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꼭 읽어야 한다. 꼭 알아야 한다.
장애인, 이주민, 아동, 여성.. 팬데믹을 겪으며 수많은 차별과 고통을 당했던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이들을 알수있던 계기.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ㅠㅠ
아동. 여성. 파트는 다시 읽어볼 예정.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가 나아지기 위한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 및 제시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그 부분이 좀 아쉽다. 필진들도 그 부분 부족하다고 언급해서 더 좋았다. 알고 있는 이들. 노력하는 이들. 나아가려고 하는 이들. 정말 멋지다!!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짧은 소설안에 평범함과 이끌림이 있다.
물음표가 생략되어있고, 자세한 설명 없이 상황과 감정이 스스륵 지나가지만 그 빈 공간을 내가 채우기도 하고 그냥 넘기기도 해서 더 좋았다고 해야 할까.
침착한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짧은 소설이라 더 좋고 유디트 헤르만 작가님의 다른 소설도 궁금해.
조금 어려운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60년대부터 차례로 여성.페미니즘. 운동과 흐름에 대해서 조금은 정리할 수 있었고 잘 모르던 단어들(미소지니, 백래시 등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알아갈 수 있는 독서였다!
현대여서 아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니까 더 흥미로웠음!!
읽을 책 리스트 추가추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몰랐던 서브플롯의 시작과 메인플롯의 진짜 삶. 이야기속으로의 여행.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다시 서브플롯과 메인플롯이 교차되면서 (언니.엄마.친구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기억상실)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치유하며 사용된 서브플롯과 그 속에있던 인물들이 현실 세계에서 연기자들이었음이 밝혀지고 만남이 나오면서 약간의 혼란과 지루함이 느껴졌다.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은 상태 ;;;
조우리작가의 추천서 : 황모과라는 히든플롯
이 책을 열어보기 전에는 최근 워낙 가볍게 읽을 만한 독서에세이나 철학입문서들이 많이 나와서 목차에 나와있는 쟁쟁한 이름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종류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장부터 이 추리소설 작가와 작품은 친숙하지만 이에 대한 이 책의 작가의 생각은 낯설고 작가가 이 작품과 연관해서 언급하는 철학 개념들은 더 생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실은 예전에 읽었던 현대철학 입문서나 가이드들을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철학가와 관련 논문들을 많이 찾아보기도 해가며 읽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려 겨우 완독했다.
서구의 모더니즘의 태동에 반발하는 움직임으로 전통적 추리소설이 나왔다면 변증법적으로 이보다 더 나아간 형이상학적 추리소설 등 다양한 추리소설 작품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래서 그런지 추리소설의 시초인 에드거 앨런 포부터 시작해서 차츰 시대를 따라 나아가며 일본 및 우리나라 추리소설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다루었다.
추리소설도 서구 근대화에 의해 나와서 그런지 서양 근현대 철학의 개념들을 많이 가져오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나 최인훈 등 동양의 사상적 토대, 그리고 서양과 다른 유교 및 불교적 사유의 차이, 한글의 원리에 담은 은유 등 단지 서양철학에만 멈추지 않고 분주히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생각이 돋보인다. 그렇다. 추리소설은 변두리에서 시작하고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문학이니까.
이런 틀을 벗어나거나 깨뜨리는 성격 때문일까 보르헤스, 오스터, 에코 등 여러 작가들과 지젝, 들뢰즈 등 여러 사상가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경계선에서 인사이더가 되려고 애쓰지 않고 도리어 밖을 향해 나아가는 당돌한 탐구심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그런 변두리를 탐험하는 대리만족이 독자를 너무 매혹시킨 나머지 단순 오락이라는 낙인을 받은 추리소설의 위상은 독서인구가 나날이 낮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낮은 듯하다. 한국 추리소설 자체도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턱도 없이 낮지만 이런 대접 받는 추리소설에 대해 이토록 깊은 사유를 해보고 또 독자들에게서도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하지 말고 생각을 더 많이 해보라는 골치 아픈 작가가 국내에 또 있을까. (마치 훈장님이 생각 좀 하고 살라고!하고 지휘봉으로 머리를 두드리는 듯)
작가 분은 철학 전공으로 너무 박식하고 폭 넓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하다보니 가끔 논지를 따라가기 힘들 때도 있고 심지어 문장에 나온 개념들의 태반을 이해 못 할 때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이나 문학 평론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마치 당연한 상식인 듯 어물쩍 넘어간다. 다행히 인터넷의 세상에서 관련 사상가의 논문들이나 후에 이어진 글들을 읽으면 문맥으로 얼추 가늠할 수 있기도 했지만 어쩔 때는 이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무슨 의도로 여기서 갑자기 저런 말을 한 것일까?하는 지점들도 있었다. 특히 12장은 다른 챕터들보다 특히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조차 감이 안 올 때도 있던 나에게 가장 혼란스럽고 힘겨운 챕터였다. 반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서는 별 설명이 없던 반면, 인쇄 측의 실수 때문에 주석이 날라갔다는 4장 빼고는 주석마저도 단순 참고문헌 정도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상세한 코멘트들이 마치 이 자체로도 또 다른 철학 에세이의 토대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책 후반으로 갈수록 내가 받은 인상은 제목에서 호명된 철학가들 외에도 다른 철학가들의 사유와 추리소설 작가의식이 더 돋보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9장 서미애와 칸트에서는 서미애의 소설이 칸트의 초자아보다는 그와 뫼비우스 띠의 대치면에서 나아가는 사드와 더 통하는 것 같고, 10장의 황세연과 슬라보예 지젝에서는 황세연이 지젝보다 지젝과 결별하는 로티와 닮아있다. 8장의 류성희와 한나 아렌트에서는 아렌트의 정치공간보다는 칸트의 취미판단에 더 밀접하고 11장 정유정과 조르조 아감벤에서는 아감벤보다 알랭 바디우의 입장이 정유정의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것 같아보였다. 이건 훈장님이 강론하시다 삼천포로 빠지시는 걸까? 얼핏 보면 그렇지만 샛길은 또 다른 길이 되고 길은 모두 서로 통한다.
