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냉면을 참 좋아해요.
함흥식 냉면도 좋아하고.
평양식 냉면도 좋아합니다.
전라식의 예쁜 고명이 올라간 냉면도 좋아해요.
진정한 냉면 러버는 물냉을 먹어야 한다고 친구가 간혹 물냉 부심을 부리지만,
돼지갈비에 싸 먹는 매콤한 함흥 냉면이 얼마나 맛있다구요.
21년 3월 안전가옥에서 냉면을 주제로 한, 총 다섯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엔솔로지가 나왔습니다.
일반문학이였지만 말랑한 이야기가 좋았던 김유리 작가님의 [A,B,C,A,A,A]
다 읽고 나니 중화냉면이 먹고 싶어지게 된 범유진 작가님의 [혼종의 중화냉면]
그런 걸로 만든 육수라니 너무 무섭습니다만, 뭐로 만든건지 모르고 한 번쯤은?
먹어봐도? 싶었던 dcdc 작가님의 [남극낭만담]
읽는 내내 아 설마?싶었고 오싹했던 전건우 작가님의 [목련면옥]
아무리 내가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해도 냉면은 좀;;; 했던 곽재식 작가님의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야기 하나 하나가 냉면 러버에게는 즐거웠던 책이였습니다.
한겨울, 소면 한 웅큼 삶아 찬물에 착착 헹궈내고 채반에 탁탁 털어 물기를 빼어
그릇에 담은 뒤 살얼음 동동 얼은 뽀얀 동치미 국물 세 국자 아니 네 국자.
동치미 무우도 건져 종종 썰어 올려 먹던 한겨울의 그리운 맛.
동미치 물국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冷麵
이 책의 原題(원제)는 The Pursuit of Power; Europe1815~1914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 리차드 에반스는 아주 저명한 독일사 연구자이며 1947년생으로 지금까지 18권의 책을 쓰고 역사연구에 대한 공로로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거의 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내용이지만 워낙 다양한 주제와 사건을 언급하고 있어 때로 일정 부분은 너무 성글게 묘사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시기 100년은 유럽의 ‘근대’라는 개념에 정확하게 딱 들어 맞는 역사적 시간이 분명하고 그 만큼 이 시기를 압축적으로 개관하기에는 대단히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21세기 현재 시점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단절적 시공간과 기묘하게 접착되어 있다는 느낌은 ‘그래도 다행이야’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나폴레옹 몰락부터 세계1차 대전까지의 시기는 유럽에서 대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로 평가한다.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이후 유럽 諸國(제국)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적 변동을 막고 국제적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를 중심으로 ‘비엔나 회의Viena Congress’를 갖는다. 이 비엔나 회의는 유럽 諸國(제국) 지배계급들의 일종의 반동적 연대라고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8년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1789년 혁명’과 달리 확실히 프랑스 국경을 넘어 전유럽으로 확산이 된다. 이때 메테르니히도 영국으로 망명 하게 된다. 이것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켜 ‘민주화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된다면 급진적 변화 대신 점진적 민주화가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도 썼기 때문인지 특히 7장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사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했다. 여성의 참정권이 유럽에서 일반화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사건이다. 여성의 참정권은 이 점진적 변화의 대표적 예인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계급적 각성만큼이나 민족주의적 각성도 촉발시키는 사건이었다. 전유럽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낭만적 혁명적 에너지를 분출시키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민족주의가 유럽의 평화를 깨고 세계 전쟁으로 확산되는 인화성 강한 매우 폭발적인 연료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뽕’이라고도 표현되는 과도한 민족주의의 ‘전형’은 이 시기에 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이 시기에 유럽에서 산업 혁명이라고 하는 또 다른 맥락의 대사건이 일어난다. 18세기 증기기관과 같은 기계적 측면에서의 혁신을 1차 산업 혁명이라 한다면 19세기 후반의 과학을 기반으로 한 산업혁명을 2차 산업혁명이라고 규정한다. 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허버트 스펜서 같은 이에 의해서 사회진화론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이 시기 중산층을 비롯 서유럽의 백인들은 인종적 우월감에 도취 되어 그 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산업혁명과 민족주의는 일종의 시너지를 가지면서 제국주의 식민지 확보 경쟁에 나서게 된다. ‘제국주의imperialism’이라는 단어는 1870년대에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식민지 경쟁에 참여하는 유럽 국가들의 인민은 이 ‘제국주의’라는 표현으로부터 차오르는 국뽕에 모두가 탐닉하고 있었다. 이 시기 서유럽 백인 국가들은 세계사(다른 말로 세계 지배)의 정점에 서게 된다.
