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선택] 4-4. 강보라 작가에게 한 마디
초반에는 스토리 중심으로 가다가 후반부 짦게 재아의 작은 모험에 대해 글이 마무리 됩니다. 초반에 스토리를 길게 쓰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현제 시점에서 재아의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더 좋았어서 그 부분이 좀더 길게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네요. 잘보았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재아의 현재에 해당하는 후반부는 완성된 소설에 일종의 ‘태그(tag)’를 다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요가 장면에서 그대로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었느냐’며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독자님처럼 후반부가 좀 더 이어지길 바라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실은 무척 반갑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태그’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거든요. 이 짧은 후일담을 통해 주제의식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언뜻 분명해 보였던 재아의 입장을 오히려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독자들의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자유롭게 뻗어가기를 바랐다고 할까요? :)
오 저는 요가 장면에서 끝나지 않고 후반부에서 재아와 호경이 만나는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독자마다 의견이 다양하군요 ㅎㅎ 작가님께 이 ‘태그’가 중요한 부분이었다니 꼭 필요한 장면이었네요.
4-4.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부부 작가시라는 걸 알게 되어 신기했어요. 서로가 쓰는 글의 첫 독자가 되고 동시에 든든한 동료가 된다는 건 엄청난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 나올 작가님의 글들도 기대됩니다 ㅎㅎ Q.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을 드러내는 그림으로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특별히 떠올리시게 된 계기 같은 것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앗, 인터뷰도 찾아보셨군요! 지금 막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출근했는데, 독자님에게 응원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납니다. 오늘은 반드시 목표량을 채우고 돌아가야겠어요.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떠올린 계기에 대해 말하려면 다소 길고 지루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최대한 짧고 지루하지 않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출신, 계급, 학력 등에 의해 개인의 문화적 취향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는데요. 1979년에 출간된 이 책에는 프랑스의 국립조사기관에서 실시한 다양한 문화 취향 조사 결과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중 ‘다음을 주제로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라는 질문이 있는데 그에 대한 여러 보기 중 하나가 바로 ‘뱀’과 ‘양배추’입니다. 이 두 가지 피사체에 대해 상류계급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민중계급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말 그대로 뱀 사진 혹은 양배추 사진이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 것이지요. 반면 상류계급은 자기들이 '대상을 미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생소한 피사체에 일단 '흥미를 느끼는 척' 하는 것이고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 역시 민중계급의 반응에 마음이 기울었고,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이를 상류계급의 속물적 취향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을 대표하는 일종의 기호로서요.
부르디외라는 학자는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런 문화 취향 조사가 있었군요 ㅎㅎ 상류계급과 민중계급의 답변이 확연하게 갈리며 가식과 솔직함이 교차되는 게 매우 흥미롭네요. 작가님 덕분에 뱀과 양배추라는 숨겨진 장치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ㅎㅎ
제목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어서 저도 기쁜 마음으로 답변했습니다. 제 머릿속에만 있던 구구절절한 뒷이야기인데, 덕분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갖게 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저도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궁금했거든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 나오다니 신기하네요. 상류사회가 자기들이 대상을 미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생소한 피사체에 일단 흥미를 느끼는 척 한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가끔 이렇게 생각지 않던 사실들이나 연구내용이 소설 속 장치로 나와도 재미있네요. 작가님의 귀한 설명 덕에 퍼즐 여러조각이 맞춰진듯 합니다.
