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북명 너머에서 | 지혜 ■■■■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설레는 금요일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나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서 안부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분도 많으시죠.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기도 해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1년을 떠올리고 정리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종교적인 휴일이니만큼 교회나 성당에서 차분하고 경건한 하루를 보내는 분들도 많으실테고요.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만의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보고싶은 링크를 가져왔어요. ‘이효석문학상 2023’의 수상 작가들을 인터뷰한 유튜브 링크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idx9dDQlA 글로 만나던 작가님들을 영상과 목소리로 만나보시는 건 어 떨까요?
앞으로 3일 동안 함께 읽을 ‘북명 너머에서’는 약 20년 전 북명백화점에 입사했던 여성들을 기억하는 화자 '나'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소설이에요. 20년 전을 회상하는 작품으로 그 시절 분위기가 고스란히 그려집니다. 그래서 정이현 소설가는 “시대적 분위기나 당대적인 장소성”으로 인해 더욱 더 이 작품이 매력적이라고 평하기도 했어요.
주말 동안 지혜 작가의 작품으로 함께 빠져보면 좋겠습니다.
지혜 작가님이,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질문을 주셨네요! 여러분이 어떤 답을 해주실 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현대문학』 2023년 1월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bookulove
https://casting.kyobobook.co.kr/post/detail/30783
글 인터뷰도 있네요! 혹시 영상 못 보시는 분들은 이 인터뷰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8-1. 이 단편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인상 깊었던 지점 등을 적어주세요.
선경서재
<작은 방주들>의 2023년의 느낌이 <북명 너머에서> 갑자기 1980년대로 가네요. ㅎㅎ 타임슬립을 하는 듯 신선하네요. 작품의 배치가 절묘했어요. ^^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읽었던 김승옥의 단편소설 <역사>에 등장하는 창신동과 양옥 하숙집의 느낌이 성자와 조옥에게로 이어진 듯 했습니다. 구덩이의 이무기는 성자인지 조옥인지 아니면 독자인지 궁금해지네요.
지혜입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소설이 <역사>인데요, 그 소설의 배경과 반대이기도 하고 데깔꼬마니같은 상황이 바로 <북명 너머에서>가 아닌가 싶어요. <역사>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의 도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면 <북명>은 지방(고향)을 떠나지 않고 도심(서울 혹은 그 주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온 사람들과의 조우, 혹은 그 한때를 그리고 있거든요. 떠난 사람도, 머문 사람도 만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도한 바를 읽어주신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구덩이에 대해서는 차차 다음 답변에서 이어갈게요.
오늘도
'북명'이라는 촌스러운 단어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백화점이더군요. 그 시절 백화점에서 일하는 조옥과 성자의 모습은 어땠을까 책을 따라 상상해가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성자는 조옥에게 돈을 떼인것보다 북명에서 함께한 '조옥'을 통째로 잃어버린 게 더 마음아팠겠죠. '모든 것을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조옥을 찾고 싶어하는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 성자의 메모가 인상 깊었습니다.
지혜입니다
'북명'은 실제 지명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모델로 삼은 기존 공간에서 따 온 단어이기도 한데요, 여러 중의적인 느낌을 살려 지은 이름입니다. 성자에게 조옥은 한때 함께 했지만 영원할 수 없던 찰나를 뜻하기도 하고, 어디서도 잃지 못할 자신의 젊을 시절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행히 제가 의도한 대로(?) 혹은 더 많이 다양한 의미를 독자분들께서 읽어주셔서 뿌듯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Adler
성자의 시각에서, 조옥에 대한 인물 평가가 변화 되는 흐름이 인상 깊었습니다.
호기심->흥미->부끄러움(조옥이 큰소리로 노래 부를때)->열등감(조옥과 비교되며 슬픔과 치욕을 느끼는 장면)->애틋함(광고)
도입 부분에 나온, 성자의 과거와 가정에 대한 묘사들은, 어쩌면 성자가 원했던 모습이 조옥에게 투영된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량같은 아버지와 본인의 삶을 희생하며 부양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꽃꽂이, 서예'와 대비되는 '백합을 꺾어 파는 고단한 모습'.
