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0
책제목만으로도 벌써 나의 기억 속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들이 소환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20대에 6.25전쟁을 겪으시며 할아버지를 잃으시고, 곧이어 첫째딸도 잃으시고, 남은 둘째아들을 홀로 키우신 굳건한 나의 친할머니.
정년퇴직 후에는 절살림을 도맡아하시며 관세음보살같이 언제나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셨는데..유독 기억나는 건 연애에 엄한 부모님 몰래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잘생겼다며 좋아해주신 할머니 덕분에 눈물 날 정도로 기뻐했었던 20대 초반의 어린 내 모습이다.
다혈질인 외할아버지와 똑같이 다혈질인 아들 넷, 딸 하나를 키우시며 폭풍같은 나날들을 보내셨기 때문인지 눈물이 많으셨던 나의 외할머니.
외갓댁이 바닷가 근처라 어렸을적에는 여름방학 때마다 놀러가곤 했는데 헤어질 때는 언제 또 보냐고 우시곤 했다. 그럼 어린 나도 눈물이 나곤 했었다. 특히 나를 다섯살때 잠시 맡아서 봐준 적이 있었는데 하루동안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만날 때마다 그 얘기를 하시며 우셨다. 무섭고 무뚝뚝하게 느껴졌었던 엄마와는 대조적인 여린 외할머니에게 어린 나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책 속에 있는 따뜻한 언어들이 가슴 속으로 퐁당퐁당 들어오는 마법도 경험한다.
'오후의 노란 햇빛에 떠도는 먼지'(p56)
'노르스름한 햇볕이 비쳐드는 콩댐장판'(p74)
'예쁜 사람'(p77)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p101)
'저런' (p125)
'장혀'(p157)
'무심'(p189)
"근데! 거 뭐 될 필요는 없다"(p199)
'만남의 색채는 언제나 봄 햇살 같은 노란빛'(p211)
갑자기 추워진 요즘, 내 마음의 따뜻한 난로가 되어준 책이다.
2022.8.12
책 앞 표지에는 큼지막한 '자유'라는 글씨가 호수를 가로질러 숲으로 향하고 있다. 아니면 숲에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열심히 '자유'를 찾아 해맸지만 '사랑 '만 발견했다. 이상하다. 다시 뒤적거렸지만 '자유'의 의미는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자유'를 깨닫지 못한 답답함에 한숨을 쉬며 책을 덮으니 '당신이 원하는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보인다.
자유에도 종류가 있었나...찾아보니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에세이인 '자유의 두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와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로 나누었다고 한다. (소극적 자유는 개인이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의도나 행동을 자신의 마음대로 혹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적극적 자유는 국가 운영에 참여하거나 국가에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나무위키)
자유를 쪼개서 어느 한 자유만 실현되면 자유롭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자유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그나마 내가 알고 있던 '자유'의 개념이 불안정해졌다.
2022.7.22
우울이 습관이 되버렸던 나는 웃는걸 좋아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난 후부터 거의 울지 않는다. 대신 우울의 잔상으로 인해 슬픔에 쉽게 전이되기에 슬픈 영화, 책, 음악은 멀리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제목만 봐도 벌써 슬프다...무슨일이 있었기에 마트에서 울어야 했을까...겁이 난다..읽고 나서 우울의 늪에 빠질까봐..그래서 마음에 방패막을 두르고 읽었다.
슬픔을 멀리하고 읽으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하고 섬세하면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저자에 감탄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헤매고 있으며..그래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여전히 어리둥절한 내가 보인다.
그러는 사이 책에 펼쳐진 미셸 자우너의 삶은 나의 마음의 방패막을 가뿐히 침투하였다.
2022.6.29
'어떤 책을 아는 데 6분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비독서’, ‘탈독서’, '내면책’, '화면책’, ‘유령책’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머리속을 배회하다 6분 후에 깊은 수면속으로 빠져버리는 경험을 여러번 반복하였다. ‘책과 거리를 두라’는 혹은 ‘이 책은 이제 그만 읽고 무슨 책일지 상상하라’는 작가의 고도의 전술인가? ...라며 '탈독서'의 충동을 극복하고 높은 곳에서 둥둥 흘러가는 텍스트를 잡아 '각각의 문장에 멈춰 서서 나 자신의 책이 될만큼 세세하게 탐구할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독서노트에 생소한 단어들의 개념을 정리하고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타나는 문장을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거의 책의 1/3을 옮겨적은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몽테뉴가 얘기한 `알아볼 수 없는 텍스트 조각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불확실한 나' 자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대면하는 것이 오히려 작품들의 풍요로움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니 용기를 내본다. ‘책의 가로지르기’ 가 익숙해지며 '나와 책의 접점'을 찾는 속도가 빨라진다.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불완전한 독서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해방이 되며 책으로부터의 자유가 샘솟는다.
