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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18세기 말, 여러 제후국으로 나뉜 독일. 미신과 계몽사상이 섞인 시대에 우리의 주인공은 수수께끼의 연쇄 사망사건을 추적하다가 그 배후에 어떤 책이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당연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인도 등장하고 비밀결사도 나온다. 소개 글만 보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책이 무엇이고 어떻게 죽음을 부른 거냐면, 글쎄, 난 좀 어이가 없었다.

세상을 삼킨 책
세상을 삼킨 책
59. 상상 페일에일과 구봉산 전망대

 〈현대문학〉 6월호에 싣기로 한 단편소설 마감은 5월 1일이었다. 그런데 5월 둘째 주가 다가올 때까지도 원고를 반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면 될 일인데, 그러지는 않으면서 스트레스만 잔뜩 받았다.

 변명거리가 있기는 하다. 하나는 A 출판사 사태였다. 나름대로 후폭풍이 있었고, 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차분히 원고를 쓸 수가 없었다. 또 하나는 집 문제였다. 집 주인이 갑자기 전셋집을 비워 달라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어느 낮에 예상치 않게 통보를 받았다.

 HJ와 내가 집에서 멍하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데 초인종이 다급하게 여러 번 울렸다. 그야말로 운명의 종소리였다. 어리둥절해서 문을 열어보니 웬 아주머니가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자기가 무슨 부동산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전화번호가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무슨 부동산이요? 무슨 전화요?” 주소를 잘못 찾은 사람이라고 상대를 짐작한 내가 되물었다. 그런데 옆에서 HJ가 그 부동산 업소가 우리가 이 전셋집을 구할 때 이용한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추측한 바이지만 HJ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회사에서 준 휴대폰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중개업소는 그 전화기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서울 전체적으로 전셋값이 엄청나게 올랐고 집 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도 심해졌다. 우리도 2년 뒤에는 오른 전세비를 감당하지 못할 게 명백했고 이사를 갈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주인이 직접 집에 들어온다고 할 때에만 예외가 허용된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소의 아주머니가 우리 집을 찾은 것은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주인이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들 관점에서는 우리가 주인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몰랐지만 주인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임대 계약이 끝나갈 때쯤 연락을 피하는 세입자도 꽤 있다고 한다. 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소는 우리 부부 역시 그런 부류라고 오해했고, 급기야는 직접 집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중개업소 아주머니는 그런 경계심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에서 횡설수설했고 나는 한동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뒤에야 우리가 무슨 상황을 맞닥뜨린 것인지 이해했다. 집 주인은 중개업소 아주머니를 통해 미안하다고, 자신에게도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HJ는 그 사정을 미심쩍어 했고 나는 믿으려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사 온 지 2년도 안 되어 집을 비워줘야 했다. 나는 놀랐고, HJ는 실망하고 서러워하며 정부를 욕했다. “직장을 잃었는데 집에서도 쫓겨나네.”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날 1박 2일 일정으로 춘천으로 떠났다. 내가 한림대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게 돼 있었다. 그 일정을 알게 된 HJ가 그 김에 같이 춘천에 가서 하루 묵고 오자고 해서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었다. 청량리역 KFC에서 징거버거세트로 아침 식사를 하고, 뒤숭숭한 기분으로 기차에 올랐다.

 춘천역에서 내려서는 택시를 타고 구도심에 있는 골목길인 육림고개에 갔다. 한때 인적이 끊겼다가 요즘 복고 바람을 타고 청년들 사이에 힙한 거리가 됐다는 곳이다. 그럴듯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다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한림대로 갔다. HJ는 육림고개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한림대 도서관에서는 꽤 열띤 분위기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마치고 나와서는 한림대 캠퍼스에서 HJ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택시를 불러 타고 구봉산전망대 휴게소에 갔다. 이 휴게소는 구봉산 중턱에서 춘천시를 내려다보는 기가 막힌 전망을 지녔는데, 가게 형태가 편의점이라서 술이나 안주 가격이 믿을 수 없이 싸다. 간단한 요리 안주도 판다.

