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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연작소설 『먼 빛들』(앤드)

최근 들어 한국 문학계에서 보이는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소설이 과거에 없진 않았지만, 최근에 노동을 다루는 소설은 노동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을 강조했던 과거 노동 소설과 차이를 보여준다.

나는 현실에 발붙인 서사를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땀 흘리는 소설을 편애한다.


그런데 그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부 노동 현장이 비어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동인 막노동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이는 나를 포함해 작가 대부분이 막노동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일이 드물고, 막노동 현장을 오래 경험한 사람은 자기 경험을 굳이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생 막노동을 한 아버지는 내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밝힌 일이 없다.

최근에는 나재필 작가의 <나의 막노동 일기>,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 같은 산문집이 소설의 공백을 채우는 모양새다.


막노동만큼이나 소설에서 소외된 노동 현장은 전문직, 그중에서도 여성이 전문직으로 일하는 현장이다.

언젠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문제를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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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아들은 중상을 입은 채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응급실에서 의사가 소년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수술 못 해요. 이 소년은 내 아들입니다.”

의사는 왜 이런 말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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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의 정답은 "의사가 아들의 어머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답을 찾지 못한 이유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자연스럽게 남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한 기분을 느꼈다.

전문직 종사자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이 연작소설은 여성 전문직이 일하는 현장을 구체적으로 다룬, 현재 한국 문학계에서 매우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이 연작소설에 실린 주인공은 미국에서 한국의 법대로 스카웃된 교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센터장, 비엔날레 예술 감독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꽤 높은 대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직업군이다.


다들 우아한 삶을 살 것만 같은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마다 겪는 고충이 만만치 않다.

상대방이 대놓고 막 나가면 소리 높여 따지기라도 할 텐데, 점잖은 척 말의 칼로 푹푹 찔러대니 속수무책이다.

주인공들은 부조리를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힘을 키워 더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고,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이용해야 하며, 사랑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기 싫어도 알아나간다.


여성가족부의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4급 이상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17.8%로 2010년(6.3%)에 비해 11.5%포인트 상승했다.

공공기관, 지방공사와 지방공단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관리자 중 여성 비율도 2010년 15.1%에서 2020년 20.9%로 상승했다.

고위직 및 전문직 여성 종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소수라는 점은 변함없다.


정책을 결정하는 집단의 다수가 동질하다는 건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다수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소수를 자연스럽게 소외시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백날 그런 분석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쏟아내 봐야 보통 사람은 공감하기 어렵다.

나는 소설이 공감대 형성을 위한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읽기는 가장 저렴하게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보고서를 읽고 분석하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다.

특히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에게 이 연작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덤으로 작가의 전작인 장편소설 <백오피스>도 함께.

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문진영 소설집 『최소한의 최선』(문학동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때가 몇 차례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고등학교 시절이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나는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우등생이었고, 앞으로도 1등은 계속 내 몫일 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 치른 첫 시험에서 나는 생전 받아보지 못한 등수(반에서 10등 이하, 전교에서 100등 이하)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저 실수라고 여겼는데, 거듭된 시험을 통해 그게 내 본래 실력이라는 점만 더 확실해졌다.

고등학교 3년은 내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매 시험을 통해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의 들러리를 서고 싶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들러리로 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또 겸연쩍다.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만약 내가 3수를 시도했을 때 들인 노력을 고등학교 시절에 했다면 3수를 할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최소한의 최선'을 했던 것 같다.

그땐 그 정도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느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아홉 작품 속 등장인물은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다.

매사에 기운이 넘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그들처럼 살고 싶지만, 타고난 성향을 억지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

작가는 평범하게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쓸쓸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만큼 '최소한의 최선'을 다한 평범한 사람들 때문에 주인공도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빛이 있으니 그림자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림자는 그림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답답하면서도 안쓰럽고, 외면하고 싶은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용기'라는 제목의 동시가 이 소설집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사람들이 말했습니다/용기를 내야 해/사람들이 말했습니다/그래서 나는 용기를/내었습니다/용기를 내서 이렇게/말했습니다/나는 못 해요"


최소한의 최선
최소한의 최선
청예 장편소설 『라스트 젤리 샷』(허블)

초지능 안드로이드인 '인봇' 삼남매와 이들을 만든 연구자가 윤리 법정에 오른다.

