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다. 마지막 나가는 말까지도 좋았다. 이지환 선생님의 책이 더 없다니 너무나 유감이다. 의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 그렇다고 여기 나온 용어들을 외울 능력은 없다만 - 설명뿐 아니라, 질병의 고통이 천재들의 삶의 행보에 미친 영향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섞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질병의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사람들이 평생을 그 고통과 씨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슬픈 책이기도 하다. 세종이 이정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에서 존경이 샘솟는다. 로트렉의 아버지가 쓰레기라는 건 알았지만, 사실상 자식 아픈 원인 제공자 주제에 아들내미 작품까지 태워먹는 적이 있는 인간말종인줄은 몰랐다. 모네가 백내장에 시달리던 기간 그렇게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렸는지도 몰랐고, 밥 말리가 조금만 더 늦게 암에 걸렸다면 더 나은 치료를 받았으리란 것도 몰랐다.
고통과 천재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인생을 살고, 각 분야에서 세상이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저 고통이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은 어쨌든 두각을 드러내고, 안 아팠으면 더 대단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삶에 만약이란 것은 없고 이들이 남긴 혜택을 조금씩 향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저 좀 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기억하는 것이 다라는 게 안타깝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작가분의 마지막 문장도 적어두려 한다. "우리는 기억을 공유한다. 치매가 특히 악독한 질병인 이유는 쌍방의 기억을 일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같은 글을 읽고 기억한다면 그만큼 은근한 결속이 있다고 믿는다."
오바하지 않는 괴담집이랄까?
덤덤하게 읽어가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무사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보는 정유재란의 모습. 한국인 독자는 ‘우리 편’과 ‘나쁜 놈들’을 구분할 수 없고, 극중 도모유키 역시 비슷한 처지다. 그는 조선인 여인을 연모하지만 조선인을 많이 죽이기도 한다. 어린아이도 죽인다. 독자에게도 도모유키에게도 편안한 안식은 없다.
전운이 감도는 고려-거란 접경지대, 불길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고려군 정예부대가 사라지고, 환각을 일으키는 풀에 취한 장병들이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신력을 지닌 주인공 소녀는 고려와 거란 양쪽에 애정이 없고, 소녀의 여동생은 사람을 죽이는 병에 걸렸다. 원숭이탈을 쓰고 다니는 대원수는 믿을 수가 없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반전은 놀랍다.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낯설면서 생생하고,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인 귀주대첩 직전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죽는 느낌을 모르니까. 그런데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제목은 정말 벗어나고 싶어 미치겠는(?) 상황에서 집어들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읽다가 죽을 뻔 했다. 두 작가의 똘끼와 글쓰기 재능에 샘이 나서! 샘나, 샘나, 샘나서!
중반부를 지날 때까지만해도 장재현 감독의 최고작이 나오는 건가 싶었는데 파열음을 내며 황망한 엔딩으로 치닫는다. 그럼에도 로케이션과 김고은의 연기가 좋다.
하루키의 소설을 팬은 아니었지만, 그의 에세이에 빠져 짧은 2주 만에 세 권이나 들었어. 특히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수필집이 글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겐 너무 좋았어.
예술가들은 보통 영감에 의존해 작업할 것 같지만, 하루키는 마치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루틴으로 글을 써. 아침 일찍 일어나서 5-6시간 동안 글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해. 그리고 거의 매일 1시간 이상 달리거나 수영하며 체력을 유지해. 그는 소설가, 특히 장편 소설가에게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더라고. 나도 이 부분에는 동의해.
하루키의 이런 일상과 작업 방식을 보니, 창작에 있어서 규칙적인 습관과 건강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돼. 소설가의 삶이 단순히 영감에 의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어. 그의 에세이를 읽고 나니, 나도 좀 더 체계적인 접근을 해보고 싶어졌어.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역시나 체력이 제일 중요해.
요즘 내가 듣고 있는 오디오북은 스티븐 킹의 "On Writing"이야.
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유혹하는 글쓰기'인데, 솔직히 이 제목은 좋은 번역은 아닌 거 같아.
이 책도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 관련 책처럼,
-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 그리고 글을 쓰려면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 거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해.
작가 본인이 직접 읽어주는 이 오디오북은 진짜 매력적이고 재밌어.
스티븐 킹이 얼마나 타고난 스토리텔러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줘. 그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이 책을 듣고 나니 왜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작가로, 그리고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겠더라고.
스티븐 킹의 글쓰기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생각, 그리고 작가로서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내용은,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