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해 주신 것처럼 '어디까지를 부정으로 볼 것인가'가 모호한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조국 전 장관의 경우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서울대 교육징계위원회에서 최고 수위의 징계인 '교수직 파면'을 결정했죠. 하지만 법원에서 판결을 해주지 않는 이상,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비슷한 방법으로 부정 입학 의혹이 제기되었던 학생에 대해 입학 취소는커녕 연구 부정을 저지른 교수에 대해서 경고 및 주의 조치에 이른 정도라고 합니다.
- 신하영(2021), 위의 글.
- 이창진, "서울대 교수 자녀 공저자 연구부정, 서울의대 '최다'", <메디칼타임즈>, 2021.10.14.
https://www.medicaltimes.com/Main/News/NewsView.html?ID=1143503
경희대학교 세계와 시민 '아고라'조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독서모임
D-29
임지호
김찬우
(2) 이렇게 대학교수의 자녀 입시 부정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교수의 자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평성의 측면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겠지만 무고한 대학교수의 자녀들 또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입시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입학한 대학교수의 자녀들에 대하여 그들의 피와 땀을 입시 부정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수의 자녀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문제는 가정불화, 자존감 하락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서연
(2) 손승열님이 말씀해주신 바와 같이 우리나라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부모가 이미 취득한 사회적 지위나 부가 자녀에게 대물림 되고 영항을 주는 것은 불가피한 사회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사회 현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시되는 것이 바로 ‘공정’이라 생각합니다. 평등과 공정에 관한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작점이 다르더라도 시작점이 결과를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와 국가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회적 위치라는 자녀들의 시작점이 우리나라에서는 결정적인 대입이라는 순간에 개입된다면 이것은 공정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서연
(2) 개인적으로 김찬우 님의 댓글이 제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관점이라 인상에 남네요. 저는 대학 교수의 자녀들이 입시 비리로 대학에 입학하는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학생들-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특혜를 보지 않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대학 교수의 자녀일지라도 공정한 절차를 통해 입시를 치룬 학생들 또한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임지호
저도 마찬가지로 이번 주제를 선정하고 나서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강자가 저지르는 부정에만 집중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간과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 인간이 마음을 판단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경험 능력'과 '행위 능력'을 제시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어떤 대상의 '감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과 반응'을 관찰하여 마음을 가늠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대상의 경험을 간과하고 행위만을 보면, 그런 존재는 우리에게 상처를 자신은 상처받지 않는, 로봇처럼 여겨진다고 합니다. 웨그너의 분석처럼 마음이 지각의 문제라는 것을 고려할 때, 누군가 상대적 강자로 보일지라도 경험과 행위를 모두 바라보는 중립적인 시각을 가져야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특정 대상을 '집단'에 포함하여 바라보기 때문에도 이런 편향된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은데, 웨그너는 우리가 집단을 흔히 경험 능력보다 행위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로봇과 비슷하게 집단 안의 사람들은 악행을 범할 수는 있어도 악행에 시달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는 것이죠.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교수 자녀들에게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찬우 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마음의 비밀‘흰곰 효과’로 널리 알려진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마음’에 관한 집필 작업을 구상하던 중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제자 커트 그레이에게 책의 완성을 부탁했고, 저명한 두 심리학자는 2013년 웨그너가 눈을 감을 때까지 함께 ‘마음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에 몰두했다.