각 인봇의 이름은 '엑스', '데우스', '마키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의 능력은 신과 비교될 정도로 대단하다.

'엑스'는 인간의 노동을 돕는 인봇으로 지금까지 맡았던 모든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데우스'는 엄청난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인봇으로 세상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 탁월하다.

'마키나'는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인봇으로 간병에 최적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들은 모두 인간을 해치고 말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세 인봇은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작품을 읽기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완벽에 다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어떻게 치명적인 결함으로 이어지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인봇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엑스'는 예술 창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곡가를 돕다가, 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선택은 죽음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무속인을 돕기 위해 파견된 '데우스'는 자신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갈등하다가 급기야 자신이 무복을 입고 작두를 탄다.

아이를 간병하던 '마키나'는 인간과 인봇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현실을 괴로워하다가 인간을 인봇처럼 만들려고 시도한다.

세 인봇의 선택은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가,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종교와 미신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인간과 얼마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차례로 화두를 던진다.


심정적으로는 원고 측의 입장에 동조하고 싶은데 영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인봇들은 인간이 정해놓은 가치중립적 태도를 잊고 인간을 해쳤지만, 이들의 마지막 선택이 인간의 불합리함과 묘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가져서는 안되는 인봇이 논리적으로 다다른 결론이 이토록 인간적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는 과학은 과연 가치중립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글쎄... 과학이 가치중립적일 수 있나? 

인간과 관련한 활동이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가능한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문적 활동이고 과학 또한 그 연장선에 있지 않나?

다 읽고 나면 꽤 머릿속이 복잡해질 작품이다.

독서 토론 모임에 이 작품이 주제로 오른다면 꽤 시끄러운 자리가 마련될 듯하다.

라스트 젤리 샷 -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라스트 젤리 샷 -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나재필 산문집 『나의 막노동 일지』(아를)

30년 가까이 기자로 살아온 중년 남자가 준비 없이 사표를 던졌다.

평기자 시절에는 굵직한 기자상을 많이 받았고, 데스크를 거쳐 '기자의 꽃'이라고 불리는 편집국장 자리에도 앉아봤다.

사실상 떠밀리듯 낸 사표였지만, 살아오면서 나름 콧방귀를 뀌어봤으니 나오면 어떻게든 살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나이 든 청춘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용직 알바와 식당 주방보조를 전전하며 재취업을 시도한 끝에 도착한 곳은 막노동 현장이었다.


막노동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동 형태이지만,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가 막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일 테다.

이른바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노동 현장은 마치 인생 막장인 사람들이 모인 곳 취급을 받아왔다.

이런 세간의 인식 때문에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 자기 일을 누군가에게 대놓고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다.


내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는 평생 막노동을 하셨는데, 내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한 적이 없다.

나 또한 아버지가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땀냄새와 술냄새를 짙게 풍길지언정 늘 옷만은 깔끔하게 갈아입고 귀가했다.

그 때문에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직업을 몰랐다.

그저 땀냄새와 술냄새가 유독 짙은 회사원이라고 여겼다.


최근 들어 출판시장에서 다양한 직업 산문집이 주목받고 있지만, 막노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산문집은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 정도만 눈에 띌 뿐이다.

이 산문집은 흔하지만 지금까지 주제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막노동을 다룬다는 점에서 귀중한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이 막노동을 바라보는 인식도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반성하고, 막노동판에서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며 경험한 현실과 그 안에서 찾은 희망을 담담한 필치로 보여준다.


작가가 경험한 막노동 현장은 자기 일만 부지런히 하면 되고, 윗사람 눈치 볼 일도 없고, 승진 경쟁도 없고, 일한 대가가 정확하게 나오는 등 합리적인 공간이었다.

작가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막노동은 그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고 고백한다.

회사 부도 후 편의점 창업 자금을 모으는 중년 가장, 고향에서 식당을 개업할 준비를 하는 청년, 농한기를 맞아 놀지 않으려는 농부...

그들이야말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페이지 곳곳에서 오랜 기자 경력이 빛을 발한다.

작가는 고용 형태에 따라 주어지는 업무와 권한, 임금 지급 체계, 불합리한 관행, 원청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현장 분위기 등을 마치 르포 기사를 쓰듯 상세하게 묘사해 현실감을 더한다.