작가님 답변을 들으니 확 이해가 되네요. 뱀과 양배추가 무슨 상관이람 이랬거든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강보라 작가님의 소설을 읽게돼 감사합니다. 호경이 건넨 그림에 '뱀'과 '양배추'가 나오는데 특별히 이 둘을 호경이 선물한 그림 속 소재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오늘도 님, 반갑습니다. 앞선 독자님께서 비슷한 질문을 주셔서 댓글 달았습니다. 부디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소소한 일상인 듯하지만 흥미롭고 생각할 점이 많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특히 호경과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서도 재아 내면의 변화를 호경과 엮어서 풀어낸 부분(재아가 그렇게 연습해도 안 되는 요가 동작을 호경이 단숨에 해내는 장면이나 춤을 추며 호경 아래 깔린 장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130쪽 조명을 모두 끄고 동적 명상에 들어가면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 시간을 아주 오래, 맹렬히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분을 읽으면서 재아가 현오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거기까지 나아가기에는 현재 둘 사이가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재아가 두 번째 책 계약을 현오의 출판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와 계약했다는 부분을 읽고 역시나 그쪽으로 진행이 되는구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별 변화없이 끝나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재아와 현오의 관계 변화에 대해 고심하지 않으셨을까 생각되는데 그 부분이 궁금해집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맞아요, 두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굳건한 둘의 관계를 통해, 계급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작은 모험 이후 적어도 재아에게는 모종의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재아가 다른 출판사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진이 흑백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실은 그런 이유입니다. 앞으로는 재아가 좀 더 컬러풀한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다른 타인을 수용하고 환대하는 것이 재아의 새로운 놀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누군가 재아를 바라보는 서술방식이었다면 이렇게 폐부 깊숙히 찌르는 내용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는 게 퍼뜩 든 생각이고.. 또 우리 모두 속물이 되었거나 되어 가는 이 세상에서, 오히려 1인칭 서술이었기에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이상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구상하시면서 화자의 인칭 같은 건 어떻게 결정하시는지, 특히 이 소설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깊이 고민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지만...) 궁금해지네요!
깊이 있는 독해 고맙습니다. 아마 다른 작가님들도 비슷할 텐데, 시점을 정하는 건 저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소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지금도 단편 작업하면서 시점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있는데 아직 적절한 목소리를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야기를 잘 이끄는 목소리를 찾았을 땐 마치 테니스 채의 스윗스팟에 공이 ‘탕’ 맞은 것 같은 쾌감이 들거든요. 이번 소설의 경우 재아의 목소리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중반부쯤 다소 엉뚱한 지점에서 ‘탕’ 소리가 났고 그때부터는 (입이 트인) 화자가 너무 수다스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줄 한줄 나아갔던 기억입니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 무엇일지 제일 궁금했는데 작가님의 답변을 읽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이 제일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까지 속시원하게 해결되었네요. 재아가 호경으로 부터 받았던 불쾌감이 결국 자신의 계급이 낮음을 스스로 느끼게 했던 것이었군요. 작가님의 설명과 함께 글을 다시 읽으니 모호했던 부분이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다시 읽으면서 숨은 그림찾기 하듯 이해하니 재밌네요.
독자님 글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믐 회원님들 질문에 답하면서, 제가 모호한 결말로 독자들을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만든 건 아닌지 자문하고 있었거든요. 이 소설에는 저만 아는 상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사실 모르고 지나가도 전혀 상관없는 요소들입니다. 그저 재미삼아 숨겨둔 것인데 재미있어해주시니 고맙고 뿌듯합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게 어디로 흘러가려고 이러나, 조바심을 내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붓에서의 시간들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 재아와 호경으로 대척점에 있는 두 인물을 대비시키며, 여행지에서의 비현실적인 어떤 긴장감이나, 의외의 상황에서 재회하지만 현실에 발딛고 있는 이들의 어색함이 제겐 기시감 같은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작가님은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인물이나 방향을 잡는 편이신지 아니면, 인물과 방향을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편이신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쓰면서 ‘이게 어디로 흘러가려고 이러나’ 불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은 소설을 쓸 때마다 매번 겪는 일인데요. 독자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도 인물이나 방향을 미리 정해두고 쓰지 않아서 그런 듯합니다. 한때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서 주제나 플롯을 미리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마치 밑그림이 다 그려진 컬러링북을 칠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결과물이 경직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쓰는 입장에서도 무척 지루하다고 할까요...... 다른 작가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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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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