 이 휴게소 방문은 두 번째였다. 처음 갔을 때에는 ‘이 멋진 전망과 조경이 아깝다, 좀 더 장사가 잘 되게 컨설팅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주방장을 고용해서 이탈리아 요리를 몇 가지 내고 수입 맥주와 와인을 팔면 수익률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이 휴게소에 그런 조언을 해준 경영 전문가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간판이 조금 더 세련되게 바뀌긴 했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감자전과 떡볶이를 주문했다. 휴게소 안의 편의점에서 과자도 몇 봉지 사서 먹었다. 괜찮은 안주거리가 없다는 게 휴게소의 흠이다. 당연히 맥주를 마셨고, 나는 일주일 만에 술을 마셔서인지 금방 취기가 돌았다. 석양도 북한강도 아름다웠고 춘천시의 야경도 멋졌다.

 휴게소 아래에는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단층 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에는 상당히 커다란 마당이 딸려 있었다. 거기에 크고 잘생긴 개들이 네 마리 있었다. 목줄에 묶이지 않은 개들은 마당을 자유롭게 뛰어 다녔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그 광경을 흡족하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개들은 아무리 자기들끼리 있어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서울에 와서 찾아보니 그 건물은 굼벵이를 키우는 곤충농장이라고 한다.

 구봉산전망대 휴게소에서 나와서는 택시를 타고 춘천 구도심으로 갔다. 거기에 모텔 골목이 있는데 그 중 적당한 곳에서 묵으면 된다고 HJ가 말했다. 가보니 모텔은 확실히 많았는데 다들 굉장히 낡았고 거리 전체가 을씨년스러웠다. 근처에 딱히 유흥가도 보이지 않았다. 숙박시설 중에는 심지어 하룻밤 요금이 1만 원대인 곳도 있었다. 여인숙이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봤다.

 우리는 망설이다가 요금이 2만 원인 모텔에 들어갔다.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건물 같아 보였지만 어느 방에 시신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손님을 받아 본지 오래인 듯한 모텔 관리실의 할머니에게 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기 왜 이렇게 오래된 모텔이 많으냐고.

 할머니는 예전에 근처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는데 이전했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터미널이 이전한 것은 무려 19년 전이었다. 그 19년 동안 이 거리는, 이 모텔들은 이대로 살아 왔단 말인가. 재개발 소문이라도 돌고 있어서 다들 그걸 믿고 버티고 있는 건가?

 막상 방에 들어가 보니 낡기는 했어도 깨끗했고, 시설이나 비품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아, 화장실에 세면대가 없었다. 편안하게 자고 다음날 아침에 세면대 없는 욕실에서 기분 좋게 샤워도 하고 나왔다. 이날 오전에는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춘천에 가면 늘 들르는 곳이다.

 날씨가 좋아 테라스의 빈백에 눕다시피 앉아 커피를 마셨다. 우리 옆자리에는 FC강원 선수들이 와서 앉았다. 젊고 건장한 축구선수들은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연락이 왔는데 전화를 받지 못하자 메일이 왔다. A 출판사 외에 다른 곳에서도 혹시 인세 누락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카페에서 충분히 쉰 다음 공지천변을 따라 남춘천역까지 걸어 왔다. 공지천변에 월드비전 강원지부가 있었는데 HJ가 저런 곳에서 일하고 우리가 함께 춘천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잠시 했다. 북한강변의 아파트들도 유심히 보았다. 남춘천역에서는 현지 주민들이 간다는 식당에서 낙지볶음을 먹었다. 춘천에서 낙지가 잡히지는 않을 테지만, 뭐.

