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6
몇년 전 '월든'을 읽고 퇴사 후의 삶의 방향을 정하였다. 소박하지만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생산적인 삶을 살겠다고...
삶의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인 실현방법을 찾던 중 루시드폴이라는 가수가 제주도에서 감귤 과수원을 하며 음악을 한다는 방송을 보았다. 자연에 의한 생산과 음악에 의한 생산을 통해 창의적이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마침 시부모님께서 귀농하셔서 자두 과수원을 하고 계셨다.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 나도 과수원을 하며 그림이나 글쓰기를 통한 창의적 활동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근처에 땅을 사고 나무를 심었다.
애기 나무들은 이제 두살~ 세살이 되었다. 난 퇴사한지 10개월이 되었다. 애기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 올해 조금이나마 과일이 달렸다. 난 퇴사 후 아무변화가 없는 것 같아 요즘 살짝 우울해졌다.
그래서 과수원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직후 구매한 '기적의 사과'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무농약 사과를 재배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9년을 버티며 노력한 끝에 일본 최고의 사과를 만들어낸 농부의 이야기이다.
우울해진 기분은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나에겐 어떤 신념이 있는가.
그리고 그 신념을 위해 얼만큼 노력했는가
2022.4.26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은 후 집에 빌브라이슨 책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책을 구매할 당시에는 빌브라이슨이 누군지도 모르고 책표지가 이쁜 유럽여행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음..근데 좀 당황스러운 여행기다...술과 19금 유머와 공상을 좋아하고 싫은 것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냉소와 욕을 날리는 한 아저씨의 현실 여행기를 읽으면서..첨엔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얘기해도 되는거야..???..하다 점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불친절한 유럽인들에 대해 욕을 할 때면 어찌나 속시원하던지...바보같은 실수를 하거나 공상을 하는 부분은 넘 재미있어서 남편한테 낭독도 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니 빌브라이슨 아저씨와 인간적으로 친해진 느낌인데...이 책을 먼저 보고 '거의 모든것의 역사' 책을 봤다면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봤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2022.4.11
집에 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책의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2018년출간).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래 세계적 화제가 된 과학교양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책을 읽으려고 할 때마다 이 문구가 보이니 '시간의 역사'를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이 책도 집에 있어 더더욱 읽어야만 하는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하지만 '스티븐 호킹'이라는 이름만 봐도 벌써 두려움이 앞선다..천재 과학자가 하는 우주 설명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안 그래도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팔렸지만 가장 읽히지 않은 책이라는 역설적인 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후 개정판인 이 책은 페이지마다 그림이 1개 이상 들어 있어 두려움을 달래준다는 것이다.
과학을 전공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논문이나 과학서적을 읽는 나만의 요령이 생겼는데 일단 죽 읽으면서 모르는 용어를 정리해나간다. 대신 그림이나 그래프를 설명하는 부분은 유심히 본다. 이렇게 1회독 한 후 정리된 용어의 정의를 다시 훑고 책의 처음으로 가서 그림이나 그래프만 골라본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숙지하면 내용을 다 이해못하더라도 저자의 의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그림도 많은데 뒤에 용어 정의도 되어있다!!)
스티븐 호킹은 이 책에서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다. 과학은 우주 전체를 기술하는 단일 이론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 목적에 맞게 우주 전체를 기술하기 위한 우주의 변화론과 초기상태론의 발전과정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깔끔하게 펼쳐진다. 학생 때 무작정 외웠던 공식들의 기원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캄캄했던 다음과 같은 근원적인 의문을 밝혀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주가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2022.4.6
강물 가까이로 다가가 보자. 시간의 강물 가까이로 접근하면 출렁이는 물결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거센 바람이 불면 강물은 몸을 한껏 뒤척이며 하얀 거품을 만든다. 하얗게 반짝이는 수백만 개의 거품이 물결과 함께 일어났다 스러지는 모습을 보라. 물결은 균일한 리듬으로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한 순간 솟았던 물결이 다음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다. 우리 역시 그처럼 덧없는 무엇, 아주 작은 거품이나 물방울은 아닐까 생각해보라. 작은 물방울을 품에 안은 깊고 거대한 강물은 안개처럼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흘러만 간다. 우리는 떠올라 주변을 돌아보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나면 다시금 사라져버린다.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서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다. 늘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운명이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속에서 작 은 물방울들이 벌이는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이 순간을 잘 이용하고자 한다. 그럴 만한 가치는 있기 때문이다.
(P435)
2022.4.5
이 책은 너무 두꺼워 감히 읽을 엄두를 못내지만 책장에 당당히 서있는 모습만 봐도 흐믓한 책들중 하나이다. 그런데 '다시 그림이다' 책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할아버지가 잼있게 읽었다 하여 나도 모르게 홀린듯 읽기 시작하였다.
읽기 시작하니 점점 빠져들어 이 두꺼운 책을 놓을수가 없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흘러가고 곰브리치 교수님이 나에게 친절히 얘기를 해주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시로 보여주는 예술품의 컬러도판이 413개나 있어 흥미진진했다.
