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생각하기에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개인의 윤리를 떠나 어딘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대학교수가 자녀 대입에 도움이 되는 연구 부정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인 게 가장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유진, "미성년 자녀 이름 논문 넣어준 교수 69명 ‘걸리고도 잘 산다’", <한겨레>, 2022.04.25.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40298.html?_ga=2.165303103.1479413168.1700493502-307155222.1700493501
게다가 연구 윤리에 관한 규정은 황우석 사태 이후인 2007년에 처음 제정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부분이 있죠. 또한 교수 입장에서는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기 바라는 데, 도움 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관련하여 한때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경희대학교 세계와 시민 '아고라'조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독서모임
D-29
임지호
임지호
여전한 학벌주의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겠는데요, 중앙일보의 2023년 대학평가 자료에 따르면 기업 인사 담당자와 학부모/교사 간의 인식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에는 여전히 학벌주의가 뿌리 깊이 박혀있다는 걸 알 수 있죠.
- "고려대, 대기업 인사팀 선호 1위…서울과기·한국공대 ‘특성화 우수’ [2023 대학평가]", <중앙일보>, 2023.11.2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8489
임지호
마지막으로 최근 들어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습 자본주의'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는데요, 이는 다음 장에 관해 이야기할 때 더 깊이 다루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책 추천만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세습 중산층 사회 -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날카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20대의 불평등 문제를 심도 있게 꿰뚫는 책이다. 취업시장을 중심으로 불평등의 본질에 성큼 다가선다.
세습 자본주의 세대 - 88만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80년대생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 1980년대생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 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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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호
이쯤에서 (2)에 대한 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부터 내려온 전통이자 문화적 유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런 교육 문화 덕분에 단기간에 과학기술 강국의 반열에 올랐죠. 또한 교육은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한 사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교육이 거의 유일한 사다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더이상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도록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위에서 추천 드렸던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2020)에 나오는 자료를 근거로 제 의견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된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가 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90년대생에서 그 상관관계가 더욱 강해졌습니다.(위의 책, 119쪽) 또한 학업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는 IQ와 같은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양육을 통해 형성되는 성실성, 성취동기, 감정제어 능력, 사회성 같은 비인지적 능력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이는 부모의 학력과 직업, 월평균 가구 소득으로 구성된 '가정 배경'에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책, 143쪽)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 잘하고 성격도 좋더라'하는 속설이 틀린 말은 아니죠.
또한 저자는 불공정, 불평등에 대한 인식 역시 계급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20, 30대 청년들에게 '한국 사회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공정성에 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렇다'에 가까운 답변을 보였습니다.(같은 책, 228쪽) 이런 인식 차를 통해 저자는 같은 세대 안에서도 일종의 계급 의식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죠.
따라서 부모의 경제,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대학 진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는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데서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 아닐까요. 제도적으로라도 출발선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 양극화를 줄이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서연
(1)
저 또한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의 3장을 읽으며 채용 시장이 지원자를 평가할 때 지원자의 스펙을 중시하는 정도를 이전과 비교하였을 때 상대적으로 낮추고, 지원자의 전문성을 보다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읽으며 공감하였습니다. 한편, 현재의 채용 시장의 트렌드 변화는 '서민층'이라고도 불리는 일반적인 지원자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자녀에게는 이런 트렌드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특혜가 주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원인은 사회 구조 전반에 걸쳐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서연
임지호 님이 지적해주신 바에 크게 동감하는 편인데, 조국 전 장관 딸 조민 씨의 부정 입학 의혹 사건만 봐도 입시 비리로 기소된 조민 씨는 "집필한 에세이 전자책이 너무 잘 팔린다"라고 하며 오히려 순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입시 비리를 저질러도 강력한 처벌이 아닌 오히려 잘 사는 선례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사회는 아직 기득권자가 살기 좋은 구조를 갖춘 나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소연, "아버지 죄송...너무 잘 팔려 사과, 조민 에세이 전자책도 출간", <한국경제>, 2023.11.18.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11870277
손승열
(1) 제가 생각하는 대학 교수의 자녀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입시 부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학이 주는 기회적인 측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현재 우리나라는 정시 채용에서 수시 채용으로 바뀌는 과도기적 형태에 있어 점점 전문성에 관한 요구가 커질 것입니다.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들이 모르는 기술과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허나 현실적으로 혼자서 공부하여 전문성을 가지는 것보다, 높은 대학일수록 전문성을 배우는 것이 더 간편하고 또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도 가질 기회가 많습니다. 이 점이 주는 장점을 알기 때문에 다들 입시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남들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a)부모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하여 자신의 커리어를 키우는 행동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대학생들도 부모님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 뒷바라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다들 a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만약에 저의 의견과 같은 생각이시면, 과연 부모의 능력을 어디까지 제한해야하는 것일까에 대하여 묻고 싶습니다.