이어지는 구덩이에 대한 설명은 사랑을 원했으나, 자신을 떠난 이무기의 절망을 묘사하고 있지만
저는 이 구덩이가 성자의 자화상에 대한 언급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조옥을 통해 투영이 되고, 이무기가 돌아올때까지(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될때까지(?)) 구덩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혜입니다
구덩이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들었는데요, 처음 의도한 부분은 소설에 묘사된 그대로 '지방 재개발 기간에 동네 곳곳에 생겨난 정체불명의 흔적'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기획 단계에서 이무기가 등장하지는 않았는데, 구덩이를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무기 설화가 등장하더라구요.(이것이 소설 쓰기의 묘미!) 그러자 신기하게도 성자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무기가 소설 안에서 자연스럽게 설정이 되었어요. 조옥에 대한 시선을 섬세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성자가 조옥에 대한 감정이 일차적이 아닌,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는' 그 상태를 중요하게 나타내고 싶었어요.
솔로몽북스
주인공인 성자가 과거에 복명백화점이라는 곳에서 일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때 알고 지내던 조옥이라는 인물과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1980년대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단편작품이다. 특이한건 작품 중간중간 나오는 구덩이라는 존재이다. 그냥 시내 한복판에 있는 구덩이의 존재, 그 끝을 알 수 없는 그 구멍의 존재는 무엇일까?과거와의 조우에서 그 구덩이의 존재는 마음만 먹으면 뻔히 보이는 구덩이를 피할 수 도 있지만, 구덩이가 궁금해서 그 안으로 떨어지게 되면 그 누구도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그런 존재의 의미인 것일까? 다소 평범한듯한 이야기였지만 그 구덩이의 존재로 인해서 단편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그리고 현제의 남편도 월남전 참전 후 그 전쟁의 고통속에서 옛 죽은 전우들만을 찾는 현실이 주인공 성자가 현실 보다 과거의 복명에서의 조옥과의 기억을 찾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지혜입니다
소설을 쓰며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동시에 현재에서 발화하는 화자'의 공간이었어요. 미묘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현재의 남편'은 성자가 현재에서 과거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근거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현재와 과거를 대비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구덩이는...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각자의 정답을 가지고 계시므로 많은 첨언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이상하다면 이상한, 완벽하다면 완벽한 구덩이 그 자체로 보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메이플레이
8-1
근현대가 배경의 이야기가 옛날 TV를 보는 기분이 들어 재밌었어요.
그렇게 과거 누군가에 대한 선망, 어쩌면 사랑이 나중에는 실망으로 남게 되는 것을 이무기의 구멍 속에서 찾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과거의 이야기와 이무기 전설이 만나는 지점이 인상 깊네요.
지혜입니다
저도 그 부분을 쓰고 나서(...)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요,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의도했던 것과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 퍼즐처럼 맞아 떨어질 때, 드물게 쓰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과거가 배경이지만 현재와의 아슬아슬한 거리 또한 이 소설의 묘미(!) 이기도 합니다. :)
거북별85
스무살부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성자의 모습과 그녀에게 다가온 도도한 조옥이라는 인물의 만남이 매력적이네요. 예쁘고 매력적인 그래서 동경하게 되는 인물들은 우리의 젊은 시절 누구에게나 있었을것 같아요. 그럼에도 가까이 하기보다 갈수록 낯설어지는 안타까움도 있구요.
80년대 왠지 나름 세련되었을것 같은 북명 백 화점에서 일하는 성자와 조옥의 모습과 관계성이 예쁘면서도 좀 슬픈 작품이었습니다.
bookulove
8-1. 북명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조옥, 구덩이, 이무기, 그리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구덩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지만 좁고 막다른 벽인 구덩이 안. 무언가를 열망하게 하지만 사실은 텅 빈 공간. 이무기가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성자가 이루지 못한 꿈도 구덩이 안에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 여운이 남았습니다.
신이나
어떤 시기에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어요. 깊은 인연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될 만큼 사라지는 인연이랄까요. 조옥 언니는 그런 사람 같아요. 가끔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도 멀어지기도 하더라구요. 성자는 아무튼 돈은 빌려주지 말았어야하는데 안타깝구요.