책이 무거워 손목이 욱신거리지만 다 읽고 나니 성취감은 최고다!!
2024.4.24
어제 도서관에서 '그림의 방'이라는 강연이 있었다. 강연 중에 이 책이 언급되었는데 이 책 초판에는 여성예술가가 0명이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나 개정판에 여성 예술가 몇 명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난 읽으면서 이런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좋은 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2022.4.3
'쥐'를 읽고 난 후 한달이 되었지만 책 속 이미지들의 잔상이 아직 머리속에 남아있다. 가끔 뭉크의 '절규'그림과 중첩이 되기도 한다. 글로만 되어 있는 책을 읽고 난 후와는 다른 경험이다. 그래서 그림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그림이다'는 '쥐'를 구매할 때 같이 산 책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에서 본 벽을 가득 채운 선명한 색감의 나무들이 너무 좋아서 이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그림의 힘에 대해 정의해 줄 것 같았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설명서이기 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에 대한 철학서에 더 가까웠다. 또한 과거 명화들의 탁월한 분석으로 인해 서양미술사 입문서의 느낌도 든다.
화가의 남다른 감각으로 그림이 탄생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수십년간의 독서, 사색, 연구, 새로운 시도, 과학기술과의 융합 등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더 좋았던건 열정적으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37년생이지만 아이패드와 카메라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할아버지 화가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림은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 나간 결과물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를 집중하게 하여 보지 않았을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글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2022.1.5
"천천히 읽고, 낯설게 읽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읽고, 두 번 읽고, 이해하며 읽고, 오독하면서 한 번 더 읽고, 읽지 않은 책인 것처럼 한 번 더 읽고,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한다"
2023.1.26
2022년 1월의 난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소망에 이끌려 모든 환경을 바꾸었다. 나의 내적 구조 변경의 첫 시도였던 것이다.
2023년 1월의 난 또 다른 나를 찾아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다시 직장인이 될까라는 과거의 관성에 버티고도 있다.
2023년 2월을 앞두고 읽은 ‘자기 결정’을 통해 페터 비에리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였다.
첫번째는 스스로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조종하는 느낌들과 욕구들을 감지하여 내적강박과 자기기만을 해결하고 정신적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
두번째는 나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정확한 말을 찾아내면 혼란스러운 느낌들은 감정적 확신으로 변화될 수 있다.
세번째는 독서를 통해 나의 언어를 풍부하고 독립적이고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를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며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주기도 한다. 문화적 정체성으로 인해 내 자신은 항상 새롭게 화두가 되며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이다. 자아상의 서술은 자신의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책을 완독하니 망망대해에서 등대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2.12.27
12월에는 새해를 준비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기에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가 담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그러고보니 마치 12월을 위해 아껴둔 책인 듯한 느낌도 든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는 질문들이다. 그러다 알게된 단순한 삶, 소박한 삶,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시골생활로 이끌었는데…그럼에도 불쑥불쑥 도시생활의 화려함이 떠오른다.
나보다 더 놀기 좋아하는 남편은 아직 소박한 삶이 싫다며 늘 도시를 그리워하더니..이번 연말은 잠실에 있는 슈퍼플렉스에서 아바타2를 보고 오자며 1박 2일의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맞춘 1박2일의 여행이라 나도 들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게 돌아다니고 신나게 먹었다.
결국 난 장염에 걸리고 말았다…..이런 나에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만족감이다. 정적인 쾌락은 증가할 수 없다. 오히려 계속 먹다가 소화불량을 일으켜 쾌락이 아닌 고통에 다다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놀았어야 했는데….책을 들고만 다님;;;;)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을 구분하지 못했던 난 ‘그리 많은 것 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목표로 하는 소박한 생활’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에피크로스의 네가지 처방은 다음과 같다.
1.신을 두려워 마라.
2.죽음을 염려하지 마라.
3.좋은 것은 구하기 어렵지 않으며,
4.끔찍한 일은 견디기 어렵지 않다.
2022.11.30
살면서 기억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
기억을 위한 도구들(다이어리, 핸드폰, 컴퓨터)을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크게 불편한 적은 없다.
대신 망각의 달인인 남편과 살면서 망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과거를 망각하는 능력을 지닌 남편은 과거의 불행에 휘둘려 살지 않는 방법을 나에게 몸소 보여준다. (부부싸움은 자고 일어나면 기억에서 벌써 지워짐)
또한 과거를 망각한 뇌의 빈자리를 현재와 미래로 가득 채우는 법도 보여준다.
(대화의 주제는 늘 이번 주말은 뭐할까? 내년엔 어떻게 살까? 10년 후엔 어떻게 살까?)
과거를 망각하는게 스스로 조절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남편을 따라하다 보니 이제는 나도 잘 된다.
과거의 불행이 떠오르면 생각을 안한다. 얼른 다른데로 뇌의 관심을 돌린다.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밖으로 놀러간다.) 그러다 보면 잊힌다.
그래서 이번 ‘기억의 뇌과학’ 책에서는 ‘망각의 예술’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았다.
또한 ‘기억은 결국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들의 총합’ 이라는 정의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개념을 새로운 의미기억으로 변환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