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8
'세설'이 소개될 때 '오만과 편견'이 언급되어 읽기 시작
세설과 비교하자면 논리적으로 자기 소신을 펼치는 당찬 엘리자베스 때문에 더 통쾌하고 재미있었음. 두고두고 맘에 담고 싶은 문장들도 넘 많아 다 읽고 다시 메모를 위해 반복독서. 또한 유럽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저격!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문장들:
(오만)
P31 종종 오만이 허영심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사실은 아주 달라. 허영심 없이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평가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바와 더 관련이 있거든
P78 허영심은 확실히 단점입니다. 하지만 오만함은...정녕 정신적으로 우월한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그런 경우라면 언제든 그 오만함이 잘 제어될 겁니다
(편견)
P268 그녀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다...자신이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고, 편견을 품었고, 어리석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별력이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스스로의 능력을 가치있게 여기던 사람이 나였는데! 너그럽고 순진한 언니를 자주 무시하던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아니 비난받아 마땅한 일로 허영을 부렸다니! 이런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나 창피한 일이야! 창피한 게 당연하지! 사랑에 빠졌어도 이보다 더 비참하게 눈이 멀진 않았을거야! 하지만 내 잘못은 사랑이 아닌 허영심이었어! 처음부터 한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고 들뜨고 다른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한다고 화가 나서, 두 사람이 관련된 일에서 편견과 무지에 빠져 이성을 몰아내다니. 정녕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에 대해 전혀 몰랐던거야.
2022.2.5
'세설'은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이라고 한다. 운좋게도 책을 읽는 요 며칠 눈이 자주 내린다. (하지만 왜 책 제목이 세설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의 첫 느낌은 문장이 길고 어찌나 자세히 얘기하는지 꼭 우리엄마랑 전화통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곧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니 그 다음은 네 자매 일상에 대한 일일 연속극을 보는듯했다.
시대는 급격히 변해도 사람 사는건 고만고만 한건지, 1920~30년대 배경이지만 소설 속 여자들의 결혼은 나의 결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생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아는 집안 혹은 보증된 집안의 누군가와 결혼하기를 원하셔서 의견충돌이 빈번했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참 차분하니 상황을 잘 넘기던데 현실속 난 좋아하는 사람과 왜 결혼 할 수 없는지 울분에 차 부모님과 참 많이도 싸웠었다. 결국 연애 15년만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밑에 여동생은 나 결혼하길 기다리다 지쳐 먼저 결혼하였다.
나의 결혼과정이 힘들어서였는지 소설 속 셋째의 결혼소식을 기다리며 책을 읽었고 마지막 신혼집과 신혼여행 계획을 들으며 기뻐서 박수를 쳤다.(하지만 셋째는 예비신랑이 맘에 들어서 결혼하는건지, 그냥저냥 조건이 괜찮아서 결혼하는건지 아리송하다)
※소설 속 배경인 오사카는 십년전에 친구만나러 갔다 온적이 있어 괜히 친숙하다.
※소설 속 셋째가 양띠인데 나도 양띠다. (양띠는 팔자가 사나워서 결혼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책에 나온다 ㅜㅜ)
2022.1.26
작년에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한달에 책 한권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퇴사 후에 열심히 읽으리라 하며 북클럽 추천책은 열심히 다 사놨었다.
퇴사 이후에 시간이 정말로 널널하니 이번달 추천책은 진작에 끝냈고 다음 책을 고민하던 중 이번달 추천 책 리뷰에 누군가가 '실격한 자'를 보고 '완벽한 아이'가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역시 쉬운책이 아니었다. 책 표지와 제목만 보고는 소설인 줄 알고 또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는 동안 공포와 슬픔을 여러번 느껴야 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추천사에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이유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번 쯤 겪었을 비슷한 경험들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역시 엄한 엄마 밑에서 언제나 1등만 하던 동생을 따라잡아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었다. 집에만 들어가면 생기는 열등감과 실패감은 사춘기 내내 우울증으로 이어졌지만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취직을 하며 여행가방 하나에 짐을 싸서 독립을 한 후 내 자존감은 서서히 회복이 되었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결혼 후에나 회복되었다. (지금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저자의 인사말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동안 상상할 수 없는 힘든 여정을 걸어왔겠지만 너무나도 멋지고 당당한 여성으로 따뜻한 미소까지 건네주어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깊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2022.1.22
17년 11개월을 다닌 회사를 그만둔지 22일이 지났다. 이제 나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는 사회와 동떨어진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잠식해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만 보고는 나 같은 사람에 대한 변론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쳤다.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한번도 진지하게 들여다본적이 없는 사회의 어두운 편견들이 서술되었고 담담하게 논리적으로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한 변론은 가볍게 살아온 나한테는 큰 무게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강서구 장애인 학교 설립 과정에 무릎꿇은 부모들에게 '쇼하지마'라고 외쳤다고 한 사람에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이 누군가는 무릎을 꿇어야 하고 누군가는 호통을 칠 수 있게 하는 것인가.