2022.4.13
책을 다 읽고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지식을 다루고 있는 책의 리뷰는 어떻게 써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색인은 16.5페이지인데 한 페이지에 평균 40개의 단어가 표시된 것으로 계산하면 약 660개이니 어마어마한 지식이 이 책에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 책을 읽었다고 당연히 이 지식들이 나의 뇌로 흡수되지도 않을 텐데..책에 들어있는 지식들을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과학자로 빙의되어(??) 몇가지 실험해보았다.
첫번째로 책을 읽다 남편을 만나면 책에 나와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얘기해준다. 가령 오자크 호수의 미주리주가 허블의 고향이라던지 (최근 남편이 넷플릭스의 '오자크' 미드를 보고 넘 잼있다고 극찬) 다윈과 링컨이 같은 해,같은 날 태어났다던지(사주보길 좋아해서) 멕시코의 한 농부의 땅이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지각활동으로 400미터까지 솟아올랐다던지(시골에 땅이 있어서)등을 해줬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나도 신나서 책에서 에피소드를 찾아서 얘기해주다보니 절로 잡학지식이 쌓이는듯 했다.
두번째는 책을 읽으면서 퀴즈를 만든다. 남편한테 시험삼아 지구와 태양사이의 거리를 물었다. "몰라"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이 축구공만한 오징어의 이름을 물었더니 "내가 그런것까지 알아야 하니?" 한다. 조카들은 좋아할지도 모르니 따로 정리해두기로 한다. 대신 답을 미리 외워두어야 하니 이 또한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번째는 남편한테 질문을 받는다. 우주나 지구에 대해 궁금한것을 물어보라고 하였다. 지구의 축이 변할 가능성이 있는지..해수면이 높아져서 일본이 물에 잠길 가능성이 있는지..유튜브에서 봤던 걸 질문한다. 아주 쉽게 설명하고 (역시 전문용어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와서 책을 들춰본다. 담에 더 멋있게 설명하리라.
네번째는 뒤에 색인을 보며 (분명 읽었겠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 처음 보는 단어를 고른 후 옆에 표시되어 있는 페이지로 다시 가서 읽는 것이다.
결론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나의 뇌로 흡수되기까지는 과학자들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2.3.20
최근 '쥐'를 통해 전쟁의 고통을 간접경험한 후로.. 전쟁의 폐해를 알면서도 왜 전쟁은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여기저기 들춰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작년 김영하 작가의 북클럽 라이브 방송에 참여하기 위해 읽었었는데...그 땐 동물과 관련된 사회성을 검증하는 실험 결과들이 신기했었던 기억만 나고 사회적 문제와 심도있게 연관짓진 않았던 것 같다.(벌써 기억이 가물가물...이래서 복습이 필요함) 그래서 이번에는 '전쟁은 왜 끊임없이 발생되는가'...'다정하게 지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여러 사람 종들 중에 현재 살아남은 사람종(호모 사피엔스)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으로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친화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만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것으로 집단에 위협이 되는 외부인을 비인간화하여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인류가 상호 적대감에 빠지는 경향이 얼마나 강한가 하면, 실질적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거의 공상이라 해도 무방할 더없이 하찮은 차이만으로도, 사람들은 배타적 열정에 불이 붙어 최악의 폭력적 분쟁을 일으켜왔다.
각기 다른 견해를 향한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협력하기보다는 다시 여러 파벌로 분열했고, 상호 적대감으로 불타올랐으며, 이것이 서로를 괴롭히려고 억누르려는 경향을 강화시켰다.' -제임스 매디슨(p240-24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학자들도 집단 간 갈등 감소 방안에 대해 연구하였고 유일한 방법은 다른 집단들이 자주 접촉하고 교류하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사회적 유대감을 넓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전쟁을 최소화하려면 각 국가의 지도자들끼리 친목을 자주 다지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인데,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 독재자가 지도자가 되지 않도록 시민들의 정치적 힘 발휘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 어제 시리아 용병들이 월급과 기타 위험수당을 받기 위해 러시아 전쟁을 지원하러 간다는 기사를 읽었다. 인간의 본성 외에 경제적 목적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같다.
2022.3.12
첨엔 만화책이라 좋아했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줄무늬들로 이루어진 다소 음침한 분위기와 역사 속 가장 잔인한 유태인학살 이야기가 맘에 걸렸지만...중간중간 만화책답게 유머가 숨어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나의 편견이었고 이 책은 흑백다큐에 더 가까웠다.
