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좋았고, 정말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지만 읽고 나서 마음이 정말 무겁다. 나름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하나 짚어주는 부분들을 보니 나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싶다. 그 이전에, 당장 한국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진짜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에 창피하기도 하고. 굉장히 오랜만에 식탁에 올라온 딸기를 보니 죄책감이 든다.
소 이야기는 그래도 좀 문제 예상이 되었지만, 아마존이 사라져가는데도, 땅을 갈기만 해도 나오는 농업 온실가스 배출에 분명히 나의 책임 지분이 있다는 건 참 뼈아프다. 이슬만 먹고 살지 않는 이상 앞으로 지분이 더 늘어나겠지. 그래도 시민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좀 더 참여할 때 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갖고싶다. 성우농장이나 태평농법을 전파하는 이영문씨 이야기를 보면 잠깐이라도 읽으면서 묵직했던 마음이 시원한 탄산수 들이킨 마냥 가벼워진다. 그렇지만 그런 길은 참 어렵다. 당연히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고충도 해결해야하고, 채소 모양새에 가격이 오가는 시스템도 고쳐야하고, 일단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투표 때도 다뤄지고 그저 편법으로 이익만 보려는 사람도 줄어들텐데...나의 미미한 활동은 정말 저 과정에 큰 영향을 줄지 알 수 없고 자신도 없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참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서 노력해야겠지. 언젠가 작가분 말처럼 탈탄소 식탁을 만날 수있을 거라 믿으면서.
영국의 경제 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쓴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2권짜리 전기 중 첫 번째 책이다. 고세훈 교수가 번역하고 휴머니스타스에서 2009년에 출간했다. 번역이 아주 잘된 책이다. 역자의 서문을 읽어 보니 이 책은 원래 3권짜리를 40%정도로 줄여놓은 축약본의 번역이라고 한다. 그래도 상당한 부피를 과시하는 책이지만 작가의 글솜씨, 그리고 번역이 훌륭해 아주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그의 경제 이론이 탄생하는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케인스의 성장과정, 인간관계, 성적 취향 등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1권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 영국에서 존 메이나드 케인스와 같은 엘리트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그 사회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먼 조상은 노르만디 윌리암공이 영국을 침공할 때 함께 했던 노르만디 귀족이었다. 이후 그의 가문은 스코틀랜드 왕가를 지지하는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부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네빌 케인스 역시 수학에 상당한 재능을 가진 캠브리지 대학 교수였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캠브리지 대학 킹스 칼라지에 입학하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과정 심지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아주 열렬하고 극성스럽게 아들을 채근한다.
대학 생활에서 그의 지성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한 인간의 지적 능력이 한 개인의 성공 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에 얼만큼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한 세대만에 축적되는 지적 역량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와 같이 식민지 사회와 내전을 통해 전통 사회와 분절된 사회적 단층이 있는 세상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사례처럼 보인다.
남색으로 잘 알려진 그의 성적 취향은 캠브리지 대학의 ‘사도들’이라고 하는 써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대학은 언제나 그들이 기득권 계층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기성의 권위와 가치에 도전하는 좌파적 성향을 지닌다. 그리고 당시 이 명민한 젊은이들의 아날 취향은 부모 내지 조부모들이 가지고 있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권위주의, 금욕적 세계관에 대해 반항, 저항 또는 조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 여성들이 무시되고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남성 중심적 전통 사회의 병리적 현상처럼 보인다.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의 블룸즈버리 그룹에 참여하고 재능있고 지적인 여성들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하나 둘씩 이성애에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거북스러운 취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한편, 스키델스키는 한국어 서문에서 케인즈 경제학은 단기 고용이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성장에 방점을 두는 경제에서의 관심사와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효수요 이론이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있었던 카드 대란, 소득 주도 성장 정책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창조적?으로 변용되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건설을 통한 GDP 상승 전술은 한국 경제의 고전적 케인스 정책의 대표적 운용 사례일 것이다. 그 변용의 의미란 금융 위기 때는 정부가 지출해야 할 비용을 민간에게 떠넘긴 것이고 두 번째는 케이스는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덤탱이를 씌운 변태적 총수요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공무원으로서 인도에서의 초임 근무, 1차 대전시 재무부에서 근무하지만 기본적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서 또 언론인으로서 정치(국제정치 포함)와 경제 정책에 관여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였지만 점점 정책적으로 노동당과의 접점이 많아지게 된다.
