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하게도 나는 한국 근현대 문학가들과 그 작품에 좀 어둡다. 일단은 학생 시절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나, 독서감상문 과제로 주어진 작품들이 꽤나 갑갑해서 - 쓰여진 상황을 생각하면 지극당연하다 - 그 이후로는 기회가 되면 약간 들춰보는 수준이었고, 작가들에 대한 이미지도 그 시절에 희미하게 형성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고, 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썼던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절절한 충격으로 다가온, 아이의 죽음에 바치는 이광수의 '봉아의 추억' - 이런 감정에는 동서고금이 관계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 부터, 제반사정으로 부모의 친밀함도 느끼지 못하고 엄마까지 잃은 딸들에게 보내는 김동인의 고백같은 편지, 사랑따라 집 나간 동생에게 나는 언제라도 네 편이라고 전하는 이상의 편지, 힘든 시기에도 삶의 낙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박봉자의 오빠가 보내는 격려...
그렇다고 모든 편지가 다 개인적으로 절절한 것도 아니긴 하다. 뒷편에 가득 실린 춘성 노자영의 연애편지들은 이 시대의 세파에 찌든 독자랑은 좀 거리가 있다. 사실 더 민망하게도 노자영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 검색하니 그 시대에는 거의 90년대 마광수급의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작품도 꽤나 많은데, 나는 어찌하여 전혀 몰랐던가 싶다. 모르는 것이 참 많기도 하다...
마지막에는 계용묵 선생의 편지 쓰는 요령도 들어있어서, 글을 쓸 때 존경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다.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툭하면 중요한 것들을 잊는 나에게는 감사한 글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책, 즐거운 독서였다.
문학동네시인선 200 (240208~240212)
❝ 별점: ★★★★☆
❝ 한줄평: 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가 줄 50명의 시인
❝ 키워드: 시 | 시인 | 의미 | 생각 | 신작시
❝ 추천: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50개의 답변이 궁금한 사람
❝ 언어로 이루어진 탈것 — 쓰는 자와 읽는 자를 생각의 외계로 데려간다. ❞
/ 시란 무엇인가 — 이혜미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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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50명의 시인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김연덕, 유형진, 이영주, 이승희, 이혜미, 전욱진 시인의 답이 좋았다!
✦ 제일 좋았던 시는 안희연 시인의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 이승희 시인의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혜미 시인의 「얼음잠—ASLSP」! 이 세 편은 전문을 필사할 만큼 정말 좋았다. 사실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많이 발견해 필사도 엄청 많이 했는데 사진 열 장밖에 못 올리는 게 아쉬울 정도 🥹
✦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시인을 많이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시 싫어 인간이 시 사랑 인간이 되다니.... 참 신기한일이다. 이 시집에서도 다들 내키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었다가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씩 건져가시길 🥰[📝 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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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고선경, 「파르코 백화점이 보이는 시부야 카페에서」 ⛤
✎ 김연덕, 「사랑을 초청하고 밤낮으로 살펴」 ⛤
✎ 김이듬, 「후배에게」
✎ 류휘석, 「도량의 빛 다량의 물」
✎ 박형준, 「밤의 소리」
✎ 안도현, 「물음과 무덤」
✎ 안희연,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 ⛤
✎ 이승희,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 ⛤
✎ 이은규, 「밤의 대관람차」
✎ 이혜미, 「얼음잠—ASLSP」 ⛤⛤
✎ 임유영,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
✎ 전욱진, 「기억극장」
✎ 정다연, 「부재중 전화」
✎ 조혜은, 「손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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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기사에서 '가족, 학생, 공부'의 균형을 맞추는걸 중시한다는 김승섭교수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아마 올해의 책? 또는 저자라는 주제였을거다. 학자이기때문에 공부가 중요하고, 당연히 가족도 중요하고, 또 교수이기때문에 학생이 중요할테지만 그 기본을 지키며 사는게 늘 어려운 것이 세상이고 인생이니까, 가장 중요한 세가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한줄이 와닿았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기본을 지키고 균형을 맞추는 것을 마음에 새긴 사람이라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나보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그 판단력의 기반이 휴머니즘이라는 감수성을 갖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나온 말을 인용해서 책을 소개하자면 '질병의 원인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사회역학에 관한 책이다.
내가 농담처럼 늘 하는 말이 있다. 아파서 병원가면 의사선생님은 늘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학생이 혹은 직장인이 또는 그 누구라도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냐?라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람이 병이 날 수 있고(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 과다분비 되고 이는 부신피로를....), 우리나라는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라는건 다 안다. 이 책은 그 둘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는,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의문을 던진다.
결국은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그래서 든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에 그 아픔을 지나치지 않고 나눠 지려는 마음. 그 마음이 있기에 아픔을 보아넘기지않고 그 아픔을 예방할 길을 찾고자하는 것이겠지.