임지호
말씀하신 a)는 매우 흥미로운 의견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생각으로 조민 씨를 변호했던 고려대 동문도 있었습니다.
- <세계일보>, "조국 딸 대학 과 선배 목격담…"눈에 띄는 외모와 성실함으로 유명"", 2019.08.23. https://m.segye.com/view/20190823509140
임지호
저도 부모님 도움 받아서 대학 다니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과연 그렇게 하는 게 공정한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 -> '자녀의 대학 진학' -> '전문직 또는 괜찮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세습 과정에서 개인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죠. 이런 과정이 '정상적' 삶처럼 보이게 만들고, 이것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버거와 같은 사회학자가 말했듯 인간을 변질시키는 것은 그가 속해있는 집단이니까요.
김찬우
(1) 정기 채용에서 수시 채용으로의 변화가 탈학벌의 역할을 할 순 있겠지만 ,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탈학벌주의를 이끄는 데에는 아직 미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채용의 측면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는 꼭 좋 은 대학교를 나와야하고 그러한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는 주의가 사회에 만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의 가치 평가의 기준이 아직은 학벌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학벌의식이 큰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벌의 배경이 되는 곳에 몸 담고 있다 보니 ‘학교’라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두고 높은 학교의 장점과 그곳에서 파생되는 소위 말하는 ‘인맥’에 대한 욕심과 열망이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연스레 자녀의 대입과 연결되겠죠. 또한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기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된 결과, 입시 부정이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디까지를 부정으러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이에 대한 처벌이 미약해 부정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지호
말씀해 주신 것처럼 '어디까지를 부정으로 볼 것인가'가 모호한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조국 전 장관의 경우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서울대 교육징계위원회에서 최고 수위의 징계인 '교수직 파면'을 결정했죠. 하지만 법원에서 판결을 해주지 않는 이상,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비슷한 방법으로 부정 입학 의혹이 제기되었던 학생에 대해 입학 취소는커녕 연구 부정을 저지른 교수에 대해서 경고 및 주의 조치에 이른 정도라고 합니다.
- 신하영(2021), 위의 글.
- 이창진, "서울대 교수 자녀 공저자 연구부정, 서울의대 '최다'", <메디칼타임즈>, 2021.10.14.
https://www.medicaltimes.com/Main/News/NewsView.html?ID=1143503
김찬우
(2) 이렇게 대학교수의 자녀 입시 부정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교수의 자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평성의 측면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겠지만 무고한 대학교수의 자녀들 또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입시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입학한 대학교수의 자녀들에 대하여 그들의 피와 땀을 입시 부정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수의 자녀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문제는 가정불화, 자존감 하락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서연
(2) 손승열님이 말씀해주신 바와 같이 우리나라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부모가 이미 취득한 사회적 지위나 부가 자녀에게 대물림 되고 영항을 주는 것은 불가피한 사회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사회 현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시되는 것이 바로 ‘공정’이라 생각합니다. 평등과 공정에 관한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작점이 다르더라도 시작점이 결과를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와 국가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회적 위치라는 자녀들의 시작점이 우리나라에서는 결정적인 대입이라는 순간에 개입된다면 이것은 공정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서연
(2) 개인적으로 김찬우 님의 댓글이 제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관점이라 인상에 남네요. 저는 대학 교수의 자녀들이 입시 비리로 대학에 입학하는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학생들-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특혜를 보지 않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대학 교수의 자녀일지라도 공정한 절차를 통해 입시를 치룬 학생들 또한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임지호
