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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 | B. A. 패리스, 비하인드 도어

모모 (240120~240120)


❝ 별점: ★★★

❝ 한줄평: 문이 닫힌 후, 그 뒤에선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 키워드: 심리 | 스릴러 | 사이코패스 | 완벽 | 불안 | 선택 | 실수 | 희망 | 기회 | 공포 | 악마 | 복수

❝ 추천: 킬링타임용 심리 스릴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


🚪 첫 문장: 주방의 대리석 조리대 위로 쾅 하고 샴페인 병이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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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A. 패리스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원제: Behind Closed Doors)를 읽었다. 『브링 미 백』을 읽으면서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했기 때문에, 이번 소설은 강렬한 반전이 있길 바라며 읽었다.


✦ 이 소설과 『브링 미 백』을 비교하자면 『브링 미 백』이 개인적으론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비하인드 도어』의 답답함이 내겐 좀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결말도 원하던 것이긴 하지만 약간 아쉬운...? 좀 더 고통받기를 바랐는데... ㅎㅎ


✦ 완벽해 보일수록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말은 백 번 천 번 새겨들어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그레이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서 자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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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이 자, 자, 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 온 에스터와 루퍼스를 환영하는 건배를 제안한다. 나도 잔을 들고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다. 기포가 입안에서 춤을 추자 갑자기 행복감이 퍼진다. 그 느낌을 붙잡아두려 애쓰지만, 행복감은 올 때만큼이나 금방 사라져버린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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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비하인드 도어
<판결의 재구성>을 읽고

감상


판사였던 저자가 이슈가 되었던 판결을 고찰한 책입니다. 특히 "합리적 의심"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대원칙과, 그에 따른 논리적 정합성과 일반인의 법감정 사이의 괴리, 그리고 사법시스템의 경직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법관의 고민을 다룹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판사들이 판결을 내릴 때 어떤 고민을 하는지, 법조계에서 어떤 부분들이 약한 고리들인지 살펴볼 수 있어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동종 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자기 검열 때문에 더 비판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또한 각각의 판결들에 대한 고민은 깊이가 있지만, 법원 시스템 자체에 대한 개선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다소 약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서 인적 오류와 이를 교정할 수 있는 시스템적 개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유익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3가지 포인트를 나누어봅니다.


1.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은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


책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지만, 모든 형사 판결은 기본적으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판사에게 가장 큰 갈등을 만드는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이 사건이 억울한 죄인을 만들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거죠. 책에서도 언급된 <김순경 살인 누명 사건>이 대표적인 예인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사건에서 "100% 유죄이다"라고 단정할 사건은 없을겁니다. 99.999%일지라도, 100%라고 말할수는 없는 것이죠. 모든 재판은 기본적으로 확률 싸움이니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합리적"이라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즉 "남이 보아도 이정도면 합리적인 판결이다"하고 생각될만한 결정을, 판사 한 사람 (혹은 대법원 합의체가) "주관적"으로 내려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운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판사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점에서 책에서 언급된 <캄보디아 아내 보험 살인사건>, <듀스 김성재 살인사건>, 그리고 <한국판 아만다 녹스> 사건이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피고인이 진범이라고 받아들일법한 정황증거가 많은 상황인데도, 신기하게 무죄를 받았죠. 필자의 말처럼 "담당 판사가 도무지 유죄로 하기에 충분한 믿음이 안 생긴다는데, 믿으라고 우길 수도 없다"는 말이 바로 판결이 어디까지 객관적일 수 있느냐에 대한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봅니다. 책에서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배부른 판사는 형량을 더 적게 판결한다."는 유명한 행동 경제학 연구 사례도 있죠. 범죄자의 유무죄 여부가 판사의 위장 잔여물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웃기지만 한편 두렵기도 합니다. "합리성"에 대한 해석이 결국 판사의 성향과 가치, 믿음, 그리고 위장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국민들의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확률론에 대한 단상: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쓸 확률 v. 진범이 풀려날 확률


모든 사건이 확률 싸움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저자가 <동두천 암자 살인 사건>에서도 이야기하듯 "간접적으로는 개별 증거가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가 살인 사건 재판에서 종종 인용되는 것이 이해됩니다.