애초에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게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피해를 입은 사람들,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아직 한참 미숙하다. 그렇게 피상적으로 알고있었는데, 미숙함을 넘어 비명소리가 날 정도로 야만적이었고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겠지만, 그 야만성을 다 털어버렸다고 자신하기엔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서 더 널리 읽혀야하는 책이 아닌가싶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기록으로 남긴 책. 그걸 읽고 이래서는 안되지라고 깨닫기라도 해야하는게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하기때문이다. 더불어 제목처럼 미래의 피해자들은 부 디 승리하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특정집단의 사람들에게 '~충'이라고 비하하는 말이 천지다.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말도 마찬가지.
이 책은 그런 말이, 행동이, 생각이, 사회 분위기가 왜 위험한지를 설명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인간종들과 달리 협력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에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말이다.
좀 더 과장을 보태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하고 서로 도와야하는 이유는 인간이 정해둔 도덕률이 아니라, 우리 종 자체에 내재된 생존의 기술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생존의 기술이자 본능의 한편엔 외집단으로 여겨지는 무리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성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타자를 외집단으로, 더 나아가 비인간화하지 않도록 서로의 접촉을 늘려야한다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 종은 그렇게 진화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위로가 된다. 도덕과 현실의 괴리때문에 인간존재의 선함에 회의감이 들었다면,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인간종이 어째서 서로에게 다정해야하는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을 참 싫어한다. 내 기준 겨울이라는 계절은 보통 11월에서 4월까지.
의외로 제일 힘든 달은 11월이다. 사람이 살면서 낙담하게 되는 건 단순히 현재의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 만은 아니다. 오늘 힘들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낫고 모레는 내일보다 조금 더 낫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괜찮다.
11월은 반대다. 항상 내일이 오늘보다 더 춥다. 아침 출근길에 뺨에 느껴지는 바람은 하루가 다르다. 그렇게 매일매일 온도가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자각이 어떨 땐 추위 그 자체보다 더 힘들다. 그런 11월에 비까지 내린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건즈앤로지스가 November rain 이라는 노래까지 만들면서 11월의 추위를 저격했겠는가 (아님)
12월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로 그럭저럭 로맨틱한 겨울 분위기가 연출된다. 알록달록 알전구가 예쁘게 장식된 건물들이 멋지고 다양한 송년회 행사에 선물 교환까지. 정신없이 지나간다.
1월부터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다. 교과서적인 겨울이라고나 할까, 춥지만 나름대로의 각오를 다지며 사람들은 자신만의 동굴을 구축하고 버텨낸다. 자격증을 준비하거나 안 해봤던 분야의 공부를 시도하기도 하고. 새해를 맞아 도전과 용맹심으로 추위를 꾸역꾸역 견딘다.
그리고 드디어, 2월! 이제 겨울도 끝인가? 아니, 그럴 리가. 설레며 장만한 새로운 겨울 코트도 지겹다. 실은 검정 롱 패딩으로 교체된 지 오래. 겨울옷들은 전부 다 왜 그렇게 무거울까. 외출 한 번 하고 오면 어깨가 쑤신다. 방구석에서만 있는 것도 하루 이틀. 엉덩이가 들썩 들썩. 지루함에 몸부림친다. 추위와 지겨움의 환상적인 콤보가 사람을 정말 지치게 만든다.
악마의 유혹, 3월. 입춘이다 뭐다 이젠 정말 봄이지. 패딩 벗고 꼬까옷 입으면서 설레발치다 감기 걸린 사람만 우리 모두 주위에서 수십 명 봤다. 이때가 실은 11월 다음으로 힘들다. 봄 신상품은 쏟아져 나오고 봄나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막상 우리 현실은 그냥 조금 덜 추운 겨울이다. (11월보다 기온은 더 낮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다.
4월은 휴...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뉴스 포탈에 '4월 대설'이라고 쳐 보면 알 것이다.
그리하여 2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따뜻한 베트남으로 나는 한달살기(라고 쓰고 도피)를 떠난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
몇 가지 정치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근래 한국 드라마, 영화 가운데 로케이션과 미술, 대사, 연기가 좋다. 4컷 만화 원작의 우연을 필연과 플롯의 드라마로 엮어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흔적이 보임.
윈스턴 처칠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독일 공수부대가 영국의 한적한 해변 마을에 침투한다. 처칠이 그곳을 비밀리에 방문할 거라고 한다. 영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 주인공들이 독일군이고 공수부대장이 매우 현명하며 품위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처칠이 납치당한 적은 없으니까 독자로서는 결말을 아는 셈인데도 이야기에 빠져들고 독일 병사들에게 감정 이입하게 된다. 속편 『독수리는 날아오르다』도 있는데 평가는 안 좋다.
CS Lewis의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무신론자로 살면서 독신인 채로 종신교수직에 임하며 뭐랄까, 큰 기대없이 매일을 성실히 보내었던 그 가 사랑하는 조이를 만나기까지의 지난한 삶이 보인다고 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원제는 ‘The Big Kill’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마지막 대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제는 절판. 영어 원서를 찾아보다가 ‘잭 리처 이전에 마이크 해머가 있었다’는 표지 문구를 보고 웃었다. 나만 그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 잭 리처도 시간이 흐르면 마이크 해머 같은 취급을 받게 될까? 리 차일드는 미키 스필레인에 비하면 문학계에서 상당한 대접을 받는 편이다. 차일드는 부커상 심사위원을 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