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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 유령여단 (존 스칼지)

장엄한 비극이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용도로 만들어진 도구였던 재러드 디렉과 제인 세이건이 인간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선악이 모호한 것도 높은 작품성에 한 몫 한다. 작가의 유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어둡고 건조한 톤이 그 유머보다 더 좋다.

유령여단
유령여단
745.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앤디 위어의 『마션』과 함께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소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밀리터리 SF 장르가 시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전략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 후반부 작품과 다른 빠른 호흡도 그런 전략적 선택이었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재미있다. 펼치면 빨려 들어가게 된다.

노인의 전쟁
노인의 전쟁
조력사망에 대한 찬반- 논쟁인가 현상인가

도서팟캐스트 <책걸상>에서 강양구 기자님이 추천한 책. 전자책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뭔가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 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구미를 당기려는 시도가 솔직히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제는 '이것이 조력사망이다 (This is Assisted Dying)') 이 책의 저자는 서울신문에서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에서 조력사망을 지지하고 그것을 시행하는 입장에서 인터뷰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획기사는 나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암 전문의 및 호스피스 의사들은 최근 법안 발의가 된 "조력존엄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가 구체성이 결여된 채 질병과 노년의 삶에 대한 공포에 이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변화는 없다. 질병을 가지고 살아도,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 나를 돌봐줄 수 있고 내가 그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소위 '안락사'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이슈는 ‘논쟁’이라기보다는 ‘현상’에 가깝다고 보인다. 삶의 고통과 팍팍함을 나타내는 현상. 


물론 나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얼마전 읽은 두 권의 책 <각자도사사회>와 <그렇게 죽지 않는다>에서 그려진 요양원의 치매노인들의 모습에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대체로 수일-수주 정도의 기간에 걸쳐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는 그런 경우 웬만해선 조력사망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고통스럽다면 완화적 진정 (palliative sedation)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책에 나온 한 말기암 환자는 이것도 거부하고 조력사망을 택한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 나였던 사람이 아닌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도 수많은 불확실성이 있을 것이고 고통의 모습도 모두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겠지만, 끝까지 살아낼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에 인생의 고통은 너무나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죽음의 구체성을 접하지 않은 채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것만큼이나, 조력사망의 구체성을 접하지 않은 채 조력사망에 반대하는 것 역시 공허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마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자가 산부인과 의사 (정확히는 아마도 산과 영역의 일을 주로 하는 가정의학과 의사인 것 같다)라는 것은 의외였다. 왜 죽음을 접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 일을 시작하였나? 첫 조력사망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장면에서의 '50대 이상의 환자를 보살핀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 간간히 보이는 그의 당황스러움과 서투름의 고백에는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임종과정의 돌봄은 의료인에게도 상당히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도 여러 번 겪다보면 그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가족들을 잘 안심시키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데 어느 정도의 노련함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경력이 없는 의료인이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그 배경은 저자가 첫 조력사망 장면 이후에 털어놓는 자신의 죽음과 개인의 권리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납득이 갔다. 네덜란드의 학회에 참석해서 보인 열정은 존경스럽기도 했고, 탄생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경력이 오히려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생은 결국 수미쌍관인 것일까.

