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오늘도 님, 반갑습니다. 앞선 독자님께서 비슷한 질문을 주셔서 댓글 달았습니다. 부디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소소한 일상인 듯하지만 흥미롭고 생각할 점이 많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특히 호경과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서도 재아 내면의 변화를 호경과 엮어서 풀어낸 부분(재아가 그렇게 연습해도 안 되는 요가 동작을 호경이 단숨에 해내는 장면이나 춤을 추며 호경 아래 깔린 장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130쪽 조명을 모두 끄고 동적 명상에 들어가면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 시간을 아주 오래, 맹렬히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분을 읽으면서 재아가 현오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거기까지 나아가기에는 현재 둘 사이가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재아가 두 번째 책 계약을 현오의 출판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와 계약했다는 부분을 읽고 역시나 그쪽으로 진행이 되는구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별 변화없이 끝나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재아와 현오의 관계 변화에 대해 고심하지 않으셨을까 생각되는데 그 부분이 궁금해집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맞아요, 두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굳건한 둘의 관계를 통해, 계급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작은 모험 이후 적어도 재아에게는 모종의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재아가 다른 출판사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진이 흑백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실은 그런 이유입니다. 앞으로는 재아가 좀 더 컬러풀한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다른 타인을 수용하고 환대하는 것이 재아의 새로운 놀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누군가 재아를 바라보는 서술방식이었다면 이렇게 폐부 깊숙히 찌르는 내용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는 게 퍼뜩 든 생각이고.. 또 우리 모두 속물이 되었거나 되어 가는 이 세상에서, 오히려 1인칭 서술이었기에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이상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구상하시면서 화자의 인칭 같은 건 어떻게 결정하시는지, 특히 이 소설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깊이 고민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지만...) 궁금해지네요!
깊이 있는 독해 고맙습니다. 아마 다른 작가님들도 비슷할 텐데, 시점을 정하는 건 저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소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지금도 단편 작업하면서 시점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있는데 아직 적절한 목소리를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야기를 잘 이끄는 목소리를 찾았을 땐 마치 테니스 채의 스윗스팟에 공이 ‘탕’ 맞은 것 같은 쾌감이 들거든요. 이번 소설의 경우 재아의 목소리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중반부쯤 다소 엉뚱한 지점에서 ‘탕’ 소리가 났고 그때부터는 (입이 트인) 화자가 너무 수다스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줄 한줄 나아갔던 기억입니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 무엇일지 제일 궁금했는데 작가님의 답변을 읽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이 제일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까지 속시원하게 해결되었네요. 재아가 호경으로 부터 받았던 불쾌감이 결국 자신의 계급이 낮음을 스스로 느끼게 했던 것이었군요. 작가님의 설명과 함께 글을 다시 읽으니 모호했던 부분이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다시 읽으면서 숨은 그림찾기 하듯 이해하니 재밌네요.
독자님 글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믐 회원님들 질문에 답하면서, 제가 모호한 결말로 독자들을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만든 건 아닌지 자문하고 있었거든요. 이 소설에는 저만 아는 상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사실 모르고 지나가도 전혀 상관없는 요소들입니다. 그저 재미삼아 숨겨둔 것인데 재미있어해주시니 고맙고 뿌듯합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게 어디로 흘러가려고 이러나, 조바심을 내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붓에서의 시간들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 재아와 호경으로 대척점에 있는 두 인물을 대비시키며, 여행지에서의 비현실적인 어떤 긴장감이나, 의외의 상황에서 재회하지만 현실에 발딛고 있는 이들의 어색함이 제겐 기시감 같은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작가님은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인물이나 방향을 잡는 편이신지 아니면, 인물과 방향을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편이신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쓰면서 ‘이게 어디로 흘러가려고 이러나’ 불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은 소설을 쓸 때마다 매번 겪는 일인데요. 독자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도 인물이나 방향을 미리 정해두고 쓰지 않아서 그런 듯합니다. 한때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서 주제나 플롯을 미리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마치 밑그림이 다 그려진 컬러링북을 칠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결과물이 경직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쓰는 입장에서도 무척 지루하다고 할까요...... 다른 작가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 선망을 끌어내기 충분하다고 쓰셨는데,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나다.
