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김승섭
📌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거 하나였다고, 그리고 공부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속 시원한 말로 문제를 두고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고. 그 통찰의 힘이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은 공감에 대해 ’분명해질 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물어봐야, 안다.‘고 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의 김승섭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공감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사람이었다. 차별받는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질문하고, 공부하며 그들이 사회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의 거리감은 무감하지 않고, 덥석 다가오지도 않는다. 고통에 고통을 더하여 울지 않고 묻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 걸음이 귀해서 마음이 뭉클했다.
사회역학이라는 분야는 생소했다. 한국이 얼마나 이런 분야에서 부족한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차별과 소외, 혐오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연구의 다양성과 확장성이 인상깊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차별이나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OECD회원국의 평균 장애인구 비율이 24.5%이고, 한국이 5% 수준이라는 것이 한국사회가 얼마나 장애를 가진 이들을 우리 눈 앞에서 치워버렸는지 실감하게 한다. 사회가 그들 모두를 안을 수는 없겠지만, 존재를 지우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한국요약금지>가 한국의 ’명明’‘이라면 이 책은 한국의 ’암暗‘이 다뤄지고 있었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나의 무지를 발견하는 일은 부끄러웠으나, 정책과 행정, 의료 같은 기본권들이 침해되고 있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기에 다행이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해 조심스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이승섭저자의 외로운 길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희망은 어떤 에너지이고 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다 열심히 해봤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할게 아니라 ”나는 지쳤어“ 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것 같고 그러면 이다음에,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고 아직 그만큼의 좌절을 겪지 않은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또 다른 싸움을 해줄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게 역사는 이어달리기처럼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여우의 계절 / 차무진 mit 그믐
📖 귀주대첩, 속이는 자들의 얼굴
📌 "세상에 없는 것을 믿고, 세상에 없는 것을 생각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이용해야만 저 무형식의 침략자들을 이길 수 있어. 저들보다 더 파격이어야만 이 무서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그게 공자의 말이든, 귀신의 말이든"
전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자의 간절함을 가늠할수 있을까?
고려라는 낯선 나라에 강감찬이라는 역사 속 인물.
3차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20일 죽화, 매화, 각치, 원숭이탈의 여정.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빠져 있던 아들을 위해 그믐에서 냉큼 신청했다. 나에게는 귀주대첩이 <여우의 계절>로 기억하게 될 듯 하다. 첫 장면 애꾸눈부터 푹 빠져 들었다. 초반에 용어들이 낯설어서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건의 등장이 조금 늦게 등장해서 혹시 책이 2편이 있나?라는 합리적 의심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후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어, 남은 책장이 아쉬울 정도였다. 특히 후반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욕망이 혼란스럽게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끼지며, 하늘을 나는 풀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때 좋았다.
📌"욕망이란 그런 거다. 늙은 나도, 젊은 너도 전부 구린내가 나지. 선한 욕망은 없다. 인간은 선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나도 물어보자. 넌 어떤 욕망이 있지?“
원숭이탈의 염원은.
죽은 자를 만나는 것도
매일 아이들에게 연을 날리게 하는 것도
분열을 알고 있으나 묵인하는 것도
밀접자의 정체를 알고 있으나 이용하는 것도
단 한가지 목적을 향한 것이었다.
죽화는 무엇을 바랐을까?
모두의 소원을 이뤄주는 신은 없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냈으니…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크로노토피아 / 조영주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이 세계로 가기 위해 실험 중이야.
나는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불행해졌거든.”