처음에는 제목에 나온 사상가의 이론만이 작가의식과 관련된 것 같다가도 또 헤겔의 변증법적 합?또는 지젝이 말한 오독을 거쳐야 도달하는 반보다 더 한 반?이 나오듯 결국 다른 사상가의 이론에도 다가가는 반전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전 챕터에서 다음 챕터의 추리소설의 예고편이나 복선처럼 다음 사상가의 생각들이 살포시 엿보일 때가 많았다. 이런 것에서 나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을 때 범인이라고 처음에 다들 의심했던 사람이 red herring이고 결국 전혀 뜻밖의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그런 구조가 연상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12장에서 나온 '내포의 누적이 필연적으로 외적 대상 - 쌓인 증거가 필연적으로 범인k를 가리킨다는 것-을 지시한다는 것을 의심하게 한 것처럼 백휴 작가님은 이를 통해 어떤 사유를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실은 이건 우리가 항상 '당연시'했던 관점의 틀을 무너뜨리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화론과 생명과학의 발전에 의해 우리가 동물이든 인간이든 종에 대한 분류가 무너지고 새로운 눈으로 생물을 바라보게 된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친숙한 움벨트(umwelt) 속의 분류에서 벗어나고 그 틀을 도끼로 내리찍기 위해 철학과 문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시된 개인적/사회적 구조를 파헤쳐보면 다른 이면이 있고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조금 더 심층적으로 나아가보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각 챕터에 나온 작가와 철학가의 매칭이 실은 동어반복인 a=a’가 아니라 변항인 x의 함수 a=f(x)=x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백휴 작가는 뜻밖의 인물이 범인인 게 밝혀지는(또는 아예 mystery로 남고 밝혀지지 않는) 것처럼 제목에서 지목된 철학가의 사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초월한 변항의 사유에 바통터치를 하고 더 나아간 독자의 사유도 기대하는 게 아닐까?
개념에 의해 강제적으로 단순히 내포와 외연이 1:1로 대응하는 것보다 무한대로 외연이 증폭될 수 있는 변항감각과 가능성을 내포하는 추리소설 장르를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보길 바라면서 쓴 이 책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책도 심심풀이 땅콩같은 책도 아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진정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범인을 추리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노력과 고통(?)을 즐기는 이들이다. 그렇게 공 들인 사유만큼 얻어낼 수 있는 짜릿한 반전적이고 변항적인 사유를 위해 오늘도 추리소설 작가들은 머리를 쥐어짜고 독자들과 승부하는 것 같다.
표지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에드거 앨런 포의 The Raven 삽화인데 이에 붙인 시의 구절이 참 좋다.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nevermore!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게 너무 당연하게 넘겨짚는 생각을 갈까마귀는 부정부사 한마디로 깬다. Nevermore!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그런 자동적 조건반사같은 생각을 죽여버려야 하지 않을까?
제목만 보고 뽑았다가 - 가장 많이 쓰이는 한자들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해서 - 표지를 보니 부제가 왕조 이름 12개로 푸는 중국 문화의 수수께끼다. 이건 이거대로 뭔가 있겠지 하고 그냥 읽기로 했다.
한자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고, 특히 몇몇 한자는 아예 나라 이름이 뜻으로 나와있으니까 별 생각없이 넘겼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친 듯이 예를 따지고 남의 나라 국호까지 참견하던 시절에 무려 나라의 이름을 만드니 정말 두뇌를 풀가동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책이 그렇게 두껍지도 않고 초창기 한자들 그림들도 많이 들어있으며 토막지식이 많으니 재미도 있다. 한수를 넘어 은하수까지 포함하는 한나라, 전혀 예상 외의 뜻이 있는 당나라, 부수 설명하다 줄줄이 나오는 건물 관련 한자들...당연히 옛 사람들의 예 사랑 오행 사랑도 나오고 신기한 것들 많다.
단지...다 그런 건 아니다만 한국에 번역된 중국 역사 서적들은 상당히 감정을 실어 서술하는 책이 좀 많고(거의 매 페이지마다 느낌표가 있던 책도 있었지...) 이 책은 번역자분이 간지럽다고(...) 본문 구절을 빼고 그 부분을 주석으로 넣은 부분도 있을 정도로 중화사랑의 기운이 넘쳐난다. 내가 사학자도 아니다만 몽골인들은 중국인의 DNA를 품고 있었을 거라고 하는 부분 보면 좀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깨알 지식과 더불어 역자분 말마따나 옆나라에 대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사실 제일 눈이 번쩍 뜨인 건 '정부 기관 공문은 방송체(仿宋體)고 인장은 송체인데 누가 당신에게 내민 공문에서 이게 안 지켜지면 사기다' 대목...그러나 이 책 원서가 2015년에 나왔고 범죄는 나날이 발전하는 걸 고려하면 이 부분도 이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억해두는 걸로!
‘창조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20세기에 창조적 거장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의 삶을 살핀다. 가드너가 뽑은 인물 7명은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T. S. 엘리엇, 마사 그레이엄, 그리고 간디다. 활동한 분야나 성격이 제각각인 위인들도 찬찬히 뜯어보면 어떤 공통점들이 확실히 있기는 한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파우스트적인 계약’이었다. 이들에게는 위대한 성취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한 시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