한편, 대서양 양안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이것은 다시 아프리카 내륙이라는 음지로 숨어들며 연명하게 된다. 산업혁명을 통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된 서유럽 국가들은 더욱 거침없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 경쟁을 가속화시키며 아프리카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노예노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이윤을 극대화 시킨다. 흑인 노예는 아프리카 사회 자체의 구조적 문제라 21세기에도 단절되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보면 미국 흑인들의 운명이 가장 은혜로운 실존조건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독일 통일로 인해서 ‘독일’이라는 신흥 강국의 출현이라는 한 요소와 오스트리아, 오스만 투르크와 같은 구제국의 몰락으로 인한 지정학적 힘의 공백이라는 또 다른 요소 때문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약화로 발칸반도가 무주공산이 되면서 비엔나 체제 이래의 현상 유지status quo 국제질서가 깨지게 되는 것이다.
1895년 청일 전쟁은 유럽 열강들에게 ‘드디어’, ‘마침내’ “중국”이라는 만찬을 해치울 시기가 무르 익었음을 나타내는 시그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화단의 난(1905)’은 중국을 삼키고 소화시킬 수 없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이 시기는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 국가가 중심국가로 떠오르는 역사적 변곡점이기도 했다.(에도막부가 도쿄에 열리는 시기는 이미 생산력에서 한반도를 크게 앞서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재화시키고 그것이 사회발전의 동력을 더욱 가속화시킨 것이 제국주의 전쟁으로서의 1차 세계대전이라는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등치시킬 수 있는 개념이라고 확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 중국의 굴기는 19세기 독일통일에 비견할 수 있는 것처럼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의 진원지처럼 비춰진다. 그래서, 이것이 역사적 데자뷰가 아닌지 모두 경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독일의 국가자본주의와 너무나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침달 (240113~240123)
❝ 별점: ★★★★★
❝ 한줄평: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에 관해 말하는 책
❝ 키워드: 공연예술 | 시간 | 소멸 | 기억 | 공허 | 슬픔 | 아름다움 | 사랑 | 고유함 | 사라짐 | 흔적 | 사람
❝ 추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
/ 「봄의 제전」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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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흥미롭고 공연예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예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었다.
✦ 문학을 공부하며 희곡 수업은 거의 다 들었고 연극들을 많이 보러 다녔다.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므로 희곡 자체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완성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연극을 보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텍스트를 읽을 때 상상만 하던 것들이 무대에서 구현되는 것은 마법 같았다. 상연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져 버리는 마법. 그때 본 연극들의 감상을 제대로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 순간일지라도 기록해 두었다면 조금은 잡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 작가도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발생과 동시에 소멸하며 남는 것은 기억뿐인데 그마저도 금세 바스라진다’(「뒤늦게 쓰인 비평」, p.5-6)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라지기에 실체가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보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솔렌과 장 끌로드 아저씨와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솔렌」, p.40)이어서 그 일을 좋아한다는 솔렌과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공연 티켓을 건네주는 것으로 작가에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선물’한(「장 끌로드 아저씨」, p.150) 장 끌로드 아저씨. 이들이 사라지는 것들의 슬픔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 기대한 것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글들이어서 참 좋았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김동현 선생님께」, p.67)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 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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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김동현 선생님께」 (p.67)
| 돈 지오반니가 내게 외치고 간 말은 분명 삶을 끝까지 노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명령을 계속 울라는 말로 치환할수 있다면. 그제서야 나는 그 무거운 지속을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꽁띠뉴에. 나는 사라지지만 당신들은 울음을 계속우세요. 나와 당신들이 외면하지 않은 세계의 아픔에 대해.