규칙1.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야 10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규칙2. 소원이 돌아가는 순간은 현관문 너머에 사는 인물이 가장 후회되는 때.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 알수 없지만 회귀물, 루프물, 다중우주물이 인기를 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장르다. 이런 장르가 유행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지금 자신의 삶에 불만족하며, 인생 특정 시점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을 상상하고,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로 갔을 때 긍정적일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책의 제목인 ”크로노토피아(Cronotopia)“는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상상의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크로노스(Chronos)‘, 즉 시간을 나타내는 그리스 신과 ’유토피아(Utopia)‘,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말인 ’유토피아‘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작가는 그림자 아이인 소원을 통해 2023년 7월 17일을 반복한다. 엘리베이터 괴담에서 시작된 이 불규칙적인 이동. 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소원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원은 반복되는 상황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자신이 죽음에 이르지 않는 영원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지겨워졌고, 죽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소원은 자신을 학대했지만 가장 사랑했던 엄마의 아들로 돌아가 행복하게 모자로 살고 싶어했다. 어린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결핍. 인간은 10대 까지의 삶의 시간들을 어른이 되어 추억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보상하며 평생을 사는 듯 하다. 그저 대충대충 적당히 적당히 살라는 할머니의 충고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 엘리베이터 5층에서 젊은 여성이 탄다면, 그녀와 함께 내 마지막 순간을 보러 가보고 싶다.
📌"’딱 들어맞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 진실은 좀 더 허술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 가깝다."
🐙🦀🦈🐡🪼🐳
📚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 "착하거나 나쁜 동물 같은 건 없습니다.“
해양 수산물을 좋아하는 위원장님은 잠결에 <문어>를 잡아 먹는다. 덕분에 해양 생물체의 말이 들리는 나는 그와 함께 자주 검은 정장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위원장님은 이제 남편이 되어 언어적 <대게> 노동자의 구조를 위해 나서고, 호갱님이 될뻔한 ‘나’는 포항 죽도시장 터줏대감 어머니 덕분에 신기술 업체 바이오피스트릭스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파리>에게 선택받은 내게 검은 덩어리들은 위험을 경고하는데…
🔖 "Права рабочих существ никто не хочет уважать.
노동하는 존재의 권리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요.”
줄거리만 읽어서는 이게 대체 무슨 횡설수설 어드벤처인가 싶지만,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가볍지 않다. 고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강사법, 노동자, 간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러시아의 제국주의 그 한가운데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어서 타원형 얼굴과 장엄한 몸통이 물 위로 솟구쳤다. 점차 맑은 푸른색이 번져가는 새벽하늘에 비친 고래는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한 점 얼룩도 없이 흑진주처럼 새까맣게 반짝였다.”
외계 생물체가 외계인이 아니라 문어라서 오는 친근함.
작가의 전문분야(러시아관련 배경지식 및 러시아어)의 포진.
문체에서 오는 속도감. 발상의 기발함.
주제의식에서 뻗어나오는 확장성.
사랑스러운 주인공들. 그래서 빅 재미.
📌"해파리성운을 생각했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인간의 소멸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망가뜨리는 자연 앞에서 검은 덩어리는 바다로 돌아간다. 그것은 항복일까? 인간이 이겼나? 아닌거 같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소멸로 향해가는 것일까봐 두렵다가도 이런 순환이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이 별이 마음에 들어 / 김하율
📌"나성은 공장 사람들이 풀빵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니나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입가에 미소가 걸릴 듯 말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표정이었다. 나성은 니나가 조금씩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선한 인간이."
우르알 출신의 감정 없는 외계인 니나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1978년 불시착한다. 형체를 변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액화 물질이 되어 외형은 자연스럽게 가장 고등한 생명체인 인간이 되었지만, 갈길이 멀다.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등의 효율이 극대화시켜 재단사 되기. 실감나는 주먹밥 특강으로 소셜스킬 오욕칠정 배우기. 밥 대신 광합성 하기. 마성의 떡볶이와 라면맛을 알아버린 그녀. 김치 없이 못 사는 외계인! 🤣
의류공장이라는 배경을 1부에서 유쾌하게 그렸다면, 2부는 그곳의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보여준다. 니나의 사랑은 빛났지만 너무 짧았다. 지구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치열함. 처절함. 그리고 2034년 그녀의 아들 장수로 이어지는 노동현장.
