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에서 몇 번 교류하던 중국인이 한국 지방도시를 방문하겠다는 포스팅을 올렸다. 나는 망설이다가 입국일 저녁이 되서야 만나지 않겠냐는 글을 보냈다. 그는 내 고민이 무색하게 흔쾌히 동의했다.
처음 만난 사이에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내 영어 구사력은 중학교 수준에서 멈추었고, 그도 실전 경험은 부족한게 원인이었다. 다행히 몇 년 사이에 기계번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분에 어플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공통점이 찾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 지역의 유적과 벚꽃을 구경하고 싶어서 한국에 찾아왔다고 밝혔다. 중국에도 벚나무는 있지만 한국만큼 많이 심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가지 놀란 것은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고등학교 때 잠깐 훑었던 책들이 아니었으면 자국사에도 관심이 없는 바보가 될 뻔했다. 하긴 그 정도 관심이 있으니 한국에도 올려고 하겠지만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본 중국인은 평범한 개인이었다. 인터넷에서 상상해왔던 중국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과연 한국을 어떻게 봤을까? 그리고 한국인을,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그에게 혹시 중국에 한국인이 찾아온다면 날 생각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가장 어둡고 깊었던 그 밤을 버티고 몇 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아프기 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깰 수 있지 않을까, 병원 복도가 아닌 풍경이 있는 곳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예전처럼 통증 없이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병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꼬리의 꼬리를 물었던 바람 끝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상에 대해 그리워했다면, 일상으로 복귀해선 오래도록 머물렀던 병원에서의 일이 잔상처럼 맴돌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간호사가 안부를 물었을 때의 당혹감. 주말과 공휴일에도 늘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던 의사가 어느 날엔 한나절 넘게 곁을 내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느꼈던 감사함이 불쑥 불쑥 떠올랐다. 숨을 쉬기 위해 눈을 감고 몸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했던 때와 달리 퇴원 후엔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갔다. 툭, 툭 자신들의 방식으로 진심 어린 조언과 잔소리를 아끼지 않던 이들 덕에 안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밌게 읽었던 책을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삶을 다시 살아내는 기분이랄까. 그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이면서 다른 이야기가 되는데 어느 땐 겪어본 경험이고, 어느 땐 예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겪게 한다. 느끼고 경험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좋은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에도 도움을 준다.
이게 뭐지 싶게 가장 어리둥절하던 때. 생각지도 못했던 희박한 확률을 연속으로 거듭해 맞닥뜨렸던 날들에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언제건 떠올려보면 감사한 마음을 들게 할 사람들. 시간이 지나 무뎌지더라도 분명 기억 저편에라도 남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들을. 병동을 이동할 때마다 그곳엔 꼭 좋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땐 간호사였고, 어느 땐 의사였다. 분명 당시에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퇴원하고 나서야 문뜩 생각이 떠오른다. 사람과 할 일에 치여 피로와 스트레스에 쌓여있어도 내 곁을 지키던 의사가. 수술 후 땀 범벅이 되어 나온 내 환자복 속으로 손을 넣어 바람을 일으키며 땀을 말려주던 간호사의 모습이. 그리고 나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위험으로부터는 지켜줬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던 이도. 모든 일에 A가 있으면 B도 있다. 잔소리와 걱정과 위로를 툭, 툭 시간날 때마다 던지고 가던 이로부터 그늘을 찾던 나도.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그 밤’이라고 부르는 날을 맞았다. 가장 위험했던 밤이었다. 암사 체험이라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밤은 가파르고 신비했다. 그 밤을 지나 보내고 나서 나는 살아야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에는 확실히 야심처럼 보였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야심은 희망이 되고, 희망은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정말 우연히 나는 그 털모자를 떠올렸다.