 집에 돌아와서는 출협에 답장을 보냈다. 내가 겪은 다른 인세 누락 사례 몇 건을 출판사 이름은 밝히지 않고 영문 이니셜로만 표시해서 적었다. 그 출판사들은 A 출판사와 달리 내게 제대로 사과했고 실수도 그렇게 잦지 않았다. 폭로전을 더 벌이고 싶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진하게 출협이 그런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내가 단행본 계약을 맺은 출판사 6곳에도 메일을 보냈다. 출판사 6곳과 단행본 계약을 맺고 아직까지 넘기지 않은 원고가 8편이었다. 지금 각각의 원고에 대해 어느 정도 썼거나 구상을 했고 언제쯤 탈고할 수 있을지,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혹시 기다리기 어렵다면 위약금을 드릴 테니 해약해도 된다고도 덧붙였다.

 그런 메일은 보내지 않는 게 낫겠다는 편집자 조언도 들었는데 계약이나 약속에 결벽증이 있는 성격 탓에 끝내 보냈다.

 2015년 즈음까지 전업 작가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지, 계속 책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인 작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전에 출간 기회를 최대한 확보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즈음 계약 요청이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받아들였고, 내가 역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다른 작가들이나 편집자들에게 괴짜처럼 보이기도 했다고도 들었다.

 그렇게 계약한 단행본 원고들을 아직도 다 넘기지 못한 상태다. 장편소설이 6편, 에세이가 2편. 앞으로는 원고를 먼저 다 쓴 다음에 그걸 제일 좋은 책으로 만들어줄 것 같은 편집자와 출판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춘천에서 돌아온 다음날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포항에 갔다. 이번에는 혼자 갔다. 포스텍에서 포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요청 받았다. 내 앞의 연사가 무려 반기문과 손숙이었다. 이번에도 강연 원고는 당일 아침에 겨우 다 썼다. 포항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원고가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메일을 보냈다.

 강연은 저녁에 했다. 청중은 별로 없었고 반응도 그저 그랬다. 강연료가 적지 않았고, 숙박과 식사도 제공 받았는데 주최 측에 좀 미안할 지경이었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포스코국제관 1층 회의장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 건물 안에 호텔도 있었다. 거기서 묵었다.

 포스텍은 저녁으로 비싼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강연 전에 먹으면 졸릴 것 같아 배가 고팠지만 밤까지 참았다. 점심은 집에서 핫도그와 과자로 대충 때웠고, 그 외에는 동대구역에서 초콜릿 바를 하나 사 먹은 게 전부였다. 호텔 방에 들어갈 때에는 머리 속에 밥과 맥주 생각밖에 없었다.

 냉장고에 술이 없나 싶어 열어봤지만 생수뿐이었다. 룸서비스로라도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프런트에 문의하니 건물 자체에 주류를 파는 곳이 없다고 했다. 다만 학생회관에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서 구입할 수 있다며 거기까지 가는 약도를 그려주었다. 그 메모지를 들고 건물을 나섰다.

 대학 캠퍼스들이 다 그렇지만 봄밤의 포스텍 캠퍼스는 무척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학생회관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멋진 신식 건물이었다. 카페인지 로비인지 헷갈리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노트북을 펼치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젊음과 환경이 부러웠다. 그런데 왜 아무도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지 않는 거지?

 편의점도 으리으리했다. 다행히 맥주를 팔았고 4캔에 만 원 행사도 하고 있었다. 계산대에 직원이 없고 나는 무인계산대 사용법을 몰라 당황했다. 다행히 술은 직원이 결제를 해줘야 하는 상품이었다. 그렇게 겨우 맥주를 호텔 방으로 사 와서 순식간에 세 캔을 비웠다. 휴대전화기로 블루스 음악을 틀어 놓고 밥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도시락은 아주 맛있고 만족스러워서 집에서도 주문해 봐야겠다 싶었다. 저녁 내내 참았다 마신 맥주도 기가 막혔다. 그렇게 마신 맥주 중에는 상상 페일에일이 있었다. 핸드앤몰트가 만든 맥주인데, 국산 꿀을 넣어서 쓴 맛을 줄인 제품이다. 달달한 맛에 깊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과하지 않아 좋았다.


