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환경운동을 고깝게 여겼던 때가 있었다. 딱히 뭘 알고 그랬던 게 아니라, 그냥 일부 운동가들의 감상주의나 어딘지 맹신적인 분위기가 탐탁치 않아서 그랬다. 딴에는 그럴싸한 반론도 한 가지는 있었다.
‘인구 폭발, 석유 고갈, 핵전쟁, 그 외에 이런저런 비관론들이 모두 빗나갔지 않은가. 지구온난화도, 여섯 번째 대멸종도 그런 호들갑이겠지. 방법은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는 이겨낼 거야. 인간은 의외로 강하고 질기다니까.’
그런 생각은 『문명의 붕괴』를 읽고 난 뒤 확실히 바뀌었다. 이 788쪽짜리 두툼한 책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아니야, 꽤 큰 사회가 환경 재앙으로 완전히 망한 적이 최소한 몇 번은 있었어’라고 반박한다. 더 나아가 과거 문명이 그렇게 망할 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고, 지금 우리 세계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이아몬드가 예로 드는 ‘망한 사회’는 고대 이스터 섬, 핏케언 섬, 아나사지 문명, 마야 문명, 노르웨이령 그린란드 등이다. 망한 거나 다름없었던 내전 당시 르완다와 최근의 아이티도 비중 있게 다룬다. 저자는 이들 사회의 몰락을 자연환경이 인구를 지탱하지 못한 데서 찾는다. 르완다 내전 사태에서도 부족 갈등 아래 높은 인구밀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사회의 공통점 중 가장 섬뜩한 건, 상당수가 전성기에 이른 뒤 갑자기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한 사회는 전성기로 갈수록 삼림을 파괴하고 땅의 지력을 훼손하는 등 환경파괴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많을 때 자원이 부족해지고, 싸움이 일어난다. 주변이 막힌 고립된 사회가 그 단계까지 가면 평화롭게 서서히 기운을 잃기보다는 유혈사태 속에 급격히 파멸하는 듯하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이제 세계는 고립된 단일 문명이며 인류는 환경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중이다. 너무 늦기 전에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저자는 책 뒷부분에서 미국, 호주, 중국 같은 현대국가들이 생태적으로 얼마나 위태로운지 진단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시한다.
그런 제안들은 감상이나 맹신 대신 신중한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과거의 비관적인 예측 상당수가 빗나갔다고? 다이아몬드는 “화재 신고가 몇 건 잘못 들어왔다고 소방서를 없애자는 주장이 옳으냐”고 묻는다.
2004년에 나온 책이라 중국에 대한 내용 일부는 지금 현실과 다소 안 맞을 수 있다. 이스터 섬의 몰락 원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설이 계속 나오는 중으로 안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하다.
‘서양의 리얼리티는 하나의 구성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나이지리아 작가 벤 오크리의 부커상 수상작. 나는 이제 우리 모두 서양인이라는 생각도 한다. 앞부분에서는 생과 사의 경계를 사는 소년 아자로가 주인공인데 뒤로 갈수록 아자로 아버지의 비중이 커진다. 거기에도 의미는 부여할 수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아자로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종의 기원』이 그렇게 읽기 어렵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이 책은 재미있다. 젊은 다윈은 호감 가는 인물이었고 신기한 걸 많이 봤고 글도 재치 있게 잘 썼다. 등은 검고 배는 새빨간 두꺼비를 묘사하면서 “이 두꺼비에 이름이 없다면 ‘악마’라고 부르면 딱 맞을 것 같다”고 적는 식.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아이디어의 싹이 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파타고니아 평원이다. 다윈이 말한 ‘외딴 곳에서 받는 감동’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고립된 병원에서 가망 없는 환자들을 안락사시킨다. 수사기관이 의사들을 수사한다. 이 짦은 두 문장에 얼마나 큰 고뇌와 드라마를 담을 수 있는지 모른다. 기자 후배들에게 강권하고 싶다. 이게 매스미디어 종말 이후 저널리즘의 미래다. 나는 읽다 말고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하고 싶은 논픽션의 걸작이었는데 별로였다고 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20대에 데뷔하자마자 유명해져서는 40대 초반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그 뒤로 상복이 애매한 조너선 프랜즌. 이 소설이 ‘모든 신화의 열쇠’라는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했는데, 아마 필생의 역작을 쓰려고 하는 모양이다.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 며 함께 몰락하는 기하학적이고 가학적인 구조를 작가가 짜놓지 않았을까 두려웠는데 기우였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걸친 서민층 가족의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대하소설 같은 기분이 든다.
제법 많은 영화와 소설을 출간한 작가인데 에세이로 처음 접한다.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을 잘 만들어냄.
"대부분의 인간은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패배’라고 부를 정도로 근사하지 않은 패배감. ‘승리’라고 가슴을 펼 정도로 뚜렷하지 않은 충족감의 틈새를 흐리멍덩하게 오간다."
유레루를 어디였더라? 시네코아 쯤이던가? 보았었다. 감독은 누군지 모르겠으나 당시에 핫한 오다기리 죠가 나온 영화였다. 그의 영화를 발차기였던가에서부터 메종 드 히미코, 밝은 미래, 공기 인형 등 거의 찾아보긴 했었다. 자동 줌 인 얼굴이 아닌가! 어릴 적 부터 한결같이 잘생긴 사람을 좋아했다. 남자만 비주얼에 약한 것이 아니다^^;
그랬던 그 영화의 감독 이야기를 접했네~ 시네큐브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의 감독에 발탁된 저 감독! 리서치 감독이라는 직함도 있구나~ 처음 알았네. 이십 대 무렵, 지금은 없어진 하이퍼텍 나다 오층에서 영화연출자 과정을 수강한 일이 있다. 여름이었고 여성영화인 모임에서 주최한 한달짜리 과정이었다. 그 때 알게된 언니들과 단편도 몇 편 찍고 했었는데 다들 사라지고 이제 양양으로 이사간 고양이 🐱 여섯 마리 쯤과 사는 언니 한 명 남아있네. 암튼 그 시절에는 나도 저런 길을 가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길을 간 사람의 괜찮은 글을 접했다. 좋은 사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거기에 문소리 씨의 추천사까지^^ 저렇게 나이든다면 좀 나쁘지 않 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