책장 바로가기
안영민
(1)
저는 해당 문제에 앞서 한국 사회에 자리잡은 '황금 티켓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22년 OECD에서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명문대 입학, 대기업, 공기업 등 낮은 확률의 성공 사다리에 올라타려는 한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중교등학교에서 왜 미적분과 비문학을 가르치는지 모르는 채, 아니 알아가는 과정도 남들의 '실패'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하며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의 그늘 아래서 오징어 게임의 열성적인 참가자가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흔히 돈과 명예를 성공의 잣대로 평가하지만 저는 몇년동안 "그럼 그 이후의 삶은?"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왔고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 지도에 없는 '성공'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티켓을 얻기 위해 부유층은 학연, 지연과 스펙을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쌓아가는 것이며, 강남의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부모의 바람이 빚어낸 모양으로만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가 부를 숭배하는 이유는 노후와 같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기회를 재화로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존의 수단을 넘어 점점 더 '성공'이라는 허상을 잡기 위해 너무 많은 부를 쫓는게 아닌가 생각듭니다. 황금 만능 주의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공허는 다시 더 많은 황금을 쫓는 인생의 굴레에 빠지게 합니다. 부에 대한 지나친 동경이 금전적 여유가 있는 부유층을 소수의 엘리트로 만들고 이것으로부터 오는 권력의 횡포 중 하나가 지금 다루고 있는 입시 부정 사례가 아닐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남이 정한 '성공'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실로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나서고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며 다양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제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원하는 목표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가끔 학벌을 위로로 삶곤 합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대학 소멸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는 시점에서 어느 한편에서는 한정된 입시 정원의 불공정한 선발 과정을 두고 치를 떠는지 이해하기 위해 현시점 한국에서 대학은 무슨 기관인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오픈 코스 등 디지털 교육 매체의 보편화와 기업에서 요구하는 실용적 전문성이 이론 교육으로부터 이어지지 않는 한계로 대학의 자기 존립성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학은 생존을 위해 계약학과를 개설하거나 전문 트랙을 갖추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쪽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교육의 일원화가 학생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막고 초중고 교육에 의어 황금 티켓 증후군 심화에 앞장선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부분에 대해 꼭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접어두겠습니다.
책에서 정부의 관료와의 인적 네트워크 및 고시 제도와 입시 제도의 유사성에 따른 대학 서열화와 앞으로의 탈학벌 이야기를 본 뒤, 앞서 말한 계약학과 및 기업 맞춤 인재 육성기관으로서의 대학이 여전히 남아있는 학벌주의적 서열을 이용하여 대기업과 연계할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대기업을 선호하는 한국의 많은 학생들을 이용하여 학벌세습일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대학 사이에 서열이 '평준화' 되어 있다고 언급한 호주, 독일, 스웨덴의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어떠한지 찾아보면서 한국과 비교하고자 했으나 최상위권 대학의 서열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임지호
황금 티켓 증후군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게 비판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동의가 됩니다. 이에 관해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미니소설 중 일부를 인용하여 제 소감을 대신하겠습니다. 우리 책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고, A4 2장 분량의 짤막한 소설이니 시간 나실 때 한 번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경기 규칙이 잘못됐다고 반칙을 저질러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부조리한 시험이라도 부조리한 대로 다른 수험생들과 동등하게 치르겠어요.”
- 장강명,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한겨레>, 2023.08.30.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6317.html
- <한겨레>, "사교육걱정없는세상-10명 작가-한겨레 공동기획"
https://www.hani.co.kr/arti/SERIES/1874/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임지호
첫 번째 주제에 관한 좋은 의견들 감사합니다. 이제 앞선 주제와 어느 정도 이어지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책의 4장 <양극화와 임박한 파국>에는 '헬 조선'의 증거로 가계 소득과 기업 소득의 양극화, 자산 양극화를 제시합니다. 저는 이러한 양극화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의대 입시 광풍'과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IMF 이후 유행한 '믿을 건 자신뿐'이라는 말처럼, 더이상 조직 안에서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직이 떠오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왜 하필 의대일까요?
법대가 사라지고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한 로스쿨은 더욱 그들만의 리그로 올라간 느낌이 있습니다. 회계사 시험은 경제학을 전공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공부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죠. 그렇다면 수능 레벨에서 남은 선택지는 정원이 제한되어 있고, 고소득이 보장된 의사라는 직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비슷한 계열, 소위 '메디컬'이라 불리는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도 덩달아 인기가 높아졌죠.
올해 들어 관련한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의대 입시 광풍'은 이제 하나의 신드롬이 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최상위권 입시 경쟁을 피해 해외 의대 진학을 돕는 학원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 이혜인, "충남 홍성까지 몰아친 '초등 의대반' 광풍", <한국경제>, 2023.06.22.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3062280871
- 윤상진, "국내 진학 어렵다고... ‘캐리비안 의대’라니", <조선일보>, 2023.07.12.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view/2023/07/12/ZC56R6KN3BDTPAA3AVKXKQRSZ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 최훈진, "대학 편입 4만명… 의대 광풍에 5년새 최대", <동아일보>, 2023-10-03.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1003/121472181/1
(1) '의대 입시 광풍'이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은 무엇일까요?