 나도 상상 많이 하지

 다 꿀처럼 달콤한 것들은 아니지만

 종일 사로잡혀 있기도 해


 이날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여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내가 인세 누락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정부 대책을 요구한 데 대해 답하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출협이 얼마 뒤 ‘문화체육관광부의 균형 잡힌 출판행정을 기대한다’는 제목으로 입장문을 내놨다. A 출판사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일탈이므로, 그걸 ‘불공정 관행’이라고 부르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출협 입장문에는 내 얘기가 짧지 않게 나왔다. 첫 문장부터 내 이름으로 시작했다. ‘최근 작가 장강명 씨와 A 출판사 간에 계약 위반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입장문은 그 계약 위반이 누구 책임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끝내 흐렸다. ‘우리 출판인들은 출판인과 작가 사이의 신뢰를 뒤흔드는 이런 사태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뭐야. 누가 보면 그 사태에 내 책임도 있는 줄 알겠군.

 압권은 세 번째 문단이었다.

 ‘장강명 작가는 이번 아작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 이전에도 문학동네, 창비, 한겨레, 민음사, 은행나무 등의 출판사에서 활발하게 책을 출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어느 출판사에서도 이번 일과 같은 계약위반이 벌어졌던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장들 뒤에 ‘장강명 작가의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도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 상식적인 추측’ 운운하는 헛소리가 이어졌다. ‘이 양반들이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
흥미로운 것은 어느 분야를 통해서도 최고 수준에 다다 르면 비슷한 철학적 관점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산이라도 오를 때는 사방에서 다가갈 수 있지만 봉우리에 다 다르면 거의 비슷한 곳에 모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공한 대 가들은 대부분 비슷한 철학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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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
투자는 지식과 지혜가 합쳐져야 성공한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오만해지고 지식이 없는 지혜는 허공만 안게 된다. 지 식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말 하고, 지혜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이치를 깨닫는 일이 다. 어떤 분야든 대가가 된 사람들은 모두 지혜와 지식 수준이 남다르다. 그가 음악가든, 운동선수든, 예술가든 그들의 생각 을 들어보면 모두 어떤 경지에 이른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투자는
투자는
24-028 | 정용준, 세계의 호수

아르테(arte) (240218~240218)


❝ 별점: ★★★★☆

❝ 한줄평: 우리 모두는 각자 ‘세계의 호수’를 품고 있어서

❝ 키워드: 여행 | 이별 | 재회 | 작별 | 대화 | 소통 | 마음 | 감각 | 용기 | 사랑 | 감정 | 선 | 기억 | 단절

❝ 추천: 이별에 관한 기억이 있는 사람, ‘소통의 불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어쩌면 이별을 작별로 바꾸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쓰다 보니 작별을 이별로 바꾸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슬프게도(다행스럽게도) 작별을 이별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꿀 수 있는 건 이별에서 작별뿐. ❞

/ 작가의 말 (p.140)


🫧 첫 문장: 다음 날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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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테 한국소설선 작은 책 다섯 번째 책인 정용준 작가님의 『세계의 호수』를 읽었어요. 윤기가 7년 전 헤어진 연인 무주와 낯선 이국에서 재회하고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를 나누며 진정한 ‘이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 윤기의 마음도, 무주의 마음도 조금씩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누구 한 명의 편을 들 수도, 탓을 할 수도 없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이별이 같은 세계의 양끝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면 작별은 각각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느낌’(p.139)이 든다고 말하는데요. ‘이별을 작별로 바꾸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쓰다 보니 작별을 이별로 바꾸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p.140)는 말로 짐작해 보면 윤기와 무주는 ‘작별’을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정용준 작가님의 에세이 『소설 만세』에 이별과 작별의 의미 차이가 나오는 글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서는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것을 뜻하고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을 뜻한다.’고 나와 있었거든요. 이 문장으로 생각했을 때는 둘이 처음에 한 건 이별이고, 재회해서 한 게 작별이 아닐까 합니다.