문득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았다.
다행히 학교는 설립이 되었고 그 과정을 담은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영화상영금지요청을 했다고 한다. 반대했던 사람들도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데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을 한다.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느껴졌다.
책을 덮으며 현실에서 나도 얼마든지 실격당한 자가 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당당하게 변론하고 싶다. 그리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싶다. 그래서 변화시키고 싶다. 그러므로 이 책을 열번이상 읽어야 한다
연간 1인 독서량이 3.9권이라는 뉴스가 얼마 전 나왔다.
관심이 가서 함께 발표된 정부의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살펴보다 '그믐' 발견. 비대면 독서 모임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독서! 문화! 진흥!에 온라인 북클럽만한 게 또 있겠습니까.
김연수 작가 아저씨의 책들에는 '인생을 두 번 산다/살 수 있다'의 말이 자주 나온다. 사실 그의 책을 여러 권 봤음에도 그 말은 좀체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된 거 같다.
실제 삶을 살아가며 한 번, 이미 쓰여진 문장으로 한 번 더 산다. 그리고 두 번째 삶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덮은 뒤로 김연수 아저씨의 문학 인생을 다시 한번 더 살아 내고 싶어졌다. <꾿빠이, 이상>도, <일곱 해의 마지막>도 모두 다시 펴고 싶다.
번역판의 부제 - 본문에서 잠깐 언급되는 - 가 참으로 근사하다. 영어판의 밋밋한 제목(The Photographer's Wife) 보다 멋지다. 책 소개만 보면 사실 긍정적 전개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식민지 시대의 피지배층 + 여성 인권 바닥인 시대 직업에 도전하는 여성 + 마누라의 재능을 시기하는 남편이면 완전 삼진 아웃...) 그렇게 끔찍하지 않고 술술 넘어가서 놀랍기도 하다.
나폴레옹 때부터 신물이 나게 유럽 애들 샌드백 신세던 이집트의 1890년대부터 약 십 여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시리아계 기독교도 이집트인 부부는 만나고. 멀어지고, 성장하고 퇴화하고,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온다. 시작부터 흔하게 생각하는 식민지의 궁핍과는 거리가 있고, 주인공 도리스가 사진가로 성공하면서부터는 거의 벼락부자인데다 중간중간 묘사되는 이집트의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읽으면서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욕이 저도 모르게 입에서 샌다만, (그 잘난 백인의 부담 드립 여기서도 나온다. 하긴, 지금도 나오는 드립인데 쓰여진 당시에는 얼마나 유행했을지...) '근동제국민들' 씹다가도 도리스 당신은 예외라고 허둥대는 식으로 주인공은 차별도 피한다. 기실 불행의 씨앗은 남편 하나...
이렇게 써놓으니 무슨 엄청 가벼운 소설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내 문장력이 모자란 것뿐...역자 후기에 미셸 투르니에도 강추했다고 나오며, 작가의 영문판이나 한국어 번역 작품이 적어서 그렇지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나온 다른 작품들이 많고 평가도 좋다. 일단은 이집트 사람이 직접 쓴 이집트 소설이라는 데서, 르포가 아니고 소설이다만 좀 믿음이 가기도 하다. 사람이 이민을 가면 자연스럽게 ○○계 ○○인이 된다만, 이민이 흔하지도 않은 시절 시리아계 이집트인이란 개념도 생소하고 그 안의 대가족들의 모습도 신기하다.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첨단 기술에 눈뜨고 더 다가가려고 공부하고 매혹되는 모습은 분야와 상관없이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고...마지막에 남편이 아주 비참하게 페이드아웃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속터지는 시대(중간에 파쇼다 사건을 놓고 이집트에 살던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좀 다뤄지는데, 아무리 소설이라도 죄다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아갈 길을 찾으며 방황하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는 사람의 태도인가 싶고. 도리스에게 화가 나는 부분도 있고, 담장을 넘어간 맘루크와는 다른 결정을 했다는 게 아쉽지만, "사로잡힌 사람"의 결말은 이런 것일지도.