털모자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창피하다. 나는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요는 그렇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전히 괴롭다. 그 간호사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꾸러미를 받아 들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제때에 제대로 된 고마움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집어든 책에서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했다. 아프기 전보다 더 단단해져 가는 과정이구나. 누군가 힘들 때 선뜻 자신의 곁을 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때 그 사람이 곁에 없었다면 우울 속으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회복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는 다짐은 아프지 말자거나 절망하지 말자가 아니다. 아픔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내 아픔에 기꺼이 곁을 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때 그 사람이 곁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불행한 상상보다 고마움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는 되새김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다만 신이 있다면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을 살리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책을 다시 보는 걸 즐기는 것만큼 고마운 사람들을 반추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통해서 깨달았고, 책을 통해 정리했다. 너무 많이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건강해져야겠다.
시사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미세 좌절의 시대』, 월급사실주의, 그믐, 그 외에 이것저것에 대해 횡설수설했는데 기자님이 잘 정리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박서련 작가님이 운영진으로 참여하셨던 문학 플랫폼 ‘던전’은 문을 닫은 걸로 아는데 기사에 조금 애매하게 표현됐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4776?sid=103
너무도 유명한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매우 짧은 소설인데도, 읽으면서 내내 복장이 터져서 쉬었다가 읽어야 했다.
혁명은 어떻게 반혁명이 되는가... 읽는 사람도 이렇게 속이 터지는데 이런 통찰력을 가진 작가는 과연 어떠했을지.
"폭로하고 싶은 거짓이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진실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오웰이 말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의 소설은 그런 힘이 있는 듯하다. 앞으로 더 읽어보아야 할 테지만.
책 뒤에 수록된 역자의 작품해설과 장강명 작가의 독후감에서 일부 구절을 옮겨 본다.
'작가 오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주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일조차 쉽게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망각은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하고, 사회 정의나 윤리적 원칙이 제자리걸음치게 한다.' (정회성)
'모든 구호가 그런 위험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논의가 오가지 않는 사회, 각론이 부실한 사회, 대신 맹목적인 열성 지지자와 그럴싸한 구호와 선정적인 음모론이 넘치는 사회를 진심으로 염려한다.'(장강명)
이제 <1984>와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야겠다.
월급사실주의 이서수 작가님이 신작을 내고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93407?sid=103
〈이 작가는 작품을 통해 ‘노동’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월급사실주의> 동인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노동’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집필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노동은 삶에서 필수적이지만 너무 괴롭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바로잡는 게 시급한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는 그걸 넘어서서 노동을 꼭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기술의 발달로 노동의 모습도 많이 바뀔 텐데 그런 만큼 앞으로 노동에 관해 쓸 이야기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현대문학 (240323~240429)
❝ 별점: ★★★★☆
❝ 한줄평: 영화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시들
❝ 키워드: 마음 | 숨 | 춤 | 침묵 | 사랑 | 빛 | 죽음 | 밤 | 꿈 | 미래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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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영화 속이라는 걸 알아채는’(「전주곡」 부분, p.9) 시의 구절로 시작해 ‘영화가 끝나고 극장이 밝아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에세이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 부분, p.115)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마치 영화 한 편처럼 느껴지는 완결성 있는 시집이었어요. ‘영화 같은 사건’을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극장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일까요? ‘미래이며 사랑이고, 우주이면서 우리인 것’(「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상)」 부분, p.57-58)을 찾아 헤매는 이들. 절망스러워 가끔은 좌절하더라도, 위로를 주고받으며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고 말하는 듯해서 좋았어요. [📝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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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걷다 보면 달이 뜨고 달빛이 수면 위에서
반짝이고 나는 그것을 조약돌이라고 착각했다 작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마다 너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면서
/ 「오전 4시, 싱크로니시티, 구름 조금, 강수 확률 20%」 부분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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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선생은
입김을 불어넣은 창문에 여러 수식을 그리며
전위서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것은 미래이며 사랑이고
우주이면서