그런 면에서 법원 판결을 연구할 때 통계학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통계학에서는 통계적 가설 검정이라는 방법론이 있습니다. 즉 귀무가설("피고인이 범인이다")을 설정하고 결론 ("유죄" 혹은 "무죄" 판결)을 내린 후, 이것이 실제 상황 ("진범은 피고인이다" 혹은 "진범은 피고인이 아니다")과 비교하는 것이죠. 결론과 실제 상황이 일치하는 것("피고인이 범인이었는데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인데, 문제는 결론과 실제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2가지 있다는 점입니다. 첫째는 보통 type I 오류라고 부르는데, 귀무가설을 기각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잘못 기각한 경우입니다. 즉 "피고인이 진범이었는데, 무죄 판결을 내려서 놓쳐버렸다"는 것이죠. 둘째는 type II 오류라고 부르는데, 귀무가설을 기각했어야 했는데, 기각하지 않아버린 경우입니다. 즉 "피고인이 진범이 아니었는데,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내려버렸다"는 것이죠.


물론 type I 오류(진범 무죄 방면)와 type II 오류(억울한 유죄)를 둘 다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통계학에서는 type I 오류와 type II 오류를 동시에 줄이기 힘들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두 오류가 역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억울한 유죄"를 줄이기 위해 "합리적 의심에 대한 증명"의 문턱을 높인다면, 필연적으로 "진범을 무죄 방면"하는 사례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진범 무죄 방면"을 줄이기 위해 "합리적 의심에 대한 증명" 문턱을 낮춘다면, 역시 "억울한 유죄" 사례가 많아질 수 밖에 없죠. 전형적인 trade-off 사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통계학에서는 해결책도 말하고 있죠. type I과 type II오류를 동시에 줄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샘플 사이즈를 늘리는 것입니다. 이를 재판에 대해 적용해본다면 "개별 증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풍부한 정황 증거를 제공해주는 경찰의 초동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최소한의 장치를 해두고 있기는 한데요, "다른 정황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범인의 자백만으로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이죠.


우리나라 형법은 type II 오류(억울한 유죄)를 줄이는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벌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는 일은 꼭 피하고 싶은 것이죠. 문제는 이로 인해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법원과 일반인들의 법감정 온도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내 주변에 진범이 풀려나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다소 억울한 사람이 있을수는 있어도 범인은 가급적 잡아 가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 차이를 줄이는 것이 앞으로의 사법 시스템의 중요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시스템 오류에 대한 단상


저는 법관 개개인의 자질, 판결문의 내적 정합성과 논리도 중요하지만, "판사가 오류를 저지르기 힘들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든 몇몇 생각들입니다.


