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코믹스를 있는 그대로 즐기기란 쉽지 않다. 1990년대에 창작된 코믹스를 향한 어떤 향수 정도. 어떻게 해당 컨셉을 착상했는가가 기술되어있는 서문까지가 흥미롭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라고 스토너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세 번씩이나. 그리고 그는 느낀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고.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다고.
이 책의 작가인 존 월리엄스는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이었다고 느끼지만, 그는 그의 삶이 휼륭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내 느낌도 그랬다. 스토너의 삶은 휼륭한 것이었다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조용한 시냇물 옆을 거니는것 같았다. 모든 문장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처럼 읽혔다. 타인의 일생을 책 한권으로 다 들여다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책이 어디 또 있을까?
이 책은 1965년도에 2,000권이 초판 발행되었고, 1년 뒤에 절판되었다 한다. 그리고 46년이 지난 2011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이후, 세계 30여 개국에서 지금도 팔리고 있으며, 초판본은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아래의 세 문장들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 문장1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 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 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ㅡ page249~250
☞문장2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ㅡ page 384~385
☞문장3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생생해지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주위가 부드러워지니, 팔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ㅡ page 387~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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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당신 말이 맞아"
나는 조금 슬펐지만,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당신 없이 사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거, 나 알아."
"응. 맞는 말이야."
"당신도 나 없이 사는 게 더 행복할 테고."
"그래"
하지만 지금은 실감한다. 이렇게 막바지까지 몰고가지 않으면 후련하지 않은 기분.
113:...부시럭부시럭 소리를 내며 신문을 접고, 남편 몸을 몇번이나 넘나들며 사방을 정리한다...
남편은 잠이 들었는데, 나는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쾌함이 몸 안에 쌓이기 때문이다. 투덜투덜투덜, 만황[ 나오는 잔소리 많은 마누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