무엇보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라는 점을 조력사망사례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보며 깨닫게 된다. 의료행위는 “루틴”과 “프로토콜”에 의해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댄다는 망설임과 두려움을 극복해가며 익히는 과정인데, 이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나중에 알고보면 그녀도 구체적인 약의 조합이나 투여 절차,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내용 등등을 어느 정도는 학회에서 배워와서 하는 것임을 짐작하게는 되지만, 서로 다른 사례마다 부딛치게 되는 윤리적 고민과 예기치 못한 상황, 환자의 죽음 뒤에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의 묘사를 읽다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짐작케한다. 더군다나 캐나다에서의 조력사망법이 시행된 직후 비용청구코드 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실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캐나다에선 일단 의료행위를 하면 코드가 만들어져 이후 청구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일까? 우리같으면 건강보험에 명시된 코드로 (급여가 되던 안되던 간에) 정의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보상을 받으리란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기까지 하다. 의사도 건강보험을 믿지 않고 건강보험도 의사를 믿지 않으니까. 캐나다에서의 의사와 보건당국간에는 좀더 신뢰가 존재하는 듯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MAiD가 정말 필요한 환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도전적이고 선도적인 시도임엔 분명하다. 실제 우리나라에 조력사망이 입법이 된다고 해도 이런 과감한 선구자들, 운동가의 면모를 띤 의사들이 기꺼이 그 부담을 받아안지 않는다면 실행이 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과 사회에 대한 신뢰, 개인의 권리에 대한 단호한 수호 의지는 저자가 부딛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신념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와 다른 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종교적 이유로  MAiD에 반대하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하는 환자의 조카 부부에게 차분히 맞서며 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용기는 솔직히 나 같으면 낼 수 없다. 환자 본인이 써 놓은 연명의료결정서의 내용에 의료진이 따르려고 해도 가족들이 반대하며 환자를 중환자실에 보낼 것을 고집하면 사실 현장의 의사로서는 무력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법보다 사적인 원망 또는 위협이 더 무서운 것이 우리 사회다. 법에 따른 냉철한 판단보다 '환자는 약자,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통상적인 믿음과 직관 또는 여론재판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저자가 환자들이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유가 신체적 고통보다는 주로 자율성과 의미의 상실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사실 처음엔 의외였다. 그건 내가 신체적 고통을 줄여주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내과의사여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통증은 차라리 마약성진통제로 다스릴 순 있지만 호흡곤란, 부종 등의 증상은 좀처럼 환자가 편해지는 수준으로의 조절은 어려워서 늘 애를 먹곤 한다. 호스피스 의료기관에서  MAiD를 진행하게 되는 말기암환자인 레이의 암성 상처 (malignant wound)도 조절이 좀처럼 어렵고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증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나의 존재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실존의 문제가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유라니, 그것이야말로 정신건강의학과, 성직자, 자원봉사자들이 협업하는 호스피스 진료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충분한 호스피스 진료를 받으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있었고 결국 저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때문에 진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호스피스에 의뢰되어 기다리다가 사망하기도 하며, 본인의 상황에 맞춘 (집에서의 거리  또는 가정호스피스 제공 여부) 호스피스 서비스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우리 실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그래도 죽음을 원하는' 결론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죽음을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지, 고통에 대한 해답으로 너무 쉽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되지 않을지가 걱정이다. 


이 책은 최근 의대생들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토론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기 전 수업을 하고 그 이후에 후반부를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수업을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본과1학년 학생들에게 조력 사망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여기까지는 일반인의 인식과 비슷하므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조력사망을 개인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내가 우려하였듯이 고통을 줄여주는 수단으로서만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이 일부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동의가 없어도 식물인간이나 치매 환자에서도 조력사망을 고려할 수 있다며 너무 멀리 나가버리는 학생들을 보며 좀더 단호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좀 후회가 된다. 자기결정권의 존중이 MAiD를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에서의 조력사망허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이유였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너무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 병원에서도 모든 것이 빨리빨리, 대충대충 진행되며 연명의료계획서조차도 종종 의료진과 가족들의 면책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리곤 하는 (실제 책 <그렇게 죽지않는다> 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썼다는 이유로 가벼운 질병에도 병원으로 모셔가기를 거부하는 요양원 환자의 가족들이 나온다) 우리 상황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은 너무 쉽게 잊혀지곤 하는 가치가 된다. 책의 영문부제가 'Empowering Patients at the End of Life'라는 데서 볼 수 있듯 생애 말기에 있는 환자에게 자율권과 결정권을 주는 것이 조력사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임을 이해한다면 조력사망에 대한 찬반이 반드시 대립되는 가치관의 충돌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뇌 해독의 신비

뇌에 독소가 되는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이지 않는 온갖 건강 요법이 소개된다. 장과 뇌가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독성 물질을 섭취하면 '장누수증후군'이라는 현상을 통해 뇌에 독소가 전달되는 구조라고 한다. 술과 커피, 탄수화물을 끊는 등 모든 걸 끊어야 함.

뇌 해독의 신비
뇌 해독의 신비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해적의 세계사

2023. 2. 27 '생각의 나무'에서 출판되었다. 