1. 판사들이 자신의 판결문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결은 최종선고입니다. 그리고 보통 판사들은 자신의 판결문에 대해 피드백을 받지 않죠. 재판 연구 사례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만, 보통 판결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내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오류를 인정하기 힘든 심리가 깔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고, 또한 판결이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도, 판결 과정의 법리 검토와 적용 그리고 논리 전개에 대해서는 개선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판사들도 판결문에 대한 정기적인 피드백 및 리뷰를 받으면서 성장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테크 기업들에서는 보통 소스 코드를 수정할 때 반드시 동료 직원들이 검토하는 "코드 리뷰"라는 과정을 거쳐서 코드가 제출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실수가 적은 코드를 제출할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코드를 작성하는 방법을 멘토링받게 됩니다. 그렇게 점차 훌륭한 개발자가 되어가죠. 판결문에 대해서도 그러한 리뷰 과정과 멘토링 과정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즉 판사는 완전무결해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실수도 저지르지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재심 시스템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비슷한 맥락입니다만, 모든 재판은 확률이고, 또한 오심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죠. 대법원도 오심을 내릴 확률이 있습니다. 책에서도 나온 <KTX 승무원 대법원 판결>도 이러한 예에 속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과거에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진범이 잡히거나 하는 등의 오심이 내려졌던 적이 있구요. 문제는 이를 되돌릴 방법이 극히 적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판결의 일관성"을 우선시하는 무척 보수적인 조적이기 때문에, 힘들게 재심을 해도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구요. 이런 면에서 3심제도와 "일사부재리" 원칙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3. 형사 재판은 배심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헌법에 묶여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법원과 국민사이의 법감정 온도차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배심원제라고 봅니다. 물론 배심원제 역시도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라도 봅니다만, 판사의 입장에서도 "나쁜 놈을 벌하고 싶은 감정"과 "냉철한 법률 전문가로서 형량을 계산하고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하는 감정"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봅니다.


4. 법관의 수를 늘리고, 법원의 승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도 책에서 이야기했지만, 법관의 수 부족에 대해서 공감하는 편입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서 법관 승진시에도 빠르게 많은 판결을 처리하는 판사보다, 질적으로 훌륭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판사 및 검사를 주민이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좀 더 자유로운 점이 있습니다만, 한국의 상황과는 다소 다른 편이죠. 부장판사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인 지표와 성과 지표들을 바탕으로 승진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 판결문과 판례들이 기본 공개되어야 합니다.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판례법 중심인 미국의 법원은 기본적으로 모든 판결이 공개입니다. 즉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판결문은 실명까지 포함해서 공개가 원칙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법원은 대부분의 판결문이 비공개입니다. 정확히는 비공개는 아닌데, 사건번호를 모르면 열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즉 일반 국민들은 재판이 몇 건이나 되고, 유죄비율은 어떠한지 등에 대한 정보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판사의 판결문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다"고 느껴서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은데, 해외에서는 공개가 이미 대세라는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나라도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책에서 다룬 다른 주제들


기타 다른 사건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봅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 이 사건의 핵심은 "국가적 유물"이라는 이유로, 발견자에게 턱없이 적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며, "국가적 유물"을 무상으로 환수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즐거운 사라>. 국가가 나서서 예술작품의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사실 웃기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법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영남 화투 그림 사건>. 꽤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몇 가지 다층적인 부분들이 있어서 사실 어느쪽이 100% 잘했다 잘못했다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대 미술의 "저자 인증"이라는 개념을 법원이 판단한다는 것 자체는 다소 무리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법원 판결도 그런 쪽으로 결론났던 것으로 알고 있구요. 판결과는 별도로, 실제 작업자에게 페이를 좀 더 주어야 하고, 이들의 공로도 인정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게임과 셧다운제>. 저자의 말처럼 "너의 학습할 권리를 위해서 너의 게임할 권리를 뺏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사실 이건 헌법에도 합치되지 않는다고 보는데요,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판결들을 접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책이었습니다.

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878.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와카타케 나나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2편. 시리즈 1편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등장인물들이 조금 발랄하게 말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굳이 ‘일상 미스터리’라고 부를 이유가 없어 보인다. 사건도 작지 않고 인물들도 보이는 바와 다르며 진상도 상당히 끔찍하다.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877.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시작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과 너무 흡사해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는데 얼른 그 궤도에서 벗어난다. 주인공이 그렇게 힘들여 남의 복수를 대신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연쇄살인마니까?),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다른 인물들도 다 시원시원하다. 하여튼 흡인력은 대단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
죽여 마땅한 사람들
24-011 | 이응준,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민음사 (231207~240119)