1922~1923년 영국은 디플레이션, 고실업, 고금리라고 하는 영국병에 시달린다. 1차 대전후 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지나치게 많이 오른 것 그리고 전후 영국이 금본위제로 복귀하기 위해 파운드당 환율을 4.86달러에 고정시킨 것 등이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그때까지 물가, 고용, 이자율 등이 그렇게 무너지는 경험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나 같은 문외한도 통화정책를 통해서 비교적 수월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이해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는 금본위제를 일종의 ‘當爲(당위)’라 여기는 신조가 있었고 금융 중심지로서 영국의 위상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컸던 것 같다. 반면, 케인스는 환율보다 가격 안정이 통화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일단, 국내 정세가 안정이 된 다음 자유주의 무역 정책으로 관심사를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용의 불안정은 바로 혁명과 같은 사회적 불안으로 연결되어 볼세비키 혁명과 같은 사회적 격변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처럼 읽힌다.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해법을 찾았지만 케인스는 가격, 특히 임금의 비탄력성, 粘性(점성)sticky을 주장하면서 금본위제의 포기와 같은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임금을 깎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통해 임금 상승분을 상쇄시켜 기업의 매출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견조한 인플레이션을 자본주의의 정상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반면,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해 구매를 늦추게 되며 기업의 매출은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뿐만 아니라 이때 전통적 화폐수량설에서처럼 돈을 많이 푼다 해도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격의 상승은 화폐의 총량이 늘어도,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사람들의 기대하에서는 화폐의 유통이 지체되는 退藏퇴장 효과가 생겨 화폐 유통 승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퇴장된 돈이 저축이 되고 그 저축이 투자로 연결된다는 전통 가설에도 반대한다. 투자는 기업가들의 animal spirit이 결정하는 것이지 저축의 양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화폐수량설에 화폐의 유통속도를 더한 개념이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통화 정책과 같은 현대 거시경제학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임금을 시장의 가격 결정 구조에서 파악했던 고전 경제학자들의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장이란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간의 위계적 사회경제적 관계를 은폐시킬 수 있는 대단히 중립적, 객관적, 그리고 과학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임금 하락과 실업은 존재론적 위협이고 일종의 사회적 살해에 해당할 수 있다. 통화정책을 통한 견조한 인플레이션 정책은 시장의 승자 독식 메커니즘을 완화 또는 우회할 수 있는 20세기 새로운 발명이라고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주의 사회의 경제적 관계도 불평등하다. 프리드먼이 주장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는 당 또는 사람이 그 경제적 관계를 결정하고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이 그것을 결정한다. 시장 가격은 운명 또는 팔자 소관으로 그 의미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치환될 수 있다. 사회주의 경제는 유해한 작위일 뿐 자본주의의 풀평등은 무위적 자연이라고 합리화된다. 그러나,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과연 그 사회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인민이 세상에는 백분위 확률적으로 얼마나 될까?
벽돌책 읽기 모임으로 이 책을 처음 완독했다.
어쩌면 과학적 내용은 그동안 다른 책에서 봤던 최신의 과학적 연구 결과보다 오래됐지만
왜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하고, 칼 세이건이 존경받는지 알게 되었다.
인류와 지구 그리고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그것을 설명하는 학문도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방대한 역사, 사회, 문화적 지식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하나로 꿰뚫는 인류와 지구에 대한 따뜻하고 단호한 애정.
감동이 있었다.
- 24/3/23/토
- 30p
- 마케팅과 접객에 대한 생각
- “훌륭한 접객은 거래의 표면적인 목적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공명감을 만들어냅니다. ~ 어쩌면 대중을 상대로 하는 대중 예술이자 스스로를 향한 개인적인 예술, 즉 명상이기도 합니다.”
- -33p
- 철학가
- 리테일의 희망, 익선동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대표로서 직원들에게 접객 태도에 대한 가이드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이 책이 되었다. 책의 탄생 스토리만으로도 호감이 갔다. 일을 대하는 저자의 신념을 본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그가 얼마나 훌륭한 리더일까 기대감을 품었다. 1장을 읽고나서 저자가 훌륭한 리더를 넘어 얼마나 철학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는 철학가인가 대해 놀라고 있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는 저자 앞에서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대하던 태도들이 떠오르며 반성된다. 예술을 한다는 생각으로라면 나도 변할 수 있을까?
- 41p
- “동일한 수준의 접객력을 전수하려면 표면적인 기술보다 의식의 수준까지 파고들어 알려줄 필요가 있다”
- 24/3/25/월
- 43p
- ”짧은 접객의 순간을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하나씩 쪼개어 상세하게 풀어보면, 그 안에 무수한 아름다움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죽음
- 생리적 쾌락과, 깊은 감동.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의 끝과 실제로 겪게될 죽음으로서의 시간의 끝.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
- 짧은 접객의 순간에 감동을 전달하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 지금까지의 철학가의 이미지가 자기만의 상념에 매몰된 모습이었다면, 좀 더 간절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낙관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활동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에너지에 기대서 절대 그가 멈추거나 지치지를 않기를 바라면서 그 사람을 추종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봤다. 어려운 일을 실현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과 나의 나약하고 나태한 모습이 대비된다.
- 48p
- “지금은 기억이 미화된 탓에 직업을 찾던 과정이 꽤 즐거운 경험이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당시 일기를 들여다보면 그때의 저는 아득하고 캄캄하고 불투명한 시간 속에 잔뜩 주눅든 청년이었습니다.”
- 힘들었구나
- 24/3/30
- p148
-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고민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학창 시절과 성인이 된 이후를 통틀어서 현대사회는 개인에게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구조로 돌아갑니다. 그야말로 멈추면 뒤로 한없이 밀려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화살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우리에겐 어렵고 진지한 고민들을 할 겨울이 없습니다. ”
- “저에게도 겨울은 온갖 상념에 빠져있다가 고작 한 문장 정도 길어낼 수 있을까말까 하는 시간입니다. 대신 그 단단한 한 문장이 한 해 동안 일어날 수많은 선택과 판단의 뼈대가 됩니다. ”
- p161
- ”그러니 행복을 무작정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유예해서는 안 됩니다. “
신좌파의 아버지이자 68세대의 영웅이었던 마르쿠제는 개인적인 매력이 상당했고 대중매체도 잘 활용했다. 막상 그의 책을 읽은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가 자신들의 대변인이라고 여겼다. 나는 기존 질서를 파괴해 급진적 유토피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두렵다.
1962년 민주사회학생연맹이 만든 강령은 ‘우리는 대개 그런대로 편하게 자라서 지금 대학에 다니며, 우리가 물려받을 세상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세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대개 편하게 자란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이상주의에 경도되기 쉬웠고, 아직 세상을 물려받지 못한 지라 세상을 물려받는 자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몰랐다.
새로운 길걷기
신기한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간다. 예를 들면 전쟁 중 민간인 폭격이 청년 군인 살상보다 더 낫다는 주장. 결국엔 위선을 경계하자고 말하기 위해서지만.
책을 읽어야되는 이유 2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