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방법은, 간단히 보면 황금률이지만 간단치 않다.
괜히 수천년간 간단한 황금률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 밖에 없어보인다.
몇 년만에 재독
최근 몇 년간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복잡한 심리나 인물 관계가 없는 사랑이야기, 어쩌면 순박해 보이기까지하는 단순한 사랑이야기
시라노는 조르바 만큼 좋아하는 캐릭터
각자가 품고 있는 뜨거운 감정 못지 않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중요함
이런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영화/뮤지컬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의 원형이고 우리의 본성과 연결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하면 단순해지고 싶고, 단순하면 복잡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몽골에서 출토된 대형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르스의 화석이 2012년 뉴욕의 경매장에 나와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린다. 몽골은 공룡 화석을 국유 재산으로 규정하고 거래를 금지하는데 도대체 이 화석은 어떻게 뉴욕까지 간 것인가? 몽골 정부는 반환 소송을 벌이고 밀거래 과정이 드러난다. 공룡 화석은 돈 많은 수집가들이 탐내는 아이템이고, 잘 보존된 화석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900여 곳, 피해액은 2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책의 저자는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을 지낸 피해 당사자 기업인. 기자 시절 만나 인터뷰했었고, 이후에도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도 은행이 중소기업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漢(한)나라의 건국이 사기열전을 1권과 2권으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주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를 거쳐 한나라가 건설되기까지의 과정이니 만큼 1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드라마틱하다. 반면 2권은 한고조부터 한무제까지 秦漢(진한)의 통일 제국이 완성돼가는 수성과 안정기의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1권의 내용은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용이 많고 흥미롭다.
진시황이 창시하고 한무제가 완성한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기반한 帝王制제왕제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2000년간 지속되었다.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라고 하는 공화국이 탄생한다. 중국에서 ‘共和(공화)’란 단어의 출현은 사기에서 周(주)나라가 東(동)주에서 西(서)주로 천도하며 주나라 왕실이 무너져 귀족들이 통치하던 혼돈의 시대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중화민국 출현 이전에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 그만큼 중국의 정치 전통에서 서양의 republic이라는 단어에 상응시킬 수 있는 개념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공화 또는 공화제였다.
사기 2권에는 酷吏列傳(혹리열전)이 있다. 혹리의 혹자는 가혹하다는 뜻이다. 제왕제와 같은 정치 체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법가 사상에 따라 혹독하게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의 제국 체제는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관료제를 바탕으로 광대한 제국 체제를 2000년간 지속할 수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무제 이후 중국에서 관료가 아닌 서양 사회와 같은 의미의 귀족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때문에 송대 이후 출현하는 독서인 또는 사대부 계급의 사회적 포지셔닝이 독특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2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흉노열전이었다. 이 흉노가 서양사에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야기한 원인이 맞다면 그들의 역사적 실체가 더욱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한나라가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서역으로부터 汗血馬(한혈마)를 수입하며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출했기 때문에 무역 역조가 심해지고 쇠퇴하게 되었다는 분석을 했었다. 한무제는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장건 등을 보내 대원, 월지와 같은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하지만, 흉노의 힘이 너무 강해 그들과 함께 흉노를 협공하려는 계획은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중앙 아시아 국가들을 공격하고 항복을 받아 내는 선에서 원정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중앙 아시아 정벌에 일종의 건달 또는 범죄자 집단들을 동원하게 된다. 그만큼 서역 원정이 위험하고 거칠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15세기 유럽에서 전개된 지리상의 발견과 모험 때의 해적 상인들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무제는 서역 경영에 관심이 많아 재위 기간 내내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전국가적 역량을 동원 했다. 초원 지대 뿐만 아니라 그 아래 실크로드 그리고 사천 지방 등을 비롯한 남서 지역 등 다방면으로 서방과의 교역로를 찾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고대 제국이 바다가 아닌 육지를 통해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산업 혁명 이후 서양 제국주의와 그 팽창이 대단히 독보적인 것은 맞지만 동양사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어떤 역사적인 전개도 일방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또 중앙 아시아를 비롯한 스텝 및 중근동 민족들은 유럽과 동아시아 문명의 훌륭한 중개 문명 또는 거간 문영이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만 할 것 같다. 흉노의 존재는 동아시아, 중근동과 중앙 아시아 문명, 유럽 문명이 각각 독립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신의 섭리는 아니었을까?
19세기 중반 이후의 역사가 중국을 劣勢(열세)와 守勢(수세)로 몰아 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중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영토적 방대함과 인구 규모는 분명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중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고 서방의 언론은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 때문에 중국이 19세기 아편 전쟁이후와 같은 상황으로 회귀할 것처럼 선전을 하지만 그런 시각에 액면 그대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의 오판으로 인한 중국의 WTO가입 그리고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 내부의 혼란이 결정적이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온갖 종류의 사법적 기소와 재판은 미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의학과 예방 의학이 이렇게 발전한 21세기에 팬데믹이라는 기현상도 여전히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민주주의는 퇴행하며 권위주의 체제가 곳곳에 발호하는 것은 분명 주목해야만 하는 새로운 조류다.
아무튼 중국의 제왕제는 현대의 중국과 같이 거대 사이즈의 국가가 2000년 넘게 존속할 수 있게 해준 가장 강력한 요인임에 틀림 없다.