❝ 별점: ★★★★☆

❝ 한줄평: 주기적으로 다시 읽고 싶은 삶과 죽음 사이의 글들

❝ 키워드: 이별 | 인생 | 삶 | 죽음 | 시간 | 슬픔 | 사랑 | 마음 | 지금 | 행복 | 어둠 | 희망 | 사막 | 믿음 | 모순

❝ 추천: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빛과 어둠에 관한 글을 읽고 싶은 사람


❝ 어둠은, 삶으로 규명하면 밝아진다. ❞

/ 「이 어두운 세계의 빛나는 작법」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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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가 너무 슬퍼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갈지 걱정했는데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하듯 웃긴 부분들이 있어서 좋았다. 묵직하지만 너무 무겁기만 하지 않은 산문집이라 좋았다.


✦ 나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빛과 어둠에 관해 계속 성찰하게 되는 글들이었다. ‘나’로 산다는 것은 아무도 나 대신 죽어주지 못하고, 아무도 나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것(「이 어두운 세계의 빛나는 작법」). 내가 나의 등불이 되어 나의 어둠 속을 간다는 것(「잘못된 세계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밤길」).


✦ ‘모든 사랑이란 결국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명왕성에서 이별」)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을 강하게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폭염서정(暴炎抒情)」)이라고 하시는 부분은 아직 잘 와닿지 않았다.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을 넘어,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 언젠가 마주하게 될 이별의 순간에 다시 이 책을 꺼내 읽고 싶다. [📝 23/01/20]


(*민음사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증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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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삶보다 위대하지 않다. 죽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그의 삶이다.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천만 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위대할 필요가 없다.

/ 죽음에 관한 소견 (p.80)


|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

/ 수필인간(隨筆人間) (p.84)


| 문학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 사라지지 않을 권리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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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뿌리는 없고 가지만 남은 타이완 민주주의

*이 게시물은 2024년 1월 17일 경향일보의 오피니언에 게시된 '보석같은 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2024년 타이완에서 치루어진 선거에 수많은 관심이 쏟아졌으나 나는 오히려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타이완이라는 지역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이 모든 문제를 양안관계에 종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 은 말로만 '하나의 중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중국이 없는 한 타이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충실한 중화민족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타이완의 민주주의가 백년이 넘은 중국인들의 투쟁의 결과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의회제 논의는 1900년대부터 본격화된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헌법초안인 1908년 흠정헌법대강이 반포된다. 그러나 청나라가 진지하게 내각제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불만여론이 커져 결국 1912년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황제는 퇴위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혼란으로 입헌시도는 현실적으로 난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여러 시도로 내전을 끝내는 시도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현실적인 진전은 없었다.


한편 중화민국 원년의 국민당을 복원하겠다는 의도하에 창설된 중국 국민당이 전국을 통일하면서 논의는 다시 진전되게 된다. (출처 :이승휘, 손문의 혁명) 국민당은 군벌들의 부패로 중화민국의 정통이 상실되었기에 혁명적 정당이 국가를 개조한다는 명목으로 일당독재를 실시한다.


이후 국민당 내부에서는 헌정을 준비하는 6년간의 훈정 시기간에 갈등이 벌어졌다. 후한민을 중심으로 한 국민당 당권파는 쑨원의 저작만이 임시 헌법의 권한을 가진다고 주장한 반면 국민당 좌익계열과 국민당 외부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임시 헌법을 통해서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갈등은 결국 중원대전, 1차 양광사변이라는 내전을 낳았으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왕징웨이의 초안(타이위안 임시약법이라 불린다.), 쑨커의 초안(오오헌초라고 불린다.)이 발표되어 헌정 정치를 향한 시도는 지속되었다.


