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

D-29
5-1.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너무 좋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타깝고 마음아플 수 있는 주제와 내용일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왠지 모를 위로를 주네요. 이해하려 노력하는 나와 이해하길 거부했던 장희의 이야기와, 그들이 겪을 시간을 먼저 겪은 삼촌과 이영서씨와의 만남이 모두 인상깊었습니다. 분명 쉽지 않은 삶이었을텐데 소원인 노환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삼촌의 말이 소설 마지막 필름이 되감기는 장면과 연관되며 결말까지 좋았습니다.
5-1. 지난 주에 읽고서 마음 속에 정리가 잘 되지 않아 감상이 늦어졌습니다. 제가 용어를 바르게 이해하고 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퀴어'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접하며 조금이라도 더 관련 이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여서 좋았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타인을 이 기준에 맞추거나 이를 잣대삼아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어왔던 걸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잣대에 맞지 않는 수많은 개성을 가진 이들이 있을 텐데요, '퀴어'로 여겨지는 이들은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 이들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장희의 어머니나 주변 인물들(혹은 친척들)의 말과 행동, 심지어 뒷담화까지도 이런 표준적인 잣대의 구속을 강하게 받은 상황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제게 이 이야기는 병원이라는 '성채'에 가까워지는 장희의 '짧지만 긴'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삼촌이 머물고 있는 병원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호텔에 머물면서도 쉽게 만날 수 없던 상황이 생각납니다. 마치 장희의 망설임이나 두려움, 설레임 같은 감정들이 이런 정황에서 설정된 것만 같고요. 결국 화상통화로 상봉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억이라는 매개로 다시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15년(?)의 시간 동안 거의 잊고 있었던 삼촌과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로 '카메라'가 나온 것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오랜 기억을 다시 불러들이는 도구같이 느꼈습니다. 이것도 삼촌한테 받은 카메라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장희와 삼촌이 화상통화를 하는 장면에서 '어린 장희'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카드에 쓴 말 "언제든 우리 집에 또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어. 그 말이 나는 참 좋았고."(169)라는 대목이 참 좋았습니다. 의식적인 것인 것이 아니라 아이의 진심어린 마음이 담겨 있는 환대의 말을, 오랜 세월 간직하고 살았을 삼촌의 마음이 보이는 듯해서요. 주저앉게 된 사람을 다시 먼지 털고 일으키게 하는 힘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참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장희가 고장난 카메라를 고치고나서 작동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장희는 카메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컷의 필름을 '나'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리고 필름을 다 사용하여 되감기는 장면이 나와요. '나'의 어떤 모습이 찍혀있을지, 그리고 그 이전에는 어떤 기억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혹시 젊은 시절의 삼촌과 연인(?)의 모습이 남아 있을지도요. ^^
보통 귀에 쉽게 들어오는 소문은 믿기 쉽고, 그 소문의 사실을 확인하긴 어렵죠. 엄마의 말 한마디로 오해하고 산 세월도, 고장난걸로 믿고 있던 카메라도. 실상은 내가 얼마나 마음을 담고 노력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진짜가 보이기도, 보이지 않기도 하다는걸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삼촌이 마지막까지 애정을 가지고 마음속으로나마 노력하고 사랑했던 조카라서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던것 같아서 또 좋았습니다.
소설의 말미에, 코로나가 안정기여서 사회적 격리는 해제되었지만, 요양시설은 여전히 면회가 제한적이던 시절. 그래서 노인복지회관에서 빌린 노트북으로 화상면회를 하는 장면에서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그리고 알게된 장희 엄마의 이면을 알게되는 장면. 그렇게 화해를 하고 둘이 고장난 줄 알았던 카메라로 남은 사진들을 찍고 필름이 되감기는 카운트다운을 지켜보며, 마치 새해를 맞이하듯 새로운 시작으로 희망스레 마무리짓는 이야기가 뭉클했습니다. 다른 모양, 다른 마음이라고 오해하기 보다, 그 진심에 좀더 귀 기울여 살아내봐야 겠다 다짐 해봤습니다.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슬프면서도 따뜻했습니다. 오해와 편견 속에 쉽게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프면서도 장희와 진무 삼촌의 관계는 참 따뜻했습니다. 가끔 가족이 아니면 시큰둥해지는 사회적 관계가 되었는데 삼촌과 조카의 거리가 이처럼 가깝고 따뜻하다면 그 관계사이의 거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해와 편견이 아닌 서로에게 구원이 될 관계들이 늘어난다면 좋겠습니다.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자꾸만 울게 되는 작품이었어요. 찌르르하게 마음 한구석을 찌르다가도 이내 환하게 웃게 만드는, 감정의 폭을 자유자재로 흔들어대는 글이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삼촌이었고." 실은 그런 삼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든 사람이 장희의 엄마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니 "더러운 병에 걸렸다"는 누군가에게도 던질 수 없는 원망의 화살은, 결국 가족인 장희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장희에게 그렇게 상처를 남겼음에도 다른 누구보다 장희의 엄마가 계속 눈에 밟히는 건 역시 삼촌이 건넨 말들 때문인가봅니다.