(2) 그리고 이렇게 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영민
양극화에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좋은 화제인 것 같습니다.
(2)
먼저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저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높지만,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현시점에도 역시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 방식이 고수되고 있어 청소년기에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골똘히 탐구해 나갈 시간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과열된 경쟁 사회의 경주마로서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하면서 오로지 의대 입시의 결승선만 통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나아가지만 결승선 그너머의 세상과 트랙 밖의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게 되어 정작 왜 경주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경주하고 있는지 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렀지만 2007년 미래학자 앨빈토플러가 한국 교육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은 의대 입시만 지향하는 현시점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교육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 최형규, "평등·획일화 … 한국교육 미래와 정반대로 가", <중앙일보>, 2007.09.2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90423
안영민
(1)
단기적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해당 현상과 맞물려 있는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에서 언급되는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 해결책의 일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중심지인 서울 강남구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위해선 진료 예약을 1분 내에 마쳐야만 그날 진료를 볼 수 있는 오픈런이 일상이 되었고, 지방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문을 열은 산부인과를 찾아 먼 지역까지 오가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의대 쏠림 자체의 바람직함을 논하기 전에 의료 인프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재 풀을 크게 조성한다는 의미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의대를 지향하는 것 자체는 올바른 흐름인 것 같습니다. 다만 다음 장기적 관점에 서 언급할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유능한 인재가 의대만을 바라보게 해서는 안되며 확대 정원을 필수,지역 의료에 어떻게 재배치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역시 필요해보입니다.
김잔디, "동네 소아과 문 열자 '대기 89명'…필수의료 진료난 갈수록 태산", <연합뉴스>, 2023.10.17.
https://www.yna.co.kr/view/AKR20231016149000530
문세영, "의대 정원 확충 '초읽기'..."필수의료 기피·의대 쏠림 해법 제시해야"", <동아사이언스>, 2023.10.17.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2034
곽성순, "필수‧지역의료 인력 유인책’도 없는 의대 정원 확대?", <청년의사>, 2023.10.17.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0357
안영민
(1)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크게 3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로 집결하며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인재가 줄고 이에 따라 산업이 골고루 발전할 수 없는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10명을 모집하는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16명을 뽑는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동아일보에서 전국 14개 대학 의대생 24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재수 이상과 편입 비율은 43.3%, 영재,과학,자율형사립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이 30.5%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극단적 원인으로 나로호 개발 참여 연구원 박사는 연봉 9,600만원을 받았고 개원의는 평균 연봉 3억을 받았다는 실태처럼 경제 성장이 둔화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따른 선택으로 점찍었습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미래 지향적, 도전 지향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상쇄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산업의 기초를 공고히하기 위해서 과학, 기술 인재의 양성이 중요하며 과학과 공학이 무너진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책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사회가 임박한 '장기 파국'과 관련하여 양극화 현상에서 안정된 직장을 잡기 위해 재수, 삼수를 무릅쓰고 결혼과 취업을 미루면서 출산율 저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의대 진학 소요 시간에 대해 의대생 246명에 대해 설문 조사하였더니 재수 27.6%, 삼수 8.8%, 사수 이상 2.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 OECD 국가 중 꼴찌처럼 다양한 통계가 대면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여러 근본적 개선이 필요합니다만 장기적 문제에 기여하는게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 적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포문으로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논한 한 칼럼의 내용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미디어도 의대 열풍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바로 난치병에 걸린 환자를 수술하여 완치시키고 자부심을 느끼는 의사와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등 부유한 부자다.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매체에서의 의사는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로 다뤄지기 때문에 환자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사의 재력 등을 바탕으로만 의사의 이미지가 제시되고 의대 생활의 고충, 또는 종합병원에서의 전공의들의 현실적인 고충과 그들에 대한 과소평가된 대우는 보여주지 않음을 뜻한다. 의사들의 권리에 대한 투쟁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이는지 의사판 ‘송곳’과 같은 드라마는 기대도 못한다. 이렇게 의사라는 직종이 몸과 마음이 지치는, 만족도 45%의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 비친 모습 때문에 청소년들은 막연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과한 쏠림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100세 시대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만큼의 행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와 주위 사람의 기대로 인해 의사라는 직업을 선망하는 게 아닌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은 해보았는지, 의료계에서 종사할 때 오는 고충을 인내하는 삶이 자신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영화 '소울'을 보고 내 삶의 '불꽃'은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조유라, "이공계 ‘블랙홀’된 의대…“의사만큼 못벌것” 너도나도", <동아일보>, 2023.02.16.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216/117906680/1