이러한 시도하에 1947년 마침내 중화민국 헌법이 반포되어 중국은 헌정체제로 들어간다. 그러나 국공내전으로 인하여 헌법은 또다시 무력화되었고 마지막 근거지로 철수한 타이완에서 국민당의 일당독재가 지속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의 여러 시도가 벌어진 논의들은 헌법에 근거한 정치만이 정상적인 정치라는 것을 대다수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고 본토 수복을 명분으로 철권통치를 강행하던 국민당도 결국 1992년 중화민국 헌법을 정상화시키면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타이완이 완성되게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러한 역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망각되었다. 왠만한 중국 근대사 책을 집어보아도 중국 공산당의 투쟁과 혁명만 가르치지 그 동안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할 사실은 오늘날 타이완의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룩된 것이 아니라 백여년 동안 축적된 중국인들의 노력이라는 기틀에 힘입은 바가 컸다는 사실이다.


나는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냐는 명제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그것과는 '독립'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타이완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냐는 것이고 나는 그 관심사를 중국 정치사에서 일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국민당 백색테러 시기의 타이완 민주 운동사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다.)


그러나 타이완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수립될 수 있었는가는 무시한 채 반중 정권이 수립되었다, 민주주의의 승리 만세!를 외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내부 갈등을 외부 분쟁으로 눈속임하려는 행위하고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현상이 도출되었다는 것이지 실제는 관심없다는 고백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새 총통의 이름을 못 외웠다는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조금 더 특정한 현상이 지니는 바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러저리 세상의 풍파에 쉽게 화내고 웃어지는 가벼운 사람이 되고 말테니까.




의견 1 :박훈 교수는 의회를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똑같은 의회 정치로 간주하는데 일본 근대사 전공자로서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된다. 일본부터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남성의 보통선거권이 인정된게 1925년인데 '개돼지가 뽑은 의원'이라는 명제가 당대 중국에서 수용될 수 있을까? 애초에 2차 호법운동에서 쑨원의 권위가 국회의원들의 임시선거에서 나왔는데 그럼 쑨원은 개돼지들의 임시대총통이었을까?


의견 2 : 한편 박훈 교수는 2007년 자신의 논문에서 중국 의회제의 논의를 1890년대 강유위에서 시작하고 있는데 1880년대에 이미 의회제에 대한 주장이 있었다는 점과 강유위의 의회방안은 법률심사권 없이 황제에게 건의만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은 솔직히 기억이 모호합니다. 기억이 맞다면 민두기 <중국근대개혁운동의 연구>가 출처일 것입니다. 아니라면 근거없이 허튼 소리를 한 바이니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의견 3 : 동일한 논문에서 청조의 입헌 시도가 황제권 유지를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예컨데 황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근거를 천명 사상에서 헌법으로 전환하여 영국식 입헌제도로 추구할 목적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신우철 <청말 입헌군주제 헌법 소고> 참고.


의견 4: 동일 논문에서 중국에서 입법부의 의견이 제약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회가 행정부보다 열세인 것은 정치,행정학의 문제지 역사학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의견 5: 동일 논문에서 오오헌초가 1934년 반포되었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는 1936년에 반포되었다.

24-010 | 김소연,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240103~240118)


❝ 별점: ★★★★

❝ 한줄평: 여러 의미를 품은 밤

❝ 키워드: 시간 | 밤 | 잠 | 생각 | 슬픔 | 진실 | 꿈 | 두려움

❝ 추천: 밤의 여러 이미지와 의미를 품은 시들이 궁금한 사람


❝ 밤은 사방에서 모여들어 아늑하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

/ 「비좁은 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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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 시인의 시집은 처음 읽어본다. 문학동네의 시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의 필진으로 참여하시게 되었다 해서 그의 시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 쉽게 읽히는 것 같으면서도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문장들에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시집은 아니었다. 단어와 문장들을 꼭꼭 잘 씹어서 소화하고픈 시집이었다.


