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맥길리건의 1228쪽 짜리 평전 『히치콕』(그책)은 우선 영화학도에게 필독서일 듯하다. 징그러울 만치 상세해서, ‘히치콕의 모든 것이 여기 담겨 있다’는 뒤표지의 홍보 문구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앨프레드 히치콕이라는 모순투성이 인물 뿐 아니라 무성영화 시대부터 누벨바그까지 영화예술과 산업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도 살필 수 있다.
영화학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나는 젊은 예술가, 그리고 어느 분야든 진지한 태도로 장기적인 목표에 도전하겠다는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세상 길게 보고 타협하고 협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나부터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용기를 얻었고 각오도 다졌다.
멀리서 보면 대중과 평단 양쪽을 사로잡은 거장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히치콕의 삶은 끝없는 양보와 실망의 연속이다. 그는 작품을 위해 제작자, 배우, 원작자, 검열기관을 끊임없이 달래야 했다. 문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애걸한 적도 있었다. 최종 편집권은 쉽게 얻지 못했고, 시원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는 없고, 아카데미상 감독상은 끝내 받지 못했다.
읽는 내가 약간 넌더리가 날 정도인데, 당사자인 히치콕은 ‘더러워서 그만 둔다’고 하지 않았다. 처한 상황을 참고 버티며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을 얻으려 꾸역꾸역 밀고 당기기, 그게 길고 놀라운 창조성과 생산성의 비결이었다. “예술영화를 만들기는 쉽다. 상업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유명한 말도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국내에는 2006년에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처음 번역됐다. 정상준 을유문화사 주간은 “시리즈에 들어갈 인물로 히치콕을 먼저 정한 뒤 그에 대한 책들을 찾았는데 맥길리건의 평전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1376쪽짜리 하드커버였다.
개정판은 꼭 10년 뒤 그책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이 개정판을 낸 것도 당시 을유문화사를 잠시 떠나 그책에서 일하던 정 주간이었다. 이 책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컸다고. 개정판은 판형과 본문 디자인이 독특한데, 같은 책을 다시 내는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서울을 포함해서 유명한 도시들에 대한 책들은 아주 많고 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이 좀 더 즐겁게 다가오는 건 '도시그림'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장소들과도 연결되는 부분들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다. 현대에는 지도와 풍속화의 구분이 확연하지만, 그 경계가 아직 미묘하던 시절의 지도인지 풍경화인지 풍속화인지 딱 끊기 어려운 작품들. 그 속의 도시의 모습들을, 이 부문에 대한 사랑이 머리말부터 뿜어져나오는 이의 해설과 함께 볼 수 있어서 참 즐거웠다.
계속 모습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시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바탕으로 도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성공하면서 지금까지 도시가 살아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 분명 굉장한 일인데도 그냥 살고 있거나 어쩌다 여행 가거나 할 때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는 부분이다. 당장 지금 부분적으로라도 서울 재정비 계획이 나오면, 그게 실제로 이뤄진다고 해도 결과물이 몇 백년을 갈지 장담하기 힘들테니까.
뭐, 깊은 생각 하지 않더라도 일단 실려있는 지도와 그림들이 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부분부분 확대해서 보여주는 청명상하도도 그렇고, 뭔가 자세히 보면서 눈이 좀 피로해지는 암스테르담 지도(다른 지도들도 그렇지는 하지만 정말 펜끝의 집념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서 더 신기했던 이스파한의 프라이버시 제일주의 건축, 돈도 안 주는 교황 명으로 그린 놀리 지도(너무 슬프다...), 설명 들으면서 보니까 놀랍고 아주 착잡한 경기감영도랑 백악춘효(어찌보면 그냥 내가 몰랐던 것뿐이니 부끄럽다...), 뭔가 레고 그림을 방불케하는 매력 만점 뉴욕 지도...시대랑 상관없이 서민의 주택사정은 항상 빡세다는 슬픈 사실은 덤이다.
그림 자료들이 정말 많고 부분 확대된 것들도 두세번은 들여다보며 즐겨야하는 그런 책인데, 당장 읽으려는 책이 너무 밀려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일단은 시간 나면 리움 가서 경기감영도를 다시 보면서 책 내용을 곰씹어야겠다.
