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4-1. 예술적 식견을 어느 정도 갖춘 속물 근성의 재아가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사는 요즘 사람들의 조금은 자만한 모습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표현했듯이 그런 '못생긴 마음을 가진 자들'은 평생가도 절대 이기지 못할 호경 같은 사람들을 꼭 만나고요. ㅎㅎ 저 또한,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에서 몇 년간 체류한 적이 있어 조금은 그리운 감정과 거기에 ‘시간이 멈춘 채’ 머물러 있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한국에 와선 에그머니나 용궁 다녀 왔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는 설화가 있듯, 다시는 따뜻하고 더운 계절만 계속 되는 나라에서 오랜 기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모와 캐리어와 이손목 작가, 애나 패서디나, 부민성 등등은 찾아 보고 띠용~
기간 중에 감상을 쓰지 못하여 미루다가 개학 전날 방학숙제하는 기분으로 써봅니다! ^^; 8년 만에 다시 찾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화자인 재아가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자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 것이 여행을 하게 되는 이유 혹은 여행이 주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현오와 재아는 문화, 예술 분야를 업으로 삶고 있는 지식인들이라고 할 수 있네요. 다만 다소 속물근성도 있고요. 두 사람은 "습관처럼 그들을 의심하고 분류하고 비판했다."(108)라는 표현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 다른 개성과 속물근성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투하는 모양새 같습니다. 중년인 오반장을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이 경솔하고 상대를 한 마디로 요약해버리고 정리해버리는 성격 같고요. 그런데 이런 점은 재아도 있습니다. "오 반장이 어떤 부류인지 알 것 같았다. (...) 여행하던 시절 숱하게 봐온 스테레오 타입이었다."(114)라고 하는 면도 있네요. 저도 이렇게 각자가 나름대로 지니고 있을 심리적 경계를 무턱대로 넘나드는 사람들과 만나면 당황하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계가 아주 희미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사람들과 관광을 다니면서도 그럭저럭 지내는 모습 또한 흥미롭구요. 조금씩 상대에 대해 알아가면서 새로운 면들을 보고 이해를 더 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러한 경계를 또 쉽게 넘는 인물이 사진작가인 송기호이기도 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방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 관광을 다닌 날 그 날의 '베스트 컷'을 추려 재아에게 보내기도 하구요. 제다가 카페에서 재아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 무턱대로 사진기를 들이대는 모습또한 보입니다. 요새는 아주 힘들어졌지만, 거리에서 무턱대로 타인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사진적 폭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 생각해보면 각자가 공공의 장소에서 타인의 사진을 찍는 것이 보다 자유로웠던 시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도촬'로 몰릴 수도 있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겁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공공장소에서 아무도 CCTV에 하루 70번 이상(?) 동의 없이도 찍히고 있는 현실에는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는 않고요. 이제는 그런 시절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동남아시아 관광지에서 혹은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도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공평하게 말하자면 이런 행위도 '계급성'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너무 새버렷네요. 우붓에서 재아가 보았던 호경이 훗날 극장에서 재아가 질문했던 무용가 서호경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게 맞다면 호경이 무용가로 활동하는 것이 애나 패서디나의 워크샵에서 영향을 받았을까 재미있기도하고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끝으로 탁자 위의 양배추 한통과 뱀이 있는 정물화를 호경에게서 받았을 때, 재아가 처음에 아연함보다 불쾌감을 느낀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부분은 호경의 대답 앞에 여자 감독이 했던 말과 관련이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소통의 가능성보다 오히려 그것의 불가능성에 가까운 것"(138)에 관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걸까 궁금했습니다.
4-1. 내내 굉장히 불편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끝에 가서는 등짝 한 대 맞은 듯 주변을 살피고 돌아보게 되었어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어, 어쩌면 불편했던 마음이 그 이유가 아닐까 .. 그게 나의 솔직함이 아닐까 ..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가진 가면과 오늘의 가면과 그가 가진 가면과 오늘 그의 가면이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마주하느냐에 대해.