✦ 제목 ‘촉진하는 밤’에서 알 수 있듯 ‘밤’을 담은 시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은 적막 속에서 잠들지 않은 한 사람을 상상’(「이 느린 물」, p.22)하게 하고, ‘나를 숨겨주고 더 많은 나를 깊이 은닉해주는’(「푸른얼음」, p.70) 밤. ‘너무 많은 말들이 밤으로 밀려가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헤아리다 만 생각들이 밤에게 도착하고, 후회가 낮을 배웅하며 밤을 기다리고, 다시 밤은 사방에서 모여들어 아늑하게 내려앉는’(「비좁은 밤」, p.116) 것. 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본 것 같아 좋았다. [📝 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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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우리는 너무 떨어져 살아서 만날 때마다 방을 잡았다.

그 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파티를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면 한 사람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

그 방 창문을 나는 한 번쯤 올려다보았다.


2023년 9월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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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커튼을 들추고 

  창문 앞에 서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창문 하나를 마주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은 적막 속에서

  잠들지 않은 한 사람을 상상했다

  

  저 사람은 불만 켜둔 채로 깊이 잠든 걸까

  불이 꺼진 어떤 방에도 잠들지 못한

  누군가가 있을까

/ 「이 느린 물」 (p.22)


 

  기다린다는 것은 거짓말

  그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야

  견디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는지를 더 이상 모르므로

/ 「2층 관객 라운지 같은 일인칭시점」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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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며칠 후」 ⛤

✎ 「촉진하는 밤」

✎ 「이 느린 물」 ⛤

✎ 「2층 관객 라운지」

✎ 「문워크」

✎ 「푸른얼음」 ⛤


2부

✎ 「꽃을 두고 오기」

✎ 「2층 관객 라운지 같은 일인칭시점」 ⛤

✎ 「비좁은 밤」 ⛤

✎ 「디버깅」 ⛤

✎ 「내가 시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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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촉진하는 밤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 가시와기 하루코

문학동네에서 만화책도 냈나? 싶어 살펴보니 그 유명한 <중쇄를 찍자> 도 문학동네에서 나왔구나. 만화책을 열심히 출간하고 있는 줄은 잘 몰랐다. 이 만화는 도쿄의 동구청 (아마도 동구는 가상의 행정구역인듯)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 새내기 공무원 요시쓰네 에미루의 일화들을 통해 일본 사회복지제도의 허점과 현실을 살핀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일본만화의 저력을 이 작품에도 어김없이 맛볼 수 있다. 저자인 가시와기 하루코는 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 사회 복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단체를 밀착 취재했다고 한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1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1
나이를 또 먹었구나

그제 아침 신한은행 본점쪽에서 북창동으로 건너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수문장 교대식을 하는 사람들이 남대문 시장쪽에서 대열을 지어 건너오고 있었다. 빨강, 노랑의 즐겁고 흥겨워 보이는 색조의 옷을 입고 건너편에 서 있는 수문장들은 나의 마음을 관광객으로 만들어 들뜨게 했다.


초록불로 바뀌고 수문장들은 대열을 맞춰 내쪽으로 왔고 나는 그들쪽으로 다가가며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그들을 볼 때 앳돼 보이는 젊은이도 있고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분도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관광상품(?)이었던 그들을 덕수궁 앞이 아닌 건널목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보니 생활인으로 보였다.


이 사람들은 추운 겨울 저렇게 입고 일하며 얼마를 받을까, 이 일을 즐기고 있나, 제대로 쉴 수는 있을까, 이 일을 본업으로 할까, 본업으로 하면 먹고 살 수는 있을까, 4대보험은 나올까, 정사원일까, 공부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까, 어린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가장인 사람이라면 배우를 하며 하는 일일까 등등.


부디 제대로 대우 받으며 이 일로도 충분히 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20대 때라면 그저 '와, 덕수궁 앞이 아니라 이렇게 마주치고 보게 되니 더 재미있네.'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랬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며 갑자기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을 인지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니 그 최초는 전경들이었다.


