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6-2에 적은 부분이 인상깊었는데, 주인공이 한달에 한번씩 돈을 받으러 쓰레기집으로 가야했는데, 쓰레기집에 들어가기 싫은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것인지 내가 쓰레기인지 햇갈리고 생각되기 때문에 인상깊었습니다.
한 껍질 한 껍질 벗으면서도 맨몸이 되지 않는 자작나무처럼 목소리를 하나씩 떨궈내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아주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뚝 선 자작나무 숲처럼 쓰레기로 만들어진 탑이 집을 가득 채웠다는 구절이 다소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책으로 탑을 채운 제 방과 할머니의 집이 뭐가 다를걸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버리고 싶지만 버릴게 없었을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은 대답을 할 수 없겠지만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6-1. 처음과 끝이 만나는 듯, 어려운 구조같아요. 하지만 안이 내용은 어딘가에서 들어봄직한, 짐작 가능한 이야기들이라 TV 프로그램 보듯 읽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 쓰레기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내게 소용 없으면 쓰레기이고 그것을 모으면 호더가 되는 것이 맞나. 할머니에게는 그것들이 모두 소용이 있었다면 쓰레기라는 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쓰임이든 가진 것이 많았던 할머니의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6-1. 이번 작품을 통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호더'라고 칭하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만들어낸 쓰레기만 쌓는 것이 아닌 밖의 쓰레기까지 가지고 오는 할머니를 보면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심리란 어떤 심리일까 한 번 더 생각해 보았고요. 물리적으로 봤을 때는 주변에 피해를 보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치워져야 하는 쓰레기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거겠죠. 그리고 할머니에게 집을 상속 받으려고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처럼 표현하는 화자의 위악적인 발언들도 슬펐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머니의 시신을 쓰레기 속에서 찾지 못한 것으로 읽었는데, 시작 부분에서 할머니의 시신을 싣고 가는 장면이 뭔가 맞지 않아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티비에서 쓰레기집에 사는 사람들을 무조건 혐오의 눈길로만 바라 봤던 제가 얼마나 편협했나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6-2. 이 단편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을 적어주세요.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기억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03, 안보윤 외 지음
어떤 방식으로든 오래된 관계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손이 발에 익숙해지고 발이 손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왼손과 왼발이 같이 나가는 일이 평생 계속되지는 않는 것처럼.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그 동네에선 다 죽어, 뭐든지 죽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86, 안보윤 외 지음
쓰레기가 말짱히 치워진 후 텅텅 빈 집을 할머니는 거대한 상실감과 비통함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의 빈 몸에 고통과 슬픔이 넘쳐흐른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79쪽, 안보윤 외 지음
30분 넘게 숲속을 달리는 동안 어딘가에 숨어 있던 달이 마치 문밖으로 나오듯 뛰어나와 자작나무 숲을 밝혔다. 숲의 달이 그렇게 밝을 줄 몰랐다. 보름달 아래 갑자기 하얗게 밝아진 숲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고작 눈부시게,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서럽도록, 이나 가슴이 무너지도록, 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런 수식어들은 쓰레기처럼 의미에 냄새를 입힐 뿐이다. 차를 세웠으나 내리지는 못한 채 숲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서 있는 나무들의 숲이었다. 하얗고, 곧게. 그리고 빛을 뿜어내는 숲이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77, 안보윤 외 지음
당장 영안실로 달려가야 했으나, 다리가 덜덜 떨려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슬픔 때문인 줄 알았다. 아니면 뭐겠는가. 설마 기쁨이겠는가. 그러나 곧 그것이 슬픔도 기쁨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거슬리다 못해 견딜 수가 없었다. 저들은 쓰레기는 다 쓰레기인 줄로만 안다. 그래서 다 쑤셔 넣고 다 던져버린다. 그러고는 다 묻어버리거나 다 태워버리겠지. 자작자작 태울 줄도 몰라 다 꽝꽝 태워버리겠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을 넘어 격렬한 감정이었다.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다 버려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인데, 갑자기 무슨 마음인지, 어떤 것은 남겨두라고, 그것만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이뿌리의 신 침처럼 고였다. 그러더니 점점 다 그냥 놔두라고, 다 내 거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니까 전부 다 내가 상속받은 것이라고, 내가 상속받은 쓰레기라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01-202, 안보윤 외 지음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기억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숲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할머니를 버리러. 어쩌면 아빠도 버리러. 가다가 자작나무 숲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껍질 한 껍질 벗으면서도 맨몸이 되지 않는 나무들의 숲. 환한 나무들의 숲. 그런 숲에 이르면 나는 마침내 물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탔어, 뭐가 그렇게 애타게 자작자작 힘들었어, 할머니.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다시 궁금해진다. 죽은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203-204, 안보윤 외 지음
부끄러워서 귀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빨간색 펜으로 죽죽 그은 문장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한 채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200쪽, 안보윤 외 지음
할머니네 집에 가면 나 역시 쓰레기기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엄마와 살던 집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어쩌면 할머니 집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쓰레기가 아닌게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80쪽, 안보윤 외 지음
한 껍질 한 껍질 멋으면서도 맨몸이 되지 않는 나무들의 숲. 환한 나무들의 숲. 그런 숲에 이르면 나는 마침내 물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탔어. 뭐가 그렇게 애타게 자작자작 힘들었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자작나무 숲> 204쪽, 안보윤 외 지음
그런 수식어들은 쓰레기처럼 의미에 냄새를 입힐 뿐이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자기 것이어야만 할 것 같은 집을 눈앞에 둔 채 살면서 겪어야 했던 그 격렬한 허기. 할머니의 집에 붙들려 산 엄마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그런데 그 노래에서는 왜 자꾸 엄마를 불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하얀 껍질을 종이처럼 벗겨내는 나무였다. 한 껍질을 벗기면 또 살아서 다시 하얘지는 나무. 벗고, 벗고, 또 벗는 나무. 그래도 알몸이 되지 않는 나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인숙 <자작나무 숲>, 안보윤 외 지음
이런 스토리는 평범하지는 않으나 결코 비범하지도 않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비범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니. 나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의 손녀로 살아가면서도 결국에는 비범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운명을 가졌다는 뜻이다. p191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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