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우울증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우울증을 살핀다.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 ‘지금까지 읽어본 우울증 책 중 가장 헛소리를 하지 않는 책’이라는 글이 있다는데 나도 동감이다. 최근에 만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우울증에 대해 아는 것은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웃더라만.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상담 편지를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대부분 내 답장에 감사하고 있어.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가만 읽어보니 내 답장이 도움이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야. 스스로 착실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내 답장도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
1년 만에 보게 된 준이에게 고모는 어느 늦은 밤 물었어. 요즘 고민이 무엇이냐고. 그냥 툭, 하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고모도 진지해졌던 거 같아. 준이는 축구 실력이 잘 늘지 않는 게 고민이라고 말했지. 그날 제대로 답해주지 못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려 몇 가지 조언을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취미 생활로 축구를 하고 있는 회사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너의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다른 이야기만 잔뜩 하고 말았지. 고모는 열 살 때의 고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동료는 그러고 보면 시간이 지나면 고민도 결국엔 잊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어.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매일매일 고민이 바뀌기도 했어. 모두 꽤나 진지한 근심거리였는데 말이지.
어떤 고민거리는 사람을 성장하게도 해. 어쩌면 하루하루의 과제를 해결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어. 혹시 나중에라도 준이에게 어떤 답변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란 책을 다시 읽었어. 사람들의 고민에 답변을 해주는 책이거든. 처음엔 원래 잡화점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답을 해주고, 시간이 흘러서는 그곳에 우연히 들어오게 된 도둑인 세 친구들이 이어 상담 편지에 답장을 해주게 돼. 그런데 참 신기하지. 답을 해주는 사람도 자신들의 답이 맞을지 고민하고, 자신의 답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심하게 돼. 타인의 근심을 진지하게 걱정하고 응원하게 된 것이겠지.
사실 축구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고민은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바람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테니 즐기라는 말을 해주고도 싶었어.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이 고모에겐 긍정적으로 느껴졌거든. 그런데 막상 그런 답변 만을 하기엔 그것이 실천으로 옮기기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 너무 쉽게 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기더라.
이 책에도 뮤지션을 꿈꾸는 한 청년이 등장해. 상황이 꽤나 복잡하지. 가업을 이어받느냐 꿈에 계속 도전할 것이냐 하는 아주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거든. 거기다 생계를 이어간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니 그런 이에게도 그냥 즐겨, 라고 쉽게 말할 수 없겠지. 세 친구들은 처음엔 배부른 소리하지 말고 가업을 이어받으라고 말했다가 그가 작곡한 곡이 나중에 큰 울림을 주는 명곡으로 남게 된다는 걸 알게 되고 계속 그 길을 이어가라고 말해줘. 준이라면 어떤 답을 해주고 싶니.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는데 고민을 말해주어 고마워. 문득 질문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새해가 시작되기 전이었으니 새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축구가 잘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분명 고모는 기쁘게 무엇이 잘하고 싶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라고. 그러니 마음껏 즐기라고 응원해주었을 거야.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가 시작됐어. 이 짧은 글이 준이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준아 고민은 늘 따라다니게 될 거야. 그러니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어. 준이 너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순간에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해. 책 속에서 방향을 잃었던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일어서는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걸 꼭 잊지 말자.
주인공 와토 형사에게는 기묘한 슈퍼파워가 있으니,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추리력이 높아진다는 것. 설정도 당황스럽지만 와토가 겪는 사건들 역시 뭐 이런 사건이 다 있나 싶게 황당한 내용들이다. 가볍게 킥킥거리면서 읽기 좋다.
그림 그 자체가 추리의 도구가 되는데 방법이 정말 신선하다. 그리고 으스스하다. 그림도, 이야기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에 뿌린 떡밥들을 다 깔끔하게 회수한다. 작가는 복면을 쓰고 활동하는 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유튜버라고.