최민지, "반도체학과 전원 등록 포기 사태…정부는 8곳 540억 쏟는다", <중앙일보>, 2023.02.2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3739
의대협 사회협력국, "[칼럼]우수한 인재의 의대 쏠림 현상, 이대로 괜찮은가?", <청년의사>, 2017.05.27.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2591
김서연
(1) 의대 열풍이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안영민 님께서 말씀해주신 부분들에 깊이 동감합니다. 특히 저희가 읽었던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에서 언급한 '장기파국'과 '의대 열풍'이 연결되는 지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연 사회' 입니다. 우리나라 청년의 사회 진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데,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 취업을 위해 대학 졸업을 늦추고 이후에도 몇 년간의 취업 준비 기간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를 '지연 사회'라고 부릅니다. 군 입대까지 포함할 경우 남성들의 사회 진출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가능하고요. 경제활동 지연은 결혼 연령 상승으로 이어지고, 만혼 추세의 일반화는 저출산 경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여성정책연구원 공동 연구팀이 발간한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와 미래 경제사회 발전’ 보고서에서는 결혼이 1년 더 늦어질수록 합계출산율은 0.1명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하였는데, 지난 20년간 초혼 연령이 4.6년 늦어졌음을 고려해보면 합계출산율이 0.5명 정도 낮아지는 것이죠.
안영민 님이 말씀해주신 바와 같이 '의대 열풍'은 입시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하였고 그로 인해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시간을 늦춥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의대 열풍'이 저출산에 기여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최준영, “취업도 결혼도 완벽하게 준비된 후에”… 출발 늦추는 ‘지연사회’[르포 대한민국], <조선일보>, 2022.08.10
https://www.chosun.com/opinion/2022/08/10/SOQJRJEREZDODE33N3PFOPTW2I/
임지호
장기적인 관점에서 말씀하신 세가지 부정적인 영향에 공감합니다. 특히 세 번째, 저도 최근에 의사라는 직업의 적성에 관한 흥미로운 글을 읽어서 공유합니다.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는 제중원 의학교(연세대 의대의 전신) 1회 졸업생인 박서양의 경우를 들어 서양의학의 근간이 되었던 외과수술을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박서양은 천민이었지만 피와 살을 다루는 게 익숙한 백정의 아들이었기에 수련을 잘 마치고 외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는 거죠.
- 장하석, "백정의 아들이 선사한 서양의학", <중앙일보>, 2023.11.2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8774
인기 진료과인 피부과·안과·성형외과와 필수진료과이지만 비인기과인 흉부외과·응급의학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외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요즘,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적성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 끝에 의대에 진학하는 데 왜 세계적 수준에서 대한민국 의료계는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자연계 최상위권 3,000여 명의 학생들이 오로지 임상의사의 길을 걸으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면 훌륭한 인재도 많으니 필수진료과의 의사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의과학, 의공학 분야의 연구 인력도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장윤서, "서울 빅5도, 지방 주요병원도 ‘전공의’ 모시기...내년도 필수진료과 미달 사태 우려", <조선비즈>, 2023.11.23.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medicine-health/2023/11/23/DI2GSK72JZGRVAVIZUFOA5FNIY/
- 황보연, "“두 문제만 더 맞히면 윗단계로” 그들이 대학을 갈아타는 이유", <한겨레>, 2023.03.1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83127.html
- 송수연, "'세계 의대 TOP100' 한국 3곳…'한국 1위'는 연세의대", <청년의사>, 2023.10.30.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0731
김찬우
(2) ‘의대 열풍’의 원인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로는 안영민님의 의견처럼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있습니다. 진로를 탐색할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은 학생들은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의학 계열의 길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교에서 진로 탐색의 시간은 다른 과목의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은 편이죠. 실제로도 주변에 의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론 ‘의사‘라는 직업에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가치관이 담긴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장 큰 이유는 돈이였습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싶은 일’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아 삶의 가치를 물질적 요소에 치중하게 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약간은 독특한 생각일 수 있는데 ‘의대’라는 것이 하나의 타이틀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입시에 있어서 높은 성적을 받은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높은 성적을 받은 사람들은 ‘의대’라는 타이틀에 집중하여 선택의 폭을 좁혀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수로 다른 학과 가기엔 아깝고 , 의대를 가면 미래가 보장될 것 같고, 자신이 여태까지 공부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도 받고싶은 마음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안영민
현재 졸업을 바라보고 있는 제 시점을 벗어나, 막 입시전략을 짜고 있을 수험생들의 입장에서 보상심리를 받고 싶을 것이라는 시점의 전환이 새롭네요.