일본의 정치학자 竹田いさま(다케다 이사마)가 쓰고 2013년 5월에 世界を動かす海賊(세계를 움직인 해적)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처음 출간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다케다 이사마가 서양사학자라고 오해했다. 정치학자로써는 이례적인 내용의 책을 썼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도 정치학자로서 금기시 되는 역사책을 내게 된 것에 당혹스러워 하는 所懷(소회)를 후기에 적고 있다. 나도 後記(후기)를 읽고 나서야 그가 국제 정치학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해적의 세계사”란 다소 가벼워 보이는 국내 번역서 제목은 자칫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중한 함의를 파악 못하고 애들이나 읽는 가벼운 책처럼 보이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그만큼 이 책은 팍스 앵글로색스나(Pax Anglosaxna)라고도 규정할 수 있는 근대 이후의 세계질서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참고서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교의 ‘大義名分(대의명분)’을 중요한 정치윤리로 생각하는 동아시아 국가들(특히 한국은 더욱 명분에 원리주의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에게 해적질을 통해 브리타니아 제국의 초석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고 쉽게 도덕적 분노를 유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칼 마르크스는 서구 사회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질서가 상업혁명을 통해 본원적 자본축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지만 브리튼 제국에 있어서는 해적산업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처럼 보인다. 모헙상인, 탐험가, 모험가 등이 모두 해적들을 표현하는 또다른 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니 뎁이 주연한 디즈니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은 전형적인 가족 영화다. 우리 역사에서 ‘海賊(해적)’이라 하면 倭寇(왜구)를 쉽계 연상하게 되고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쉽게 탈색시킬 수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서양인들은 바다의 양아치들에게 그렇게 많은 애정과 로망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인지 의아했다. 


1920년대 영국 왕립박물관 자료실에서 16세기 후반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블린'과 헨리 8세의 딸,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해적질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전략 사업으로 육성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을 발견하고 나서야 캐러비안 해적들의 실체가 역사의 렌즈에 포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헨리 8세가 스페인 왕가 출신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블린과 재혼을 했으며 그 결혼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반대 때문에 종교개혁을 했다고 알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른 뒤 가톨릭 세력이 지배적이었던 대륙의 스페인, 프랑스, 교황청으로부터의 위협은 이 독신 여왕에게 항상 존재론적 위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영국은 스페인에 비해 2, 3류의 국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압도적인 적들로부터 왕위를 지키고 국가를 보존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돈을 버는 가장 손 쉽고 수익이 컸던 해적질은 신대륙으로부터 金銀(금은)을 실어나르는 스페인과 포루투갈 배에 대한 습격과 약탈이었다. 이 같은 해적활동은 게릴라전과 용의주도한 스파이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해적은 프란시스 드레이크 또는 호킨스가 주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영국의 스페인에 대한 해적활동은 1588년 아마다 해전에서 정점을 이루는 데 영국의 해군-해적 혼성부대는 도버 해협의 거센바람 등을 이용한 火攻(화공)으로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게 된다. 게릴라전, 스파이활동, 그리고 화공작전 이 세가지가 영국해적이 보다 더 강한 적, 스페인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秘策(비책)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비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영국 사회에 이 같은 여왕의 결단(해적산업 육성)에 대해 영국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擧國一致(거국일치)의 합의, 컨센서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Under Dog가 Top Dog를 깰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룰을 따르는 것으로 절대 가능하지 않다. 바로 해적질이라는 신의 한 수가 그 비책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들이 선택한 시공간에서 싸우는 지혜와 창의성이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했다.