화제로 지정된 대화
4-2. 이 단편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을 적어주세요.
서로 무언가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느냐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마흔 이후의 삶은 내리막길을 달리는 스쿠터처럼 무서운 가속도로 우리를 흔들었다. 현오와 나는 어리둥절한얼굴로 서로를 꼭 붙들었다. 모든 것이 전보다 쉽지 않았다. 중심에 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예상을 벗어난 결과 앞에서 평정을 가장하는 일이 늘어났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작은 실패를 맛보고 작은 성공으로 그것을 갈음하길 거듭하며 나이에 어울리는 포기와 체념을 얼굴에 새겼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35, 안보윤 외 지음
현오의 깍듯한 태도는 예의나 존중의 표현이라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을 슬며시 밀어내는 기교에 더 가까웠다. p117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쉽게 어울리고 쉽게 헤어졌다. 지금처럼 남을 의식할 필요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02, 안보윤 외 지음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 내는 것은 그 시절 현오와 나 사이에 통용된 은밀한 놀이였다. 우리는 습관처럼 그들을 의심하고 분류하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친 사람인지, 시대의 흐름 덕에 과대평가받고 있는 건 아닌지, 애초에 부자여서 모든 게 가능했던 경우는 아닌지 꼼꼼히 살폈다. 처음에는 우리와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어떤 때는 일종의 반작용으로, 그저 교양 없고 몰취미한 사람들이 심판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의 이런 태도는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옷, 음악, 책, 가구, 미술, 요리, 영화, 스포츠, 모든 것이 판단 대상이 되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08, 안보윤 외 지음
동적 명상은 장소가 실내일 경우 조명을 모두 끄고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 환경이라면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어둠 속에서라면.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시간을 아주 오래, 맹렬히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30, 안보윤 외 지음
여자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내 인생의 작은 모험 정도로 치부해왔던 그 시간이 여자에게는 그보다 더 축소된, 작은 모험의 전주곡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38, 안보윤 외 지음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런 조악한 정물화. 오래전에 호경이 내게 준 그것을 베란다에 서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새하얀 캄보자꽃과 원숭이, 노을에 물든 논밭 같은 상투적인 그림들을 제쳐두고 그 애가 굳이 골라 내게 선물한 것.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 그림을 받았을 때 아연함보다 불쾌감이 앞섰던 이유를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39, 안보윤 외 지음
그럼에도 의문은 남았다. 무례하지도 않지만 딱히 호의적이지도 않은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03쪽, 안보윤 외 지음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느냐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38쪽, 안보윤 외 지음
나를 발견한 호경이 땀에 젖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머리를 빙빙 돌리고, 망설임 없이 이를 드러내고, 어린애처럼 엉덩이를 흔들고, 몸을 사라지 않고, 추하게,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컹컹 짖고 혼자 데굴데굴 구르다가 덮치듯 내게 몸을 무너뜨렸다. 나는 호경의 밑에 깔린 채 웃기 시작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34쪽, 안보윤 외 지음
최대한 사려 깊고 친근하게, 하지만 그가 다시 내게 연락할 수 없을만큼은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35쪽, 안보윤 외 지음
저는 소설을 읽는 내내 속물스런 제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질투는 나의 힘'스러운 소설 속 문장들을 이곳저곳 옮겨 봅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지적인 남자가 소수의 사람에게만 내비치는 믿음. <...>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취향과 관점을 바탕으로 정해진 길을 걷듯 편안하게 예술계에 진입한 사람들. <...> 세속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창조성을 생계와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삶.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p109., 안보윤 외 지음
현오의 깍듯한 태도는 예의나 존중의 표현이라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을 슬며시 밀어내는 기교에 더 가까웠다. <중략 또는 현오/재아의 닮은 모습으로...> 최대한 사려 깊고 친근하게, 하지만 그가 다시 내게 연락할 수 없을 만큼은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p117, 135, 안보윤 외 지음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느냐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p138, 안보윤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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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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