읽기 시작하면 멈출수 없는 재미있는 책으로 1978-79년의 묘사가 실감나서 작가님 나이를 살짝 의심했다. 작가소개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맛을 향한 작가님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책 읽으며 라면 유혹당한 책. 🍜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2023
"안쪽과 바깥쪽, 앞 문과 뒷문, 훈육과 학대. 연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손쉽게 구분되는 것 같지만 기준점이 조금만 바뀌어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은 개별적으로 살아있었다. 살아 남은 승주, 학교를 떠난 연수, 날선 재아, 다가가는 장희, 할머니를 기억하는 나, 우유니로 떠나는 은재, 조옥을 기억하는 성자, 레인코트를 끌어안는 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나아간다. 그들의 방향에는 정답이 없다. 잃어버린 것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에서, 그리운 것에서 머물지 않는 듯 보인다. 정지한 것 같은,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인생도 실은 다방면으로 뻗어 나아가는 것 아닌가? 한 가지 길이 아니라 다행이다.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 길을 선택한 것 만으로 큰 용기이며 삶의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대한 말은 어떤 것이든 다 대수롭다."
작년에는 피지 않았던 군자란이 오늘 아침에는 활짝 만개했다 예전 학생때부터 어머니의 가게 앞에을 지키고 있던 수십년된 아이이다
결혼할때 그 어미 군자란에서 한켠을 입양해 왔다
어머니 가게 앞을 지나가는 차들에 참 많이도 받쳐 쓰러졌다 하지만 이 아이는 올해도 당당하게 환한 꽃을 피웠다
나도 올해도 당당하게 나아가야징!!
p.s.식물에 문외한인 나는 잘 키워보겠다고 듬뿍듬뿍 물을 주며 바지런을 떨다 이 아이의 뿌리가 썩는 아픔을 주었다~ㅜㅜ
무지한 주인 아래의 시련 속에서도 올 한해도 눈부시게 꽃을 피워 고맙다~🧡
바람 부는 봄날,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을 읽었다. 바람을 타고 곳곳에 있는 가벼움들이 내게로 불어와 나를 통과했으면 좋겠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인생은 무거움을 추구할 때 보다 가벼움을 추구할 때 더 아름답게 빛난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중략) 당신도 볼 수 있듯,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68쪽>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행하는 <K-북 트렌즈>에서 원고를 청탁 받아 글을 실었다. 원고와 링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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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커뮤니티의 시대다. 운동화 제조 회사에서부터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기업들이 물건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충성도 높은 팬을 한 장소에 모이게 해서 입소문을 일으키고 각종 피드백까지 받는 것이 정보와 상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환경에서 검증된 비즈니스 전략이 되었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다. 출판사와 서점들이 카페와 북클럽을 운영하고, 앱을 만들고,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북클럽 회원들에게 전용 에디션 도서와 굿즈를 제공해 소속감을 주는가 하면 신간 책 표지를 골라달라는 식으로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출판계의 사업 전략과 별개로, 책문화생태계 전체의 차원에서도 독서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의 활동에는 전염성이 있다. 주변에 책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책을 더 읽고 싶어진다. 주변에 축구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축구 경기를 더 보고 싶어진다. 책을 읽는 사람이 축구 얘기를 하는 사람에 둘러싸이면 책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책 읽는 시간을 줄이고 축구를 더 보게 된다. 반대도 성립한다. 독서 커뮤니티가 점점 줄고 있는 독자들을 지키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독서 커뮤니티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예산이 넉넉지 않은 출판사들의 홍보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독서 커뮤니티의 형태와 규모는 다양할 수 있다. ‘한 도시 한 책 운동’처럼 지역 주민들이 같은 책을 읽는 거대한 모임도 가능하고, 학교나 기업 등 기존 조직 기반 위에서 활동하는 동호회 형태의 모임들도 있다. 서로 소속이 다른 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개성의 독서 모임들이 모인 ‘독서 모임의 모임’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누구나 자기 마음에 드는 독서 모임을 쉽게 찾고, 함께 책을 읽을 멤버를 구해 독서 모임을 조직할 수 있는 공간을 ‘독서 모임 플랫폼’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물리적 장소의 제약 없이 누구나 온라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이다.
