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4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D-29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소. 내 아내같이 똑똑한 여자도 여자 병사들을 좋게 보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그녀들이 남편감을 찾아 전쟁터로 간 거고, 그 곳에서 연애질만 실컷 하다가 왔다고 믿었어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나 혼자먀 엄마한테 돌아왔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이 문장을 읽다가 얼마전 끝난 드라마에서 나온 '환향녀'라는 이름으로 고통받고 버려진 수많은 여자들이 떠올랐어요ㅠㅠ
우리 가족은 화목해. 사이좋게 잘 지내지. 아이들, 손자손녀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전쟁터야. 늘 그곳에 가 있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85,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스케쥴대로 따라 읽고 있습니다. 조금씩 나누어, 같이 읽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도움이 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6일)과 내일(12월 7일)은 '우리 집엔 두 개의 전쟁이 산다'와 '전화기는 사람을 쏘지 않잖아'를 읽습니다. 앞의 장에서는 전쟁터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부부의 이야기, 뒤는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서쪽 전선으로 자진 입대해서 독일에서 종전을 맞이한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2차 대전이 미국 혼자 히틀러와 싸워 승리한 전쟁으로 알고 있어요. 소련 사람들이 그 승리를 위해 치른 대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소련 사람이 치른 2,000만 명의 목숨 값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8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감정이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강력한 법이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감정이 사실보다 더 강력하다는 말은 진심 옳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엔 이런 말을 하면 비논리적이며 나약하다고 비난받거나 무시당했던거 같아요.
그 일을 떠올리는 건 끔찍하지만,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게 더 끔찍하거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25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상상을 한번 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체르노바는 당연히 아이를 기다렸지…… 삶을 사랑했고 또 살고 싶어했어. 당연히 두려워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갔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무릎을 꿇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거부했어. 적에게 굴종하는 삶 따위는… 어쩌면 그때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 베라 세르게예브나 로마놉스카야, 빨치산 간호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133,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주말부터 계속 못 읽고 있다가 오늘부터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속도를 내려야 낼 수가 없네요. 느릿느릿 따라갈게요.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를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우리집엔 두 개의 전쟁이 산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선에서 남자들은 따뜻하고 선량했어. 다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차라리 아무 말 않겠어...... 아무 말도...... 무엇이 우리의 추억을 훼방 놓는 줄 알아? 그 추억들을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화기는 사람을 쏘지 않잖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이 책 읽으면서 틈틈이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를 읽었어요. 세계사에 무지한지라 소설 읽으며 대략 독소전쟁에 관한 내용 찾아보면서 같이 읽으니 소녀동지도 좋았어요. 마지막에 그 책과 이 책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왠지 울컥했어요. 이 책이야 물론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책이지만 ‘소녀동지’도 저처럼 무지한사람에게는 이 책을 시작하게 만들 충분한 동력을 주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8일)부터 주말(12월 9일, 12월 10일)까지는 '우리는 작은 메달을 받았어'와 '그건 내가 아니었어'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저마다 다른 색깔로 펼쳐집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다가 여러 번 멈췄어요. 주말에 천천히 읽으시길 바랍니다.
전투가 끝나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게 차라리 나았어. 다들 평소에 보는 보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완전히 딴 얼굴이 되어 있었으니까. ... 짐승 같은 뭔가가 번뜩였다고 할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6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12월 11일)과 내일(12월 12일)은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 않아'를 읽습니다. 이 장에서는 벨라루스의 전쟁 영웅 바실리 바하로비치 코르시(1899~1967)의 가족, 특히 참전했던 두 딸과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전쟁 전에 이미 "벨라루스의 전설"로 불렸던 영웅 가족이 전쟁 중에 특혜를 받지 않고서 두 딸이 참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두 딸이 담담히 털어놓은 전쟁 경험도 인상 깊었던 장이었어요. 두 딸은 애초 의사를 꿈꿨었는데, 참전 경험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전쟁은 재빨리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속에 새겨 넣었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86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우리는 모두 전쟁만 끝나면, 그 숱한 눈물만 그치면 멋진 삶이 우리를 기다릴 거라고 믿었어요. 아름다운 인생이. 승리만 하면. 이날들만 견뎌내면. 모든 사람이 한없이 선해지고 서로 사랑만 할 거라고 믿었죠. 모두 형제자매가 될 거라고. 우리가 얼마나 그날을 기다려왔는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96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나고도 슬픈 일들은 끝나지 않더군요. 전쟁의 여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얼마나 길게 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자 내지 경험자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잊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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