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는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이며, 그걸 뇌과학자가 아니라 러시아문학 전문가가 썼다는 게 포인트. 신경과학과 문학이 여기서 상대를 새로이 발견한다고는 못하겠지만 이어져야 할 의미 있는 시도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작업의 끝에서 뇌과학이 문학을 해명하기를 나는 바라는 걸까, 바라지 않는 걸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얘기했으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사건, 4ㆍ16
한글로는 무수히 많이 떠들었고
영어로도 한 차례 썼고
특조위 별 성과없이 종결된 이후로,
말을 해서 무엇하나에 빠져ㆍㆍ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못 그려 미안해.
오늘도 화를 내고 후회했는데, 요 며칠 화를 잘 내게 된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감정습관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결책 제시해주고 있어서 매우 만족. 계속 읽어야겠다.
스티브 연의 한국어 발음이 버닝과 미나리 시절보다 좋아졌다. 메타 휴먼이 익숙한 시절에 아날로그 연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씬들.
도스토옙스키 애호가라면 저자와 함께 “아이고, 이 양반아”를 연발하게 됨. 투르게네프는 도스토옙스키를 환자 취급했다고. 돈을 키워드로 한 작품 분석이 깊이 있고 친절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중단편집으로, 수록작의 수준은 들쭉날쭉하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이 엄청 웃긴다. 「백야」는 아름다운 결말이 인상적인, 서정적이고 따뜻한 짝사랑 이야기.
거의 반 년 만에 한국 작가가 쓴 장편 소설을 읽는다. 번역된 픽션을 읽다가 한국 원어민의 소설을 읽으니 우선 가독성부터가 다르다. 한국 소설가들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작가라는 직업이 어쩐지 권장할수만은 없는 직업인 거 같아서 조심스럽다. 그저 독자의 이기적인 마음인 듯.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하지만 단순히 기록을 하는 행위를 너머 나의 생각과 지식을 엮어 나의 것으로 체화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지혜가 되며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기억은 왜곡되고 편향된다. 기억에 의존하는 뇌는 피곤하다. 핵심만 남기고 다 버리자.
기록이 나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도스토옙스키 5대 장편소설’로 묶이기에 저평가되는 작품이라고 생각. 다른 네 편과는 작가의 의도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주제가 아니라 정서에 초점을 맞췄다고 본다.
『죄와 벌』, 『악령』,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무신론자의 실패를 말한다면 『백치』는 그리스도의 실패를 다룬다. 『악령』이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보다는 막장성이 덜한가. 그래도 정념이 지나쳐서 미치기 직전인 것 같은 미모의 젊은 여성 두 사람이 너무 착해서 미친 것처럼 보이는 남자 하나를 두고 미칠 듯한 구애 경쟁을 벌이는데 재미없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