✦ 세계의 호수, 그리고 세 개의 호수. 우리 모두 ‘세계의 호수’를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아닐까요. ‘잘못된 소통으로 만들어진 허상’(출판사 서평)이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한다면 존재하는 곳. 그래서 더 비밀스럽고 소중한 ‘나만의 호수’. 다들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세계의 호수’가 있으신가요?


✦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잊어버린’ (p.98) 사랑했던 이의 표정. 설명할 필요 없이, 소통할 필요 없이 모든 걸 다 안다는 게 과연 좋은 걸까요?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게 나쁜 걸까요? 마음을 들여다보며 만남과 이별,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소통의불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24/02/19]


+ 『소설 만세』와 『저스트 키딩』을 읽은 독자라면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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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는 목소리, 눈빛, 한숨, 웃음만 보고도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았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의 다름과 뉘앙스의 차이를 짚어냈고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서 내 마음에 맞게 문장과 이야기를 고쳐주기도 했다. 무주와 헤어진 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지금 하필 느닷없이 오스트리아에서 콰콰콰 소리를 내며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올 수 있으면 와? 뭐?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나는 손을 비벼 뜨거워진 손바닥을 눈가에 댔다. (p.36-37)


| 무주는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속이 비치지 않는 바다와 같다. 무주는 마음을 말하지 않았고 묘사도 하지 않았다. 간혹 무슨 말을 하더라도 눈동자와 표정에서는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보였다. 말해보라고, 설명해보라고 채근하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그저 나를 꼭 안아줬다. 걱정 마. 괜찮아. 이런 말만 했다. (p.101)


| 감춘 마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 마음이 품고 있을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고 감춘 게 아니라 몰라서 감추고 있는 것. 사라지지도 소멸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가 모르는 마음.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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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호수
세계의 호수
뉴럴 링크 - 21세기를 이끄는 거대한 연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자칫 자극적인 일변도로 흐를 수 있는 뉴럴링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재 시점의 구현 가능성의 부분까지 언급하며 정리한다. 사이파이 영화를 예시로 활용한 부분도 알기 쉬움.

뉴럴 링크 - 21세기를 이끄는 거대한 연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뉴럴 링크 - 21세기를 이끄는 거대한 연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지친 하루도 소중하다는 걸 곰씹으며

삶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책들은 셀 수 없이 세상에 많다. 그걸 다 읽을 필요도 없고 개중 많은 책들은 너무 가벼워서 읽으면서 질린다. 그래도 이런 주제를 종종 찾아읽는 것은, 내가 종종 삶과 죽음을 상기해야하는 필요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큰 글자에 두께도 얇고, 본국에서만 250만부 이상 팔렸다는 점도 한 번 읽어보자는 욕구를 자극하기 충분했고. 사실 내가 찾던 방향보다는 소위 스피리추얼 분야에 속하지만, 어쨌든 하루 한 번은 아닐지라도 이걸 읽고 또 죽음을 생각했다.


여러가지 좌절감에 방황하다,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나'의 정신적 여행은 뻔하다면 뻔하지만 절실하다. 가족들과 병원 직원들의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는데도 한 마디도 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 상대는 자기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존재뿐이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자기를 둘러싼 상황들은 변해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머릿속 대화가 전부. 사실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이 이미 다 알고는 있었다는 말이겠지. 나도 알고 수백만의 다른 독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읽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실수를 만회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자책감과는 별개여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내 책임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가능하지 않다는 것. 오늘 말하지 않은 것을 내일 말할 기회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주인공은 죽다 살아나는 위기에서 깨닫지만, 책이 있어 감사하게 나는 멀쩡한 상태로 곰씹을 수 있다. 이러다 또 지친 날들이 돌아오면 당연한 것들을 또 잊고 조금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책이 나에게 죽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오늘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 열심히 움직이자. 내일 못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
대외비

'악인전'을 만든 이원태 감독의 피카레스크물.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의 결과물을 기대한 듯 싶어보이지만 파편화된 소재들 사이에 맥락이 제대로 묶이지 않고 캐릭터들도 따로 논다.

