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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내가 이책을 읽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 가끔 그리고 자주 일어난다. 일단 책은 들었지만 프루스트가 나를 어떤 방식으로 초대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줄 지 몰랐기 때문에 1권의 벽을 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책을 계속 붙들고 있게 했다. 모든 일은 처음 시작이 어렵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게 가장 어렵듯이. 이제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프루스트가 내게 보여줄 세계가 기대된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게될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나의 최애템>

제가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제가 쓴 글인데, 공유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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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글쓰기 숙제


<나의 최애템>


​나에게는 중요한 3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고품격 독서 팟캐스트 "책걸상"이다. 책걸상은 책에 관한 걸쭉하고 상큼한 이야기의 준말이다.

두번째는 지식공동체 "그믐"이다. 그믐은 장강명 작가님과 뜻을 함께하는 크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온라인 플랫폼이다.

세번째는 "더불어숲"이다. 현재 나는 "더불어숲"의 간사로 일을 하고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온라인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실체가 없다. 세번째는 재정도 있고 사무실도 있고 오프라인에 실체가 있다.


나는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꽤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가끔은 책을 좋아하는 건지,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와 사람들을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를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책걸상을 알게 되었고 꾸준히 듣고 있는데, 책걸상의 애청자들이 카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추진력 좋은 나는 졸지에 네이버 책걸상 카페의 운영자가 되었다. 회원은 조금씩 꾸준히 늘어서 어느덧 700명을 바라보고 있다. 책걸상 카페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책으로 하나가 된다. 어디서도 할 수 없는 책 이야기를 실컷 마음껏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 네이버 책걸상 카페이다.


지식공동체 그믐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인데, 역시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이트이다. 책에 관해서라면 어떤 홍보도 가능한 곳이라, 나는 더불어숲의 처음처럼 책을 함께 읽는 모임도 현재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더불어숲에서 진행될 담론 세미나 홍보글도 올려놓은 상태이다. 나에게 그믐은 책걸상과는 또다른 형식의 책을 통한 소통 창구이다. 그믐 사이트를 구경하다보면 유투브가 떠오르기도 한다. 책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다양한 모임과 이야기들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강태운 선생님이 그림에 대한 책을 선정해서 그믐에서 함께 읽기 모임을 해보셔도 좋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더불어숲. 현재 나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월급은 누구에게나 아주 소중하지 않은가? 나에게도 그렇다. 더불어숲은 책걸상이나 그믐과는 다르게 재정이 있고 물리적인 사무실이 있고 거기다 나에게 매달 월급을 주는 곳으로, 어찌보면 나의 어떤 꿈이 하나 실현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냥 생각으로만 머물거나 보이지 않는 온라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모임을 할 수 있고, 대면으로 가능한 활동들이 진짜로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더불어숲이 참 좋다. 책걸상과 그믐은 아직 현실의 땅에는 발을 내딛지 못했다면, 더불어숲은 사단법인으로 현실의 땅에 이미 한걸음 성큼 내딛은 셈이기 때문이다.


나의 최애템을 이야기 하려다보니, 내인생에서 중요한 세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온라인에서 진공상태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중요한 과학실험을 할때,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져야 오차가 최대한 적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나는, 아 나는 진공상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자나 테크니션은 아니지만, 그들이 그러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잘 돕고 지원하는 역할은 누구보다 내가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네이버 책걸상 카페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믐에는 파트로 참여해서 일을 하고 있고, 더불어숲의 간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나의 세가지 최애템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바로 내 인생이라고. 내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세가지 최애템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할 생각이다. 이 세가지 최애템들이 세상에서 더욱 더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열심히 일을 하고 싶다.

