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누군가의 말을 한참 뒤에 곱씹어보면 왜 그때는 똑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내 마음만 아프게할까 자책한 적이 있는데요. 알리가 있을까요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해서 부풀리지않으면 좋겠는데 사람인지라 쉽지 않네요. 뱉은 사람은 기억 못할 수도 있는 건데요.
1-3. 말과 상상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주에게 ‘거듭되는 상상은 현실보다 혹독’하고, ‘매 순간 필사적이고 진심’이지만, 그건 오롯이 자신 내면의 일입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건 자신을 괴롭게 만들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말로 내뱉는 순간 그 말은 내 의도가 어떠했든 상대에게 꽃이 되기도 칼이 되기도 합니다. ‘끝끝내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주의 마음을 오래도록 떠올릴 것 같아요. 점점 더 말의 무게를 실감하고 최대한 신중하게 말하고, 잘 알지 못하는 일에는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애도의 방식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품론에서는 소설이 ‘애도의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동주는 아마 앞으로도 승규의 죽음에 있어서는 전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미 수없이 그날로 돌아가 승규를 붙들기도 하고, 승규를 밀치기도 한 동주가 어떻게 승규의 죽음을 잊고 자신의 안에 삼킬 수 있을까요.
평상시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대수롭다'라는 단어가 일상생활 중 종종 생각났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중요하게 여길 만하다'라는 뜻의 형용사더군요. 대수로운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더라고요. 말과 사람 그리고 그외의 것들을 대수롭게 여기며 살 수 있도록 좀 더 애써야 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고 형태를 바꿔 나를 끌어들였다. 옥상 위 그 자리로 끝없이 나를 불러들였다. 어느 때의 나는 승규의 주먹에 얻어맞아 어금니가 깨졌다. 깨진 단면에 혓바닥을 깊게 베여 입 안 가득 피가 고인 채 옥상에서 내려왔다. 승규와 함께였다. 어느 때의 나는 승규에게 휩쓸려 공사장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어느 때의 나는 내 머리 위로 막 넘어가려던 승규의 다리를 붙잡았다. 정강이를 꽉 끌어안고 승규의 무게를 견뎠다. 그리고 어느 때의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승규의 정강이를 힘껏, 있는 힘껏 밀쳤다. 거듭되는 상상은 현실보다 혹독했다. 나는 수없이 승규를 붙들고 수없이 승규를 밀쳤다. 매 순간 나는 필사적이었다. 오롯이 진심이었다. - 동주가 승규에게 이유없는 괴롭힘을 당한 기간이 짧지않음에도 동주는 승규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벗어나지 못하며, 승규를 살리는 자신과, 함께 죽은 자신 그리고 그를 구하는 자신을 상상합니다. 그 상상 속에서 동주의 마음을 상상하면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이유만으로 구하기위해 그 순간 다리를 붙잡을 수 있을까? 그 죽음에 나는 온전히 슬퍼하며 진실을 밝히지않으려할까? 승규의 죽음을 바란 적이 없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누군가의 실수나 미운 감정들에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해봅니다
짧지만 워낙 마음에 충격을 안기는 단편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국 오래 핍박받아온 피해자 입장에서 그나마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나은 애도의 방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먹먹해집니다. 동주는 그러면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까..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가능한 일이일까. 개인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가까스로 어렵게 읽어가면서 그럴 수도 있다고 그게 어쩌면 맞다고 깨우쳐보는 걸 위안 삼아봅니다. ㅠㅠ
요새 저의 작은 화두는 '타인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에 대한 것인데요, 지극히 개별적인 존재들, 나아가 타자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해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보게 됩니다. 이 자신감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거나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여, 조심스러워 집니다.육체를 지닌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감옥이기도 하고 무덤이기도 하니, 개별자로서의 고통 역시 지극히 개별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었던(학폭이든 우정이든) 사람의 죽음, 상실을 경험할 때, 이들은 이 사태에 대처하기에는 무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육체를 가진 개별자로서 죽음을 경험해본 적은 없으니 말이지요. 그렇기에 애도란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언어이기도하고, 그만이 머물 수 있는 작은 시간과 공간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이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마음 상태를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타인의 마음 풍경을 짐작해볼 수 있는 상상력이 있으니 끊임없이 타인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할 뿐이라는 것도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적고보니 전부 동주의 진심이 담긴 장면들이었어요. 소란 속에 덩그러니 놓인 동주의 심정을 잘 좇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서고 보니 '몰라요'라고 진심을 담아 말하게 되는 문장들이네요. 애도의 방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들이기도 하구요. 어쩌면 동주의 진심은 버스 터미널과 마을의 경계에 우뚝 선 미도파에 머무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소란에서 벗어나는 대신 소란 속에서 정적을 택한 동주의 마음을 계속해서 살피게 됩니다.