사기의 구성은 본기, 세가, 열전 이외에도 表(표)와 書(서)가 있다. 서에는 禮(예)서와 樂(악)서가 있고 보통 禮樂(예악)이라고 묶어서 표현을 한다. 보통 百姓(백성; 백 개의 성을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姓성은 주나라 왕족만이 쓸 수 있는 성씨였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가문을 지칭하는 단어되고 나아가서는 모든 인민을 지칭하게 되었다. 人民(인민)이라는 단어의 ‘인’자는 지배계급을 의미하고 ‘민’자는 한자의 상형자 해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같이 눈을 멀게 하는 노예를 의미했다 )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예’와 ‘악’이 함께 사용되었다. 생각해보니 오늘날에도 음악이 없는 세상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 사회는 국가의 통치 수단 또는 선전 수단으로 ‘음악’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사기의 악서에는 이미 서양과 같은 12음계가 이 때 출현한다. 특히 진시황을 암살하고자 했던 연나라의 형가가 그 장도에 오르기 전 羽調(우조)라는 노래를 부르는 데 번역자 신동준 선생이 악서의 음계에 대해 자세히 주석을 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음정을 계량하는 방법은 서양에서는 하프 현의 길이를 통해서 측정했고 피타고라스 등에 의해 수학적으로 그 원리를 구현해 낸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의 길이를 통해서 그 음정을 계량화했던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12음계는 수학이 아니라 음양오행설에 기초하고 있어 이후 음악 이론 발전의 궤적을 다르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12음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화성 또는 화음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싸움과 법정 공방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가의 禮治(예치)는 분명 대단히 잘 고안된 선진적 국가 통치 이념이었다. 한무제가 유가를 국학을 채택 유가는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의 독점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다. 書(서)는 훑어보기만 하고 다 읽지는 않았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넣었을 때는, '아아, 그때 비만 안 왔더라면...혹은 비가 왔더라면...' 식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 이야기도 실려있지만(히틀러 관련 이야기가 많기도 하다. 재앙같은 인간과 날씨 이야기가 맞물리니 이런 것도 기후재앙인가 별 생각이 다 든다...), 프롤로그 방향부터 생각과 좀 달랐고 읽다보니 옛날 옛적의 과학잡지 납량특집이 마음 한 구석에 떠오른다. 싸하다...
지구 온난화는 지금 살면서 피부로 느끼지만, 아직은 다행히 아예 마실 물과 곡식이 없는 사태는 경험하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그 정도 끔찍한 미래는 아직은 좀 먼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각종 사례들은 구체적이고, 일어난지 얼마 안 되는 것도 있어서 상당히 피부에 와닿게 끔찍하다. 읽다가 으음? 해서 찾아보니 경신대기근 시기도 있다. 기후 재앙이 세계를 갈아엎는 거야 수많은 책에 나오지만, 이렇게 보니 6도의 멸종 계열과는 또 다른 공포감이 있다. 그리고 이런 미친 재앙들 속에서 인류가 계속 존속이 되고 숫자도 늘어난다는 게 제일 놀라운 일이기도 하고. 캘리포니아 부자들마냥 돈쓰듯이 물쓰는 입장도 아니고 소시민이 할 수 있는 환경 보호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해야겠다. 뭐든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머리를 비우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렇게 새롭지 않은데, 뇌전증이나 치매, 전신마비 환자가 오히려 평온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은 놀라웠다. 실제로 저자는 감금증후군 환자의 뇌에 센서를 부착해 이를 증명하기도 했다. 별 노력 없이도 쉽게 멍해질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저자에 따르면 대형 유인원이 대체로 갖는 협력 성향을 마찬가지로 지니고 있었던 초기 인류는 협업 파트너를 선택하면서 상호 존중의 감각을 키웠다. 그것이 ‘자연적인 2인칭 도덕’이 됐고, 이후 부족 집단이 등장하며 ‘우리’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고 한다. 문화 규범이 체계화되면서 객관적 도덕 개념이 출현한 것은 훨씬 나중이라는 설명. 이렇게 기원이 다른 도덕들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이 있고 종종 그 양립 불가능성이 도덕적 딜레마의 원인이 된다.
일화 1: 고대 로마에 해시계가 도입된 건 기원전 3세기경이다. 당시 희극에서 어릿광대가 시계의 발명자를 저주하며 불평을 터뜨린다. “전에는 내 배가 세상 무엇보다 정확한 시계였는데, 이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시계의 허락 없이는 한 입도 못 먹는다.”
일화 2: 소인국에 포로로 잡힌 걸리버의 주머니에서 회중시계가 나왔다. 회중시계를 처음 본 소인들에게 걸리버가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소인들은 시계가 신(神)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알렉산더 데만트의 하드커버 『시간의 탄생』(북라이프)은 물리학이나 우주론에 대한 책은 아니다. 고대사 전문 역사학자인 저자는 시간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728쪽에 걸쳐 소개한다. 읽다 보면 위의 사례들처럼 일견 소소해 뵈지만 한편으로는 묵직한 에피소드들을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접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시간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달력과 시계는 우리 삶을 알차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인가, 우리를 쉴 새 없이 다그치고 내모는 채찍인가.
책 자체는 특정 주인공이나 일정한 줄거리 없이 다소 뻣뻣한 백과사전적 구성이다. 그래서 이 밀도 높은 인문서는 단기간에 통독하기보다는 책장에 꽂아두고 ‘시간’ 날 때마다 빼들어 천천히 진도를 나아가는 게 오히려 괜찮은 독서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목차대로 소화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흥미로워 보이는 챕터부터 펼치는 것도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대, 시대정신, 종말론, 영원, 역사 등의 개념을 다룬 13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후기산업시대의 ‘후기(後期)’와 신자유주의의 ‘신(新)’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왜 지금이 후반기이며, 무엇이 새롭다는 것일까? ‘전환기’라는 표현은 한 시대를 그 자체의 상징과 특징이 없다며 깎아내리는 의미 아닐까?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현대에 올수록 점점 더 자주, 짧은 주기로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호들갑일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알아야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접하다 보면 자기 인식도 한 뼘 더 깊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