저도 마찬가지로 이번 주제를 선정하고 나서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강자가 저지르는 부정에만 집중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간과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 인간이 마음을 판단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경험 능력'과 '행위 능력'을 제시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어떤 대상의 '감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과 반응'을 관찰하여 마음을 가늠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대상의 경험을 간과하고 행위만을 보면, 그런 존재는 우리에게 상처를 자신은 상처받지 않는, 로봇처럼 여겨진다고 합니다. 웨그너의 분석처럼 마음이 지각의 문제라는 것을 고려할 때, 누군가 상대적 강자로 보일지라도 경험과 행위를 모두 바라보는 중립적인 시각을 가져야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특정 대상을 '집단'에 포함하여 바라보기 때문에도 이런 편향된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은데, 웨그너는 우리가 집단을 흔히 경험 능력보다 행위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로봇과 비슷하게 집단 안의 사람들은 악행을 범할 수는 있어도 악행에 시달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는 것이죠.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교수 자녀들에게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찬우 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마음의 비밀‘흰곰 효과’로 널리 알려진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마음’에 관한 집필 작업을 구상하던 중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제자 커트 그레이에게 책의 완성을 부탁했고, 저명한 두 심리학자는 2013년 웨그너가 눈을 감을 때까지 함께 ‘마음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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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민
(1)
저는 해당 문제에 앞서 한국 사회에 자리잡은 '황금 티켓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22년 OECD에서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명문대 입학, 대기업, 공기업 등 낮은 확률의 성공 사다리에 올라타려는 한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중교등학교에서 왜 미적분과 비문학을 가르치는지 모르는 채, 아니 알아가는 과정도 남들의 '실패'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하며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의 그늘 아래서 오징어 게임의 열성적인 참가자가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흔히 돈과 명예를 성공의 잣대로 평가하지만 저는 몇년동안 "그럼 그 이후의 삶은?"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왔고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 지도에 없는 '성공'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티켓을 얻기 위해 부유층은 학연, 지연과 스펙을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쌓아가는 것이며, 강남의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부모의 바람이 빚어낸 모양으로만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가 부를 숭배하는 이유는 노후와 같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기회를 재화로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존의 수단을 넘어 점점 더 '성공'이라는 허상을 잡기 위해 너무 많은 부를 쫓는게 아닌가 생각듭니다. 황금 만능 주의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공허는 다시 더 많은 황금을 쫓는 인생의 굴레에 빠지게 합니다. 부에 대한 지나친 동경이 금전적 여유가 있는 부유층을 소수의 엘리트로 만들고 이것으로부터 오는 권력의 횡포 중 하나가 지금 다루고 있는 입시 부정 사례가 아닐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남이 정한 '성공'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실로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나서고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며 다양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제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원하는 목표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가끔 학벌을 위로로 삶곤 합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대학 소멸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는 시점에서 어느 한편에서는 한정된 입시 정원의 불공정한 선발 과정을 두고 치를 떠는지 이해하기 위해 현시점 한국에서 대학은 무슨 기관인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오픈 코스 등 디지털 교육 매체의 보편화와 기업에서 요구하는 실용적 전문성이 이론 교육으로부터 이어지지 않는 한계로 대학의 자기 존립성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학은 생존을 위해 계약학과를 개설하거나 전문 트랙을 갖추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쪽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교육의 일원화가 학생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막고 초중고 교육에 의어 황금 티켓 증후군 심화에 앞장선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부분에 대해 꼭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접어두겠습니다.
책에서 정부의 관료와의 인적 네트워크 및 고시 제도와 입시 제도의 유사성에 따른 대학 서열화와 앞으로의 탈학벌 이야기를 본 뒤, 앞서 말한 계약학과 및 기업 맞춤 인재 육성기관으로서의 대학이 여전히 남아있는 학벌주의적 서열을 이용하여 대기업과 연계할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대기업을 선호하는 한국의 많은 학생들을 이용하여 학벌세습일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대학 사이에 서열이 '평준화' 되어 있다고 언급한 호주, 독일, 스웨덴의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어떠한지 찾아보면서 한국과 비교하고자 했으나 최상위권 대학의 서열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임지호
황금 티켓 증후군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게 비판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동의가 됩니다. 이에 관해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미니소설 중 일부를 인용하여 제 소감을 대신하겠습니다. 우리 책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고, A4 2장 분량의 짤막한 소설이니 시간 나실 때 한 번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경기 규칙이 잘못됐다고 반칙을 저질러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부조리한 시험이라도 부조리한 대로 다른 수험생들과 동등하게 치르겠어요.”