이 글에서는 사이트의 크기보다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보다 무게를 두고 한국의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중 독파, 플라이북, 그믐, 스테디오 등의 사이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트레바리, 문토, 아그레아블, 넷플연가 등은 회원은 온라인으로 모집하지만 실제 독서 모임은 대부분 오프라인으로 운영한다. 네이버 밴드, 카카오 오픈카톡방을 이용해 독서 모임을 여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이트 자체를 독서 모임을 위한 플랫폼이라 보기는 어렵다. 줌, 네이버 웨일, 구글 미트, 클럽하우스 등을 활용한 화상 혹은 음성 독서 모임은 텍스트 기록이 남지 않고 공간의 제약 대신 시간의 제약이 있다는 점(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해야 한다.)에서 역시 한계가 있다.
메이트와 함께, 완독을 목표로 ‘독파’
독파는 문학동네 출판사가 운영하는 플랫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용자들의 ‘완독 경험’에 무게를 둔다. 아침 기상, 다이어트, 운동 등의 일상 목표를 앱으로 공유하며 함께 도전하는 챌린지 유형의 독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문학동네가 챌린지 도서를 정하면 해당 책을 사거나 빌린 참여자들이 각자 읽어가는 상황을 기록하면서 서로 동기 부여를 해주고,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초기에는 문학동네 신간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지난해부터 다른 출판사의 책도 챌린지 도서로 선정하고 있다.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챌린지와 참가비 3,000원인 유료 챌린지가 있다.
독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저자나 번역가, 편집자 등 대상 도서를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가 ‘독파 메이트’가 되어 참여자들의 독서를 돕는다는 것. 출판사가 운영하는 플랫폼이니만큼 탄탄한 저자 네트워크와 내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독파 메이트는 챌린지 기간 중간에 참여자들에게 ‘미션’이라고 부르는 간단한 과제를 내기도 하고 응원 동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챌린지 도서로 선정했을 때에는 하루키의 오랜 팬으로 유명한 임경선 작가를 섭외했는데 신청자가 900명 가까이 몰렸다. 챌린지 중간이나 끝날 시점에 열리는 저자나 번역가의 화상 북토크도 참여자들에게 매력적이다.
* 〈K-Book Trends〉 61호 - 임경선 작가 인터뷰 바로가기
챌린지 도서는 한 달에 두 차례씩, 한 번에 7권가량으로 선정한다. 책 분량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챌린지 기간은 15일이다. 주로 소설과 에세이 등 문학 도서가 많이 선정되는 편이며, 독파 이용자도 진지한 문학 독자들이 많다. 이 중 일부는 ‘독파 앰배서더’로 임명돼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간편하게 앱을 다운로드 받아 바로 시작이 가능하며, UI가 직관적이고 쉽다. 다만 독파 이용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함께 읽을 도서를 고르고 챌린지 일정을 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문학동네가 가진다.
책 얘기하고 추천 받는 SNS ‘플라이북’
2013년 창업한 플라이북은 ‘책과 사람을 더 가까이’라는 비전 아래 다양한 독서 관련 사업을 시도하는 스타트업 기업이다. 개인 맞춤형 책 추천 서비스에서 시작해 추천 책들을 정기 배송해주는 모델을 도입했고, 오프라인 거점에서 독서 모임도 운영한다(현재는 라이브러리 준비 중으로 잠시 중단 상태이다.). AI로 책을 추천해주는 키오스크를 여러 도서관에 설치하기도 했다. 회사와 이름이 같은 앱 플라이북에도 여러 기능이 있고, 앱 이용자들끼리 이 기능을 이용해 서로 소통하며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기본적으로 앱의 형태는 ‘책 얘기에 특화된 인스타그램’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용자들이 이미지와 함께 올린 책에 대한 감상, 마음에 드는 문장을 메인 피드에 보여준다. 회원들은 메인 피드를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다른 회원을 팔로우하며 소통할 수 있다.