읻다 넘나리 2기 (240410~240419)
❝ 별점: ★★★★
❝ 한줄평: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다.’ (「몰락하는 조국···」, p.251)
❝ 키워드: 분열 | 신 | 밤 | 그리스 신화 | 고전 | 비가 | 송가 | 찬가 | 낭만주의 | 고전주의 | 종교 | 영감 | 계시 | 예언자 | 합일 | 영원 |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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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읻다 넘나리 2기 세 번째 도서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집 『생의 절반』을 읽었습니다.
✦ 『생의 절반』은 읻다에서 출간된 은유 작가님의 번역가 인터뷰 산문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번역가 중 한 분인 박술 님이 번역하셨는데요. 그 책의 인터뷰에서 ‘시 번역은 결과물이 시여야 하죠. 결과물이 아름답지않으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원본보다 아름다워도 돼요. (p.236-237)’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번 시집을 읽는 게 기대되었어요. 독일어는 알지 못해서 독일어 원문과 비교하며 읽을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요. (참고로 은유 작가님의 책 해외문학을 즐겨 읽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 문학 번역이라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요!)
✦ 읻다 시인선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이번 시집은 다른 시집들에 비해 쉽게 읽히는 시집은 아니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그리스 고전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오랜만에 운율과 형식이 있는 시를 읽은 느낌이라 재미있기도 했어요! 독일어를 전혀 알지 못해도 단어를 보며 운율을 찾고, 또 번역된 단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읽는 게 좋았어요.
✦ 저는 횔덜린이 탑에 갇혀 스카르다넬리라는 서명을 남긴 최후기 시들에 가장 마음이 가더라고요. 현재 시제만 있고, 특정 인물이나 신이 등장하지 않아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이름도 시간도 없지만’(p.366) 계절의 흐름만은 알 수 있는 시들. ‘서른일곱의 나이로 탑에 들어와 일흔셋의 노인이 된’(p.368) 횔덜린이 탑 안에서 ‘내다본’ 것은 아마 계절의 변화였겠지요. 그야말로 ‘생의 절반’을 탑 안에서 보내며 횔덜린은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해진 ‘영원’에 가까운 시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곳에 머무르며 삶과 죽음의 구분조차 무의미해 결국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다.’ (p.251)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구절이 더 와닿았어요. 횔덜린을 광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는 시대를 너무도 앞서 간 예언자이자 선지자였던 것은 아닐까요. 『횔덜린 서한집』을 함께 읽으면 더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읽어보고 싶어 졌어요. [📝24/04/23]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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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이러하다. 재화가 주어지고, 어느 신이
몸소 은총을 내리더라도, 그는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직접 짊어져야만 하는 것. 이제 그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부르려니,
이제 마침내 그를 위한 말들이 꽃처럼 피어나야 한다.
/ 「빵과 포도주」 부분 (p.2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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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처럼 신과 싸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고통이다. 또한 이 삶을 질투하는 불멸도, 또 불멸을 나누는 일도 고통이다. 그러나 인간이 여름의 얼룩으로 뒤덮이는 일도 고통이다, 어떤 얼룩에 완전히 가려지는 일은! 이는 아름다운 태양이 행한 바, 그녀는 만물을 기른다. 장미를 들어 그리하듯, 빛살로 돋우며 젊은이들을 인도한다. 그러니 오이디푸스가 겪은 고통은 마치 가난한 남자가 무언가 부족하다며 탄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오스의 아들이여, 그리스의 불쌍한 이방인이여!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다.
/ 「몰락하는 조국···」 부분 (p.249,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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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완결작
✎ 「운명신들에게」
✎ 「빵과 포도주」 ⛤
✎ 「도나우강 원류에서」
✎ 「디오티마를 잃은 메논의 비가」 ⛤
2부 | 찬가
✎ 「생의 절반」 ⛤
✎ 「추억」 ⛤
✎ 「그리스」
3부 | 파편
1장 찬가 파편들
✎ 「언어」
✎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
2장 핀다로스 파편들
✎ 「진리에 대하여」 ⛤
✎ 「세월」
3장 시학-철학적 파편들
✎ 「몰락하는 조국···」
4부 | 메아리
✎ 「사랑스러운 푸르름 속에서···」
✎ 「봄」 (p.263)
✎ 「봄」 (p.267)
✎ 「가을」 (p.291)
✎ 「우정」 ⛤
✎ 「내다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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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240302~240413)
❝ 별점: ★★★★★
❝ 한줄평: 너무 아름다울 땐 눈물이 난다
❝ 키워드: 사랑 | 돌봄 | 그리움 | 슬픔 | 단어 | 이야기 | 마음 | 무채색 | 흰색 | 회색 |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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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권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저는 시인이 쓴 산문집에 속절없이 스며들고 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도 그렇게 제 마음에 스며들어버린 한 권이었습니다.