흐르는 강물처럼

책을 읽는 동안 나역시 빅토리아와 함께 성장해 나갔다. 그녀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 지 모르듯 내 인생 역시 그러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오늘도, 내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은 앞으로 나아간다. 강물이 어떤 길에서 갈라질지, 어떤 물줄기와 만날지, 혹은 수몰되어 어딘가에 계속 머물게 될지 그것은 흘러가고 있는 강물 자신도 모른다. 그저 흘러갈 뿐.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975, 976.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2 (조엘 디케르)

2013년에 문학동네에서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고 이번에 새 출판사에서 앞의 알파벳 두 개를 떼어버린 제목으로 다시 번역해서 냈다. 나는 문학동네 판으로 읽었다. 구성은 복잡하지만 술술 읽힌다. 1권을 읽을 때는 자꾸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같고 지나치게 미스터리가 많아 보여서 불안했는데 2권에서 아주 멋지게 마무리한다. 33년 전 수사가 부실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것도 1970년대라는 배경이나 진상을 알면 상당 부분 납득된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첫 번째 물결,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 정치학의 쟁점들 by 정희진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무지, 무능, 무의식, 무신경, 네 박자를 고루 갖춘 남성 사회는 연일 '역차별'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호소하고 있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정희진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ㅡ꼉 픽


서구 여성사를 개척한 거다 러너의 말대로, 여성/사회적 약자들은 자기 동료의 글을 모르고/읽지 않고 '초기 개척자의 사명'을 반복한다. 여성의 글은 인용하지 않는다. 여성의 지식은 제대로 계승되지 않는다. 그러니 언어의 발전이 없다. 나는 이 문제가 사회적 약자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본다. 



저출산의 원인만큼 오도된 문제도 없을 것이다. 저출산은 출산 기피가 아니라 결혼 기피와 만혼의 결과이다. 그러나 정당, 진보 · 보수, 여성 단체 할 것 없이 출산 기피에 해결책을 맞추고 있다. 



동시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해하는 이유는, 남성은 성장 과정에서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 관리에 서툴고 인간관계에 무능하게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변화한 현실 앞에서 대응 또한 미숙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정확히 말하면, 피해가 아니다. 여성에 비해 남성은 남을 배려하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획득된 능력'[이다. 이제까지 이런 '능력' 때문에 편하게 살았지만 갑자기 시대가 달라졌다. 예쩐에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남성성과 결합한 추진력을 강한 리더십으로 인식했다. 요즘 이런 캐릭터는? 실업자가 되기 좋다.



비혼은 외롭다고? 그러면 결혼한 여성은 외롭지 않은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 외로울 것인가이다.



 대상과 대상화는 다르다. 누구나 대상일 수 있다. 대상화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다.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은 착하고, 여성을 비난해서는 안 되고, 아무리 여성이 범죄를 저질러도 남성의 범죄보다 약하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성주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자원이 되지 않는 사회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상이다.



장애인의 지위는 당대 비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서로 고통을 경쟁하면서 약자에게 "당신들, 예전보다 나아졌잖아!"라고 분노하고 있다.


둘째, 성희롱이 성적 수치심에 관한 문제인가, 인권과 폭력에 관한 범죄인가이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문제라면, 수치심의 의미는 누가 정하고 수치심은 어떤 종류의 피해인가. 성희롱이 수치심을 주는 범죄라면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는지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것 자체가 이미 가해자 중심의 사고이다.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누가 만든 것인가. 수치심을 느꼈는지, 분노를 느꼈는지는 누가 정하는가. 여성들은 대개 분노를 느끼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표출되지 못한 분노나 복수심은 다른 인식(감정)으로 전환된다. 놀라움, 역겨움, 굴욕감, 두려움, 모욕감 따위가 그것이다. 남성들 간의 폭력처럼 여성들도 수치심보다 '성적 빡침'같은 분노를 느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 갈등을 수습해주는 범퍼 혹은 '총알받이'로 이용되어 왔다. 여기엔 진보 · 보수, 좌우, 파시즘 · 자유주의가 따로 없다. 1980년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어머니'들은 언제나 시위대 맨 앞에 섰다. 전투 경찰이 '어머니'에게는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고, 폭력을 쓴다면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모성=평화'라는 성 역할 이데올로기가 동원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일부 진보 진영이 크게 오해하는 개념 중 하나가 '대화'와 '폭력'이다. 이들은 대화와 폭력을 대립시키면서 자기 자신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자칭한다.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폭력 대신 대화를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삶에서 대화로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평화학자 신시아 인로는 "완벽한 대화는 군대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합의 가능한 대화는 명령뿐이라는 얘기다.

