모두 융통 할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어떤 경제적 사건으로 은행의 지급능력에 대한 불안이 생기면 은행의 돈을 한 꺼번에 찾아 장롱 속에 보관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럴 때 구원투수로서 즉 최종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의 존립근거를 찾는 것이다. 즉, 돈의 흐름이 경색되었을 때 돈을 풀라고 중앙은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공황 시기에 미국의 금융인들이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뉴욕 연준과 워싱턴의 연준 이사회 사이의 알력이 통화 정책의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원래, 뉴욕 연준이 통화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었는데 뉴욕 연준의 벤자민 킹이 사망하면서 공백이 생기고 또 반유대주의 감정도 있고 워싱턴의 연준 이사회는 뉴욕에 대한 그 시기심과 질투심을 거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워싱턴 연준의 이사회 멤버들은 Governor라고 하고 지방 연준 총재들은 President라고 한다. 아무래도 Preside보다는 Govern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지배적이고 우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었다.
제4장은 무덤에서 요람까지. 밀턴 프리드먼은 기본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부부문의 비효율을 비판한 것이 그의 요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의 Negative Income제도가 최근 주장되고 있 '보편적 기본소득’의 원형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조금 지나치게 그의 주장을 단순화 시키면 여러가지 넝마처럼 여기 저기 기워 덧댄 사회복지, 즉 국민연금, 실업수당 등등을 통폐합 일정소득 이하면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그 이상이면 세금을 걷는 식의 일원화된 사회복지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처음 제시한 것이 통일 독일 제국의 비스마르크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독일 통일의 역사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5장 신 앞에서의 평등. 결과적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예를 들어 축구 선수가 되고자 하는 두 명의 아이가 있다고 한다. 이 때 재능이 있는 천재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하는지 아니면 평등하게 재능은 없지만 의욕만 있는 아이에게 자원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인지 반문한다. 여기서 다시 평등과 자유라는 가치의 공존 공생이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임을 통감하게 된다.
6장은 학교, 7장 소비자 문제,
8장은 노동시장. 여기서 대기업 노조라던가 의사협회와 같은 조직을 중세의 길드와 같은 성격으로 파악하는 것을 참 놀라운 통찰이라고 느꼈다. 최근의 한국에서도 의대생의 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에 대해 정부와 의사협회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 책을 읽었다면 직관적으로 의사협회가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해 정원 증설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또,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자연실업률’을 여기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의 사유 속에서 어떻 그런 개념이 나오게 되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제9장.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은 통화적 현상이다.”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명제는 너무나 직관적이고 명료하기만 하다. 예전에 이자율에 대해 궁금해 거시경제학 책을 독학한 적이 있다. 그때 그 교과서를 쓴 미국 대학(캐나다였나?)교수는 70년대의 인플레이션이 유가 상승에 의한 공급사이드가 견인한 인플레이션이라고 했다.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교과서란 단어는 말 그대로 그 가르침에 맹종하게 하는 강제력을 갖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도 어느 정도 그 때의 지식을 소화시키고 또 이렇게 밀턴 프리드먼을 읽다 보니 분명히 알게 된다. 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연준이 하고 있는 통화정책에 대한 친절한 예고, 가이던스 등도 모두 밀턴 프리드먼이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10장 潮流(조류)의 변화. 한 조류의 흐름이 정점에 달하면 그 조류는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이라고 말한다. 남북전쟁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자유주의를 통해 상당한 결실을 얻었고 또 그 체제에 문제가 생기자 뉴딜 체제가 등장 이 책이 씌어 지던 시점까지 미국사회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하지만, 지나친 정부의 비대화로 인한 정부의 실패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재(1970년대 말) 다시 또 사회의 저층으로 부터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통해 현대통화이론에 대해서도 보다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물리학에 고전역학과 양자물리학이 공존하는 것처럼 경제학에서도 케인즈가 옳으니 밀턴 프리드먼이 옳으니 하는 식의 진영 논리만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 우주에 대해서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겸손히 모든 지혜와 방법들을 동원해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이게 그럴 일입니까?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ㅡ 오오랜 팬 새벽에 벌떡 일어나 글을 딱.
현대문학 (231208~231229)
❝ 별점: ★★★★
❝ 한줄평: ‘꿈이 나를 아무리 깊은 바다로 떠밀더라도 나를 붙잡아줄 것 같은’ 시들
❝ 키워드: 이야기 | 사람 | 행복 | 슬픔 | 꿈 | 동물 | 기억 | 진실 | 미래 | 사랑 | 이름
❝ 추천: 언어유희가 재미있는 시집을 좋아하는 사람
❝ 네가 평평하지 않고 공평하다면
세모일 수도 있고
네모일 수도 있고
청설모일 수도 있지 ❞
/ 「평평지구」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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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다 보면 언어유희가 재미있고, 또 재미난 상상도 많이 등장하지만, 진지하고 슬퍼지는 순간들도 있다. 화자는 ‘자신의 그릇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종이 접시처럼 볼품없어서 마음 아파하며 크림 컬러의 플레이팅 접시나 바로크 엔틱 찻잔이었더라면 꿈을 크게 가질 수 있었을까’ 자조하기도(「그릇」) 하고,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는 게 좋아 멀리 한강공원까지 나가 나를 유기하지만 잘라서 버린 팔다리와 머리가 어김없이 자신에게 붙어 있어 잔소리에 시달려 한숨도 못 자기도’(「걷기 예찬」) 한다.
