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5-3. 얼마 전 아이가 아파 게임도 TV도 금지했더니, 도대체 이 지루한 시간에 뭘 하냐며 난리를 치길래 10년 동안 단 한번도 읽어 준 적이 없었던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별 특별할 것도 없었던 '반 고흐와 나'라는 그래픽 노블이었는데, 읽는 내내 아이가 집중해 주었고 읽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2시간이 환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읽어 주니까 글씨가 많은 책도 재미있다.'며 갑자기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잠자기 전 루틴이 되어 버린 절망적인 상황.....(자기 전엔 졸음이 급 몰려와 책 읽어주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입니다.) 그래도 엄마로서 책을 읽어줘야겠단 생각에 몇 번 다른 책을 읽어 주었지만, 그때와 같이 빛나는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깊이 있게 묻고 들어주는 시간도 아니었지만, 책을 통해 조용하게 서로가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최근 가장 서로에게 가 닿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선택] 5-4. 김병운 작가에게 한 마디
5-4.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과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던 사람들, 서로를 향한 복잡한 마음을 따뜻하게 표현해 주셔서 여러번 곱씹게 됩니다. 좋은 작품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제 독해력 부족으로 인해 충분히 다가오지 않은 부분이 있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장희가 나에게 엄마를 이해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후 '그래서 동성애 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 중략... 나는 그랬던 거야.'에서 앞 부분은 퀴어를 비난하는 듯한 말로 느껴져서 의미 연결이 잘 안되더라고요. 아마 어딘가 제가 오독을 한 게 아닌가 싶은데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
"그래서 동성애 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남자랑 섹스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이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 대사는 장희가 퀴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는 의미로, 정확히는 안전과 보호를 동력삼아 혐오를 사랑으로 포장한 것에 대한 비난의 의미로 들어갔는데요. 거기에 차별과 혐오가 없다면 동성애 역시 이성애처럼 권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되묻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앞의 대사와 이어지는 것이기도 해서 맥락상 주어를 엄마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김병운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위에서 설명을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맥락상 엄마를 주어로 읽을 수밖에 없는데, 제가 파악하기로 장희 엄마는 동성애에 대해 곡해하고 있는 입장이고(장희가 느끼기에는요) 장희는 동성애자이니 일차원적으로(?) 생각하자면 엄마가 장희에게 '그래서 네가 동성애를 하겠다는 거야? 남자랑 섹스를 하겠다는 거야?'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저절로 상상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장희의 입에서 나오니까 엄마가 어떤 말을 했길래 장희가 저런 답을 할 수 있을 지 소거된 그 부분을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구상하셨던 소거된 엄마의 말이나 입장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실은 엄마는 진무 삼촌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어느 부분에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다시 찾으려니 못 찾겠네요.ㅜㅜ) 혹시 엄마도 퀴어로 설정하신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뒷부분에서 결정적인 어떤 것을 찾을 생각만 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펀홈> 에서 이 대에 걸친 퀴어와 클로짓 게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요. 작가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남겨주신 글 보니 제 답변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주어를 엄마로 보시면 될 것 같다는 말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하고요. 제가 주어를 언급했던 건 저 대사를 엄마의 말로 상상해주십사하는 뜻이라기보다는 문장의 주어를 엄마로 놓아주십사했던 뜻이었는데요. 이렇게 다시 풀어서 써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가 나더러 동성애를 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엄마가 나더러 남자랑 섹스하라는 거야? 아니잖아." 자신에게 동성애를 하라는 엄마, 남자랑 섹스를 하라는 엄마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동성애를 이성애처럼 권장하고 동등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아니라면, 장희는 이해할 생각 없다는 항의와 분노가 담긴 대사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병운 아!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장면이 장희와 나의 대화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대화를 과거에 엄마와 나눈 대화로 읽었거든요. 다시 정신차리고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
그리고 아마도 엄마가 삼촌에게 매년 보냈던 엽서 때문에 삼촌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느끼셨을 것 같아요. 엄마를 퀴어로 설정하지는 않았고요. 저는 퀴어만이 퀴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의 작품들도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들로 채워주실껀가요?
