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로운 일상들에 대해서 자신의 꾸밈없는 그대로의 생각들을 쓴 글이라 오래전에 살았던 소로우인데도 읽을때마다 친한 친구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이 특별히 좋다
- 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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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늦게까지 마을에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올 때는, 특히 깜깜하 고 폭풍이라도 불 것 같은 밤에 환하게 불이 켜진 어느 집 사랑방이 나 강연장을 뒤로 하여 호밀이나 옥수수 가루 한 부대를 어깨에 메 고 숲 속에 있는 나의 아늑한 항구를 향해 떠나올 때는 기분이 그처 럼 상쾌할 수가 없었다.
동아일보 〈내가 만난 명문장〉 코너에 글을 실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128/123270273/1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때까지의 세계사는 바로 이것에 불과한 거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악령’ 중
스물두 살에 이 문장을 접했다. 이철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번역한 범우사판 ‘악령’ 하권에서였다. 이후 25년 넘게 이 두 문장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열린책들판에서 박혜경 한림대 교수는 같은 대목을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고안해 낸 것뿐이지. 지금까지 전 세계 역사가 그랬어’라고 옮겼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이 대사는 키릴로프라는 인물이 한다. 그는 무신론자이자 허무주의자로, 객기나 냉소가 아니라 진지한 고찰 끝에 저렇게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같은 사상을 지닌 인물을 몇 명 더 창조했는데,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이반 카라마조프 등이다. 그중에서도 ‘악령’의 키릴로프는 자기 신념을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자신에게 자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무서운 결론을 내리고 그걸 실천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을 반박하기 위해 창조한 캐릭터가 후대의 무신론자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어 알베르 카뮈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는 한 챕터의 제목이 ‘키릴로프’다. 카뮈가 이 책 전체에서 다루는 문제도 바로 키릴로프가 매달렸던 그 질문이다. 인간은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 신 외에 어떤 다른 대답을 댈 수 있는가?
나는 나대로 거기에 답해보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막연하다. 저 두 문장에서 시작한 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살 이유가 없다며 연쇄 자살을 벌이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나, 신 대신 다른 윤리의 기반을 발명하려는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 아마 앞으로도 몇 편 더 쓰게 될 것 같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 없이 살 수 있는 삶이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동시에, 그 노력이 불러일으키는 긴장 상태가 일종의 축복이라는 생각도 한다.
주인공은 고서적 사냥꾼이고 악마숭배주의자들의 음모가 나오고 분위기는 『장미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데 200만 명이 읽은 베스트셀러이고,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읽지 않을 도리가 있나. 그런데 결말이……. 이 책 때문에 『단테 클럽』에 손이 안 간다.
무게는 1킬로그램에 가깝고 마르크스의 얼굴이 표지에 크게 그려져 있는 책인데 너무 안 읽혀서 오래 들고 다녔더니 주 변 사람들이 모두 내용을 궁금해 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복수를 했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직 자본주의가 충분히 썩지 않았대” 하는 식으로 답하곤 했다. 저자가 정치인인 걸 일찍 알았더라면 금방 내려놨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