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몰락’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유권자는 무책임한 선택을 하고, 전문가들은 대중과 언쟁을 피하며 자기들 집단의 사적 이익만 꾀할 것이기에 포퓰리즘과 기술관료주의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 나는 무척 동의하며 읽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수학 모델이 인간과 세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 우린 수학 모델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단편 「데이터 시대의 사랑」을 쓸 때 참고했다.
요즘 한국 문학에서는 이른바 문단문학과 장르소설의 오랜 골을 메우려는 실험들이 한창이다. ‘이쪽저쪽 작가들이 한데 모이면 물질과 반물질이 합쳐지는 듯한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작은따옴표 안의 비유는 내가 아니라 미국 소설가 마이클 셰이본의 표현이다. 752쪽짜리 소설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의 제작 후기에 실려 있다.
셰이본은 퓰리처상, 휴고상, 네뷸러상을 모두 수상하며 문단과 장르소설계 양쪽에서 인정받은 희귀한 존재다. ‘지루한 순문학 대 가벼운 대중소설’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가는 거기에 어지간히 짜증이 났나 보다. 대담하고 독창적인 편집으로 2000년대 초 미국 문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독립출판사 맥스위니스의 편집장과 저녁을 먹다가 셰이본은 그런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문예지를 만든다면 양쪽 대세 작가들을 모아서 이렇게 저렇게 할 거야” 라면서. 그러자 편집장 왈, “그냥 우리 잡지 한 호를 네가 만들어.”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다. 셰이본은 스티븐 킹, 닉 혼비, 닐 게이먼, 마이클 크라이튼 등 설명이 필요 없는 소설가 20명을 모았고, 그들에게 ‘오싹한 이야기’를 주문했다. 장르는 자유. 결과물은 흔한 마케팅 용어가 되어 버린 ‘융합’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게 해준다. 어느 소설집에 실려도 좋았을 수작들 가운데 릭 무디의 「앨버틴 노트」처럼 이런 기획 덕분에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댄 숀의 「벌」이 가장 섬뜩했다. 이렇게 전에 몰랐던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도 이런 기획 앤솔로지에서 얻는 즐거움의 하나렷다.
콘셉트뿐 아니라 표지와 본문의 디자인까지 통통 튀는 책인데, 국내 번역서도 그런 요소들을 충실히 반영하려 애썼다. 책을 편집한 이수은 현 스윙밴드 출판사 대표는 “1950~1960년대 가판대 잡지 느낌을 추구한 원서의 레이아웃과 삽화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 자신이 맥스위니스 출판사의 오랜 ‘덕후’여서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렇게까지 라는 경이로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마음이 혼재될 때가 제일 많은데 이 책도 읽으면서 이러한 두 가지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이상한 그림>이라는 제목은 정말이지 끌리지 않아서 혼비 작가님의 추천이 없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앞으로 제목으로만 (사실 '우케쓰'라는 이름인지 성인지 모르겠는 작가 이름도 좀...) 판단하지 말자.
추리소설 많이 읽어서 이젠 좀 심드렁한데, 싶은 사람들에게도 강추!
책을 많이 읽는 이들도 의외로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인 인세를 모르는 분들이 많다. 실은 나도 그랬다. 보통 10%가 국내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인세율. 책값이 1만5천원인 경우 한 권 팔리면 작가에게는 1천5백원이 가게 된다.
이렇게 10%가 인세 국룰인 출판계에 11%를 외치며 시작한 당찬 출판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도서출판 11프로’ 출판사 이름부터 11프로 라고 짓고 시작했다니 이들의 진심 과연 알 만 하다.
인세율 이외에도 출간 도서에 홀로그램 인증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모든 책을 넘버링해서 몇 번째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도서출판 11%의 편집왕, 임홍택 작가님께서 신간 <2000년생이 온다>를 보내주신다며 [지식공동체 그믐]에 의미가 있는 숫자를 알려달라 했다. 그 번호가 붙은 책을 따로 빼서 출간 후 전달주신다고. 그래서 그믐의 시그니처 넘버 29를 말씀드리며 아무래도 29는 너무 앞 번에 위치한 숫자이니 그냥 29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929도 좋고 329도 좋고 다 좋다고 했는데 덜컥 정말 29번째 책 을 보내주셨다.
감사합니다. 도서출판11%의 힘찬 시작 응원합니다.
「작별 인사」는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먼 미래일 듯한 시기에 인간과 휴머노이드(인간과 아주 많이 닮은 로봇)와 클론(생체 이식을 위해 태어난 복제인간들)이 뒤엉킨 세계에서 인류의 멸망을 전제로 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공상 과학소설이다. 그렇지만 김영하 작가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고전 철학의 화두가 만나서 인간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이렇게 끊임없이 묻고 있기 때문에 미래 소설이지만 미래지향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흐름으로 보자면 고전 지향적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팔, 다리, 심장이나 페 심지어 뇌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장편으로써는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구 년 만에 작품이라는데 이왕이면 긍정적인 세상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호모사피엔스 인류의 멸망을 전제로 휴머노이드 인류로의 진화(?)를 예견하는 내용이라 읽고 나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AI가 만연한 미래를 상상하며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책인 것은 확실히 맞다. 인구는 줄어드는 게 확실한데 이민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라면 우리는 점점 더 로봇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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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팔고 수리하는 일 외에 알리바이를 깨주고 찾아주는 서비스도 유료로 제공하는 당황스러운 시계방. 선대 점주인 할아버지로부터 알리바이 깨는 방법을 전수받았다는 젊은 여성 점주. 그리고 풀리지 않는 사건을 매번 이 시계방에 들고 와 해답을 듣고 가는 형사. 가볍게 읽을 만하다.
작가 이름만 믿고 읽었는데 학원 미스터리물인 ‘소시민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이라고 한다. 소시민이 되는 게 목표인 남녀 고교생 콤비가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소시민 시리즈를 계속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