수익의 크기로 볼 때 금은 등의 귀중품 약탈 > 아프리카 흑인 노예무역 > 향신료, 커피, 차 등으로 순서를 매길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부터 시작된 노예무역은 공식적으로 1807년에 끝났지만 실제로는 1844년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70년간 천만 명의 흑인 노예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移送(이송)되었다. 맨처음 노예무역은 포루투갈이 독점을 했다. 하지만, 곧 영국은 스페인의 금은을 노략질하는 방식으로 노예선을 약탈, 노예들을 빼내서 신대륙의 스페인 사탕수수 농장주들에게 팔아 넘기는 노예 密貿易(밀무역)을 시작한다. 노예무역도 부족해서 그것을 또 밀수한 것이다. 해적 호킨스는 여왕의 인가를 받고 서아프리카 기니아 만을 중심으로 한 직거래에 뛰어 들지만 쉽게 그 노예 무역의 유통경로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결국, 이 흑인 노예들의 공급 원천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부족간의 전쟁의 산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아프리카의 지배세력, 왕들과의 결탁을 통해 흑인 노예들의 장기적,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하게 된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모태는 현재의 튀르키에를 가리키는 지명 레반트, 그 이름을 따라 지은 레반트 회사에 있다. 그 지리적 위치가 동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레반트 회사는 중개무역을 통해 나름 짭짤한 수익을 영국 왕실과 투자자들에게 제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영국도 희망봉을 따라 인도, 동남 아시아의 직항로를 개척하면서 직거래를 하고자 시도하고 그 결과물이 동인도 회사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인도의 동인도 회사가 워낙 유명하고 독점적이었기 때문에 그 밖의 회사는 거의 없는 줄 알았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회사들이 설립되고 사라졌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후추 등의 香辛料(향신료)는 말 그대로 조미료로서의 역할보다는 ‘의약품’으로서 효용성 때문에 영국과 유럽의 지배계급에 크게 어필했다는 것이 정설인 것으로 확인 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한약재 등도 유럽에서 근대 의학이 본격화 되기 전까지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던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때, 영국은 茶(차)의 나라가 아니라 커피의 나라였다. ‘모카커피’란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예멘의 모카항에 집산되어 유통되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동인도 회사는 모카를 거점으로 커피를 영국과 유럽에 비싼 값에 팔면서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네델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커피 묘목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가져다 재배에 성공하면서 자바 커피를 유럽에 유통시키자 커피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감소한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커피무역'의 독점이 깨지자 대신 茶(차)를 전략 품목으로 밀면서 영국의 차문화가 만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왕실 브랜드를 차 마케팅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들 해적상인들의 아이디어였다. 특히,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Mason이 대표적 왕실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사례였다. 스타벅스가 유럽을 침공?하기 전까지 유럽은 커피 보다는 차문화가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커피문화는 약 100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같이 마시는 커피, 차 등에도 관계되는 역사적 내용들이 이 책에는 잘 소개되어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대표였던 오진호의 라이엇 게임즈 회고록. 개발자가 아닌 퍼블리싱 포지션에서 바라본 라이엇 게임즈의 문화와 게임 개발이 기술되어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
23-042 |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아작 (e-book, 231013~231014)


❝ 별점: ★★★★

❝ 한줄평: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외계인’일 수 있다는 것

❝ 키워드: 사막, 우주 | 인공자궁, 서약 | 사해(死海), 생명체 | 외계인, 사랑 | 공감, 재회 | 전쟁, 좀비 | 구멍, 욕망 | 기술, 감정

❝ 추천: 다양한 모양의 감정이 궁금한 사람


❝ 나 하나가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바뀔까? 내가 가는 방향은 옳은 방향일까? 이런 생각들을 언제나 하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저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

/ 작가의 말


📝 (23/10/15) 표제작 「어떤 물질의 사랑」이 제일 좋았지만 좋았던 작품을 하나만 뽑기는 어려울 정도로 단편들의 여운이 짙었다. 특히나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 「마지막 드라이브」가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모양의 감정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집은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다 서로에게외계인’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과 이해, 연민과 연대,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가치가 우리에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서 나온 것처럼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를 믿고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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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 사막 저 너머 밤하늘을 넘어 우주 속으로


|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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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

: 너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단 서약은


| 그는 둥그런 어항같이 생긴 인공자궁에 똬리를 튼, 쌀알처럼 아주 작은 자신의 ‘씨’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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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 ⛤

: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


|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직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테면 네가 죽지 않고 끊임없이 해수면 밑으로 떨어지고 있을 거라는 예감. 그러다 돌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불가능의 확신. 우리의 이별이 지구에서만 일어난 일일 거라는, 스스로를 향한 같잖은 위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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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

: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찾아올, 그런 사랑


| “(...)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인 걸, 모두가 같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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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

: 공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인가 비극인가


| 오직 그 존재에게 위로받고 공감받기 위해서.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 주인공은 먼 우주에 나와서야 깨닫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 존재에게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부터, 상처뿐인 언어로부터 멀어진 우주에서 제 숨소리를 유일한 소음으로 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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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하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


| 물론 이 상황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세상이 다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는 걸 누군가는 반드시 끈질기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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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

: 희망과 두려움, 확신과 불확신, 구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 얼른 깨달으셨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아니에요. 돌파구인 줄 알았겠지만 결국 또 다른 터널에 지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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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드라이브」 ⛤

: 인간의 사랑, 그리고 로봇의 사랑


|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한나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더미가 반짝이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

어떤 물질의 사랑
어떤 물질의 사랑
[모집] [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2023년 11월 12일(음력 그믐날) 열여섯 번째 그믐밤은 은평한옥마을 책방 수북강녕에서 열립니다.