플라이북 앱의 메뉴 중에는 ‘모임’이라는 탭이 따로 있다. 출판사들이 주관하는 서평단, 오프라인 북토크, 일반 회원들이 함께 읽을 사람을 모으는 독서 모임 등 다양한 기관이나 개인들이 함께 할 이들을 이곳에서 자유롭게 모을 수 있다. 독파와 달리 이용자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셈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플라이북 이용자들이 참여한 모임 횟수는 2,500회가 넘는다고 한다. 플라이북 멤버십이나 도서 대여 등 유료 구독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앱을 이용하고 독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IT 업계 출신인 대표가 이끄는 기업답게 이용자들의 니즈를 빠르게 반영하면서 데이터 분석을 철저히 한다는 게 강점이다. 이용자들의 성별, 연령, 관심사, 장르, 리뷰, 검색량 등을 포함한 독서 데이터를 월 평균 10만 건 이상 수집해 분석한다고 한다. 지난해 플라이북 앱 누적 이용자 수는 약 25만 명이며, 이들이 올린 게시 글은 11만 8,000여 개다. 매일 320건 이상의 글이 올라온 셈. 그러나 이 글들을 보려면 반드시 플라이북 앱을 내려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감상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1년 4개월 만에 독서 모임 1,000개 ‘그믐’
‘지식공동체’를 표방하는 그믐은 2022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후발 주자다. 그러나 1년 4개월 만에 독서 모임이 1,000개를 넘어서고 여러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한 북클럽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출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수준 높은 진지한 독자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출판계 인사들로부터 “이런 독자들을 어떻게 모으셨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을 정도.
그믐의 최대 강점은 개방성이다. 간단한 회원 가입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독서 모임을 열 수 있고,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다른 이용자들이 활동하는 모임을 ‘눈팅’하며 볼 수 있다. 회원들이 올린 글들은 그냥 밖으로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검색 엔진들이 잘 찾아낼 수 있게 저장된다. 실제로 검색 엔진에서 신간 도서를 찾으면 그믐에서 열린 독서 모임이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올라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믐의 독서 모임이 출판사들에게도 유용한 마케팅 도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그믐이 빠르게 독서가들의 호응을 얻은 데에는 처음부터 온라인 독서 모임을 가장 잘할 수 있게 기능과 디자인을 설계한 덕이 컸다. 예를 들어 그믐에는 ‘스포일러 방지 기능’이 있다. 소설 독서 모임에서는 감상을 이야기하면서 뒷부분의 줄거리를 노출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런 경우에 이 기능을 사용하면 해당 문장을 클릭하기 전까지는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글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덕분에 뒷부분을 읽은 사람은 눈치 보지 않고 자기 감상을 올릴 수 있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결말을 알게 될 걱정 없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다른 책들을 가상의 모임 책장에 꽂거나 개인 관심 책장에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 수집한 문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게 이미지로 만들어주는 기능 등도 인기다.
