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스태플든은 스토리텔링이 빼어난 작가는 아니었다. 철학 박사였던 그의 소설들은 사변에 비해 서사가 약한데 이 작품은 그런 특징이 극대화되었다. 그렇다고 스태플든의 작품들에 담긴 사변의 깊이가 그 자체로 엄청난가 하면 ‘인간성을 낯설게 보기’라는 문구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최초의 아이디어와 경이감을 칭송하는 독자들은 높이 사겠지만 서사를 중시하는 독자는 이게 뭐냐고 할 테고 나는 후자에 가깝다.
그러니까 한의원이 아니라 정형외과를 갔어야 하는 거였구나; 자칫하면 내일 결근하겠음.
코로나가 아직 한창일 때 폭염 중에 냉장고가 퍼진 적이 있었는데, 누구나 선망하던 냉장고를 파격할인가에 잘 주문해놓고 거의 다 왔는데 하루 미뤄졌다고 취소한다고 하면 원래 온다하던 날짜에 올 줄 알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냥 취소처리되고 말은 적이 있었다. 놓친 건 어쩔 수 없고 빨리 오는 제품을 기준으로 얼추 비슷한 4door로 맞춰 배송받았는데, 역시 물량이 없어 결국 원래 제품 늦어진 것 보다 더 늦게 배송받았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그 냉장고는 작동은 되고 겉보긴 괜찮으나 아직도 소음을 내면서 가동중이다. 병원도 조언받은대로 근육이완제를 처방하는 양방을 갔어야 했는데 또 돌아서 가버렸구먼. 아뿔싸~
ㅡ 이미 너무나 많이 돌아다닌 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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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성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을까. 서로 다른 각 시선들의 합이 존재를 온전히 재구성할 수 있는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물체의 속성을 파악하고 분류하려 한다. 근본적인 구조를 찾아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것이 예측할 수 있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총체성을 획득하고 조화로운 질서를 찾으면 다음에 올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이성은 늘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그렇게 구축한 세계 밖에도 분명 무언가 있다.
튜링은 바로 이런 무작위성이 지능을 가진 기계의 관건이라고 믿었다. (p. 229)
마음, 감정, 생각,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것들은 환원 불가능을 내포한다. 그러한 절망에 매혹된 폰 노이만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내보이고 쓴다. 상대가 온전히 이해해 주리란 믿음을 가지고. 이성이든 직관이든 인간은 무언가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퍼즐의 빠진 구석을 바라보며 어떤 조각이 있어야 할지(혹은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없던 믿음보다 사라진 믿음이 더 나쁜 까닭은, 성령이 저주받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며 생긴 구멍처럼 떡하니 공백을 남기기 때문이다. (p. 112)
수학에 통약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통 기준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값을 말한다. 총체성을 파악하는 시선이나 대상을 구조화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의 이해는 달라진다. 그러나 이해가 부족할 때가 더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서로 다른 레이어를 모아 겹쳐 들면 모두가 어느만큼은 받아들이는 모양이 나올지 모른다. 다른 것을 태생적으로 증오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직 공생의 올바른 방법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믿는다.
이 코드에 관해 아직 규명 못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텐데요. (p.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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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하민 라바투트는 매니악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끊임없는 소통과 공생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악마diable의 어원은 분열자이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한 적의 실체는 함께하지 못함이 아닐까. 이해한다는 말은 진술문이 될 수 없을지언정 수행문이 되어 우리를 다가서게 만든다.
익숙한 작법서이지만 소설가 문지혁 작가가 번역해서 괜시리 주목을 끈다. 북미권 작법서를 읽는 가운데 급텐션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예시로 드는 영미 소설의 낯섦. 도입부는 나쁘지 않은데 역시나 온갖 예시들을 접하다가 길을 잃었다.
은행나무 (240307~240307)
❝ 별점: ★★★★
❝ 한줄평: 다채로운 색깔을 품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소설
❝ 키워드: 가정교사 | 파티 | 사냥 | 욕망 | 감시 | 관찰 | 관음 | 시선
✦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두렵고 섬뜩하기도 한 이야기. ‘시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 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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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이네스가 돌아올 것이다. 셋이서 카드놀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내일, 아니면 한 달 뒤, 혹은 일 년 뒤, 또 다른 낯선 남자가 그들의 내밀함 속으로, 갑자기 마법처럼 열리는금빛 철문 뒤에 놓인 밤처럼 감미로운 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될지.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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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결국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폭탄이 이 집 위로 떨어져야 삶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고, 철문이 활짝 열리고, 나무들이 뽑히고, 집이 자리를 바꾸면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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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전 쯤 참석한 북토크 책을 이제야 읽는데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뒤늦게 캐치하는 맛이 있음. 이를테면 이런 대사랄지~
"당신은 나와 결혼해야 해요."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할게요."
"좋아요. 그럼 내일 만나요."
이렇게나 간단하다니!^^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을 보려다보니 전편인 나이브스 아웃을 보다가 말았다는 기억이 들었다.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재능이란 대체 무언인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화려한 캐스팅인데 어리둥절할 정도로 연기를 못한다. 북미 남성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을 한 접시에 모두 담은 슈퍼볼 같은 느낌.
소설보다 낫고 파트1보다는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