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를 어떻게 연구한담;;
& 기타등등
ㅡ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발적으로 음악시험 보러가고 있던 중년 1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2023년 출판계의 어느 지점은 '세이노의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세이노의 아류작이 기획되었고 부동산 카페에서 활동한다는 꼬몽디라는 작가의 블로깅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으르신의 술자리에서 들을 법한 자본주의에 관한 음모론과 개똥철학이 두서 없이 묶여있다.
마음산책 (240124~240126)
❝ 별점: ★★★★★
❝ 한줄평: 짧은 소설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니
❝ 키워드: 멍과 돌 | 꿈과 현실 | 부서진 것과 낡은 것 | 죽은 자와 산 자 | 친구와 살인자 | 장난과 죗값 | 기억과 망각 | 기다림과 떠남 | 주객전도와 평온 | 익숙함과 외로움
❝ 추천: 부담스럽지 않은 짧은 분량의 소설부터 읽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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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산책에는 ‘짧은 소설’ 시리즈가 있다. 지금까지 18권의 짧은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그중 가장 최근에 나온 정용준 작가님의 짧은 소설 『저스트 키딩』을 읽어보았다. 모두 13편의 짧은 소설을 중간중간 들어간 일러스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읽기 전에는 ‘짧으면 얼마나 짧겠어’ 했는데 한 편이 생각보다 정말 짧긴 하다. 그럼에도 한 편 한 편이 완결성 있고 여운도 있어서 ‘짧은 소설도 이렇게 완벽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세신사 신 씨와 소년 사이의 비밀이 담긴 「돌멩이」, 실패를 흉내 내고 있어 ‘시간 도둑’이라는 말이 씁쓸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인물이 나오는 「시간 도둑」, 누군가에겐 친구지만 누군가에겐 살인자일 수 있는 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 나오는 「친구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가 뒤얽힌 기억으로 고통받는 노인의 이야기 「당나귀 노인」, 같은 상황에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두 남자」,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종이들」, 그 어떤 상상보다도 끔찍한 현실에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는 「해피 엔딩」,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뮤트」까지. 밑에 특히 좋았던 짧은 소설 리스트엔 포함하지 못했지만 모든 단편들이 정말 좋았다.
✦ 보통 작가의 단편을 읽고 괜찮으면 장편을 읽는 편이라서 『내가 말하고 있잖아』(이것도 내 기준에는 장편은 아닌데,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긴 하다)를 제외하곤 아직 장편을 읽지 않았는데 정용준의 ‘장편’은 어떨지 너무 기대된다. 『프롬 토니오』가 제일 궁금해서 아마 이 책부터 읽을 듯!
✦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다가 「겨울 산」의 첫 문장 낭독을 듣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겨울 산」은 작가님의 중편소설 『유령』이나 『겨울 간식집』에 실린 단편 「겨울 기도」처럼 앞으로 겨울이 다가올 때쯤 의식처럼 꺼내 읽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북토크에서 작가님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겨울을 싫어하는 나도 이번 겨울은 그다지 싫거나 힘들지만은 않았다. 어떤 계절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을 만나고 간직하는 건, 그래서 그 계절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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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좋았던 짧은 소설
✎ 「너무 아름다운 날」
: ‘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 현실과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 당신의 선택은?
| “ (…) 때문에 나는 그가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후회와 어리석음은 인간의 영원한 양식이니까요.”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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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운 펜션」
: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곳
| “죽어도 끝나는 거 없어. 사라지는 것도 없고. 나도 안 사라져.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어디도 갈 수 없더라고. 형이 나 생각하면 나는 형 옆에 계속 있게 되는 거야. 몸 없이 사는 거. 영혼이 되는 거. 자유로운 거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형. 내 생각 좀 그만해. 아니, 하더라도 다른 생각 좀 해. 좋았던 것들도 있잖아.”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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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스트 키딩」
: 저스트 키딩, 장난일 뿐이라고? 억울하다고? 죗값을 치렀다고?
| “죗값. 당신이 지은 죄는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닙니다. 형량은 그렇게 나왔겠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그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됐거든요. (...)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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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바다」
: 먼바다로 떠난 이들을 기다리다 찾아 나서는 길
| 저는 세상의 모든 바다를 갈 수 있어요. 바다로 향하는 모든 톨게이트를 알고 있지요. 이 톨게이트를 지나 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이 세상은 저 세상으로 변한답니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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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산」 ⛤
: 끝나지 않는 겨울에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지 말 것
| 바닥에 놓인 세 개의 물방울들. 영원은 그것들을 돌멩이처럼 버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해요. 거품처럼 작고 얼음처럼 반짝이며 물처럼 투명한 아이들이 너무 아름다웠던 거예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내리는 나의 눈송이들. 영원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어요.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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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건 너무 몰두하면, 상식을 넘어가는 걸 본인만 모르는 상태가 종종 생긴다. 책도 예외는 아니고, 시대를 아우르는 책덕들의 광기를 훌륭하게 다룬 젠틀 매드니스같은 책도 있다. 그리고 나만 뒤늦게 알았구나 싶은, 백 년도 더 전의 책덕들의 상황을 그 시대의 눈으로 쓴 바로 이 책, 애서광들이 있다.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읽으면서 애매하지만, 어느 이야기든 백 퍼센트 소설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으니 부분적으로는 저 광기가 뭔지 좀 감이 잡히기 때문(...).
나름 진지하게, 지금은 도저히 불가능한 서간을 통한 연애 이야기가 나오는 초반에는 '시대의 낭만이구만...' 하다가, 그 뒤부터 점점 웃어야할지 한숨을 쉬어야할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책을 갖겠다는 일념에 면식도 없는 이랑 결혼하려고 하지 않나, 뭔 관심법(...) 개발해서 헌책방 주인한테 써먹고, 겁내 비싼 사설 음서 도서관에 영혼을 바치고...
웃기는 부분들 빼고서라도, 미래의 도서 상황에 대해 책덕들이 모여 상상하는 챕터는 따로 빼서 많은 이들이 보면 즐겁겠다 싶다. 소리와 영상이 발달하면서 책 시장이 언젠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대목들은 크게 보면 꽤 적중한 부분이기도 하고. 단지, 책이 소멸할 거라는 슬픈 예상은 다행히도 아직 실행되지 않았으며, 책이 소멸하면 어리석은 주장이나 무가치한 정보를 접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긍정적인 예상은 전혀 일어날 일이 없을 듯 하다만.
즐거운 독서 뒤, 그래도 난 저지경은 아니라고 정말 자신있게 말하려면 올해는 정말 책들을 정리해야겠다. 이게 방인지 헌책방 뒤 창고인지 모를 마당에 내가 선현(...)들을 평가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지 하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6권이자 한국에 번역된 책으로는 마지막 권이다. 일본에서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고 외전까지 나온 시리즈라 딱히 뭔가 마무리되는 느낌은 없다. 배용준과 한류가 인기를 끌 무렵이었는지, 욘사마와 한국 드라마가 언급된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5권. 일본에서는 그렇게 성공한 이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약간 떨떠름한 기분이 된다. 특정 시기의 일본 사회 분위기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내용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자연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같은 명제도 의심하게 된다.
20여년을 에디터로 성장한 저자의 편집론. 직업이라는 게 누군가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업을 정의내리기가 모호할 때가 많다.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기 위한 저자의 흔적이 담겨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