요즘 저의 작업 모토는 '세상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 절실한 것을 쓰자'인데요. 세상에 중요한 것들은 제가 우러러 보는 훌륭한 작가님들께 맡기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비슷한 소재를 쓰고 있다고 느끼셨다면 그것이 제게는 쓰고 또 써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절실하고 또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5-4. 작가님의 작품을 아직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한밤에 두고 온 것」에서 ‘대훈’이 더는 숨거나 참거나 도망침으로써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일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아 한 걸음 나아갈 준비를 하는 모습, 윤수희 감독이 잘 모르지만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걸 쉽게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모습이 저는 정말 좋았거든요. 세상을 바꿔줄 이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한밤에 두고 온 것」에서 마지막 문장인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가 정말 좋았거든요. 오늘의 내일이 내일의 오늘이 되듯, 모두가 평범하고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날이, 언젠가는, 내일이 오늘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언제나 그랬듯이’ 올 것이라 믿고 있어요. 작가님이 ‘나에게 절실하고 중요한 것을 쓰겠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에게 절실하고 중요한 것이 담겨 있을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됩니다. 응원하고 다음 작품도 기다릴게요! Q. 마지막에 카메라라는 장치가 한 시절의 끝이자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고장 난 줄 알았던 카메라가 사실은 고장 나지 않았고, 함께 카운터가 0을 가리키는 순간을 바라보는 장희와 나,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장희와 이야기를 듣는 나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마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끊어졌다고 확신했던 어떤 인연을 다시 되살려보고 싶은 마음이 아마도 이 작품을 추동했던 엔진(?)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소설을 구상하던 시기에 방 청소를 하다가 제가 오래전 서랍장 맨 아랫칸에서 모아둔 소형 전자기기를 꺼내보게 되었어요. 핸드폰부터 시작해서 MP3, CDP, 디카, 필카 등등 지금은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작동조차 하지 않는 그런 기기들이었는데, 문득 너무 낡고 오래되어서 고장난 것처럼 보이는 이것들을 하나씩 다시 작동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이 마음을 소설 안에서 장면화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출발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
이전 질문에서 작가님이 질문하셨던것처럼, 누군가와 공감을 하게되면 서로를 마주보게 되는데 작가님이 생각하기에는 어떤 순간이 그러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제 동료와 소설 얘기를 하느라 한 시간 반이나 통화를 하고 말았는데(평소에 저는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고 전화를 하더라도 5분을 넘기지 못하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설 쓰기인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 소중하고 애틋해서, 이렇게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숨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를 읽으며 '나는 이해하려는 사람인가,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인가,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을 배제하고 박탈하려는 사람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부분은 제게도 무척 중요한 질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4 김병운 작가님의 글을 읽게 되고 기쁩니다. 글을 통해 따듯한 관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희와 함께 여행을 떠나주는 '나'와의 관계를 시작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관심속에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아껴주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엄마가 삼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외부적으로 관계가 단절시켰지만 마음속으로 가족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나와 P의 관계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둘의 관계가 끊겼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관계였을까요? P와 장희와도 어떤 연계된 점이 있는 것일까요? 궁금하네요.
마지막 카메라와 관련된 부분을 쓰신 의도라고 해야 할까요, 담고싶으셨던 생각이 궁금했는데 앞서 다른분의 질문과 답변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내내 고장인줄 알았던 카메라를 이영서씨가 준 휴대용선풍기의 건전지로 고쳐지게 된 마지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겐 어린 장희가 삼촌한테 보낸 카드(언제든 집에 오라는 환대의 카드)를 삼촌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삼촌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지만 '내 곁에 당신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그러고보니 작품의 제목을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로 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정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에는 남다른 관심과 꾸준한 연구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사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빛을 밝히는 작가님의 작품과 만나길 고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읽으며 느낀 단어 두개는 '오해'와 '화해'였습니다. 작가님은 이 이야기를 풀면서 혹시 마음에 품은 단어나 이미지 같은게 있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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