아무래도 역시 카메라가 작동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누군가의 시간을 고스란히 의미하는 것 같아서,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고도하고, 추억이 되지않을만큼 익숙해진 세상이 더 이상 특별하지않아서 시간이 빨리간다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어릴 적의 추억을 쥐고 살아가나봐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 추억들이 가장 선명할지도 모르겠어요.
5-1. 퀴어라든가 동성애에 대해, <오프닝 나이트>에서의 이물감같은 불편함 없이 편하게, 때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오프닝 나이트를 이 글 읽은 후에 다시 읽을 정도였어요)) 삼촌과 장희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나에 대한 이야기와 엄마의 마음 등은 상상하며 보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5-1. 장희-화자, 화자-삼촌, 삼촌-이영서의 위로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장난 줄 알았던 카메라가 우연찮게 켜지면서 재생되는 장면에서 환희를 느꼈습니다. 시대가 바뀌는 속도 보다 개개인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느리다는 걸 대면할 때마다 좌절감을 맛봅니다. 세상이 변한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일까요?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제 가장 가까운 사람 그대로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5-2. 이 단편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을 적어주세요.
이건 꼭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 얘기여서 요 며칠 오늘만 기다렸다며 뜸을 들이는데 어쩐지 장희와 나눠 마시고 있는 공기의 밀도가 빽빽해지는 것 같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44쪽, 안보윤 외 지음
그리고 몇 초 뒤에, 서로를 향하는 눈짓과 손짓, 표정에서 스며나오던 아쉬움이 두 사람을 어떠한 양감으로 살짝 움켜쥐었다 편 것처럼 주춤하게 했을 때 통화는 예기되었음에도 예기치 않은 것처럼 갑자기 종료되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70쪽, 안보윤 외 지음
내가 자꾸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게 사실은 살고 싶어서라는 걸 알았던 장희.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보다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유심히 귀 기울여주었던 장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57쪽, 안보윤 외 지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나는 어떻게 되었나? 배제되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나는 어떻게 되었나? 박탈당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63쪽, 안보윤 외 지음
장희의 눈에 비치는 것은 나인데 어째서 분노가 느껴지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이게 분노라면 어째서 이토록 단숨에 서글퍼지는 것인지를 납득해보려는 것처럼 조용히 시선을 맞받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64쪽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더니 결국 더러운 병에 걸렸다고. 통화를 하다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고 목은 잠겨 있었는데도 입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더라.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안보윤 외 지음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p154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진무 삼촌, 그이가 더러운 병에 걸렸다는 말,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더니 결국 죽었다는 말, 잘못 알고 말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갖고 말한 것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사실이 아니었던 말. 나는 그 말을 내뱉던 순간에 그녀가 마주했을 불안의 크기에 대해 생각했다. 감염과 죽음이 동의어인 줄 알았던 그 무지한 시절에, 장희의 미래를 오염과 타락, 징벌로밖에 상상할 수 없었던 그 막막한 날들에 그녀가 감당했을 공포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건 장희의 성장과 함께 증식한 불안이 아니었을까. 장희가 누군가를 원하고 만지고 사랑하는 게 이상할 게 없는 나이가 됨으로써 완성된 공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건 왜 응당 불안이고 공포였을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161, 안보윤 외 지음
나는요, 형님을 만나고 나서 알게 됐어요. 이영서 씨는 말했다.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오늘 장희 군한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삼촌은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삼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54, 안보윤 외 지음
내가 자꾸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게 사실은 살고 싶어서라는 걸 알았던 장희.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보다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유심히 귀 기울여주었던 장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p.157, 안보윤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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