조선업 노동자 감소, '인분 아파트' 사건의 원인 등에 관한 분석에선 불편부당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언론인의 자세가 엿보인다.


편견과 무례함은 대체로 무지에서 온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면, 쉽게 편견을 가지거나 무례해질 수가 없다.

이 산문집은 막노동 현장 르포이자 일자리 위기에 내몰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돈 들어올 곳은 없는 중장년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훌륭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 산문집을 읽은 후에는 막노동 현장을 막장이라고 깎아내리거나 기성세대를 쉽게 꼰대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한번 밑동이 잘린 나무는 이듬해 잘린 그루터기에서 곁가지들이 뻗친다. 곁가지가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곁가지에도 이파리는 돋아난다. 은퇴한 중장년들의 삶도 밑동이 잘린 나무나 다름없지만 생명력이 있기에 다시 곁가지를 뻗치고 이파리를 틔울 수 있다. 우리는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261페이지)


나는 이 산문집을 통해 아버지가 평생 경험해 온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됐다.

술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졌다.

훌륭한 직업 산문집이다.

나의 막노동 일지 -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나의 막노동 일지 -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윤고은 장편소설 『불타는 작품』(은행나무)

배달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무명 화가가 느닷 없이 자신을 후원하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제안한 곳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미국의 한 재단인데, 어이없게도 재단의 주인이 '로버트'라는 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개다.

犬. DOG. 멍멍이.

'로버트'가 무명 화가의 그림을 '픽'했단다.

대신 조건은 하나, 지원받아 완성한 작품 중 하나를 소각해야 한다.

소각할 작품은 '로버트'가 정한다.

'로버트'가 '픽'해 작품을 소각 당한 작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고, 해당 작가의 작품 가격은 큰 폭으로 뛰어오른다.

그런데 사람도 아닌 개의 안목이 정말 정확할까? 

개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사람과 기계가 있다지만, 작가와 개가 정말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건가?

읽기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상천외한 설정 아닌가?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가 되겠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소각하고 싶지 않아 저항하지만, 소각이라는 강렬한 퍼포먼스가 있어야 작품이 살아남고 작가의 위상도 올라가는 아이러니.

이런 아이러니 앞에서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예술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까?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내 안에 여러 질문이 쌓였다.


처음엔 고작 개가 선택한 한 작품만 태우는 건데 어려울 게 뭔가 싶었는데, 마지막엔 작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와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가들끼리 모인 술자리의 이야기 주제가 신세 한탄으로 흐르는 경우는 많지만, 그 어떤 작가도 자신이 작가가 됐다는 사실을 후회하는 걸 본 일이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괴로워할 뿐이다. 

수입과 별개로 작가는 내가 지금까지 본 자기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이다.

얼마 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작가로서 어떤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나는 많이 안 팔려도 좋으니 '내'가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라도 쓰고 싶다고 답했다.


아무리 대단한 지원을 받았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들어 가는 작품을 무력하게 바라보는 작가가 자존감을 지키는 게 가능할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명성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명성이 무너진 자존감을 세울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을까.

이 소설도 재단의 지원을 받아 유명해진 작가들이 이후 소각된 작품을 능가하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존감이 무너진 작가는 자신이 만족하는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를 한 명만 꼽으라면 윤 작가를 꼽겠다.

기막힌 상상력, 파격적인 설정,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지 않게 표현하는 재기발랄함.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그런 장점이 빛나지만, 전작과 비교해 훨씬 철학적이다.

책을 덮을 때쯤에는 기상천외한 설정을 잊어버릴 정도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작품이다.

멋진 '예술 찬가'다.

불타는 작품
불타는 작품
오은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아침달)

느닷없이 어떤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출처가 가물가물했다.

어디서 읽은 문장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은 시인의 시집에서 본 듯했다.

시집을 꺼내 첫 장부터 훑어보다가 거의 다 읽을 때쯤 되자 그 문장이 나타났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통찰하는 문장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웃길 때 웃지 못하고/화날 때 화내지 못해서/우리의 얼굴은 어색하다"('시끄러운 얼굴' 中)


시집을 꺼낸 김에 더 읽다 보니 다른 문장도 눈에 들어왔다.