✦ 그렇지만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축시 부탁을 받고’ 시를 쓰다 ‘재난문자 같은 시에 축시 마감을 한 주만 미룰 수 없을까’란 엉뚱한 상상을 하며 ‘면사포를 써야 상냥한 말이 떠오를 것 같다’(「축시 쓰기」)고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워서’ ‘몸은 두고 다리만 집으로 와서 집정리도 하고, 가볍게 춤을 추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혼자」)도 하는 화자. 꿈을 자주 꿔서 ‘살아 있는 자들의 무덤, 심지어는 나 자신의 무덤을 보기도 하지만 잠에서 깨면 태연하게 모닝커피를 마시고’(「굿모닝」), ‘몇 날 며칠을 바다에 빠지는 꿈을 꾸지만 쌍무지개 휘어지도록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아주는 이가 있는’(「햇빛」) 화자. 화자는 웃을 줄 알고, 웃음을 만들 줄도 아는 단단한 사람 같다.
✦ 얼마 전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열린 민구 시인의 낭독회를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봤는데, 시가 유쾌하고 웃긴 것만큼 민구 시인도 참 유쾌하고 웃긴 분 같았다. 이번 시집의 제목 『세모 네모 청설모』와 시집 표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엄청 솔직 담백하게 말씀하시는 게 묘하게 재미있고 유쾌해서 즐겁게 들었다.
✦ 이름과 별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에세이 「별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맹구부터 민민구, 밍크까지. ‘민민구’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별명이라는 걸 마지막으로 가져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안 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건 그에 걸맞은 관계를 설정한다는 의미’라는 시인의 말이 확 다가왔다. 어릴 땐 별명이 있다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별명을 가졌던 때를 그리워한다니. 참 웃기다.
✦ ‘사랑한다면 벼멸구라도 상관없다’고 하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준비가 됐다’는 민구 시인. ‘별명 없이 이제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p.110)는 시인에게 족제빗과 동물 밍크와 민구를 합친 ‘밍구’라는 귀여운 별명을 지어주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에 치중하면서 살고 싶다’는 그가 멋지고 귀엽다고 말하면 실례일까? 그러나 그건 정말 진심으로 멋지고 귀여운 일이라 생각한다. ‘밍구’의 다음 시집도 벌써 기대된다. [📝 23/12/29]
(*현대문학 핀사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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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 「걷기 예찬」 (p.18)
❝ 내 그릇을 본 건 처음이었어
청소하다가 우연히 꺼내본 그릇
너무 작아서 웃음이 나왔다
내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원형이나 사각형은 아니었고
강박 때문에 금이 갔으며
녹슬어서 보여주기 민망했다
크림 컬러의 플레이팅 접시나
바로크 엔틱 찻잔이었더라면
꿈을 크게 가질 수 있었을까
/ 「그릇」 (p.40)
❝ 만약 네가 백 년 동안 살아 있다면
수조를 준비해야겠지
그땐 이 방이 수조 속에 들어가서
모형 풍차처럼 조그만 기포를 만들며
내가 너의 마리모가 되겠지
그게 마음에 들었다
/ 「마리모」 (p.66)
❝ 별명이 없다. 이별 인사 없이 떠나버렸다. 이젠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건 그에 걸맞은 관계를 설정한다는 의미이다. 즉, 일하자는 거다. 돈을 벌어야 시를 쓰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도좋아하는 일에 치중하면서 살고 싶다. 별명을 불러도 좋은 친구가 그립다. 나를 뭐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들. 나는 친구가 될 준비가 됐다.
