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기억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숲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할머니를 버리러. 어쩌면 아빠도 버리러. 가다가 자작나무 숲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껍질 한 껍질 벗으면서도 맨몸이 되지 않는 나무들의 숲. 환한 나무들의 숲. 그런 숲에 이르면 나는 마침내 물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탔어, 뭐가 그렇게 애타게 자작자작 힘들었어, 할머니.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다시 궁금해진다. 죽은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03-204, 안보윤 외 지음
부끄러워서 귀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빨간색 펜으로 죽죽 그은 문장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한 채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00쪽, 안보윤 외 지음
할머니네 집에 가면 나 역시 쓰레기기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엄마와 살던 집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어쩌면 할머니 집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쓰레기가 아닌게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80쪽, 안보윤 외 지음
한 껍질 한 껍질 멋으면서도 맨몸이 되지 않는 나무들의 숲. 환한 나무들의 숲. 그런 숲에 이르면 나는 마침내 물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탔어. 뭐가 그렇게 애타게 자작자작 힘들었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자작나무 숲> 204쪽, 안보윤 외 지음
그런 수식어들은 쓰레기처럼 의미에 냄새를 입힐 뿐이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자기 것이어야만 할 것 같은 집을 눈앞에 둔 채 살면서 겪어야 했던 그 격렬한 허기. 할머니의 집에 붙들려 산 엄마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그런데 그 노래에서는 왜 자꾸 엄마를 불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하얀 껍질을 종이처럼 벗겨내는 나무였다. 한 껍질을 벗기면 또 살아서 다시 하얘지는 나무. 벗고, 벗고, 또 벗는 나무. 그래도 알몸이 되지 않는 나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이런 스토리는 평범하지는 않으나 결코 비범하지도 않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비범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니. 나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의 손녀로 살아가면서도 결국에는 비범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운명을 가졌다는 뜻이다. p191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종이는 뭉쳐 있으면 더는 가벼운 것도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저것들은? 입에도 못 넣는 걸 왜 그렇게 쌓아놓는 거야? 저게 다 네 입으로 들어가고 남은 것들이다. 이년아.
하나도 버릴 게 없지 않니......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94, 안보윤 외 지음
할머니가 또 말했다. 잘 살아라. 잘 먹고 잘살아라.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94 <자작나무 숲> 중., 안보윤 외 지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 영원한 허기, 그게 엄마의 정체성이었으니까. 가질 수 없는 집을, 그러나 꼭 자기 것이어야만 할 것 같은 집을 눈앞에 둔 채 살면서 겪어야 했던 그 격렬한 허기, 할머니의 집에 붙들려 산 엄마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원 세상에, 우리 엄마 말솜씨라고는, 내 탄생 신화는 고작해야 꿍짝꿍짝, 붕가붕가, 그러다가 어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할머니는 아흔 살까지 호더로 살았고, 아흔한 살인 그때까지도 호더로 살고 있었다.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쓰레기와 죽은 쥐와 산 쥐와 죽은 벌레와 산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집. 당연히 할머니가 그토록 오래 살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불결한 환경에서는 누구도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심지어는 쥐와 벌레들조차도 자기들 똥으로 뒤덮인 그 집에서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작나무 숲-
비로소 내가 쓰레기가 아니게 되는것인지도 알수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개연성. 그 후로 나는 줄곧 개연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 후로 10년, 그 후로 20년, 어쩌면 그 후로 평생. 할머니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거라는 개연성. 할머니가 죽는 것은 백일치성으로도, 작정 새벽기도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일 같았으나, 그러나 어떤 소설은 이루어진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도 이루어진다. 개연성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 테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00p, 안보윤 외 지음
6-2. p.195 그 밤에, 결국 할머니 방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방은 내 방보다 더 많은 것이 쌓여 있고 더 좁았으나 작은 굴처럼 단단하고 안전해 보이기는 했다. 할머니가 이불 한쪽을 열어주어 그 안으로 들어가 등을 돌리고 울기 시작했다. 하나도 버릴 게 없지 않니...... . 할머니가 등 뒤에서 말했다. 좌절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고통이 뒤범벅되어 있는 목소리였다.
6-2. 178p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다. 할머니는 지금 내 차 안에 죽어 있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다시 궁금해진다. 죽은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187p 원 세상에, 우리 엄마 말솜씨라고는. 내 탄생 신화는 고작해야 꿍짝꿍짝, 붕가붕가, 그러다가 어어. 192p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지 않고, 당연히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지도 않기 위해 살았다. 나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열심이었다. 194p 나 돈 좀 줘. 할머니 집 팔아서 돈 좀 줘. 잘 먹고 잘살게 나 돈 좀 줘. 나라도 잘 살게 그 집 팔아 돈 좀 달라고, 쫌! 203p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기억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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