/ 「꽁띠뉴에」 (p.88)
| 아저씨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 그것이 단순한 선의 이상의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준 사람. 그는 내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주었다. 고통을 다루더라도 화해가 이루어지는세계. 때로 비참한 결말일지라도 죽음 직전엔 반드시 고결한 노래가 흐르는 세계. 연극에서와 달리 오필리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직접 다뤄지는. 우리가 몰랐던 말, 현실에 없었던 말, 영영 못 들을 말이 전해지는 세계. 나는 떠나지만 당신을 영원히 사랑했을 것이라는,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나는 장 끌로드 아저씨에게 오페라를 빚졌다.
/ 「장 끌로드 아저씨」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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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4권. 이 시리즈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싸움 잘 하고 영리한 백수 청년의 유쾌한 뒷골목 모험담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나이였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러기 어렵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30대 후반부터 썼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3권. 읽는 내내 정말 이케부쿠로에 가면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인지 궁금했다. 특히 레이브 파티 문화 같은 것. 세 번째로 수록된 「황록색 하느님」을 읽을 때만 해도 지역 화폐라는 개념을 잘 몰랐는데,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다.
익숙한 자기 개발서인데 접근이 남다르다. 어떻게하면 최대치로 돈을 벌 것인가가 아니라 벌어놓은 돈을 남김 없이 깔끔하게 사용하고 사망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그믐에서 책에 이어 영화까지 주제 카테고리에 추가하였습니다.
그간 진행된 무비클럽에서 인생영화도 내 프로필에 넣고 싶다는 회원들의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 뿐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까지 ‘내 서재’의 책장에 담으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영화를 주제로도 모임을 만드실 수 있고 블로그 글을 쓰실 수 있어요.
우리가 사라지면 어둠이 찾아온다!
저는 또 새로운 소식으로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
울적할 때 좋은 책들은 큰 위안이다. 그리고 허전하고 집중력도 떨어질 때, 제일 편안하고 즐거운 건 먹는 얘기다. 번역이 나온지가 십 년이 넘어가는 책이지만, 각종 소소한 이야기거리를 즐기면서 세상에 내가 모르는 어떤 맛난 게 또 있나 눈을 좀 번뜩여보기 적절했다.
나이 드니 별 이상한 데서 찡해질 때가 많은데, 벌써 역자의 말에서 찡하고 - 한국의 빵 과자 전래 역사에 비해 역사서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제과업계에 몸담은 기술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이야기 - 기술은 커녕 뭐 제대로 의사소통은 되었겠나 싶은 옛날에 긴 교배를 통해 7쌍 염색체의 밀을 21쌍 염색체로 탄생시킨 이야기나 - 얼마나 배고프고 필사적이었겠는가 - 사과가 몸에 좋다는 말 한 마디 하는데 시대와 맞서는 용기가 필효했다는 것에 또 찡...밥줄 걸리면 체면이고 자시고 없는 건 시대를 초월한다는 게 좀 슬픈 대목도 있고, 이 책 보기 전에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부세 아 라 렌느도 참으로 먹어보고 싶고...갑갑한 마음을 좀 샤워도 시켜주면서 이것저것 알려준 즐거운 책이었다.
요새 아마추어 콩쿨을 또 준비하기에; 피아노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salon de piano라고 렉쳐콘서트가 있는 kbs 📻 방송이다. 마침 그날의 주제가 친구여서 출연진의 친구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따금씩 연락이 왔었지만 최근엔 거의 연락하지 않은 친구의 부고를 접했다. 연락처 바뀌었을 때 알려주지 않은 적도 있었어서 몇 년 안 본 적도 있었지만 공부만 파던 중학교 때 담임이 지정해주어 짝으로 앉았던 삼십년 친구가 어제 갔다. 야, 우리가 돌도 씹어먹을 나이는 아니어도 그리 일찍 갈 나이도 아니지 않아? 바보 멍충이.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2권. 마시마 마코토에게 이번에도 조금 이상하고 조금 귀엽고 조금 무섭기도 한 의뢰들이 온다. 이시다 이라는 “돈 버는 게 가장 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보다. 부럽다. 알라딘에서 이 책 검색하면 을유세계문학전집 『그라알 이야기』 표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