저도 만약 제 전공의 컴퓨터공학 및 과학의 묘미를 느끼기 이전의 안영민으로 돌아가서 의대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합니다.
안영민
지나가던 그믐 내 탐험가 여러분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주시면 좋겠는데요 ㅎㅎ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만약 의대 합격증을 받은 입시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는 선택을 하시겠어요? 아니면 현재의 삶을 이어가시겠어요?
김서연
저는 현재의 삶을 이어갈 것 같습니다! 제가 현재 인문 계열의 학생이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의대가 앞으로의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더라도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저에게는 오히려 행복하지 않은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큽니다. 저는 현재의 삶이 즐겁고, 내년과 내후년이 기대될 정도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 같습니다. 다른 조원분들은 모두 이공계열 학생분들이신만큼 의견이 어떠신 지 궁금해집니다-!
김찬우
저 또한 현재의 삶을 이어나갈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인생의 중요성을 요즘 더욱 더 느낍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미래에 물질적인 안정과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순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한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성적이 높은 사람들은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의대로 선택의 폭을 좁혀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꿈을 찾는 과정 중에 있지만 , 의대를 갈 수 있는 상황이어도 저는 그 분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거기서도 꿈을 찾고 , 찾는 인생을 살고싶습니다 !
김서연
(2) 저도 학생들이 진로 탐색의 기회가 적은 것이 의대 열풍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진행되는 진로 관련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희망 직업으로 제시하는 것들이 대부분 변호사, 의사, 선생님 처럼 "명확한" 직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보니 의학과를 진학하지 않는 이상 진로를 고민할 때는 '직업'보다는 현실적인 '직무'를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진로 탐색의 기회가 적다보니 세상에는 나아갈 방향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에 갇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의대를 가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렇다보니 의대 열풍이 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임지호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2020)에서 명문대의 캄핑과 네트워크 현상을 지적합니다. 하버드에서 유명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캄핑'이라는 입단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하는데요, 일부 동아리는 합격률이 10%대라는 것을 자랑처럼 말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문대라는 입시의 문턱을 넘어서도 네트워킹을 위한 일종의 '동아리 입시'라는 새로운 경쟁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김찬우 님이 지적해 주신 보상 심리와 의대라는 '타이틀'에 대한 집착과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의대를 다니는 친구들에 의하면, 의대에도 아이비리그와 비슷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와 기수 문화를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은데, 이를 통해 엘리트 의식이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조금 과장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학벌주의, 즉 '의대-비의대'를 가르는 경향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샌델은 같은 책에서 이러한 고등교육의 승자독식 재선별이 야기하는 문제점으로 불평등의 심화와 승자들에게도 피해를 남긴다는 점을 듭니다. 첫 번째는 우리 책이나 수업에서 다루었듯이 많이들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두 번째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학벌로 대표되는 능력주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힘겨운 투쟁을 거듭해야 하는데, 그 결과 부유한 가정 출신의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심각한 정신적 문제와 높은 약물 의존증을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젊은이(20~24세)들은 살인보다 자살로 더 많이 죽어간다고 하죠. 우리나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의대를 중심으로 한 '신(新) 학벌주의'에 관해 그저 비판만 하지 말고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리커버 에디션)“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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