한 영화를 천만 명이 본다는 건 설명할 수 없는 시공간의 집단 무의식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팬데믹 이후 극장이라는 경험이 그다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은 한번쯤 빨간약을 삼킨 대다수의 관객을 상대로 한 스코어 달성은 2000년대 초반의 천만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
영화는 범죄도시2에 비해서 액션 장면이 늘어났고 아오키 무네타카를 비롯한 외부 캐스팅의 폭도 넓혔다. 그럼에도 영화의 어떤 요소가 2023년을 살았던 이들에게 어필했는지는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부패 경찰이라는 컨셉으로 메인 빌런을 한번쯤 꼬아두긴 했지만 존재감이 희미하고 대거 등장해서 한국의 횟집에서 싸우는 야쿠자들도 무게감이 없다. 보고 있으면 대체 왜 이 형사들은 쇠파이프와 사시미 칼을 든 빌런들에 맞서 총기를 안 쓰고 주먹을 겨루는 거지 싶은 의문만 떠돌게 된다.
2024년에 개봉한 범죄도시4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계속 흥행을 하고 있는데 대체 이 시점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펀치 드렁크처럼 집단으로 뇌세포가 사멸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예정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인디아 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샤이아 라보프가 해리슨 포드를 이어서 인디아나 존스로 활약했어야 했겠지만 삶은 의도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전도유망했고 스필버그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샤이아 라보프는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몰락했고 결국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베트남 전쟁 참전 후 사망한 것으로 처리.
데이비드 버스의 이 책은 “진화심리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매우 훌륭한 교과서 내지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 이 책은 대학 학부의 진화심리학 개론서의 역할은 물론 전문가와 심리학에 관심있는 대중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진화심리학이 대학의 필수 교양 과목이 되어야 하고 모든 학문의 저변이 되는 바탕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야망도 내비치는 데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런 야심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선택”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자연계에는 “자연 선택”에 위배되는 “성 선택” 혹은 “이타주의” 문제가 진화의 또 다른 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녀작 <종의 기원>에서는 여러 논란을 의식해 인간 진화에 관한 언급을 자제했지만 두 번째 책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던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버스는 인간의 ‘성 성택’에 대한 연구에 정통하다고 위키피디아가 밝히고 있다.
‘심리학’이란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고 “진화심리학”이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찰스 다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하며 다윈의 “자연 도태”와 “성 선택”을 “리비도 이론”과 “죽음 본능”으로 치환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출판한 이후 심리학의 흐름은 정신분석학으로 갔다가 다시 20세기 전후 파블로프의 개실험과 같은 환경 결정론적, 기계론적 인지심리학으로 탈선했다가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윈의 관점을 재발견하며 진화심리학이 통합 심리학으로서 기초를 마련하기 시작한다고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진화심리학은 두 가지 문제 의식에 대한 매우 강력한 시사를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마음과 그 기원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와 다른 하나는 인지심리학적 주장을 근거로 범용 인공 지능(Super Intelligence)을 전망하는 일부 과학계와 산업계의 전망이다. 특히, 닉스 보스트롬은 <슈퍼 인텔리전스>에서, 레이 커즈웨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모두 인지심리학에 바탕을 둔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또, ‘진화심리학’은 서양 철학의 인식론 문제, 즉 경험론과 관념론의 대치를 절충하고 종합하는 데도 중요한 과학적 촉매제가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칸트와 같은 사람이 주장했던 인간의 선험적 인식을 진화심리로써 풀어 설명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 지능 등에 대한 스캐닝을 통해 하드웨어에 저장할 수 있으며 인간이 로봇으로 진화하고 인간이 로봇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인지심리학은 진화심리학에 의해 기각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진화심리학은 상식적인 주장이라 설득력이 있다. 자연계의 선택 압력을 통해서 ‘적자생존’이 이루어진다는 진화론의 제1원리는 우리가 일상으로 마주하는 현실에서 충분히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인간의 진화심리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 요소는 ‘성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암컷은 포유류중 유일하게 ‘오르가즘’을 느끼며 인간 암컷만이 배란기를 수컷이 식별할 수 없게끔 은폐된 형태로 진화시켰고 이로 인해 ‘父(부)성 불확실성’ 문제가 생기며 “결혼제도”가 출현했다는 주장은 상당히 신박한 이론이었다. ‘결혼’이란 제도는 인간에게 유일하며 소위 일부일처제와 같은 형태의 암수 결합은 전체 포유류의 1~3%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 고환의 크기와 섹스 파트너의 수가 비례한다는 관찰도 있다. 유인원 중 體積(체적)에 비한 고환의 크기는 고릴라>오랑우탕>인간>침팬지의 순서이며 실제로 섹스의 문란과 정비례한다고 한다. 또, ‘부성 불확실성 문제’는 이종사촌(姨從四寸)과 같은 외척(外戚)관계와 고종사촌(姑從四寸) 등의 친척 관계와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고종사촌보다는 이종사촌 관계가 더 돈독하다고 한다.