‘‘미술 쪽 일을 한다’는 나의 직업 설명 역시 그들의 선망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문장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답변하자면, 소설의 맥락 안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혼자 해외를 여행하는 여자가 드물던 시절’에 해외의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젊은’ 여행자들에게는요. 그 대상이 미술이 아닌 영화나 음악이었어도 비슷한 반응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보통 젊은이들에게는 예술노동을 자본의 가치로 치환하지 않는 순수함이 남아있으니까요.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듯이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한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고급' 취향을 향유하는 동시에 은밀한 놀이를 즐기는 재아와 현오가 더욱 부각되더라구요. 배경 묘사에 공들인 느낌이 강했는데 이를 위한 장치였을까요? 다른 분들이 언급하신 것처럼 재아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야기라서 독자에게 크게 와닿는듯 해요. 그저 불쾌하기만 하다 끝날 수 있는 캐릭터지만 심리적인 묘사가 더해져서, '아...재아가 너무 불편하겠지만 그 불편함은 내 한구석에 재아가 있어서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런게 거울치료....? ㅎㅎ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라 참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거울치료’ 부분에서 빵 터졌네요. 제 책상 옆에는 ‘오감’이라고 쓴 포스트잇이 붙어있는데, 실은 소설을 쓰면서 시각, 후각, 청각 등 감각 묘사를 저도 모르게 놓칠 때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
4-4. 저마다의 각기다른, 결점이라고 해야할까요, 허영심을 가진 네 명의 인물들이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 서로간에 탐색하고 평가하고 본인을 드러내고 하는 게 인상깊고 재밌었습니다. 소설에서 의미를 찾는 수준의 독서레벨에는 못 미쳐서 끝부분의 뱀과 양배추 그림이 무얼 말하는지 몰라 궁금했는데, 위에 다른분 질문에 답변주신 거 읽고 도움이 됐습니다! 이 소설에 딱 어울리는 제목이네요.
‘소설에서 의미를 찾는 수준의 독서 레벨에는 못 미쳐서’라는 독자님 말씀이 마음에 걸려 댓글 답니다. 소설을 읽은 뒤 뭔가 뜻 없이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것은 저의 역량 부족 때문이지 독자님의 독해 능력 탓은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힘이 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
다른분들 감상이나 후기를 보다보면 소설을 읽으면서 발견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의 소감을 보곤 해서,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난 왜 책을 깊게 못 읽을까 생각하곤 하거든요. 그런 의미였고,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답변주셔서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단편이지만 마지막까지 스토리가 이어져서 좋았습니다. 단편들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끝날때가 많아서 앞의 서사가 가득 쌓이지도 않았는데 뒷부분도 열려있으면 향기처럼 훅 날아간다 생각하거든요. 아 그리고 재아가 현오의 그림자에 갇히는 부분도 저도 느껴본 적이 있던 부분이라 좋았고, 그래서인지 재아의 마음은 줄곧 동감하며 읽어와서 어떤 마음으로 호경에게 강강술래에 대한 질문을 했는지. 그 이후에서야 그 그림을 찾고 어떤 자괴감을 느꼈을지 예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님 그믐 아니었으면 작가님의 의도(뱀과 양배추는 미주나 각주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아요. 이 모임 소중하네요. 현대인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와 같은 면을 그대로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저는 넘 좋았어요. 일면 저의 모습도 보여 얼굴도 화끈거렸고요.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언젠가 박찬욱 감독이 했다는 말 "모호함이야말로 좋은 예술의 조건이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이 어떤 경우를 말할까?' 생각해봤던 적이 있는데요, 소설 속에서 H라는 인물이 극장에서 여자 감독에게 질문하고, 감독이 대답한 문장과도 닿아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그 춤은 사실 고대 부족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무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보여주려 한 것은 소통의 가능성보다 오히려 그것의 불가능성에 가까운 것 같다고 부연했다."(138) 라는 부분이어습니다. 안보윤 작가님의 작품에서도 이런 지점에 눈에 들어왔었는데요, 실로 많은 예술분야를 업으로 하시는 많은 분들(글작가님들도 포함하여)이 이 지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는 구나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통의 불가능성'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계급을 부각시키는 행위에 이용되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점은 기호의 사진찍기 행위와도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초상 사진을 찍을 때, 사진 작가는 피사체와 심리적 교류를 하며 다가가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찍음으로써 권력관계를 확정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나는 사진가다, 중요한 일 혹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무언의 선언같은 것으로 이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읽기 일정을 맞추지 못하여 포기할까 하다가 늦게나마 여러 가지 생각을 남겨보게 되었습니다. 단편을 읽으면서 저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저도 상황에 따라 비호감형인 오 반장처럼 되는 것도 한 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반면에 현오나 기호의 말과 행동에서 저의 것들이 될 수 있는 지점도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합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으로는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4-4.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다른 분들의 댓글 속 답변을 읽고 이마를 탁! 쳤습니다. 그 둘이 어울리게 그려진 그림을 이리저리 상상한 제 모습에서 속물적인 저를 발견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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