✦ 무채색의 단어들이 무지갯빛이 되어 마음에 꽃을 피우는 산문집이었어요. 이번 산문집도 아껴 읽느라 완독도 오래 걸렸고, 필사도 많이 하면서 충분히 정리하고 탐미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글 안에 담긴 시인의 마음뿐 아니라 글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어요.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제목처럼, 너무 아름다울 땐 눈물이 나더라고요.
✦ 읽으면서 이렇게나 좋았는데, 너무나도 그립고 보고픈 사람이 생기면 시인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오더라도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습니다. [📝 24/04/19]
+ 이번엔 산문집 먼저 읽은 후에 시인의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읽고 있는데 이 순서도 좋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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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분은 뭘까. 왜 빛이 났을까. 어쩌면 사람도 아주 더디게 녹고 있는 눈송이가 아니었는지.
/ 「눈」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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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잠든 엄마를 옆에서 꼭 끌어안을 때 그 부피, 그 형상, 엄마의 골격. 그 순간 나는 출렁이는 물의 마음이 되어 엄마를 위해 쏴쏴 나를 버릴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부피와 질량 너머에 있다.
/ 「욕조」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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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생존과는 거리가 멀지만
때때로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걸 시라고 부를 수밖에. 무용하고 아름답고 명랑한 것을. 사랑스럽고 환하게 세상을 흔드는 것을. 파도를, 율동을, 운동을, 드가를, 춤과 리듬을, 시라고 뭉뚱그려 부를 수밖에.
/ 「시─이야기 1」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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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글
들어가며 │ 색색마다 거두는 게 사랑이라
1부 │ 많이 깎을수록 곡물은 새하얘진다
✎ 「검은 닭」
✎ 「눈」 ⛤
✎ 「눈사람」
✎ 「능陵」 ⛤
✎ 「돌부처」 ⛤
2부 │ 무의 땀은 이토록 흰빛이구나
✎ 「막걸리」
✎ 「목덜미」
✎ 「목화」 ⛤
✎ 「백묵白墨」
3부 │ 너무 보고플 땐 도라지를 씹어 삼킨다
✎ 「비구니」 ⛤
✎ 「빛」
✎ 「설맹雪盲」 ⛤
✎ 「수국」
4부 │ 날 수 있음에도 이곳에 남은 천사들처럼
✎ 「욕조」 ⛤
✎ 「윤 3」 ⛤⛤
✎ 「윤 4」
✎ 「시─이야기 1」 ⛤
✎ 「메뉴─이야기 6」
✎ 「입술」 ⛤⛤
5부 │ 조끼는 뚫린 채로 사랑을 해낸다
✎ 「지방紙榜」 ⛤
✎ 「편지지」 ⛤⛤
나가며 |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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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240407~240407)
❝ 별점: ★★★★
❝ 한줄평: 겨울바람을 따라 자유로이 흐르는 마음
❝ 키워드: 이별 | 믿음 | 사랑 | 마음 | 외로움 | 혼자 | 바람 | 망각 | 기억 | 비밀 | 거짓 | 새 | 기다림 | 끝
✦ 제주의 겨울을 온몸으로 느낀 것 같은 작품이었어요. 최유진, 오세정, 오로라, 혹은 전혀 다른 그 어떤 이름을 가지든 화자가 ‘가장 적합한 혼자의 상태’를 찾아 ‘사랑에 이기거나 지지 않고 화합’할 수 있기를. 자유로워지기를.
✦ 너무나도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사랑’은 어쩌면 오로라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올 겨울엔 이 소설을 들고 겨울 제주를 만끽하고 싶어 지네요. [📝 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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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무언가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믿는 게 과연 가능할까. 얼마나, 어디까지 믿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믿음은 둘째 또는 셋째구나. 어쨌든 첫째는 될 수가 없구나. 믿음은 사랑보다 슬프겠구나······ 생각하며 믿음, 믿음, 믿음 중얼거리다 보니 믿음과 미움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았다.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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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천천히 창으로 다가간다. 먼바다로 나간 어선의 집어등이 가로등처럼 늘어서 있다. 너는 발코니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밤의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모호하고, 너는 거짓말의 자유를 생각한다. 이 섬에 너를 아는 사람은 없다. 네가 거짓을 말해도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너는 이 섬에서 최유진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 이름을 물어본다면 ‘오로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로라는 한때 네가 무척 갖고 싶었던 이름.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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