- 장강명,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한겨레>, 2023.08.30.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6317.html
- <한겨레>, "사교육걱정없는세상-10명 작가-한겨레 공동기획"
https://www.hani.co.kr/arti/SERIES/1874/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임지호
첫 번째 주제에 관한 좋은 의견들 감사합니다. 이제 앞선 주제와 어느 정도 이어지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책의 4장 <양극화와 임박한 파국>에는 '헬 조선'의 증거로 가계 소득과 기업 소득의 양극화, 자산 양극화를 제시합니다. 저는 이러한 양극화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의대 입시 광풍'과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IMF 이후 유행한 '믿을 건 자신뿐'이라는 말처럼, 더이상 조직 안에서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직이 떠오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왜 하필 의대일까요?
법대가 사라지고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한 로스쿨은 더욱 그들만의 리그로 올라간 느낌이 있습니다. 회계사 시험은 경제학을 전공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공부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죠. 그렇다면 수능 레벨에서 남은 선택지는 정원이 제한되어 있고, 고소득이 보장된 의사라는 직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비슷한 계열, 소위 '메디컬'이라 불리는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도 덩달아 인기가 높아졌죠.
올해 들어 관련한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의대 입시 광풍'은 이제 하나의 신드롬이 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최상위권 입시 경쟁을 피해 해외 의대 진학을 돕는 학원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 이혜인, "충남 홍성까지 몰아친 '초등 의대반' 광풍", <한국경제>, 2023.06.22.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3062280871
- 윤상진, "국내 진학 어렵다고... ‘캐리비안 의대’라니", <조선일보>, 2023.07.12.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view/2023/07/12/ZC56R6KN3BDTPAA3AVKXKQRSZ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 최훈진, "대학 편입 4만명… 의대 광풍에 5년새 최대", <동아일보>, 2023-10-03.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1003/121472181/1
(1) '의대 입시 광풍'이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은 무엇일까요?
(2) 그리고 이렇게 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영민
양극화에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좋은 화제인 것 같습니다.
(2)
먼저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저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높지만,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현시점에도 역시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 방식이 고수되고 있어 청소년기에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골똘히 탐구해 나갈 시간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과열된 경쟁 사회의 경주마로서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하면서 오로지 의대 입시의 결승선만 통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나아가지만 결승선 그너머의 세상과 트랙 밖의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게 되어 정작 왜 경주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경주하고 있는지 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렀지만 2007년 미래학자 앨빈토플러가 한국 교육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은 의대 입시만 지향하는 현시점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교육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 최형규, "평등·획일화 … 한국교육 미래와 정반대로 가", <중앙일보>, 2007.09.2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90423
안영민
(1)
단기적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해당 현상과 맞물려 있는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에서 언급되는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 해결책의 일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중심지인 서울 강남구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위해선 진료 예약을 1분 내에 마쳐야만 그날 진료를 볼 수 있는 오픈런이 일상이 되었고, 지방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문을 열은 산부인과를 찾아 먼 지역까지 오가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의대 쏠림 자체의 바람직함을 논하기 전에 의료 인프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재 풀을 크게 조성한다는 의미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의대를 지향하는 것 자체는 올바른 흐름인 것 같습니다. 다만 다음 장기적 관점에 서 언급할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유능한 인재가 의대만을 바라보게 해서는 안되며 확대 정원을 필수,지역 의료에 어떻게 재배치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역시 필요해보입니다.
김잔디, "동네 소아과 문 열자 '대기 89명'…필수의료 진료난 갈수록 태산", <연합뉴스>, 2023.10.17.
https://www.yna.co.kr/view/AKR20231016149000530
문세영, "의대 정원 확충 '초읽기'..."필수의료 기피·의대 쏠림 해법 제시해야"", <동아사이언스>, 2023.10.17.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2034
곽성순, "필수‧지역의료 인력 유인책’도 없는 의대 정원 확대?", <청년의사>, 2023.10.17.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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