숭의여중, 여고를 다닐 시절, 안기부가 남산에 있을 때, 나는 충무로쪽에서 걸어서 학교에 등교했다. 데모가 한창이어서 올라가는 길에 전경들이 인도에 100m 정도 쭈욱 앉아 있었다. 10대 소녀인 나는 그런 군인아저씨들 코앞에서 걸어가며 받는 시선이 너무 싫었다. 특히 조례와 예배가 있는 월수는 치마를 입고 등교해야 했는데 걸어올라갈 때 치마가 자꾸 무릎 위로 말려 올라가 손으로 잡아내리며 가는 그 100m는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신입생이 되며 전경들은 나를 감시하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잡혀갈 것 같은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친구들이 입대하며 친구들로 보였고, 남동생이 입대하자 동생처럼 보여 애틋했고, 더 나이가 드니 귀여워 보였다.


같은 사람들인데 조금은 무섭고 징그럽게 느껴지던 사람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안쓰러워졌다.


소녀 같고,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나도 좋았지만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역시 나이가 들어야 하는 것 같다. 좀 더 완고해지기도 하지만 좀 더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즐거운 시선을 잃지 않고 완고해지지 않고 넓어지며 나이들 수 있기를.

24-009 |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소설 보다 : 겨울(2023)

문학과지성사 (231216~240117)


❝ 별점: ★★★★☆

❝ 한줄평: 서로 다른 혼란스러움을 겪는 세 편의 이야기

❝ 키워드: 교육, 보편성 | 믿음, 진짜와 가짜 | 은총, 열망

❝ 추천: 강렬하고도 아련한 소설들이 궁금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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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했던 만큼이나 좋았던 이번 겨울 소설집. 새로운 작가님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읽어본 적 있는 작가님의 새 작품을 만나는 것도 늘 설렌다.


✦ 특히 성해나 작가님의 단편 「혼모노」의 강렬함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읻다의 『여름 기담: 매운맛』에 실린 작가님의 단편 「아미고」가 참 좋았기 때문에 이 단편도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마지막 결말부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소름이 돋았다. 꽤 작품을 많이 쓰셔서 앞으로 찾아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 겨울 눈송이를 닮은 표지 그림. 이 책을 끝으로 소설 보다 : 2023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한 해를 네 권의 단편집으로 추억할 수 있다는 것, 참 낭만적인 것 같다. 특히나 좋았던 여름과 겨울의 소설집은 올해 여름과 겨울에 다시 꺼내 읽고 싶다. [📝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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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보편 교양」

: 교육과 보편성, 파괴와 패배


| 곽은 상자 속에 있던 피낭시에, 혹은 다쿠아즈나 비스코티일 수도 있는, 유럽 어느 언어로 된 이름이 분명한 디저트를 하나 입에 넣었다. 역시 달콤했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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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혼모노」 ⛤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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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우리는 계절마다」

: 누구나 혼란스러움을 겪었을 그 계절, 학창 시절


| 나는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p.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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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언젠가부터 ‘가르치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나빠졌지요. ‘왜 날 가르치려고 해?’ 같은 문장만 떠오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게 그렇게 나쁜가요.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영향력을 주고받고 함께 변화하지 않고서 어떻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까요. (김기태 × 이희우, p.55-56)


| 그런 정보를 접하여 가짜나 거짓일지라도 다수 혹은 내가 믿으면 진실이 되어버리는 작금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단어가 ‘혼모노’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무속 역시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허위나 다름없지만, 그에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신앙이 되잖아요.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진짜도, 가짜도 될 수 있는 기현상을 소설을 통해 재현하고 싶었어요. (성해나 × 소유정, p.109)


| 누군가의 삶은 안온한 사랑으로 충만하고 누군가의 삶은 치덕치덕한 불행으로 가득해요. 그 속에서 아이들이 갈구하는 ‘은총’이란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이 정처 없는 삶 속에서 갑작스럽게 내려지기를 바라는 단 한 줄기 희망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소연 × 최선교,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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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 겨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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