‘성 선택’이론은 트리버스 등의 ‘부모 투자 이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인간을 포함해 일반적으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은 암컷의 몫으로 진화해 왔다. 따라서, 섹스에 대한 암컷과 수컷의 단기적, 장기적 전략 차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남녀 간의 갈등이 생긴다. 수컷은 가능한 더 기회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하지만 암컷은 양육에 필요한 자원 제공이 가능한 짝짓기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고 싶어 한다.
또 입덧을 ‘기형아’ 출산을 막기 위한 진화론적 자기 방어 메커니즘이라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통계적으로 입덧이 없는 산모의 기형아 출산율이 10%대 인것에 반해 입덧 경험자는 3%대에 그쳤다고 한다. 한편, 진화심리학의 수많은 가설들은 다른 과학적 검증 방법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실증적 통계를 통해 확인이 된다. 하지만, 그 제한된 데이터의 수량은 또 언제든지 이런 가설들이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밖에 진화심리학은 상호적 이타성 이론, 부모 자식간의 갈등 이론, 성 간의 갈등 이론 등을 통해서 인간과 그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이론들은 체험적 또는 추체험적으로 상식적 합리적 가설들이라 여겨지며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이질감이 없다. 또, 심리학은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 성격심리학, 임상심리학, 문화심리학 등 다양하게 분지(分枝)해 있는데 저자는 이 모든 심리학 분야가 진화심리학으로 수렴되고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 찰스 다윈,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현대라는 시기를 연 3대 거인이라 소개되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프로이트의 이론은 찰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생산수단의 변화(봉건 사회의 토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으로)를 통해 사회 경제적 토대를 설명하고 정치적 역사적 변화를 설명했던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적 역사 해석 방식은 훨씬 독립적이고 창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칸트, 헤겔의 철학과 같은 독일 관념론 철학의 영향이 크다. 칸트와 헤겔 모두 프로이센 국가를 이성의 현실체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칸트와 헤겔이 프로이센 국가를 그렇게 신성시 했던 것처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신격화했던 것이다.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 또는 그 사회를 신성(神性)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서양은 신들을 의인화(그리스의 신들)시키거나 인간을 신격화(그리스도교)하는 데 가장 능했던 근대 과학과는 逆說(역설)의 문명이다. 동아시아 사회의 유교는 (서양 근대의 계몽주의가 휴머니즘이라 부르는) 괴력난신을 부정하는 인본주의적 윤리, 도덕 체계를 2500년 전부터 구축해 왔고 이슬람은 예수와 같은 절대자와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고 연결하는 중매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과학과 근대 사상은 서양 사회가 여전히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가 없다. 오늘도 내일도 서양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이들의 생각과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빛은 동방이 아니라 서방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다.
연합뉴스와 뉴시스에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월급사실주의 2024』 서평이 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이다. 사회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감지해온 작가들이 작심하고 직장을 무대로 써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월급사실주의 #월급사실주의2024 #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668601?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2529196?sid=103
"무릇 요즘 사람들이 바라는 스토리는 회빙환처럼 고구마를 피하고 사이다를 들이키는 치트키 주인공이 등장해야 해."
뭐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주인공이 고난을 받지 않는다면 스토리에서 갈등은 어떻게 구축하는 건가 싶었는데 범죄도시2를 보니 마동석 주변 인물들이 대신 칼침을 맞고 고꾸라진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앞선 저 이야기는 요즘 사람들이 바라는 음식은 마라탕과 탕후루 조합이야라는 소리와 같아 보이는데 이런 걸 스토리라고 생각하고 장복하다보면 고지혈증 걸림.
해리슨 포드의 다큐. 해리슨 포드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제법 뛰어난 목수였고 덕분에 단역 배우였던 초기 커리어 때도 아무 영화나 출연하지 않고 작품을 선별할 수 있었다. 15년간 고작 5~6개의 작품만 출연하다가 결국 <청춘낙서>에서 조지 루카스를 만난다 .암튼 아티스트는 물려받은 재산이 있거나 기술이 있거나 둘 중 하나.
강풀 작가의 시나리오 참여로 인한 장점과 단점이 명확. 장점은 동어 반복을 회피하는 구성으로 원작을 읽은 기존 독자도 지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나레이션이 이끄는 만화 시나리오 특유의 플래시백이 그대로 이식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