"만날 때는 안녕하고 싶어서 안녕/헤어질 때는 안녕하지 못해서 안녕"('기다리는 사람' 中), "네 얼굴을 통해서/내 얼굴이 보고 있다/내 얼굴을"('시끄러운 얼굴' 中) 같은 문장이 좋았다.


그러다가 책을 덮는데 문득 출판사 이름이 보여 기분을 잡쳤다.

몇 년 전 나는 며칠 동안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들고 직접 문학을 다루는 동네서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홍보했었다.

그중 한 서점이 아침달이었는데, 책방지기가 나를 잡상인 바라보듯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그저 홍보 책자와 명함을 두고 나온 것뿐인데 말이다.

그때 책방지기의 건조한 반응 때문에 마음에 생긴 스크레치가 꽤 오래갔었다.

그 경험 때문에 이후 신간을 들고 동네서점을 돌아다니는 일은 그만뒀다.

그때 기분을 시집에 실린 문장으로 대신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뒤를 돌아보니 선이 그어져 있었다. 넘고 나서야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선을 긋는 사람' 中)


나는 이름이 있었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경란 장편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교유서가)

이 작품은 그룹사운드(당시 활동했던 밴드에는 이 표현이 찰떡이다) 송골매가 38년 만에 재결합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도입부만으로도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송골매를 좋아했던 옛친구들이 콘서트라는 매개를 통해 오랜만에 모여 우정을 확인하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예상대로 이 작품은 80년대 여고 시절을 보내며 깊은 우정을 쌓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흩어진 네 친구가 콘서트에 모이는 과정을 그린다.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읽는 즐거움이 줄어들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소설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야 공감할 부분도 많다.

원래 친구끼리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옛날이야기 아닌가. 나는 비록 송골매 세대는 아니지만, 한때 한국 록 계보를 집요하게 따라 들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읽는 즐거움이 더 컸다.

페이지 곳곳에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새가 되어 날으리' 등 송골매 대표곡의 가사가 자연스럽게 실려 있어 BGM이 없어도 BGM을 듣는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에 깊이 열광했던 경험을 해봤다면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을 작품이다.

애틋하면서도 귀여운 장편소설이다.


'의리'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남성적인데, 과연 그 단어가 남성적인 단어인지 의문이다.

근 10년 전, 내가 음악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에 놀랐던 현상 중 하나는 여성 팬의 '최애'를 향한 의리였다.

여성 팬은 대체로 자신의 '최애'를 향한 애정이 매우 깊고, 그 애정을 쉽게 거두지도 않는다.

새로운 걸그룹이 나오면 쉽게 눈을 돌리는 남성 팬과 비교해 애정의 깊이가 다르다.

역대 대한민국 가수 앨범 총판 기록(써클차트 2023년 1월 기준)만 살펴봐도 누구의 의리가 더 강한지 확인할 수 있다.

톱10에 여성 가수는 하나도 없고, 톱30까지 넓혀도 블랙핑크와 에스파 단 둘뿐이다.


여성 팬은 이렇게 오래 '최애'를 기억하며 소설까지 남긴다.

"남자는 으리!"는 무슨...


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정아은 산문집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마름모)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앉은 자리에서 소변도 참아가며 다 읽었다.


나도 그랬지만 많은 작가 지망생이 착각한다.

큰 문학상을 받아 작가로 등단하면 명예와 수입이 따라올 거라고.

그런데 정말 놀랍도록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

진짜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이 책을 쓴 작가 또한 각고의 노력 끝에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화려하게 등단한 후 명예와 수입을 기대했다.

하지만 단행본이 기대보다 팔리지 않고, 급기야 원고를 거절하는 편집자의 메일을 받는 일까지 겪으며 멘붕에 빠진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 '거절메일 1', '거절메일 2' 파트에 당시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읽으면서 PTSD가 오는 기분을 느꼈다.

거절당한 경험은 작가보다 내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 횟수는 상관없다.

거절당한 후 느끼는 자괴감은 늘 새로우니 말이다.

이후 작가는 틈만 나면 기성 작가의 원고 거절 사례를 찾고자 웹서핑하며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만 위안은 잠시뿐, 자괴감이 텍사스 소 떼처럼 밀려 들어와 자신을 괴롭힌다.