"말하지 마" 동주에게 진실에 대해 말하달라 요구하는 승규 엄마,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어느새 소란의 중심이 되어버린 동주. 이런 상황에서 동주가 무슨 말을 한들 과연 그것을 그대로 믿어줬을까 의문스럽습니다. 동주가 아무리 '앞'이라고 얘기해도, 틀렸어 그건 '뒤'야 라고말하며 동주를 의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분명 있을겁니다. "그만큼 당했으니 동주 걔도 한 번쯤은." 저 조차도 그런 의심 분명히 품었을 겁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동주만의 애도의 방식인 걸까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제가 작가님의 작품을 여기있는 두작품만 보았는데 유독 '소란' 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애도의 방식 과 너머의 세계에서도 '소란'이라는 단어가 언급이 되었더라구요. 혹시 의도하신바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작가님에게 궁금한걸 여기서 언급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솔로몽북스 '소란'이라는 단어는 제가 자주 떠올리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예요. (심지어 이제 막 마감한 다른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건 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소란하다'고 감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 소란한 세계를 너무 소란한 마음으로 살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동주는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지만, 기억은 그 형태를 바꾸고 있습니다. 재구성되는 방식인데, 그게 또 상상의 방식이기도 해서 거듭되는 상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건 실제 인간이 중요한 일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과 상상이 선명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표현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표현되지 않는 감정과 내면을 인물이 하는 여러 상상의 이미지로 제시하신 부분이 돋보였습니다. 작가님이 쓰신 문장을 읽으며, 저에게도 이렇게 상상을 동반하는 기억이 없었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앤드류 포터의 ‘구멍’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별다방좋아 앤드류 포터의 <구멍>은 정말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짧은 소설이 이토록 강렬할 수 있다니 하고 매번 생각하게 돼요.
1-3. 요즘 많은 이슈들이 있잖아요. 보도되는 내용들을 보며 지레 짐작하고 추측하고 단정지으며 평가하곤 했는데, 이 문장이 떠오르네요. 이 단편의 동주의 이야기처럼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건데 말이죠.
가해와 피해가 한눈에 가려질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피해자였으나 어느 순간 입장이 바뀌기도 하고, 온전히 원망만 하며 처벌을 구하는 마음은 과연 편키만 할까 싶기도 하고요. 승규의 엄마는 이제 편안해졌을까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동주의 애도는 어떻게 해야 끝이 날까요. 혼자서 방법을궁리해보자니 또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이해하려 들거나 위로하려 들지 않는 태도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타인을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나 스스로도 나를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으니. 나의 최선은 무엇인지, 고민해봅니다.
무력하게 승규의 폭력을 받아내던 동주의 모습이 마음이 아파 적었습니다 피해자임에도 자신의 상처를 아물 권리조차 없어보이던 동주의 모습이 너무 속상하네요 그리고 피해자임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과 그 안에서의 또다른 생존의 방식은 무엇일까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자꾸 생각하게 되네요.
1-2에서 작성 한 문장은 "유가족과 자기자신을 위한 회피"라고 생각하며, 이 문장이 책을 읽은 이후로 계속 마음속에서 생각나는 문장이기에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아이가 그동안 행했던것을 유가족한테 이야기 하기도 힘들기도했지만, 자기 자신이 그동안 당했단것과 이 사건에 대한 것을 숨기고 싶어 했다고 계속 마음속에서 맴돌고 그러네요.
1-3 저는 '관성'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스로 탈출하지 못하고 관성처럼 상황에 끌려다니는 무력감에 대해서요. 다수의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그들 스스로가 관성으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제3자들은 그들의 무력함을 비난할테지만 폭력자들의 루틴을 벗어나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 겁니다. 마음조차도 제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억눌려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하겠지요. 피해자들의 관성을 탓하기보다 이해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1-3. 두드림 이후의 시간이라기 보다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드는 것이 내년부터라, 육체적인 고단함이 사라짐과 동시에 정신적 고난이 겹쳐지는 것에 대한 공포로 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동주가 될 수도 승규가 될 수도 그리고 주변의 방관하는 아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나의 아이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나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아무 일 없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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