 '을'은 '갑'과 말이 안 통하는 일상을 산다.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저항하는('폭력을 쓰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의 미투 운동에 대한 반감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목소리'에 대한 불안, 당황, 겁먹은 심정의 산물이 아닐까. 

 한국 남성들은 새로운 무지의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고, 남성의 심기에 민감한 미디어는 이들의 퇴행을 '반격'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



 나는 이 사례들이 모두 동일한 정치적 맥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폭력인지 연애인지, 동의였는지 강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남성들은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 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상대 여성이 사회적으로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그 여성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여자는 여자일 뿐"인 것이다. 여성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라 '몸'일 때, 모든 여성은 개인의 정체성, 능력, 지위에 상관없이 남성의 성 행동 대상으로서 개별성이 없는 동일한 존재가 된다. 언제든지 몸을 기준으로 대체 가능한 물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노동자와 자본가'로 나뉘지만 여성은 '어머니와 창녀'로 구분된다.



20대는 취업과 진로 고민이 지배적인 시기다. 20대의 젠더 관계는 다른 세대와 쟁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20대 남성들이 징병제에 불만을 터뜨리고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징병제는 국가를 상대로 문제 제기해야 할 사안이지, 군대에 '못 가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책임질 일이 아니고, 여성가족부 장관이 걱정할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한편 실제로는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군 입대에 부정적이다. 징병제 자체를 검토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한국의 일부 남성 문인들은 자신을 예술가가 아니라 역사 서술의 주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생각이 여성에 대한 폭력의 구조 중 하나다. '내가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민족을 대표하기 때문에' 타인은 없는 존재이거나 존재하더라도 그/그녀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 그래서 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폭력의 원인이다. 



 성기는 작은 차이다. 작은 다름을 본질로 만드는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자궁이 있어서 출산을 하고 저절로 육아 전문가가 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여성이나 여성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기분 나쁜 이방인의 허무한 도망 게임

작가나 작품에 대한 예비 지식도 없이,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읽을 책 목록에 추가했던 책이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얇은 두께의 소설 안에 이렇게 직시하기 괴로운 인간상들과 부정적인 세상 -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다 주인공의 시선 속에서 왜곡된다 - 이 빼곡하고 다 읽으니 힘이 빠진다.

흘러가는 방식에서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불쾌함은 이방인의 뺨을 치고 남는 수준이다. 병적인 긍정도 불쾌하지만 모든 것을 곡해하는 시선은 따라가는 것도 괴롭다. 그러나 여기 나온 군상들은 결국 작가가 경험하고 느낀 사람들이니 - 상상력이 섞여있겠지만, 저자와 역자 후기를 보니 그렇게만 생각할 수가 없다 - 씁쓸하기만 하다. 고생스런 집필 끝에 작가는 이런 허무를 독자들에게 알아서 판단하라 내놓았고, 판단도 소화도 어려워 참 괴롭다. 대단한 책이지만 봄날 마음을 사정없이 어지럽히는 책이었다.

도망자
도망자
현대 세계의 창조: 영국 계몽주의의 숨은 이야기

근대 세계의 창조는 영국 계몽주의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 영국이라 함은 스코틀랜드 등을 포함한 브리튼을 의미한다. 저자 로이 포터는 계몽주의 의학사가 전공이라고 소개된다. 2000년에 출판된 책이고 한국에서는 2020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번역은 누가 봐도 정말 꼼꼼히 잘된 작업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영어 실력이 정말 출중한 번역자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가끔 생경한 어휘들을 한자어 附記(부기)없이 댕그러니 던져 놓을 때의 무성의인지 부주의는 조금 아쉬웠다.