대외비
대외비
24-027 | 정용준, 고지연,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난다 (240217~240217)


❝ 별점: ★★★★★

❝ 한줄평: 사랑을 듬뿍 ‘담은’ 따뜻한 이야기

❝ 키워드: 가족 | 겨울 | 밤 | 소원 | 꿈 | 해결사 | 기억 | 시간 | 비밀 | 괴물 | 주문 | 바다 | 사랑

❝ 추천: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찾는 사람,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로 힐링하고 싶은 사람


❝ “좋아해!를 다섯 번 더하면 사랑하는 거예요.” (p.72) ❞


🐚 첫 문장: 나나는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아 항상 늦잠을 자는 일곱 살 여자아이입니다. (p.9)


———······———······———


✦ 난다에서 출간된 정용준이 쓰고 고지연이 그린 동화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를 읽었어요. 사랑스러운 아이 나나의 탐험기이자 성장기를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마음속 깊은 곳 봉인해 두었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기도 해요.


✦ 책을 펼치면 ‘정담은에게’라는 문구가 보이는데요. 정용준 작가님의 첫째 딸 이름이라고 해요. ‘담은이를 보며, 생각하며, 상상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님. 담은이를 향한 사랑이 눈에 보이는 듯한 책이었어요. 고지연 작가님의 그림이 나나의 세계로, 그리고 아빠의 세계로 생생하게 빠져들게 해 주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 나나와 아빠의 대화는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슬프기도, 때론 포근하기도 해요. 어른에게 어른의 힘듦이 있듯 일곱 살에게도 일곱 살의 힘듦이 있는 거겠죠. 아빠가 나나의 힘듦을 모두 알지 못하고, 나나가 엄마와 아빠의 힘듦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고 서로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해서 뭉클했어요.


✦ 여러분은 일곱 살 시절이 기억나시나요?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 괜찮아진 일이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만약 아이가 있으시다면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음속 깊은 곳 숨겨두었던 서로의 비밀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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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야 그러면 사랑한다는 것은 뭐야?”

  나나는 손가락을 한 개씩 펴며 말했습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나나는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손을 번쩍 들었어요. 치즈가 멍! 하고 짖었습니다.

  “좋아해!를 다섯 번 더하면 사랑하는 거예요.” (p.72)


| “아빠는 상자에 어떤 나쁜 기억을 넣었어요? 기억나요?”

  “글쎄······”

  곰곰이 생각에 잠겼지만 아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쁜 꿈을 꿨지만, 그것 때문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지 않지만,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해요. 그리고 아빠는 생각했습니다. 나쁜 일을 상자에 넣고 바다에 던지는 것이 좋은 걸까? (p.81)


| “나나야. 전에 아빠에게 나쁜 기억을 상자에 넣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고 했지?”

  나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든 기억은 소중해. 그러니까 바다에 집어넣지 마. 라라는 이마를 다쳤지만 언니하고 즐겁게 놀았던 좋은 기억으로 갖고 있을 거야. 그리고 아빠도 엄마도 때론 힘들어서 나쁜 말 하고 무섭게 대할 때 있지만 사실은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할 테니까 아빠와 엄마를 계속 기억해줘.”

  사실 나나는 어떤 기억도 상자에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의 머리를 꼭 껴안고 뽀뽀를 해줬어요.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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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914. 나를 추리소설가로 만든 셜록 홈즈 (조영주)

동시대 한국 소설가들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쓴 에세이를 각별히 사랑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말 재미있게, 때로는 애틋하게 읽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작가. 세계문학상을 받은 뒤 가명으로 웹소설을 썼는데 5회까지 올렸더니 에이전시 여러 곳에서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나를 추리소설가로 만든 셜록 홈즈
나를 추리소설가로 만든 셜록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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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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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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