이번 그믐밤은 하루키와 함께 해요. 그믐밤에서는 하루키의 최신간에 그치지 않고 그의 모든 작품을 아우르려 합니다.


오프라인 그믐밤에 앞서 먼저 열리는 온라인 그믐밤에서는 각자 하나씩 하루키 작품을 선택하고, 29일 동안 읽습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좋고, 새롭게 읽어도 좋아요.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습니다. 하나로 부족하시면 여러 권 읽으셔도 좋습니다. 각자의 진도에 따라 읽어나가며 문장 수집이든 감성 폭발이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맘껏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수북강녕 책방지기님이 게릴라 퀴즈도 많이 낼 예정이에요, 많이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믐밤을 통해 원래 하루키를 좋아하시던 분도, 이번 기회에 새로 만나시는 분도 모두 뜻깊은 시간 보내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11월 12일에 열리는 오프라인 그믐밤에서는 하루키에 관한 저마다의 키워드를 가지고 자기 소개와 책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내 청춘의 하루키’, ‘내 인생의 구원자’, ‘노벨상과 하루키’, ‘처음 만나는 하루키’ 등 저마다의 하루키를 소개해 주시면, 유쾌한 공감과 신선한 호기심으로 채워지는 모임이 될 거예요.


☾ 열여섯 번째 온라인 그믐밤


-모임 기간 : 10월 22일(일) ~ 11월 19일(일) (총 29일간)


[온라인 그믐밤 참여하기]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열여섯 번째 오프라인 그믐밤

*온라인 그믐밤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신청하실 수 있는 모임이에요!


-언제 : 11월 12일 (음력 그믐날) 일요일 저녁 7시 29분 (약 1시간 29분 진행 예상)

-인원 : 15명

-어디서 : 수북강녕 (서울 은평구 진관길 4 1층) https://naver.me/xjilI35I


-진행 방식

1) 하루키에 관한 자신만의 키워드를 준비해 주세요. 예시) ‘내 청춘의 하루키’, ‘나의 인생책 노르웨이의 숲’, ‘노벨상과 하루키’,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하루키’ 등

2) 키워드와 사연을 알려주시고 그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참가 비용 : 10,000원

*16회 그믐밤 참가 비용 전액은 수북강녕에 전달됩니다. 참가비 1만원은 당일 책 구매하실 경우 적립금처럼 사용 가능해요. (예를들어 1만 5천원 도서 구매시 5천원에 책을 드려요. 환불은 어려우니 마음에 드시는 책을 골라 보세요~)


-신청 방법 : https://forms.gle/jCYQBut6QyHgnpVGA

그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관련해 공지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지식공동체 그믐입니다.


그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으로 인해, 현재 접속할 수 없습니다.

그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믐 임시 계정을 개설했습니다. @gmeum_29


계정이 복구될 때까지 그믐의 임시 인스타그램 계정과 다른 SNS 계정으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그믐의 SNS 계정입니다.


*인스타그램(임시) https://www.instagram.com/gmeum_29/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meum