일반적으로 ‘계몽주의’는 영국에 앞서 프랑스 계몽주의가 대세처럼 들린다. 특히,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이 말 그대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들 프랑스의 이단자들은 때로 본국의 박해를 피해 브리튼 섬에 자신들의 안위를 담보해줄 은신처를 구하기도 한다. 브리튼 섬은 1688년 명예혁명을 지나고 나면 법적으로 완전한 언론, 출판의 자유가 공식화되고 그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그 자유가 침해되지 않았다. 당연히 이들 프랑스의 반항아들에게 관찰되는 영국은 羨望(선망)일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생각에 깊이 각인되었다. 때문에 저자는 책 제목처럼 근대 세계는 영국 계몽주의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함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브리튼 제국으로의 전환에 결정적 사건으로 명예혁명, 1707년 스코틀랜드와의 통합, 7년 전쟁(1756-1763) 세가지를 꼽는다. 그리고 그중에서 명예혁명과 함께 그 사건에 가려진 채 진행된 네덜란드로부터 선진 금융시스템의 도입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영국이 제국으로 성장하는 근간이 되었다고 밝힌다. 1694년 영란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의 설립은 동인도 회사와 같은 기업 그리고 전쟁에서 효율적인 자원, 자본의 집중적 배분을 통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쟁국들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게 만들어 준다.시기적으로 브리튼 계몽주의는 명예혁명으로부터 프랑스 혁명을 전후의 시기의 사상적 조류를 말한다. 이 시기 영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었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못했고 그것이 프랑스 혁명의 결정적 배경이 된다.


대륙의 계몽주의와 차별되는 브리튼 계몽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경험주의’다. 저자, 로이 포터는 영국의 계몽주의와 동프로이센 시골 구석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대비시킨다.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 치세의 프로이센 국가를 이성과 합치된 완전 국가라 인식한다. 칸트가 살았던 퀘니히스베르크는 현재 러시아의 고립된(발트해, 폴란드, 에스토니아 사이에 낀)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해당하며 융커계급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농노제가 지배적인 사회경제 체제였다. 칼 마르크스가 항상 이야기 하듯 “사회경제적 하부 구조가 정치, 사상과 같은 상부 구조를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명제는 대륙의 관념론을 이 경험주의 철학과의 차별을 더욱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대륙의 관념론은 인간의 인식과정이 선험적이라고 주장한다. 先驗(선험)a priori적이란 의미는 우리의 유전자 내에 윤리적 도덕 규범 등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가 의식적으로 발현된다는 주장이다. 도덕과 윤리가 생득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영국인은 신생아가 완전 백지 상태로 태어날 뿐, 경험과 관찰을 통해 그 빈 도화지를 그려나가는 것처럼 윤리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또 인간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인간은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감정의 세트를 통해 인식론적 발전을 이룬다는 주장을 편다. 


이 책을 읽기 전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다가 그만 두었는데 도덕감정론의 내용 역시 인간의 도덕감정이 어떻게 생기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스미스는 도덕을 이성과의 관계가 아니라 감정과의 관계로 얽는데 바로 이런 특징이 대륙과 대비되는 영국적 사유의 특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인식론의 전개는 프란시스 베이컨, 존 로크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12세기 로저 베이컨에게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동감sympathy과 관찰자의 동의를 통해 행위의 적정성으로서 도덕, 윤리를 파악했다.


