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에서 출판한 중세III은 움베르트 에코가 기획한 서양 중세사 4권의 책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처음 1권을 읽을 때는 아랍의 중세에 대한 언급이 많아 이 책을 단순히 서양의 중세사로 보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지만 계속 읽다 보니 결국 그것이 서양 중세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3권은 1200-1400년 전후의 서양사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리콩키스타는 1085년 마드리드 아래, 톨레도라고 하는 도시를 점령하면서 아주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한다. 사실 이베리아 반도는 서로마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서고트족이 침략을 당했고 7세기부터는 신흥 종교 이슬람이 팽창하면서 아랍의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리콩키스타라는 말이 적절한 용어의 선택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독교인들은 톨레도를 정복하고 난 뒤 마주한 이슬람 문명에 압도되면서 심각한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톨레도 아랍인들의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등 방대한 양의 그리스 고전 문명의 자연 철학 서적들과 만나게 되면서 유럽 사회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다. 적어도 12세기 내내 이 서물들에 대한 번역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랍인,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협업을 통해 방대한 양의 번역이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번역을 중국의 위진시대(魏晋時代: 220-420)에 있었던 불경 번역에 비유할 수 있는 문명사적 대사건 혹은 그 이상이라고 보고 싶다.
물론, 12세기를 넘어 13세기에도 여전히 번역 작업이 전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유럽의 수도원과 대학에서는 아랍어로 쓰인 교재들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서서히 유럽은 이들 지식을 나름대로 체화하고 독자적인 논리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종합한 사람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토마스 아퀴나스일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험으로 확증할 수 있는 사실만을 진리라고 주장하기에 이르고 소위 ‘실험 과학’이라는 근대적 과학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다. 이후 서양의 과학적 사고, 즉 하나의 이론적 가설에 대해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과학적 프로세스의 개념이 이때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발견은 계몽주의, 그리고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향한 문도 열게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이 방대한 번역을 주도한 것은 가톨릭 교회였다.
한편, 14세기가 되면 교황의 권력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프랑스 왕에게 따귀를 맞는 등 세속 권력은 교회 권력을 흔들어댄다. 이때 아비뇽의 유수라고 하는 교항들의 두 집 살림 사건이 일어난다. 2권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교황이 절대적 세속 군주화 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세속 권력과의 이해 다툼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십자군 원정은 기독교 사회의 동방으로의 팽창 뿐만 아니라 중동부 유럽으로의 팽창을 의미하기도 했다. 십자군의 대표적 기사단은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두 기사단은 나중에 합병을 한다), 그리고 튜튼 혹은 독일 기사단 등이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은행 역할을 했던 템플 기사단은 교황과 공모한 프랑스 왕에 의해서 해체되고 전 재산을 프랑스 왕실에 강탈당한다. 다행히 병원 기사단은 프랑스 왕의 호출에 응하지 않고 몰타 섬으로 이동 거기서 한동한 세력을 보존하게 된다. 튜튼 기사단(독일 기사단)은 헝가리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을 모색하다 헝가리 왕의 견제를 받고 발트해 연안 지역으로 옮겨 가게 된다.
이 시기 발트해 연안 지역은 그리스도교가 아닌 이교도들의 땅이었다. 폴란드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리투아니아와 같은 이교도 국가 연합 국가를 형성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튜튼 기사단이 헝가리에 머물 때 많은 독일 귀족들이 튜튼 기사단에 합류하면서 리투아니아 이교도에 대한 십자군 전쟁을 전개하는 동력이 된다. 이들 튜튼 기사단이 지배했던 영역이 프러시아 영토와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튜튼 기사단의 수도회적 규율과 프러시아라는 국가의 잘 정돈된 규율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 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유추해 본다.