지니
8-1. 남편의 병을 통해 회상하게 된 과거가 북명이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질적 가장으로서 젊은나이부터 일해야하는, 애환이 있는 직장이지만 동시에 조옥, 다방 등 추억도 있는 곳이니까요. 이후 결혼하고 아이키우고 하면서 그 시절만큼 기억에 남는 젊은시절이 없었을 거 같아요. 동네의 구덩이까지 연결되어 성자에게 깊게 남겨진 거 같습니다.
Henry
“동생들이 모두 대학에 가면 좋겠지만 가도 문제였다. 그런 와중에 사촌이 백화점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떤 기회가 왔다는 것을, 살다 보면 한 번쯤 만나는 그런 행운이 스물셋의 봄, 나에게 찾아온 것을 직감했다.”
<p.239. 북명 너머에서 (지혜 지음). 중>
좋은 시절이었고, 모조리 닯고만 싶은 사람을 운명처럼 만나는 일상이 주는 행복에 겨웠습니다. 그렇게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며 에꼴드빠리를 드나들며 현실의 답답함을 잊고 행운으로만 가득찬 행복에 겨웠을 시간. 뭐 영원한 건 절대 없고 그걸 진즉에 직감했을 테지만.
“그 목소리를 듣자 쓸쓸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그때는 몰랐다. 다만 우리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예전만큼 다시 돈독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만은 확실했다.”
<p.259. 북명 너머에서 (지혜 지음). 중>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렸습니다. 조옥을 동경하고 사랑해마지 않지만 또한 안타까움과 건조한 미움이 공존하는 마음을 가진 성자의 관계 때문 일겁니다. 소녀 가장에 다름 아닌 부담스런 본인의 처지를 망각하고도 싶었을테고, 그래서 막연한 아이돌 같은 탈출구나, 이무기의 웅덩이가 필요했던 이성자.
지난 시간에 제 주변을 서성였거나, 제가 서성였던 관계들과 시간들을 자연스레 떠올렸습니다. 의견 차이로 때로는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마음의 불균형으로 가끔은 빌려간 돈 문제로 멀어지고 제로의 관계가 되어버린 기억들. 그래서, 회한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때로는 환상에 본인을 몰아넣는 성자의 모습이 내내 안쓰럽고 애달팠습니다.
서쪽으로
8-1 <북명 너머에서>는 '과거의 기억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주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뇌수술 후 기억 상실증 증상을 보이는 화자(이성자)의 남편은 기억하는 순간에 따라 앞에 보이는 아내와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남편은 현재 나와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지만 남편의 시간은 제멋대로고, 그에 따라 남편에게 보여지는 '나'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거기에서부터 내 마음은 조옥과 함께했던 북명백화점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남편을 처음 만났던 장면에서 '나'는 딱 조옥이었으니까요. 그리하여 그 시절은 화자에게 이무기가 용이 되어 오르려다가 무너져 내려 구덩이가 되게 했던 시절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나'는 회고를 통해 그제야 그 시절이 자신을 끌어내린 구덩이가 아닐 거라고, 물이 차오르고 반짝거리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처음에 현재 이십대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가 다방에서 나오는 노래 제목을 보고서야 그 시절 이십 대 이야기구나 했는데 남편 뇌수술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설 속 주인공의 나이가 순식간에 점핑을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보기 드문 구성인데 생각보다 잘 받아들여져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짜
성자와 조옥 이야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막 성인이 된 나이 혹은 바로 그 직전에는 이렇게 은근한 동경의 대상이 있는것 같아요. 저 역시 조금 반항기 있어보이는 친구들에게 특히나, 나도 성인이지만 실은 고등학생이었을 적과 별반 다를바 없는 자신은 아직 유년기 같이 느껴지는데 , 담배 피거나 술 마시기, 돈빌리기등, 마치 어른들의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을 행하는 친구들을 볼때, 내 바운더리를 넘어간 그 친구들에게 이상 야릇한 선망이 조금은 생겼던거 같거든요. 갑자기 멋지게 세상 가장 쎄다는 담배곽을 꺼내 담배를 빡빡 피우던 첫 흡연자 친구가 저도 번뜻 기억 났던 단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 마음속 구덩이였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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