1687년에 발표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 혁명에 정점을 찍는 서물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근대 자연과학이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창조의 神秘(신비)를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해 그 객관적 인과관계 등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을 문명의 발전으로 모사, 응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계몽주의자들에게 ‘自然(자연)’이란 개념은 상당히 중요하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에서 밝힌 것처럼 자연에는 그 자체에 합목적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철학 역시 이 자연의 관찰이라는 의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 이전은 도덕 경제 사회였다. 경제활동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며 대부분의 영리 활동은 악으로 단죄되었다. (이는 조선 사회가 성리학적 교리로 사농공상 사회가 강제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세 기독교 사회 역시 상업 활동을 경시 또는 죄악시했다) 반면, 중상주의 사회의 활력과 풍요를 목격한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시장의 원리,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인식하는 혁명적 의식 전환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9세기 초 켐임브리지의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는 부자들의 사치와 재정지출을 옹호하는 유효수요Effective Demand 이론을 주장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유주의 경제철학은 시장경제라고 하는 자연의 관찰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그 기본 관념은 어설픈 작위보다는 경제의 자연적 순환의 힘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 또는 인간의 소화작용이나 혈액순환이 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듯이 그 자연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케인스 경제학은 그 소화 기능의 이상 또는 동맥경화 현상이 있을 때의 수술과 약물 처방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자유방임주의는 생체의 면역력에만 온전히 기대는 처방전이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욕망의 해제, 해방이야말로 영국 계몽주의 사회의 본질에 해당한다. 아담 스미스는 이성reason, 합리성ration 이런 단어 대신에 도덕을 sense, 즉, 감정, 감각에 연결시킨다.(그래서 the theory of moral sense라고 했다) 감가적 쾌락과 유쾌함, 즉자적 행복에 가중치를 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는 인간의 성이 해방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그것을 긍정하며 인간의 감정적 정체성Identity를 확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에서 세속 국가로 이성에서 감정으로의 시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래스머스 다윈Erasmus Darwin은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다. 그는 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 등을 통해 후일 그의 손주가 이룬 지적 성취의 토대가 되는 작업을 했다. 그는 생물학을 연구하며 자연계의 경쟁을 관찰하며 사회 진화론의 기초가 되는 주장을 펴게 된다. 아담 스미스가 관찰한 시장 경제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중상주의 시장경제는 중세 봉건 경제로부터 새로운 경제 생태계로의 전환이었을 것이다. 경제의 주체, 지배자가 변화하며 새로운 경제의 생태 질서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한 관찰을 기록한 것이 아담 스미스의 평생의 노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이 포터의 책은 전문가를 위해서 쓴 책이라 하기에는 너무 산만하고 여러가지이지만 깊이가 없어 보이고 나 같은 layman에는 명료한 임패트가 없다. 따라서 나의 독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 보다는 읽고 싶었던 내용을 다소 억지로 찾아 내려 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굳이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었던 듯 하다.


내가 읽어내려 했던 영국 계몽주의 철학이 올바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유주의 경제 철학을 ‘정의’와 동의어로 혼동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 혹은 결론을 갖게 되었다. 번영과 풍요에 이르는 경제라는 자연 관찰의 결과물인 것이지 그것을 평등과 연결시키는 것은 완전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의 축복은 원래 공평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별한 아침

눈을 뜨니 6시 고요한 집이다.

슬그머니 걸어가는 동네 고양이도 볼 수 없고

멀리서 지나가는 이웃 어른의 걸음걸이도 볼 수 없는

7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허공을 날으는 새를 보는 것도 아주 가끔

나는 내 생활 속에 푹 파묻혀 살 수 있다.

가끔 엘리베이터의 도착 소리나 출발 소리에

사람들 움직임을 알게된다.

며칠 뒤에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한달 간 한다.

나는 한달 동안 먹을 양식을 비축했다.

나는 외로움에 치를 떨거나 허기진 마음에 고통 받거나 하진 않는다.

나는 내가 생존 할 수 있는 물질과, 바느질 꺼리와, 글단풍 꺼리, 티비가

함께 하면 사는데 어렵지 않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지점은 딸의 아픔이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비의 부족으로 그 고통은 송곳처럼 나는 찌른다

병원에 가면 딸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도구나 시스템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을 걱정한다.