*트위터 https://twitter.com/gmeum29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다시 복구되면, 빠르게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믐에 대한 문의사항은 contact@gmeum.com 로 메일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지식공동체 그믐 드림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밤이 깊어간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루종일 사람 없는 바닷가에서 내가 내는 소리를 종일 듣고 사는데 제기랄, 어찌 안 그러겠는가. 이곳은 듣는 것으로 하루가 간다. 새벽에 일찍 깨어 바람 소릴 듣는다. 파도치는 소리도 들린다. 해가 뜨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날이 좋으면 관광객들 지나가는 소리 또한 들린다. 그것 말고는 내가 내는 소리들뿐이다. 포장을 벗기면 똑같은 모양과 표정을 하고 있는 스무 개비의 담배처럼 하루하루가 그렇다.   이렇게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는 것일까. 혼자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글쎄, 이게 아니면 뭐겠어. 휼륭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단순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만 있을 뿐이다.   최소한 이게 평화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지난 시절의 무료한 일상을 평화였다고 말한다. 동화나 영화에서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곳이라는 소리이다. 아주 평화로운 마을은 아주 따분한 곳이라는 소리도 된다. 그러니까 전쟁의 반대말은 일상이다. 우리가 행복과 쾌감을 느끼는 게 이 일상 속에서이다. 물론 당시는 모른다. 그게 깨진 다음에야 그 의미를 획득하는 것. 낚시도 비슷하다.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순간이 짜릿하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다. 조금 지난 다음 그때를 떠올려보며 그랬었지, 하게 된다. 이거, 어떤 면에서는 불행이다. 또 한잔 마신다. 오늘 잘 들어간다. ㅡ page 65   선수에 서다.   이곳에 오면 엔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람과 파도가 부드럽게 갈라지는 소리만 난다. 나는 물방울 행성의 얇은 껍질을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이 정도이다. 하늘을 날기 원하는 것도 아니고 돌고래처럼 수심을 제집으로 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바다와 허공의 경계인 얇은 막, 수면이면 거처로 충분하다.   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몸으로 최대한 높이 뛰어봐도 1.5m. 죽어서는 딱 그만큼의 구덩이를 판다. 두더지처럼 굴을 파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땅과 허공의 접점인 지면, 거기가 삶의 터전이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 시베리아까지 걸어간다 하더라도 지표면 외에는 밟을 게 없다.   이렇게 이질적인 세상이 만나고 있는 접점에서 우리는 산다. 2차원적이다. 3차원을 인식하는 2차원적 생물. 그게 나다. 자유는 금기와 질서의 형태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행하는 것. 더 이상의 자유는 불편이고 죽음이다. 물고기는 공기에서 익사하고 새는 물속에서 질식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세계의 경계는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매한 신부님과 오찬을 나누고 나오는 길에 부랑자와 같이 쪼그려 앉아서 빠는 꽁초의 고소함. 콘크리트 타설 작업 뒤에 만나는 주모의 손. 오아시스가 보이는 모래언덕. 비 그친 뒤의 햇살. 단식과 식사. 감금과 탈출. 만남과 이별. 흑과 백. 농과 담. 그렇게 두 세계 사이에서의 진자 운동.   오늘 새벽 느닷없이 발기한 물건도 내 두 다리 사이에 있다. ㅡ page 105   오후에 휴게소에서 만난 선원은 술을 좋아할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웬걸요. 저도 엔간히 마시고 살았습죠. 버릇처럼 손이 가고 거부당하지도 않고 새삼 덧붙일 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 붙어 산다는 점에서 저와 술은 그쪽분과 부인 같은 관계일 겁니다.   술, 하면 우선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집안 어른에 대한 추억부터 떠올리쟎습니까? 그런 경우 손에 무언가 맛있는 게 들려 있곤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 집은 알코올과 친해보지 못한 이들이 대를 이어 왔길래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기에 제가 마시기 시작했죠. 저라도 마셔야 했죠. 술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게 집구석이겠어요? 감옥 아니면 수도원이지. 십대 후반부터 시작했으니 삼십 년 넘게 꾸준히 장복해 온 셈입니다. 그 부분만큼은 성실했죠. 좀 일찍 까진 편이었지만 지금에서야 따질 성질의 것은 아니죠. 술 담배 전혀 안 하고 착실하게 공부만 하던 친구 중에는 벌써 죽어 버린 애도 있으니까요.   일년 365일 중에서 안 마신 날 꼽아보면 손가락이 남아 돌 정도니 제가 들었던 잔의 횟수만 가지고도 고차원 수학방정식 몇 개 만들어낼 만할 겁니다. 