문학동네시인선 144 (240101~240105)
❝ 별점: ★★★★
❝ 한줄평: 2024년의 마지막에 꼭 남았으면 하는 두 단어, 희망과 사랑
❝ 키워드: 희망 | 사랑 | 운명 | 영원 | 인간 | 신
❝ 추천: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들이 궁금한 사람
✦ 시집 제목처럼 2024년에는 더 많은 희망을 품고, 더 많은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싶어 선택한 2024년의 첫 책. ‘바보가 되는 걸 두려워하면 바보가 된다면, 그러면 희망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희망이 될까’(「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 p.28)라는 물음. 겁이 없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에게 그런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 ‘내가 사랑하는 만큼 저녁이 찾아온다면 / 매일 환하게 불타는 흰 밤’일 것이고, ‘내가 사랑을 배우려고 한다면 네가 있다는 것을 배우느라 / 사랑이 무엇인지 알 틈도 없’(「당신은 사랑을 하는군요」, p.72)을 거라는 화자. 대체 얼마나 엄청난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걸까?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해지고 겁이 없어지는 걸까? ‘세상은 아름다워야지’(「여름을 보호하기」, p.41)라는 말처럼, 그런 사랑의 마음을 품으면 세상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증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시집. [📝 24/01/05]
(*문학동네 우필사 특별반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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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나는 아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싶다
2020년 여름
김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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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은 매일이 없게 매일 타오르는 불
시간을 모를 것 같다
저렇게 먼데도 그늘 밖으로 손을 내밀면 이렇게 뜨겁다
영원을 사는 종족은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도 모를 것이다
신은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 「사랑하는 신」 (p.17)
❝
바보가 되는 걸 두려워하면 바보가 된다
그러면 말이다 희망아,
희망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희망이 될까
/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 (p.28)
❝
신에게 물었다
인간은 무엇이냐고
신이 답했다
네가 무슨 꿈을 꾸느냐고
/ 「세라핀의 흰 물감—해변에서 잠들기」 (p.61)
❝
내가 사랑을 배우려고 한다면 네가 있다는 것을 배우느라
사랑이 무엇인지 알 틈도 없겠지
/ 「당신은 사랑을 하는군요」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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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 「사랑하는 신」 ⛤
✎ 「엽서를 봉투에 담는 사람의 마음」
✎ 「세라핀의 꽃, 꽃의 세라핀」
✎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 ⛤
2부 | 우리는 밤에 싸우는지 밤과 싸우는지
✎ 「여름을 보호하기」 ⛤
✎ 「좋은 말 좋은 꿈」
✎ 「세라핀의 흰 물감—해변에서 잠들기」
3부 |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
✎ 「귤 까기」 ⛤
✎ 「당신은 사랑을 하는군요」 ⛤
✎ 「신의 잠」
✎ 「불」
✎ 「피고용인 잭이 마침표로 읽을 문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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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년 (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은 계묘년이긴 해요. 육십간지는 음력이니까요.
청룡의 해 24년을 맞아 푸른 용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조금(?) 어려웠습니다.
검은 고양이, 흑묘 사진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볼게요.
23년도 그믐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현대문학 (231227~231230)
❝ 별점: ★★★★☆
❝ 한줄평: 악(惡)은 무엇이고, 악인은 누구인가
❝ 키워드: 죄 | 살인 | 사형수 | 호기심 | 이야기 | 죄인 | 죽음 | 의도 | 본성 | 정상 | 욕망 | 기다림 | 미움 | 그리움
❝ 추천: 악(惡)과 악인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존재를 숨겨야 존재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습니다. ‘쁘리즈락’, 그곳에서 저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여기 말로 ‘유령’이지요. ❞ (p.127)
🌊 첫 문장: 얼음 바다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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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의 마지막 책으로 정용준 작가님의 『유령』을 골라뒀는데,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그와 별개로 책은 정말 좋았지만.
✦ 죄와 벌, 선과 악의 기준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교도소에 있으니까 죄인’(p.25)이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p.33)이라는 교도관 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그는 악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신형철 평론가가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p.39)을 우리 또한 매일 같이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지켜보기만 하는 이도 있지만 비웃고 비난하는 이도있고, 동정하고 연민하는 이도 있다. 속내를 들키지 않았다고 내가 한 생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악(惡)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 474번이 신해준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그에게 동정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으며, 한 사람이 두 존재가 될 수 있다’(p.133)는 474번의 말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상이 완벽하게 이분법으로 나뉘는 곳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도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기에 언제든 두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작품 해설은 재독 후에 읽어보려고 아껴두었다. 이 복잡한 감정을 책을 한 번 읽고 다 써 내려가기엔 아직 나의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겨울 풍경 그 자체인 이 작품. 겨울 하면 이제 정용준 작가님이 떠오를 것 같다. [📝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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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
(…)
잔인한 놈? 살인자? 사이코? 아냐. 아냐. 속을 모르겠는 놈이야. (p.13-14)
| 그는 의도를 품지 않아요. 죽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고 그로 인해 얻는 쾌감도 원치 않아요. 그는 그냥 죽입니다. 그는ㅍ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어요. 따라서 복수도 없고 오해도 없지요. 폭우가, 눈덩이가, 번개가, 곰이, 인간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있나요? 사자는 사슴의 숨통을 끊고서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 용서를 빌지 않아요. 그냥먹을 뿐입니다. 본성이란 그런 것입니다. (p.28)
| 무표정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 윤은 그것을 잘했다. 스스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그것은 선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악한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기다리고 지켜봤다.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p.39)
| 죽게 되겠지요.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사형 당하러 들어온 사람을 사형 시키는 것이······ 뭐, 그 방법밖에 없겠지만 무력하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살인을 저지른 죄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공범같이 말이죠. 죄를 짓고 그에 합당한 벌을 집행하는 게 법과 교도소의 존재 이유라면 이유일 텐데 이 경우엔 모두가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돕는 셈이죠. 뭔가 속고 있는 것 같아요. (p.93)
| 부서졌던 시간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일그러진 그림. 기괴하게 조립된 얼굴. 한쪽은 웃고 있고 한쪽은 울고 있습니다. 떠나가고 버려지고, 두 가지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고 싶고 죽이고 싶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누나와 엄마. 오피스와 무미야. 한 사람이 두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이젠 이 혼란을 멈추고 싶습니다. 담당님. 이해하시겠습니까?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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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리,
많이 고생했으니까요~
그런만큼 올해는 더!
Happy,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