우리라고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상)」 부분 (p.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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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다. 극장이 밝아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음악이 흐른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난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침묵한다. 곧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질 것이다. 좋았어? 무엇이 좋았냐는 질문인지도 모른 채 좋았어, 대답할 것이다. 잘 가. 다음에 봐. 인사를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영화가 끝났으므로. 극장이 밝아졌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누군가가 죽거나 사랑하거나. 영화 같은 사건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들은 모두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 에세이: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 (p.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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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전주곡」 ⛤
✎ 「오전 4시, 싱크로니시티, 구름 조금, 강수 확률 20%」 ⛤
✎ 「루저 내레이션」 ⛤
✎ 「이상 기후는 세계의 조울증」 ⛤
✎ 「처방」
✎ 「레몬 향을 쫓는 자들의 밀회」 ⛤
✎ 「펀치드렁크 드림」
✎ 「조직력」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상)」 ⛤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중)」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하)」
✎ 「불가능한 질문」 ⛤
✎ 「작은 미래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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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사실주의 202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하자마자 2쇄 찍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록작들 간략 소개와 함께 편집부에서 써주신 책 소개 글, 서점 링크도 함께 올립니다.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린다는 것
그 혹독하고 숭고한 일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는
우리 모두의 매일매일에 대하여
월급사실주의 소설 동인의 지극히 현실적인 밥벌이 이야기 그 두번째!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사실주의 2024』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첫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출간으로 이어진 바 있으며,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이 동인이 내놓는 두번째 결과물이다.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이다. 사회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감지해온 작가들이 작심하고 직장을 무대로 써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산문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남궁인, 천현우 작가가 성공적으로 완성해낸 첫 단편소설이 수록된 점,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의 장편소설로 사회적 약자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포착해온 손원평의 최신작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책의 제목은 소설가 임현석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내놓아야 하는 노동시장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인간적인 갈등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힘을 지닌 제목이다. 제목이 그러하듯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소설 역시 다양한 삶의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내며 진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남궁인 「오늘도 활기찬 아침입니다」
#비정규직 #아나운서 #일 vs 가족 #직업 수명
손원평 「피아노」
#공부방 #돌봄 노동 #중고 거래 #세속성 vs 순수성
이정연 「등대」
#복어 전문점 #수습 직원 #위기감 #정직원 전환 vs 희망 고문
임현석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프랜차이즈 #본사 vs 점주 #인성 vs 수완 #조직 생활
정아은 「두 친구」
#간호조무사 #위계 서열 #친구의 사생활
천현우 「빌런」
#물류 알바 #코인 폭락 #이(십)대 남(자) #학벌주의
최유안 「쓸모 있는 삶」
#프리랜서 #통역사 #다큐멘터리 제작 #편집된 말
한은형 「식물성 관상」
#비건 식당 #매니징 #사업가 마인드 #PC함 vs 최신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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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2부가 망한 이유는 단순명료한데 외계+인 1부가 망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제작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2부의 극장 개봉을 감행했다. 전혀 이성적인 전략적 판단이 아니었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당 부분은 운으로 동작하는 부분도 있기에 기대하는 바도 있었으리라.
외계+인 1부, 2부가 망한 이유는 그것이 매우 낡은 스토리였기 때문인데 관객은 컨텐츠가 상한 건지 안 상한 건지 섬뜩할 정도로 명료하게 감별해낸다. 어딘가 동굴 아래 매몰되어 있는 크리에이터만 그 사실을 모를 뿐.
단월드와 하이브의 음모론 시즌에 읽기 좋은 책. 음모론의 역사와 음모론자들의 심리 상태를 톺아보기 좋다. 음모론자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 더 비관적이고 정부를 더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들을 덜 신뢰하고 두려움으로 총기 구매와 같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더 높은 경향성을 가지는데 역시나 마스터 요다 님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음.
”두려움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증오가 되고, 증오는 결국 고통을 불러온다”
어찌되었든 개인은 나약하고 두렵고 시스템은 확증편향으로 이끌고 결국 음모론을 회피하며 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
장편으로 풀어내기엔 지속력이 약한 아이디어. 결국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 덜컥거린다. 다양한 인물군상을 활용한 카니발 소동극의 지향점. 하지만 캐릭터에 관한 세팅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가빠르게 갈등에 노출시키는 전개로 관객은 끊임없이 어리둥절하게 된다. 시나리오를 3고 정도만 더 다듬었으면 멀쩡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