이 정도면 환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주 회사에서 감사패 정도는 받을 만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술과 관련된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철도 레일 따라 걸으며 깡소주 마시던 시절도 있었고 동네 거지 형님하고 비 맞으면서 밤새 나눴던 비닐 소주잔 풍경도 있었고 심지어 아예 포장마차를 하면서 술을 팔기도 했으니까요. 그 많은 사건과 장면들을 어떻게 다 말하겠어요.   어느 정도 가깝게 지냈는지는 소주가 없어져보니까 알겠습디다.  처음 외국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짐 부려놓고 부리나케 중국집으로 달려가 아줌마 짬뽕, 소주부터 먼저, 외치게 되더군요. 눈보다 무서운 게 입입디다. 허기도 그런 허기가 없지요.   근해이긴 했지만 어선을 타고 먼바다로 나간 게 20대 중반이었습니다. 혹시 어선도 타셨나요? 아, 바로 상선으로 오셨군요. 잘하셨습니다. 공연히 고생할 필요 없지요.   어선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험한 곳입니다. 배멀미, 좁아터진 선실, 깨끗한거라고는 단 한 톨도 없는 주변 환경, 끝없는 일, 거친 선원들, 자 어떻게 버틸까요.   먼저, 당연히 멀미합니다. 경험해보셨겠지만 몸에 병이 하나도 없는데 죽고 싶어질 때가 바로 멀미할 때입니다. 특히 풍랑속의 낡은 어선이라면 더 심각하죠. 약은 하납니다. 소주를 마시죠. 잔이나 종지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런 바가지에 댓병 하나 가득 따르고 원샷을 억지로 시킵니다. 일은 해야 하니까 죽자 사자 마십니다. 좋아지거나 아주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죠.   일하다가 배고픕니다. 소주 마십니다. 외롭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힘듭니다. 소주 마십니다. 일이 남았는데 잠 쏟아집니다. 소주 마십니다. 다칩니다. 소주로 씯어내고 소주 마십니다. 선장이 지랄 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선장 저도 마십니다. 동료와 시비 붙습니다. 소주 마시면서 화해 합니다. 그러다 다시 싸우고 또 소주 마십니다. 여자 생각 간절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잘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안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항구로 돌아옵니다. 소주 마십니다.   그곳에서는 술이 가진 기본 영역, 그러니까 관계형성과 에로티시즘을 넘어선 물리적인 치료약으로 쓰입니다. 물론 좀 극단적인 경우입니다만, 우리 일상에서도 술이 가진 파급효과는 팔백 쪽짜리 법전 보다도 크고 쎄죠.   살다보면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해 내는 것이 술 아니겠어요? 술 말고 무엇이 낯선 것을 곧바로 익숙하게 하고, 우울한 마음을 풀어주고, 아픈 것을 잊게 해주며 미운 것을 용서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무엇이 그 변화무쌍한 능력을 대신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 반대에도 고스란히 존재합니다. 마시다 보면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고, 용서한 사람을 다시 미워하게 되고, 괜챦았던 마음이 슬퍼지고, 나았던 몸이 다시 아프게 되기도 하죠. 물리학 이론 중에 '열역학 2법칙'이라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질서와 무질서는 같은 비율로 공존한다는 이론이쟎아요? 제 생각에는 술 마시다가 만들어낸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악마가 바쁠 때 술을 대신 보낸다고 합디다만 악마가 그렇게 떠벌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증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느닷없는 변화를 '소주 한 병의 무서움'이라고 부릅니다. 그럴 수밖에요. 때려 죽이고 싶은 놈하고 엉뚱하게도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가 하면 즐거웠던 분위기가 갑자기 살벌해지는 이 변신의 동기는 늘 소주 한 병입니다. 참 알쏭달쏭해요.   비슐라르라고 평생 끙끙대다가 늙어버린 철학자가 있었는데, 이 양반이 이른바 4대 원소라는 물 불 흙 공기에 대한 이미지 연구 중에 술 때문에 아주 곤욕을 치뤘답니다. 모양은 물이면서 성질은 불이라서요. 뭐,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약, 그런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양반, 그런 고민도 한잔 마시며 했으면 쉬웠을지도 모르죠. 고민이 안 풀리면 마시는 게 또 술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술에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칩니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꼭 붙들고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그런 친구 있나요? 저는 몇 명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어찌 함께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데.   내 이야기를 들은 그가 소주 세 병을 가져다주었다. ㅡ page 106~110   그런 바다가 나보다 먼저 있었다. 바다가 태어나고 수십억 년 뒤에 내가 태어났다. 파도도 나보다 먼저 있었다. 쉬지 않고 파도는 밀려 온다. 