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홀가분한 목소리. 이응을 하고 나온 사람들을 잘 보면 사라졌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92, 안보윤 외 지음
할머니는 죽는 것도 이응 같은 거라고 했다. 이응처럼 코스를 선택할 순 없지만,이응의 컬러볼처럼 삶에서 죽음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이 색에서 저 색으로 바뀌는 것뿐이라고.이응을 하는 것처럼 억눌려 있던 게 풀리면서 기분 좋게 흩어지는 거라고 했다. 아마 자신은 묵은 똥을 싼 것처럼 가뿐할 것 같은데, 몸뚱이를 갖고 사는 게 늘 조금은 힘겨웠으니 거기에서 풀려나면 얼마나 시원하겠냐고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이응이응>, 안보윤 외 지음
할머니와 나는 그 나무를 잘생긴 나무라고 불렀다. 우리는 나뭇잎 모양이나 열매를 보며 나무의 진짜 이름을 알려고 애쓰지 않았 다. 이름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짓빛 기둥으로 쉬고 있었다. 갈색 깃털의 새가 악보의 음표처럼 나뭇가지를 오르내렸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멜라 <이응 이응>, 안보윤 외 지음
주황빛 광택제를 바른 첼로의 울림통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랄까. 결과 빛깔이 다른 목재들이 실내를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서 있는 기둥은 약간 붉은빛이 돌았고, 복도 끝에 있는 계단 목재는 사막의 모래처럼 옅은 황색이었다. 서늘한 공기에선 적당한 농도의 풀 냄새가 났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멜라 <이응 이응>, 안보윤 외 지음
"제 말이 너무 빠르지 않나요?" 우유수염이 피아노를 치듯 호두나무 테이블을 두들기며 묻자 레인코트가 말했다. "말은 항상 느리죠. 생각에 비하면 언제나 느려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85쪽, 안보윤 외 지음
왜 목소리에는 주름이 있을까.
다 울어버리지 말고 울고 싶은 마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울고 싶은 자신을 바라보라고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이응 이응> 297쪽, 안보윤 외 지음
9-2. 278p “오라질, 갑시다, 똥 누러.” 288p 팬티를 갈아입는 인간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 뫼르소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자신에게 그런 판결을 내린 자들이 팬티를 갈아입는 인간이란 사실에 치를 떤다고 했다. 292p 이응을 자세히 보면 동그라미 위에 꼭지가 달려 있는데, 그게 훈민정음에 있던 ‘옛이응’이라고 했다. 지금은 사라진 그 발음을 다시 살려내서 ㅇ과 ㅎ 사이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찾아준 거라고. 296p 내 몸이나 감각에 몰두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잊게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느리고 모호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 고전문학 서가에 앉아 책을 통해 누군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306p 나는 내 욕구를 설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세상에는 어떻게 그 많은 불행이 계획되어 있는 걸까.
왜 목소리에는 주름이 있을까. 내 얼굴에 닿던 할머니의 손과 그 감촉. 하도 떠올리다 보니 맛도 느껴졌다. 칼칼한 고춧가루 향, 물엿처럼 달고 끈적거리는 온기, 고사리나물처럼 쓴맛이 맴도는 할머니의 당부. 보리야,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307p, 안보윤 외 지음
9-2. p.296 다만 나는 정해진 단계에 따라 쾌감을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이나 감각에 몰두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잊게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느리고 모호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 고전문학 서가에 앉아 책을 통해 누군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글로 쓰고, 종이에 인쇄된 인간의 욕구가 나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생생했고, 그렇기에 안전하게 나를 열 수 있었다. p.298 할머니는 이응이 발달하는 만큼 의학 기술도 좋아져 개의 수명이 늘어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뭐든 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좋아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줘야 한다고. p.306 나는 내 욕구를 설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세상에는 어떻게 그 많은 불행이 계획되어 있는 걸까.
이름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어떤이름이든 나무 스스로 지은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75, 안보윤 외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9-3.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효석문학상 수상작들만의 관통하는 키워드, 전체적인 방향성은 어떤 것이라고 느껴지시나요?
9-3.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전체적으로 지금까지의 수상작들이 어떤 분위기나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작품집의 작품들을 쭉 돌아봤을 때 ‘사람’과 ‘이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의 인물들은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은 지나쳤을 것 같이 생생하게 그려졌고, 그래서 읽는 동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보듬어주고 싶어지더라고요. 또 단편들 속 인물들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작은 일탈을 감행하지만 결국에는 현실에 매여 있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키워드도 추가하고 싶네요.
p.324 '우리는 사회적 현실의 흐름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저항하는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문학적인 반성과 그에 따른 변화의 시도마저도 어쩌면 하나의 사회적 원자로서의 작용-반작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적인 의심도 하게 된다.' 저는 저항과 회의적 의심이 수상작들의 키워드와 방향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찌보면 회피하고 싶은 주제들, 하지만 직면해야만 하는 주제들이 현실에 있을법한 사건들과 조합되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상기시키고, 저항하게끔 하는 요소들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단편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은 개별적으로 살아있었다. 살아 남은 승주, 학교를 떠난 연수, 날선 재아, 다가가는 장희, 할머니를 기억하는 나, 우유니로 떠나는 은재, 조옥을 기억하는 성자, 레인코트를 끌어안는 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나아간다. 그들의 방향에는 정답이 없다. 잃어버린 것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에서, 그리운 것에서 머물지 않는 듯 보인다. 정지한 것 같은,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인생도 실은 다방면으로 뻗어 나아가는 것 아닌가? 한 가지 길이 아니라 다행이다.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 길을 선택한 것 만으로 큰 용기이며 삶의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제가 느낀 키워드는 "회귀" 혹은 "회복"이다 싶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와서 일지도 모르겠으나, 작품들 여기저기 에서 읽히는 듯 느껴졌습니다.
9-3. 대체로 소설, 특히 단편소설이 그렇지만 소외된, 사회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 합니다. 다만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그러지 않은 듯 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심사평에 언급된 '삶의 관성'의 측면에서 소설들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가까이있는 사람들의 귀기울여 듣지는 않았던 이야기를 모았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래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감사히 느낄 수 있었어요.
저 역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수상작 모두를 아우르는 키워드나 방향성은 잘 모르겠지만 다름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힘입어 용기내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문학상마다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겠구나 생각하니 앞으로 다른 문학상 수상작을 대할 때도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나 방향성을 생각하면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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