중세의 상당수 기사 계급은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방종한 폭력 집단이었다. 십자군 전쟁 속에서 기사단을 수도회적 규율로 구속, 단련시키면서 소위 기사도라는 서양 특유의 무력 문화의 에토스ethos가 만들어진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발트해 3국, 폴란드, 보헤미아(체코)는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境界(경계)또는 灰色(회색)지대임을 알 수 있다. 13세기가 되면 합스부르크 가문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는 시기였다. 스위스는 알프스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중계무역이 주된 수입의 원천이었다. 합스부르크에 이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위스 연방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가 되면 오늘날과 같은 국민 국가의 토대가 마련되고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13세기 몽골은 동유럽을 침략, 독일 기사단과 폴란드 연합군을 물리친다. 이후 러시아는 약 20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는 데 서유럽은 이를 러시아가 서유럽과 단절되는 결정적 사건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몽골의 지배, 혼혈로 인한 이질감이다. 몽골의 침략은 투르크족을 서쪽으로 밀어내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다. 오스만 투르크의 지중해 상권에 대한 독점은 이태리 도시 국가들 몰락의 원인이 되고 유럽이 대서양 망망대해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13-14세기가 되면 유럽의 언어가 라틴어에서 이태리어, 프랑스어, 독일어와 같은 속어로의 轉用(전용)이 가속화 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지식과 정보의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욱 다양한 계급으로부터 창조적 재능을 개화시키고 근대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Pax Mongolica는 인도, 동아시아의 부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를 유럽에 제공할 수 있었다. 속어로 쓰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은 책을 콜롬버스 같은 모험 상인이 읽고 동양의 부에 대한 욕망과 갈망을 키우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독서를 통해 야망을 키우고 그것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 몽골의 침입, 기후 위기와 함께 유럽 인구의 1/3이 줄었다고 하는 페스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4세기 중반 부터 15세기로 넘어가는 시점까지 창궐했던 이 역병으로 인한 고통과 참상은 유럽의 사회, 경제 구조 뿐 아니라 사람의 정신 세계에도 일대 큰 변환을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도망치는 가톨릭 사제들을 보면서 교회의 권위와 신뢰는 한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또 영국과 프랑스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4-15 세기에 걸쳐 백년전쟁이 일어난다. 십자군 전쟁에 이어 양국간의 긴 전쟁은 왕에 대한 귀족 계급의 상대적 힘을 더욱 약화시켜 절대주의 왕정을 준비하게 된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과 비교되는 측면이고 이것이 뒤늦은 독일의 통일 국가 수립(1871)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종합해 보면 중세의 시작과 함께 유럽은 중동, 인도 그리고 중국 문명에 비해 가장 후진직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이를 극복하고 힘을 축적하면서 19세기의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를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3-14세기는 서양이 근대 사회로 발전하는 임계점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1.그믐
2.은성님
3.하루의 책상 haaru's desk - YouTube / 다락방북클럽
4.아이유, <The Winning>
5.낭독, 송정희 성우님
6.들개이빨,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 뮤지션>
7.장일호 작가님
8.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9. 김승섭,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재미있다. 마지막 나가는 말까지도 좋았다. 이지환 선생님의 책이 더 없다니 너무나 유감이다. 의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 그렇다고 여기 나온 용어들을 외울 능력은 없다만 - 설명뿐 아니라, 질병의 고통이 천재들의 삶의 행보에 미친 영향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섞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질병의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사람들이 평생을 그 고통과 씨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슬픈 책이기도 하다. 세종이 이정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에서 존경이 샘솟는다. 로트렉의 아버지가 쓰레기라는 건 알았지만, 사실상 자식 아픈 원인 제공자 주제에 아들내미 작품까지 태워먹는 적이 있는 인간말종인줄은 몰랐다. 모네가 백내장에 시달리던 기간 그렇게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렸는지도 몰랐고, 밥 말리가 조금만 더 늦게 암에 걸렸다면 더 나은 치료를 받았으리란 것도 몰랐다.
고통과 천재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인생을 살고, 각 분야에서 세상이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저 고통이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은 어쨌든 두각을 드러내고, 안 아팠으면 더 대단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삶에 만약이란 것은 없고 이들이 남긴 혜택을 조금씩 향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저 좀 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기억하는 것이 다라는 게 안타깝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작가분의 마지막 문장도 적어두려 한다. "우리는 기억을 공유한다. 치매가 특히 악독한 질병인 이유는 쌍방의 기억을 일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같은 글을 읽고 기억한다면 그만큼 은근한 결속이 있다고 믿는다."
오바하지 않는 괴담집이랄까?
덤덤하게 읽어가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무사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보는 정유재란의 모습. 한국인 독자는 ‘우리 편’과 ‘나쁜 놈들’을 구분할 수 없고, 극중 도모유키 역시 비슷한 처지다. 그는 조선인 여인을 연모하지만 조선인을 많이 죽이기도 한다. 어린아이도 죽인다. 독자에게도 도모유키에게도 편안한 안식은 없다.
전운이 감도는 고려-거란 접경지대, 불길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고려군 정예부대가 사라지고, 환각을 일으키는 풀에 취한 장병들이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신력을 지닌 주인공 소녀는 고려와 거란 양쪽에 애정이 없고, 소녀의 여동생은 사람을 죽이는 병에 걸렸다. 원숭이탈을 쓰고 다니는 대원수는 믿을 수가 없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반전은 놀랍다.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낯설면서 생생하고,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인 귀주대첩 직전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 는다. 죽는 느낌을 모르니까. 그런데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제목은 정말 벗어나고 싶어 미치겠는(?) 상황에서 집어들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읽다가 죽을 뻔 했다. 두 작가의 똘끼와 글쓰기 재능에 샘이 나서! 샘나, 샘나, 샘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