언젠가 나는 파도의 수를 세어보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그것은 눈 깜박임이나 호흡의 수를 세는것 만큼이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바다와 나의 차이 만큼이나.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바다에서 계속 살 생각이 드느냐. 나는 되묻는다. 조부모나 부모가 입원했다가 죽어버린 그 병원으로 당신은 또 찾아가지 않는가. 사람이란 오랫동안 부모가 죽었던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숙명적으로 기다리머 살아온 존재들 아니었던가.   또한 바다는 움직임을 멈추면 권태의 덩어리가 되는 존재이다. 여행 온 사람들은 바다가 보이는 창문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지만, 그런 방을 구하지 못한 가장은 무능력하다고 낙인찍히곤 하지만, 삼십 분만 지나면 아무도 창밖을 보지 않는다. 커튼 닫고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바라본다. 저 변화 없는 수평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견디고 더 오래 바라보면 보통의 따분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주 맑은 권태라서 저절로 바닷가에 눕게 된다. 누워서 옆으로 보는 바다. 바다와 같은 자세를 하다보면 마침내 내가 이것이 되어도 좋고 저것이 되어도 상관없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극한의 정적이 되면 움직이는 것은 시간 뿐이다. 그때 들리는 어떤 소리. 바다의 호흡일 수도 있고 시간 자체가 흘러가는 소리일 수도 있고 내 몸의 세포가 미세하게 늙어가고 있는 소리일 수도 있다.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밤 깊어 달 떠오른다. 달빛이 수평선에 어른거린다.   숱한 배가 지나갔지만 저곳엔 아무 흔적이 없다. 바다는 흔적을 지우기 때문에 대상을 매 순간 독립체, 독자이자 고아로 만들어 버린다. 누구나 고스란히 한 존재가 된다. 달 하나에 나 하나. 그리고 수면의 달빛. 아름답다. 이 행성에서 인간이 독하게 살아 남은 이유는 이를테면 이런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간이면 갈매기와 살모사는 눈감고 자고 있다. 수달은 먹이 쫓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개와 고양이도 큰 차이 없다. 사람만 이 처연한 풍경을 사랑하는 것이다. 슬픔과 아름다움. 그건 삶을 인식하니 죽음도 인식할 수밖에 없는 능력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종교와 철학과 문학이 생겼다. 음악과 미술도. 그리고 짐작.   200년 전, 한 사람이 이 자리에서 지금의 나처럼 막연히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70년 전 어떤 사람도 이곳에서 이렇게 밤마다 달빛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이러고 있다. 그들의 고민이나 한숨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바다와 시간은 닮아 있다. 사십년 뒤에 이 자리에서 이러고 있게 될 사람은 이제 막 가갸거겨를 배우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아직도 우주를 유영하며 이 물방울 별로 흘러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우주의 무한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릴레이 선수 처럼 대를 잇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식을 낳는다고 말한 적 있다. 당장, 별의 수명과 인간의 그것이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 바다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 생애로는 터무니 없이 짧아 순서대로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중 한 명일뿐이라서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기 전에 이미 이 행성에서 사라져 있을 것이다. 죽음 뒤의 모습에 대하여 내 예감은 몇 번 바뀌었다. 아이들 장래희망처럼 말이다. 지금 이렇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는 스스로가 종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상상이 되지 않아 혼령으로나마 남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그동안 지구에서 살다가 죽은 현생인류가 모두 990억 명이라는데 그들 혼은 모두 어디 가 있는 거지? 따져보다가 그런 것은 없겠군, 그냥 소멸하는 거겠군, 생각하기도 햇다.   이 행성에 스며들었을 때 나는 보이지도 않는 한 점이었다. 지금은 75킬로그램이다. 죽으면 이 몸무게는 사라지게 된다. 아마 나는 아주 작은 세포로 나뉘어서 흩어질 것이다. 우주에 떠 있는 별의 숫자만큼 쪼개져서 나무나 풀, 새와 물고기, 흙덩이나 다른 사람의 작은 부분이 될 것이다. 아주 먼 훗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재조립되기 전까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달이 높아지자 수평선에서 이곳까지 수많은 잔파도가 달빛에 드러난다. 보기에 좋다. 나의 바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행로를 하겠는가. ㅡ page 344~347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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