이렇듯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오히려 더 깊은 고민이 담겼다.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는 ‘좋아요’ 버튼이 그믐에는 없다. 이용자들이 ‘좋아요’ 숫자를 의식하면 호응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생각을 올리기 주저하게 되고,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야 할 독서 모임에는 그런 효과가 치명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임 기한을 최대 29일까지로 정한 것 등의 개성도 ‘건강한 독서 커뮤니티의 모습’을 염두에 둔 설계다. 진지한 독자들을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그믐에서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작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황보름, 강양구, 조영주 작가 등이 자발적으로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후원과 독서 모임을 함께 ‘스테디오’
스테디오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운영하는 텀블벅이 만든 월간 멤버십 후원 서비스다.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가 모임을 열면 팬들이 유료 구독하는 방식으로 해외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왔다. 독자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독서 모임도 이 플랫폼을 이용해 열 수 있다. 실제로 ‘발행인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읽기 모임’, ‘미라클 모닝 독서 100일 챌린지’ 등의 독서 모임이 개설되어 있다. 아직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유료 모임을 누구나 쉽게 열 수 있고 결제 방식도 간편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수익성을 입증하기는커녕 아직 개념 정의도 명확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을 소개하는 일이 다소 부담스럽다. 임계점을 넘지 못하고 활동이 뜸해진 몇몇 커뮤니티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의 잠재력만큼은 거대하다고 믿는다. 앞서 설명한 독서 커뮤니티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해낼 수 있는 장(場)이 바로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자들의 목소리가 텍스트로 기록돼 충분히 쌓이면 바로 비평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은 오프라인 독서 모임들과는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 책을 주제로 온라인 공간에서 피어날 수많은 대화들을 즐겁게 기다린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서울대 김승섭 교수의 신간입니다.
소수자들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질문해 온 보건학자 김승섭의 그동안의 연구를 소개합니다.
의학을 전공한 후 질병을 치료하는 보통 의사가 아닌 질병의 사회적 맥락을 연구하는 보건학자 김승섭은 자신의 공부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라고 합니다.
소수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갇히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장에 일상에 많은 편견과 차별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편견이 차별로 나타남을 깨닫게 됩니다. 말로는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암묵적으로 차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2016년 예일 대학교 아동 연구소에서 유아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비디오에 등장하는 백인 남아, 백인 여야, 흑인 남아, 흑인 여아의 모습을 보고 문제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고 발견할 때마다 버튼을 누르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문제 행동도 안 했지만 선생님들은 문제행동을 찾으려 하는 대상을 흑인 남아를 주시했습니다. 이는 암묵적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유아기 시절 흑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흑인 유아가 백인 유아에 배해 유아원을 그만둘 확률이 3배 이상 높은지 해석하는 단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암묵적 편견을 말해줍니다.
차별을 알아차릴 정도로 민감하면 좋으련만 차별을 차별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암묵적인 편견을 가지고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편견을 갖고 있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상식이 아닌 편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부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속 시원한 말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하지만, 인류가 유사한 문제를 두고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고, 그 통찰의 힘이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고.
18쪽
우리의 암묵적 편견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부라고 말해줍니다.
지식적인 공부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할 때입니다.
2장의 측정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소제목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는 대구모 조사에서 연구 참여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데이터가 없습니다. 트랜스젠더의 의료 이용에 대한 논물이 전무하고 한국의 의과대학 교육에서 트랜스젠더 환자는 존재하지 않았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의 규모 자체의 자료도 없는 실정에 그들을 위한 의료정책을 논의하기도 힘든 현실인 것입니다. 더구나 현실에서 트랜스젠더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자체가 쉽지 않아 병이 생겨도 쉽게 병원원을 찾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르다고, 소수라는 이유로 없는 존재로 취급하곤 합니다. 지워진 존재라는 말처럼 옆에 있으면서도 전혀 보지 않으려 지워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2장에서 트랜스젠더나 3장의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오랜 세월 사회에서 배워왔던 것이죠.
이런 생각과 편견은 소수자인 그들을 스스로 혐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한국 사회가 나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말한들 받아들여질까?"같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침묵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잘못된 것인지 의심하게 되고 어는 순간 스스로를 혐오하는 단계에 이른다.
223쪽
차별, 불편의 문제를 당하는 수는 늘 대다수가 아니라 소수입니다. 그래서 힘이 약하고 자신의 편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다는 생각은 더 나약하게 만들고요. 특히 동성애자의 경우 말을 꺼낸다는 것이 더 어려운 환경이니 더 할 거고요. 그렇게 침묵하고 그 침묵이 자기혐오가 된다는 것이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책에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들을 고통을 모른척하고 살고 있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른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바라봐 주고 질문하고 응답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 그렇다면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응답을 잘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
309쪽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양한 이들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