그런 자신이 더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진로 변경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자신이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현실을 회피해 왔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쓰는 게 좋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뿐이란 걸.

명예와 수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쓰는 일 그 자체라는 걸.

자신을 쓸 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는 걸.

자신이 쓰는 이유는 고급지게 '잘' 인정받기 위함이라는 걸.

그리고 작가는 다시 작가로 태어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작법서의 성격, 후반부는 에세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작가 지망생에게는 전반부가 흥미로울 테다.

특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많이 써봐야 한다, 끝까지 써야 한다, 초고를 빨리 써야 한다 등의 조언은 정말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소설 쓰기는 정말로 그게 전부이니까.

현직 작가는 후반부에 많이 공감할 테다. 

후반부를 읽으며 작가들의 미묘한 심리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되는 건가 싶어서 읽는 내내 많이 웃었다.

가끔 나만 이런 찌질한 생각을 하며 사는 건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산문집을 통해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님을 확인해 큰 위로가 됐다.

작가 지망생이나 현직 작가가 아니어도 읽으면 재미있을 훌륭한 직업 산문집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이주란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한겨레출판)

몇 년 전 작가의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었는데,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내겐 심심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 소설집이 독서 목록에서 자꾸 밀렸다.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연희문학창작촌에 들고 갔는데, 퇴실일자가 가까워져 오는데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퇴실해 집으로 돌아오면 읽을 책들이 쌓여있을 게 뻔해 다시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작품 속 주인공은 모두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 소박한 바람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자기만의 걸음을 걷고, 천천히 주위와 소통하며, 천천히 상처를 보듬을 뿐이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아파도 요란하게 굴지 않는다.

그렇게 일상을 회복해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늦게 읽었지만, 좋았다.

내가 읽었던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배경 위에 쓰인 따뜻하고 섬세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별로 대단한 사건이 아닌데, 읽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다. 

극적이지 않아 보이는 데 극적이고, 애틋하지만 신파스럽진 않다. 

표제작의 제목이 소설집 전체를 정말 잘 아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지인에게 괜히 연락해 멋쩍은 목소리로 "별일은 없고요?"라고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다정한 소설집이다.


별일은 없고요?
별일은 없고요?
백수린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

출간 당시 구입했는데 손이 가지 않아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작품이다.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백수린 작가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집이 나와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집보다는 산문집이 더 읽을만했다.

그랬는데도 왜 이 작품을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표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책 표지 중에 이 작품 표지보다 예쁜 건 없었다.

문학동네가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감탄하며 책날개를 보니, 주유진 작가의 그림이었다.

이후 웹서핑으로 주 작가의 그림을 찾아 자주 감상하곤 했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주 작가의 그림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돌이켜 보니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여름의 빌라>도 표지에 혹해 구입했었다.


사설이 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백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어린 시절에 사고로 언니를 잃은 주인공은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그곳에서 파독간호사 출신인 여러 '이모'들과 인연을 맺는다.

주인공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중 한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과정이 이 작품의 주된 서사다.

그 과정이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한데, 섬세하고 따뜻한 기운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아서 인상적이었다.


언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서툰 거짓말 때문에 쌓인 죄책감이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수수께끼가 풀릴 때 함께 시원하게 풀리는 서사 구조를 보며 감탄했다.

주인공의 뒤늦은 사랑 찾기도 예뻤고.

작가가 정말 많이 고민하며 작품을 썼구나 싶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잘 몰랐던 파독간호사의 삶과 당대 사회상도 엿볼 수 있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덕에 구체적인 사건과 서사가 엮여 작가가 지금까진 쓴 단편소설보다 훨씬 쉽게 눈앞에 이미지가 그려졌다.

안미옥 시인의 추천사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정말 잘 읽었다.

다음에는 백 작가의 작품을 표지에 혹해 구입하지 않고, 내용이 궁금해서 구입할 것 같다.


p.s. 다만 반전은 내겐 조금 아쉬웠다.

작품을 반도 읽지 않았는데 반전이 예상됐고,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게 반전이었다.

그건 아니길 바랐는데...

하지만 그 반전이 아니었다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을 테지.

스포라서 더 말 안 한다.


눈부신 안부
눈부신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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