/ 에세이: 「별명」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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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한 사람」 ⛤
✎ 「멍」
✎ 「걷기 예찬」
✎ 「축시 쓰기」
✎ 「아무도 모른다」
✎ 「그릇」 ⛤
✎ 「굿모닝」 ⛤
✎ 「평평지구」
✎ 「혼자」 ⛤
✎ 「우리 사이」
✎ 「마리모」 ⛤
✎ 「의미 없는 삶」 ⛤
✎ 「포춘 쿠키」
✎ 「새해」 ⛤
✎ 「비수기」 ⛤
✎ 「간조」 ⛤
✎ 「햇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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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31219~231228)
❝ 별점: ★★★★☆
❝ 한줄평: 소멸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 키워드: 마음 | 기다림 | 겨울 | 눈 | 밤 | 죽음 | 슬픔 | 울음 | 기도 | 꿈 | 사랑 | 엄마
❝ 추천: 겨울밤의 슬픔이 가득한 시집을 읽고 싶은 사람
❝ 어떤 슬픔은 머무르는 그대로 우리를 살게 하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은 슬픔이 있어, ❞
/ 「소멸하는 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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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을 읽다가 시인이 ‘소멸’에는 ‘사라져 없어짐’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에너지가 합쳐져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내보내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기에 사전을 찾아보았다. ‘소멸’에 ‘반입자(反粒子)와 소립자(素粒子)가 합체해서, 그 정지(靜止) 에너지를 다른 입자의 형태로 방출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훗날 상실의 아픔을 겪고 슬픔의 시간을 지나가게 될 때 이 시집을 읽었던 일이 떠오르면 좋겠다.
✦ 밤, 그리고 겨울. 뭔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기다림이 떠오르는 시간이다. 시집을 읽으며 겨울밤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과정도 그러하지 않을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슬픔. 차갑고 매서운 눈바람이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쉽사리 녹을 것 같지 않은 마음.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이를 꿈에서라도 만나게 될 때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
✦ 그렇지만 ‘어떤 슬픔은 머무르는 그대로 우리를 살게’(「소멸하는 밤」) 해서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소멸하는 밤」)기도 한 것이다. 프로이트의 애도가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것이라면, 데리다의 애도는 대상을 영원히 기억하고 슬퍼하는 것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슬픔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애도는 끝나지 않고, 또 불가능한 것이 된다. 슬픔이 머무르는 게 꼭 아픈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했던,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슬퍼하는 게 애도라면, 그 기억과 슬픔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 시인의 에세이 「슬픔의 반려」에서도 할머니께서 “모든 슬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온다. 슬픔의 반려(伴侶)는 무엇일까. 언젠가 슬픔을 반려(返戾)하는 날이 오기도 할까.
✦ 당신은 어떤 것이 ‘소멸하는 밤’을 보내게 될까. 겨울 내내 곱씹어 보고 싶은 그런 시집이었다. [📝 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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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 라는 말 대신 차오르고 마는 강수, 슬픔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네 눈빛을 하고, 빈 의자에 앉아 창가를 보는사람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열할 수 없는 슬픔은 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꺄, 모든 비는, 두 눈은,
/ 「스콜」 (p.21-22)
❝ 잘 지내? 너무 먼 그곳,
여기 겨울 볕이 좋아,
이건 나 혼자 오래된 이야기.
/ 「물끄러미」 (p.47)
❝ 마음은 떠나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데
마음을 가진 인간은 왜 돌아오지 못하지
/ 「민들레」 (p.65)
❝ 사라지는 것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일이 경이롭지 않나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나요, 꿈 곁을 들어 올리면 내일 꾸어야 할 꿈들이 빛을 향한다, 꿈속에는 빛이 없으면서, 당신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면서.
/ 「하모니카」 (p.108-109)
❝ “모든 슬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나를 더는 못 보더라도 슬퍼하지 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모든 슬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니. 기억난다. 지금까지도.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순간이. 촛불이 더 이상 타들어갈 수 없다는 듯이 흔들리는 심지가. 할머니의 꺼져가는 동공 위에 비치는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과 멈칫거리는 내 모습이. 작아진 할머니의 몸을 엄마와 함께 들었을 때,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죽음이 이리 가벼울 수 있구나. 이미 할머니의 몸에서 마음이 떠나갔음을 엄마와 나는 알았다. 밤의 궁전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음을.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저어둠의 궁전으로 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을 것임을. 다시는 열어보고 싶지 않은 상자들이 쌓였다. 상자 속에 들어가는 죽음이라니, 이토록 간단하다니, 나의 할머니와 반려동물들은 하나같이 상자 속에 들어갔다. 그래. 묻기 쉬우라고.
/ 에세이: 「슬픔의 반려」 (p.136-137)
❝ 꿈에서 깨었을 때 베갯잇이 눈물로 젖어 있었다.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슬플 때 춥지 말라고 주는 무엇일까. 눈물을 흘리고 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니까, 더는 춥지 말라고, 슬픔에 얼어붙어 있지 말라고.
/ 에세이: 「슬픔의 반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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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너는 모른다」 ⛤
✎ 「스콜」
✎ 「소멸하는 밤」 ⛤
✎ 「피에타」
✎ 「물끄러미」
2부
✎ 「수국」 ⛤
✎ 「기일」
✎ 「빛의 다락」 ⛤
✎ 「민들레」
✎ 「몫」
✎ 「조감도」
✎ 「윈터링」 ⛤
✎ 「광합성」 ⛤
3부
✎ 「오목」
✎ 「하모니카」
✎ 「파종」 ⛤
✎ 「겨울의 연서」 ⛤
✎ 「앵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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