딸이 아프다고 하면 나의 걱정은 병원비의 걱정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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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그 당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나를 생각한다.

의사 앞에서 눈 속에 눈물을 가득 담고 딸의 상태를 듣고

내 딸의 고통이 어서 끝나길 바라며

다시 병원비를 어떻게 마련할 지를 생각하던 나를 본다

생존의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나는 어떻게 비쳤을까

나도 그 당시의 두려운 나를 보고 싶다

나같이 두려운 분이 없기를 바란다

사회 안전망으로 병원은 누구나 의료 시설을 사용할 수 있고

치료는 평등하기를 소망한다

딸은 잘 자라서 좋은 남편도 만났다

서로 이해하고 숨기는 말 없이 소통하는 그런 사이로 살고 있다.

나도 좋은 삶을 만들어 가려고 글을 쓴다

글은 나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돈하는 최고의 스승이다.

글이 좋다.

꼭 기억했으면 하는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포도밭출판사에서 나온 희정작가님의 신간 <뒷자리>는, 무사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인 '책번개' 선정 도서이다. 이런 이야기, 사회 속에 작은 목소리들, 알아야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 귀 기울여 들어야만 들리는 그런 이야기들은 혼자 읽고 책장에 바로 꽂아두는 식의 독서로는 뭔가 모자라다는 기분이 든다. 마침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책번개에서 이 책을 선정하였기에, 곧장 참여 신청을 했다.

모두가 주목하는 세상의 양지 말고, 그늘진 곳에서 포기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 중에는, 익숙한 이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몰랐던 이야기들도 많았다. 어려서, 사는 곳에서 멀리 있어서 몰랐다기에는 소리쳐 외친 그 세월이 꽤나 길고, 언론에서 나서서 보여주지 않았다고 탓하기엔 그저 내 주변 말고는 관심없던 시간이 길었다.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건

어떤 자부심이 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당장은 마음이 동해 싸움을 기록 한다.

아주 작게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희망을 품기도 한다.

그로써 내 세상만 안온하다는 부채감을 덜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쓰는 글이 한순간 필요에 의해 소비된다는 생각을

지우진 못했다."


뒷자리, p.6 들어가며 中


오랫동안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글로 담아온 희정작가님 마저도 부채감을 느끼는 마당에, 그저 글로 읽고만 앉아있는 독자의 부채감은 말할 것도 없다. 싸움이 일어난 곳의 뒷자리에 직접 머물러 온 분들에게 읽는 내내 계속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책번개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사람들의 감상 역시 나와 비슷했다.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었고, 싸움은 너무 많은 곳에서 오랫동안 느리고 힘겹게 겨우겨우 이어 나가는 듯 보이고, 상쾌한 결론을 맺어보이는 싸움은 없는것 같아 다들 막막한 기분을 느낀듯 했다.

하지만 또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몇몇의 분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해 낸 일을 자랑스럽다 여기는 분들, 그들의 목소리들을 꼼꼼히 기록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았고, 느리고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이 전의 싸움 덕분에 현재의 싸움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는 말에 동의했다.

계속해서 모를 수 없도록, 이런 책을 만들어 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책장을 덮었다. 부족하지만 나는 계속, 외면하지 않고, 알도록, 최소한 읽기라도 할 생각이다.

뒷자리 -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뒷자리 -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TCE journals

https://journals.sagepub.com/doi/epub/10.1177/17456916231205186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3758/s13423-022-02176-z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002/jcad.12437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bullied-brain/202208/the-theory-constructed-emotion-can-better-prepare-us-the-dark-triad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pdf/10.1002/jcad.12437


https://www.annualreviews.org/content/journals/10.1146/annurev-clinpsy-081219-115627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09637214221098055


https://www.nature.com/articles/s42003-022-04324-6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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