첫번째는 스토리에 치중하며 읽었는데 뒤에 있는 해설을 읽고난 후, 그림 하나하나 표정과 배경을 유심히 보며 다시 정독하였다. 해설에 이 책의 그림들은 장면 하나를 위해 50번의 스케치를 하고, 그 중 선정된 스케치를 다시 4-5번의 덧붙여 그리기를 한 후 최종 잉크로 완성한 것이며, 총 작업시간은 8년이 걸렸다고 하였다. 무심히 읽었던 나 자신을 자책하며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다.
천천히..장면 하나하 나를 살피니..전혀 다른 독서가 되었다..유태인 학살의 공포가..생사의 불안함이..이별의 슬픔들이..항상 도망다녀야 하는 쥐들과 오버랩되며 나에게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위해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아버지가 항상 그립다는 말이 여러번 쓰여 있어 더 가슴이 저린다.
2022.3.4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고 철학입문자가 된듯한 기분에 '자기결정'에 다시 도전하였다. 첫 페이지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존엄성'과 '행복'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가지 질문을 한다. 난 잠시 생각하다 다시 조용히 책을 덮었다...😑
마침 에릭 와이너 아저씨가 행복에 대해 탐구하며 여행을 했다고 하니 도움을 청하였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나도 내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도 회사에서의 불행의 기운은 계속 맘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때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수 있게 해준 것은 해외출장과 여행들이었다. 낯선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나를 행복하게 했었는데 어학연수를 가겠다며 사표를 낸적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은 집에만 있어도 행복하다. 불행의 요인이 없고 내 맘이 편하다면 어디에서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헨리 밀러의 말처럼 '사람의 목적지는 결코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이 책은 10개 나라의 행복과 불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삶의 문화들을 소개해준다. 소소하지만 특색있는 삶의 문화들에서 행복을 위해 배울 수 있는 점들은 많았고, 이를 잘 받아들인다면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도 행복을 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22.2.27
13세, 10세, 6세의 아이들이 있는 둘째 동생이 저번주에 이사를 했다. 짐정리도 도와주고 방학인 조카들과 놀아줄겸 3박4일을 동생네서 지내게 되었다. 조카(어린이)들과 이렇게 오래 같이 지낸적은 처음이어서 이 세명 조카 어린이들의 낯선 세계에서 즐거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특히 호기심 많고 저돌적인데 고집까지 센 6살의 조카 어린이와 하루에도 몇번씩 같이 놀기-만류하기-달래기-화내기-먹을걸로 관심돌리기 등을 하며 어린이 세계의 어려움을 처절히 느끼게 되었다.
(육아하시는 모든 분들 존경합니다)
어린이가 없는 우리 집으로 온 후 지난 3박4일을 되돌아보며 어린이라는 세계의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북클럽추천책이라 사 놓기만 했지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조카들 세계 체험 후 불타는 호기심에 단숨에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불타는 호기심은 작가님의 어린이들에 대한 존중으로 인한 따스한 존경심이 되었고, 조카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내 못난 어른의 모습에 대한 반성이 되었다.
어린이들에 대한 존중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데 도움이 될 이 책을 태어난지 삼개월된 애기가 있는 막내동생 부부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다음날 6살 조카는 영상통화를 걸어와 자기가 만든 레고를 자랑하고,
이모부 보고싶다고 이모부랑 얘기하고, 이모집 보고싶다고 구경도 하고, 이모부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고싶다고 인사까지 드리고 끊었다.❤
2022.2.16
'세설'을 읽고, '세설'과 비슷하다는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소설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였다면 이제 '자기결정'을 읽을 차례라고 한다. 하지만 어렵다. 철학을 좋아하지만 단편적이고 얕은 나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작년에 읽다 만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를 다시 꺼내들었다.
철학을 설명하지만 현실적이고 솔직한 내용들이 재미있다. 각 철학자마다 구체적인 주제를 설정해주어 핵심을 파악하기 용이하게 해주었고 더불어 관련된 지역까지 소개해주어 여행하는 기분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소로의 월든을 또 다른 관점으로 확장시켜 주었다. 주체적인 삶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인생은 탐험이라며 숲으로 들어간 소로를 동경하며, 나도 나만의 월든을 찾기 위해 몇 년 동안의 계획 후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아직은 완벽한 자급자족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주변을 다각도에서 정성들여 관찰하며 삶의 확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니 실천 가능하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 외 소개해준 철학자들도 한명씩 깊게 알아가며, 얘기에 귀기울이며, 그들의 삶에 동참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