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4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D-29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나고도 슬픈 일들은 끝나지 않더군요. 전쟁의 여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얼마나 길게 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자 내지 경험자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잊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가 도와주셨죠. 아버지는 현명한 분이셨어요. 우리 메달과 훈장, 지휘부의 감사패를 다 가져다 감춰버리고는 말씀하셨어요. - 전쟁이 났고 우리는 싸웠다. 이젠 잊어버릴 때다. 전쟁은 지나갔고 이제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구두를 신어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93,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찾아보니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찍혔고, 그 전체가 유투브( https://youtu.be/IpNq7WO3dUI )에 올라와 있더군요. 총 7편으로 이뤄져 있고 1편이 '그건 내가 아니었어'의 올가 오멜첸코입니다. 아무래도 영어나 한국어 자막은 없지만 영상이라도 보고 싶은 분을 위해 올려봅니다. (다시 알고보니 다큐멘타리가 먼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방영되었고, 책이 1984년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외투를 팔지도 못하고 시장을 빠져나왔어요. 그리고 모스크바에 사는 동안, 한 5년 정도 될까, 시장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았어요. 시장의 불구자들 중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는 '어쩌자고 나를 그때 불길에서 끄집어낸 거야? 왜 구했어?'라고 소리칠까봐 무서웠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젊은 우리 병사와 역시 젊은 독일군 병사가 어린 밀밭에 하늘을 보고 누워 있죠...... 하지만 전혀 죽은 사람들 같지 않아요. 그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을 뿐...... 나는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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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월 13일), 오늘(12월 14일), 내일(12월 15일) 3일간은 '우리는 쏘지 않았어', '군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 이렇게 두 장을 읽겠습니다. 이런 속도로 읽으면 모임 끝나기 하루 전인 12월 24일까지 완독하는 일정이 될 것 같아요. 연말에 한가롭기보다는 분주하고 마음 쓰이는 일도 많을 텐데(네, 제가 그렇습니다!) 다들 이 책 읽는 동안은 마음도 차분해지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쏘지 않았어' 장에서는 전쟁터에서 돌봄 노동을 해야 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다음 장('군이이 필요하다는 거야...' )에서는 전쟁터에서의 여성성을 놓고서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증언이 나와요. 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증언은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끔찍함의 침묵과 허구의 아름다움.'
전쟁영화를 봐도 사실이 아니고 책을 읽어도 사실이 아닌 거야. 그러니까, 그게 달라. 뭔가가 달라. 그렇다고 전쟁을 직접 겪은 내가 이야기하면 정확하냐. 그것도 아니거든. 전쟁은 그렇게 끔찍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어. 때론 전쟁터에서 맞는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주위를 보며 생각했지. '어쩌면 아침을 맞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아,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공기도... 했살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367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어쩌면 오히려 전쟁터에 더 많은 일상의 삶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찮고 사소한 일들 역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쏘지 않았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하지만 전쟁통에 가족을 잃거나 가족이 독일군 치하에 사는 병사들도 많았거든. 그런 병사들은 편지를 받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익명으로 편지를 썼지. '안녕하세요, 군인아저씨! 이름 모를 소녀가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 밤마다 앉아서 편지를 썼어...... 전쟁 내내 그런 편지를 수백 통도 넘게 쓴 거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쏘지 않았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여자가 살짝 몸을 일으키더니 나에게 조개로 된 아름다운 분통을 내밀었어. 모르긴 몰라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인 것 같더라고. 분통을 열었지. 그러자 사방에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성이 울리는 그 한밤에 분 향기가 퍼지는데...... 아, 그건 정말 특별한 무엇이었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군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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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12월 16일, 17일)에는 '아가씨들! 공병대 지휘관은 오래 살아야 두 달이라는 거, 알고나 있소...'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공병, 특히 특히 전투 공병 경험을 한 여성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전투 공병은 전쟁터에서 지뢰와 같은 폭발물이나 철조망 등을 매설하고 제거하는 일을 주로 하는 군인입니다. 다음 주에 총 다섯 장을 월요일(12월 18일)부터 일요일(12월 24일)까지 읽을 예정입니다. 연말에 분주한 일정이 많으신 분은 이번 주말에 읽을 양이 적으니 미리 다음 주 분량을 읽으면 좀 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다음 주도 하루 읽을 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쟁이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 전쟁은 대지의 색이라고, 우리 공병대에게는...... 까맣고 노랗고 황토 빛깔인 흙의 색이라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아가씨들! 공병대 지휘관은 오래 살아야 두 달이라는 거, 알고나 있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죽음에 대한 사유 없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2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18일)과 내일(12월 19일)은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장을 읽습니다. 이번 주는 금요일까지 '씨감자에 대하여...' '엄마, '아빠'가 뭐예요' 장까지 읽을 예정입니다. 오늘, 내일 읽을 장에서는 전쟁터에서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전쟁 이후에 겪는 또 다른 아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번 주도 천천히 읽겠습니다.
참, 이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으실 거예요. 예를 들어, 익명을 원하는 인터뷰이들이 '성'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 같은 대목이요. 한국에서 성은 그대로 쓰더라도 이름을 바꾸거나 일부 공개하는 것과는 반대죠. 그런 이유를 알려면 벨랴코프 일리야의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틈새책방)가 도움이 됩니다. 러시아의 이모저모를 한 눈에 훑기에는 좋은 책인 것 같아서 이참에 소개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 일리야의 눈으로 ‘요즘 러시아’ 읽기JTBC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로 활약했던 벨랴코프 일리야가 러시아를 소개하는 책을 냈다. 벨랴코프 일리야는 러시아 출신으로 지금은 한국에 귀화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 책은 현재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을 읽고 우리와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를 보여 준다.
오. 이 책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추천이시라니 당장 읽으러갑니다~ ㅎㅎ 기초를 좀 다진 다음에 임명묵 작가님 책도 도전해봐야겠어요. 책걸상 방송 들으니 재미있을것 같아서요~
우리 딸내미들 중에는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건 전쟁터에 나가 싸운 엄마들이 자기들이 살았던 전선의 방식으로 딸들을 키웠기 때문이오. 아빠들도 마찬가지고. 전선의 윤리로 말이오. 전쟁터에서 사람은, 당신한테 이미 말했듯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단박에 드러났소. 그곳에선 감출 수가 없거든. 우리 딸들은 세상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소. 부모들이 딸들에게 이 세상의 감춰진 추악한 이면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쟁을 잊고 싶으셨나요? ―잊는다고? 잊는다…… 올가 바실리예브나가 되묻는다. ―우리는 전쟁을 잊고 말고 할 능력이 안 돼요.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쟁을 잊고 그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산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것 같습니다. 지금도 전쟁을 살아내고 있는, 군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참 어려운 시간을 살아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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